창간 20주년 기념특집 | 불교, 이상사회를 꿈꾸다

1. 현대사회와 문화

‘문화의 세기’라고 부르는 21세기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문화정책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고 ‘문명 전환’이라는 거대담론이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인 듯하다. 이는 이제 인류가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는 한편, 문화가 권력과 돈의 원천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문화의 세기 한가운데서 《불교평론》은 창간 20주년을 맞이하여 ‘불교가 꿈꾸는 이상적인 문화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그러나 그 대답이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문화’라는 말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18세기 이후 종교와 문화가 겪어온 갈등 관계를 생각하면 ‘불교가 꿈꾸는 이상적인 문화를 논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문화’라는 개념은 ‘인간의 고상한 정신적 창조물인 예술’이라는 고전적 의미로부터 ‘한 사회의 행동양식이나 상징체계’라는 인류학적 의미까지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다. 문화라는 개념이 이처럼 복잡한 의미를 갖는 까닭에 대해 윌리엄스는 “주요하게는 이 단어가 몇몇 다른 지적 분과와 몇 개의 변별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사상체계 속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였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상체계에서 논의하느냐에 따라 문화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그와 함께 이상적 문화에 대한 논의도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문화’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는 “때로 철학, 학문과 역사를 포함하기도 하는…… 음악, 문학, 회화 그리고 조각, 연극, 영화라고 보는 견해”이다. ‘경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문화(culture)’ 개념은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자기실현을 강조한다. 이는 서양의 유래로 보면 그리스의 파이데이아(Paideia) 전통을, 동양에서는 문사철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8세기에 확장된 문화 개념을 본다면,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생산한 실제 작품뿐만 아니라 교양을 갖춘 엘리트들이 예술을 추구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일반적인 문명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와 함께 도덕적이고 계급적인 의미, 나아가 가치평가적인 의미가 덧붙여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에 들어 사진, 영화 등 새로운 예술 장르의 등장으로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개념이 출현함과 함께 문화가 포괄하는 범위는 확장되었으나 대중문화는 ‘문화적 소양이 있는 개인’의 세련된 취미라는 관념의 확대를 의미하기보다 엘리트들이 향유하는 고급문화와 구별되는 대중들의 문화라는 가치평가적인 의미를 갖는 한정적인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문화 개념은 많은 논쟁을 겪었다. 인류학과 사회과학의 연구 결과 제시된 총체성(totality) 개념을 바탕으로 문화 개념은 전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문화는 한 사회가 생산하고 축적한 모든 것, 더 나아가 일정한 인간 집단에 관한 ‘모든 것(complex whole)’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위, 예를 들어 의상, 유행, 외모, 몸짓의 언어 등이 상징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 상징화와 의미의 차원을 말할 때 우리는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러한 용법의 문화 개념은 하나의 사물(예술)이나 상태(문명)라기보다 사회적 실천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적 차원은 사회가 구성되는 핵심적인 차원이 되었다. 문화는 그 범위뿐만 아니라 영향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우리 삶의 기본적인 관계와 조건들, 제도들이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수행되는 상징적 행위들을 통해 구성되고 있다는 인식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이후 인류학의 발전과 전 지구적인 문화교류에 힘입어 문화연구의 범위가 예술을 넘어 정치, 종교, 경제의 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며, 문화 연구는 예술이론뿐 아니라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결과로 종교 역시 교리나 사상보다 상징과 의미체계로서 이해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후기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창조행위와 생산행위로서의 문화에 새롭게 주목하면서 개인적인 향유의 영역에 머물던 문화예술은 시장으로 나와 소비와 체험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개척된 새로운 시장은 1930년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비판적으로 사용되었던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경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최첨단 산업을 가리키는 말로 만들었다. 이제 문화는 새로운 첨단기술과 부를 창출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문화산업과 대중문화의 등장과 함께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문제가 새롭게 인식되었으며, 이런 변화와 더불어 ‘문화’ 개념은 경제 및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구호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의 가치지향적인 의미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볼 때 문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연장물이다. 그 연장물이 다시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생산물은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생산물의 증가와 함께 인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의 문화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융성한 문화의 세기인 오늘날 불교가 다시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상적인 문화’라는 질문 속에 담긴 가치지향적인 의미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불교 전통을 또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듦으로써 이 시대의 이상적인 문화를 가꿀 수 있을까? 또는 첨단의 생산물을 산출하는 창의성을 증진하는 데 그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그 속에 문화가 담고 있는 의미만큼 많은 배경과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관점을 함유하고 있다. 그 전제를 검토하지 않고 이 질문들에 기대되는 답을 찾는 것은 그런 전제들을 암묵적으로 긍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곤란함을 피하고 오늘날 불교, 나아가 종교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문화와 종교가 갈등하는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 우리 시대의 이상적인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성이 있을 듯하다.

2.현대문화와 종교

현대성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자들은 새로운 문화와 현대문명의 토대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과학이 도덕적 생활의 기반으로서의 종교를 대체하기를 원했다. 베버가 “더 많은 생활영역에 대한 점증하는 합리화”라고 불렀던 과정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발흥, 경제생활의 ‘합리적’ 유형인 서구 자본주의의 성장, 법적으로 합리적인 법률과 규칙, 이 과정에 뿌리박고 있는 정치문화의 발전 등은 18세기 이후 서구에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계몽주의자들은 종교와 분리된 세속화의 과정을 지시하기 위해 문화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문화를 지배하는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가치와, 정신적이라기보다 도구적이며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합리성이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의문에 붙여졌다. 과학과 기술을 산업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적용시키고 관습, 주술, 미신과 다른 초자연적 금기의 끈을 약화시키는 것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이루겠다는 계몽주의의 기획은 브라이언 터너가 주장하듯이 “세계를 정연하고 확실한 것으로 만들지만, 그것은 세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존재의 심층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들을 제공했던 종교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을 거치면서 과거에 가졌던 사회 통제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그 위상도 현저히 낮아졌다. 세상의 고통과 부조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을 제공하며, 특히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던 종교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그리고 사회와 문화의 여러 영역이 종교적인 제도와 상징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리되어 나왔으며, 대중매체의 발전과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강화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촉진시켰다.

여건종이 말하듯이 “상징 생산은 의미와 가치의 생산”이므로 그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삶이 살 만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느낌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현실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에 대한 느낌이다. 종교 시설물과 조형물, 의례 도구 등은 이 근원의 느낌을 강화시켜준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종교 상징이 근거하고 있는 위계질서가 전복되었는데, 대량생산의 주체, 곧 대중이 이 전복의 주체였다. 대중이 생산과정의 주체로 등장함에 따라 예술은 탈신비화되었다.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은 종교의례의 토대로부터 분리되어 나왔으며 예술의 종교적, 제의적, 주술적 가치가 사라지고 전시적 가치가 중심이 되었다. 그에 함께 문화유산에 담긴 전통적 가치도 폐기되었다.

이처럼 “종교적인 사고, 의례, 제도가 사회적 중요성을 상실해 가는” “세속화” 과정에서 전통사회에서 우주와 존재의 근원을 형상화하는 가장 주도적인 상징 기제였던 전통적인 종교 상징과 형식들이 힘과 호소력을 잃었으며, 인간존재의 심층적 문제들에 대하여 유의미한 해결책을 제공하던 종교의 역할 역시 약화되었다.

이 변화와 더불어 종교는 좀 더 문화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종교는 수많은 여가활동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사람들은 종교 활동에 시간과 정력, 재화를 들여야 할지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비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체로서 대중이 부상하고 대중 미디어가 점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종교는 더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서비스 상품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사적인 것이 되었다. 테일러가 지적하듯이 종교적 귀속과 정치적 귀속 사이의 연관이 점차로 줄어들게 됨에 따라 “주위 환경으로부터 오는 최소한의 도전을 받으며 신자나 비신자가 될 수 있는 편안한 구석 자리로부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쫓겨나는 세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점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종교적 생활 모습에 대해 개인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내몰리고 있다.”

종교가 문화적인 것 속으로 사라지거나 변질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 위기로부터 종교적인 것의 복원을 시도하는 강한 종교적 주장이 등장했으며, 반대로 문화로부터 종교를 배제하려는 세속주의 역시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급속히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의 존립을 위해 현대문화, 특히 대중문화를 이용하려는 현실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화계에서는 종교적인 것을 통해 현대문화의 한계를 타파하려는 시도들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탈종교화 시대에 문화는 종교를 대신하여 일상의 상징과 의례가 되었다. 물질적 생산과 소비, 노동과 자원의 분배 과정뿐만 아니라 의미와 가치의 생산까지 시장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대중을 위해 생산되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대중문화는 일상의 삶에서 상징 생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종교의 세속화와 탈신화화는 종교적인 것의 보편화와 연결되는데, 탈종교화 시대의 대중문화는 기성종교를 대신하여 현대의 신화이며 의례가 되었다. 대중 미디어 시대에 상징 행위의 원천은 주로 음악, 영화, 미디어, 대중소설, 드라마, 패션 스타일 같은 대중문화의 소비를 통해 제공된다.

 

3. 불교의 문화적 차원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불교 역시 다양한 종교적 상징물을 발전시켰다. 짐작할 수 있듯이 관정, 탁발, 다비, 스투파, 전륜 등등 대부분의 불교적 상징은 역사적 인물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살았던 시대의 인도문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용된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인도 고대종교로부터 물려받은 상징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는데, 그것은 브라만교의 상징체계가 확고하게 뿌리내린 인도문화에 적지 않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이 변화의 상징적인 단초는 붓다의 탄생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각자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지며 모든 인류가 구원되어야 한다는 탄생게는 카스트 질서에 기반하고 있는 인도의 전통종교는 상상할 수 없는 선언이었다. 탄생게의 의미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적 의미, 나아가 문명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문헌학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불교학 연구에서 충분히 주목되지 못했으나, 인간의 본성적 평등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붓다의 신념이 얼마나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초기 불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가족의 왕자들보다 한나절 먼저 출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발사 우팔리를 왕자들보다 상석에 앉게 한 결정은 비록 승가 내부의 위계질서지만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신이었다. 종교적 위계질서가 사회 전반을 규정했던 고대 인도사회에서 불교의 평등한 승가 위계질서가 발휘했을 영향력은 승가 내부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서인도 지역에서 489년부터 622년 사이에 존속했던 라이 왕조를 소개하면서 현장은 “왕은 수드라 계급에 속해 있고, 성격은 순박하며 불교를 독실하게 신앙하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불교가 고대 인도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약자였던 이민족과 상인 계층인 크샤트리아, 천민 계층인 수드라 및 수드라 출신의 왕이나 도시인들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불교의 수평적 질서가 갖는 해방적이고 대안적 성격은 20세기 들어와 암베드카르(1851~1956)가 불가촉천민들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한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카스트나 바르나 등 엄격한 신분질서를 갖는 인도사회에서 하층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개종은 그러한 질서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브라만교 종교의례를 그대로 인정하는 불교의 포용적인 성격은 개종자들이 갖고 있었던 기존의 종교의례와의 대립을 최소화시키면서 불교로 개종하는 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인도불교 멸망사를 연구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문화 차이가 인도불교의 소멸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도불교 멸망에 대한 종래의 정설은 일본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 등이 주장한 것으로, 인도사회에서 힌두교와 불교는 같은 뿌리를 갖는 종교로서 온후한 대립구도를 유지하며 복합문명권을 형성하였으나 페르시아제국의 멸망과 이슬람의 서인도 침략으로 불교도가 이슬람교로 개종 혹은 습화되어 불교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자료를 중심으로 인도불교사를 연구한 일본 불교학자 호사카 슌지는 종래의 정설을 반박하고 불교가 문명 전환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호사카 슌지의 비교문명학적 연구는 인도불교가 멸망한 원인을 교단의 쇠망이 아닌, 그 배경인 불교 문명의 쇠망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는 기존의 정설이 거시적인 역사발전에 대하여 타당한 설명이 될 수는 있으나 불교 문명의 소멸에 대한 문명사적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면서, 1203년에 있었던 이슬람 군대의 침입으로 동인도 비크라마실라사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가 무참히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불교가 사라졌다는 히라카와 아키라의 학설에 대하여, 인도불교의 멸망에 대한 원인을 이슬람의 침입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그 이전에 먼저 인도불교가 민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를 물어야 한다고 하면서 “불교는 왜 그 시대에 정치적 힘이나 문화적 세력을 잃었을 때 지하 기독교도처럼 그 신앙을 존속시키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711년 시작된 이슬람의 시드 정복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인도이슬람 연구의 최고 사료 중 하나인 《차츠나마》와 현장의 《대당서역기》 비교연구를 통하여 그는 7~8세기경 서인도 일대의 불교와 힌두교의 관계를 새롭게 밝히고, 이슬람의 불교사원 공격이라는 외적 요인과 함께 인도불교 쇠망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불교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 그리고 그 때문에 민중으로 유리되었다는 나카무라 하지메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기존의 정설과 반대로 《차츠나마》는 서인도에서 불교는 소멸 직전까지 민중에게 공헌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적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호사카 슌지에 따르면, 7세기 무렵 불교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힌두교 및 그 정통파 권력에 대한 대항세력의 역할을 했다. 이처럼 불교와 힌두교가 긴장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관계가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세력의 침입으로 붕괴되었는데, 그 이유는 불교가 소멸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담당하고 있던 힌두교에 대한 대항적인 역할이 이슬람에 의해 대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슬람의 인도 침략 당시 불교도가 이슬람 점령군에게 협력하고 나아가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카심의 원정 중 니룬의 장관이며 불교 승려였던 바한다르칸 사마니가 자청하여 니룬을 칼리프에게 공헌했으며, 이와 유사하게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례들이 있다. 불교 승려가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거부하고 이슬람 지배를 선택한 사실을 통해 볼 때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종교적 태도가 불교의 소멸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불교는 승단만 아니라 재가자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종교였다. 그러나 앞서 제기했던 “불교는 왜 그 시대에 정치적 힘이나 문화적 세력을 잃었을 때 지하 기독교도처럼 그 신앙을 존속시키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볼 때 불교의 탈세속적인 성격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처럼 종교와 세속권력의 결합이 강력한 종교는 정치적 힘이나 문화적 세력을 잃어도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세속권력과 느슨한 연계를 갖고 있던 불교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종교가 등장했을 때 그 지원자들을 잃게 되기 쉽다. 호사카 슌지는 이 개종의 의미를 불교가 그동안 맡았던 힌두교의 대항세력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이슬람에 빼앗긴 것으로 해석하면서, 사회적 역할의 소멸이 곧 불교의 소멸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인도 침투 과정에서도 이슬람의 폭력성보다 이슬람이 제시했던 문화적 차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불교가 문명 변용의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특징이 이슬람의 그것과 유사했다는 사실은 주목된 적이 없다. 이슬람은 종교적 평등을 명확히 주장함으로써 인도사회에서 차별받던 사람들에 의해 별 저항 없이 수용되었으며, 인도 내에서 불교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교는 힌두교로부터는 이질성을 이유로, 이슬람교로부터는 종교상의 이유로 압력을 받아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힌두교로 흡수되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호사카 슌지는 바로 이 문화적 특징이 고대인도 사회에서 이슬람이라는 급진적인 정치적 종교적 세력이 등장했을 때 불교의 교리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을 중시한 사람들은 힌두교에 흡수되고 불교의 반(反)힌두적 정치 기능을 중시한 사람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된 원인이라고 추론한다.

호사카 슌지의 주장에 따르면, 불교는 문화를 수용하는 측에게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문화를 지키면서 불교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던 반면, 이슬람교의 경우, 기존의 종교와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수용된 사회에서는 기존의 종교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속사회로부터 이탈하려는 불교의 문화적 특징이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한적인 것으로 만들어 한 사회로부터 불교를 배제하는 일이 좀 더 용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인도사회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문화적 차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동아시아로 전파된 불교는 인도와 다른 모습으로 그 문화적 차원을 구체화했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불교와 중국 문명의 만남이라는 문명 변용의 과정과 의미에 대한 기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아시아에서도 인도와 유사하게 불교가 세속권력에 대항적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다음 장에서는 근대 이후 새로운 문화적 지평에서 불교에 기대되는 문화적 차원을 논의해보겠다.

 

4. 개인화된 신앙과 탈종교의 종교성

불교가 세속권력과 갖는 느슨한 결합이 종교와 문화가 분리된 현대사회에서는 종교와 문화가 강하게 결합된 인도사회와 다르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서양의 기독교가 근대 이후 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이 서양 근대문명이 종교와 문화의 분리를 통해 종교의 역할을 최소화한 데 있다는 호사카 슌지의 흥미로운 주장 역시 이와 같은 전망에 힘을 더해준다.

테일러가 예견했듯이 탈종교화 시대에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열망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또는 특정 종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가나안 교인같이 기독교인이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핵심적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도 자신을 가톨릭교도라고 하거나, 또는 기독교를 불교와 결합하는 등 종교적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종교적 정체성을 갖는 이들을 주변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주목할 점은 특정 종교에 대한 충성도가 약화되는 가운데서도 종교적인 것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종교적 요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종교적 요구는 인격신에 대한 신앙보다 비인격적이고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는데,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 not religious)”이라는 구호에서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런 변화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문화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탈종교화 시대의 종교에 대한 몰입은 개인적이고 좀 더 내면적인 경험을 추구하거나 작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얻어지는 행복감, 이른바 ‘소확행’에서 얻어진 만족감과 같이, 지금까지 제도종교에서 제공하던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명상은 그중 가장 두드러진 활동으로, 제도화된 종교로부터의 이탈은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테일러에 따르면, 이러한 종교문화의 전환이 소비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으며, 개인주의적 삶과 함께 “행복의 추구”는 더욱 직접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개별화된 공간에서 소비자는 더욱더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고 자신의 공간을 자신만의 필요와 선호에 따라 꾸며가도록 고무하였다. 탈종교화 시대에 이르러 테일러가 ‘진정성(authenticity)’의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내적 진실함이며, 가장 소중한 종교적 자원은 개인이 느낀 깊은 통찰이다. 열정적인 신앙을 불러일으켰던 교리적 문제들이 관심에서 멀어지고, 영적인 통찰과 감정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전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물질적 풍요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개인주의적 소비자 문화와 관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와 더불어 전후 세대들은 자기를 찾고 자신을 실현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우리 각자는 인간성을 실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나 이전 세대 또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권위에 의해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된 모델에 일치하도록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부르주아’적이거나 기존의 규칙과 기준들에 대해 저항하며, 그들이 창조적이거나 생명력이 있다고 느끼는 생활 방식과 예술을 공공연히 발표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자아실현이 현대문화 전면에 등장했다.

세속화는 종교가 사회의 모든 질서와 제도를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이지 개인의 종교적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전에 종교가 개인들에게 제공하던 궁극적인 의미체계를 개인들이 스스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있다.

사람들에게 종교가 초월적인 신성이나 신성불가침한 권위의 원천이기보다 개개인의 삶과 문화 속에서 내면적이며 진실하고 선한 것으로 접근하는 통로로서 이해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전환, 다시 말해 종교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적이고 내밀한 것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 탈종교화 시대를 특징짓는 현상 중 하나이다.

오늘날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는 문제는 무슨 옷을 입을지, 누구를 만날지, 휴가를 어디서 보낼지, 집안 장식은 어떻게 할지 등등 개인적인 관심사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덜 중요한 일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삶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패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고 자신의 공간을 나만의 필요와 기호에 따라 꾸미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

오늘 입을 옷을 선택하고 주말에 볼 영화를 결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선택할 때 고려사항은 그런 활동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적 이미지와 자기만족이다. 교리의 정합성이나 초월적 세계는 중요하지 않다. 설사 교리에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종교라면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깨달음이나 내세의 구원 같은, 과거의 종교가 약속했던 행복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할 때 얻어지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만족이다. 이 역시 탈종교화의 또 다른 특징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내면을 간직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사람들은 위로와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감정을 내적인 것으로서 경험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화와 행복은 세속적인 행복과 사회적인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주의의 발달은 개인주의화된 영적 체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근까지 승려들의 전유물이었던 명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불교의 오랜 지혜 속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테일러는 이처럼 개인화된 종교가 갖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체제가 다소 경박하고 요구 수준이 낮은 정신적 선택을 증식하는 경향이 있다면, 우리는 다양한 강요된 일치라는 정신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예로 위선, 어리석은 정신, 복음에 대한 내면적 반란, 신앙과 권력의 혼동 혹은 그보다 나쁜 경우 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찰스 테일러가 지적하듯이 개인주의화된 영적 체험이 되도록 기분이 좋아지는 쪽이나 피상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서구화된 불교가 심리치료의 보조수단이나 웰빙의 수단으로 개인화되고 있다. 또한 명상이나 기도와 같은 종교적 활동이 초감 트룽파가 “영적 물질주의”라고 비판한 것처럼 일시적인 만족이나 위로를 추구하는 일종의 소비행위에 그칠 가능성도 짙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일시적인 감동이나 피상적인 체험에 만족할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명상이든 기도든 더 깊은 정신적 발전과 종교적 삶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나아가 현대 소비사회의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바꾸지 못한다면, 서구화된 불교에 대해서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미봉함으로써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서양 지식인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5. 자기 배려의 문화

불교는 탈종교시대의 새로운 종교문화를 열고 있다. 붓다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식에 의해 개발되어온 인간의 내적 경험에 대한 경험과 지혜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시대가 비로소 온 것이다. 제도화된 종교적 경험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내면적 경험으로서의 영성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종교가 아닌 인문학에서도 인간 주체성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영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논의를 주도한 푸코는 영성의 의미를 인간성의 주체성을 의미하는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푸코는 영성이 인식이 아니라 주체의 존재가 진실에 도달할 권리를 갖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변형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영성은 ‘사랑’과 ‘자기 수련’에 의해 진실에 도달 가능한 주체가 되기 위해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푸코가 말하는 영혼은 실체로서의 영혼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영혼이다.

푸코는 자기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가 배려해야 할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것은 영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 배려란 ‘자신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수양, 즉 자기규율이 바람직한 삶의 기본조건이라는 사실을 논의하면서 ‘자기 배려’란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태도이며 시선을 외부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항상 자신에게 가하는 다수의 행위를 지칭한다고 보았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에서 자기 배려의 전통을 발견하였는데, 소크라테스가 ‘자기 배려’를 말하기 전부터 고대문명 속에는 ‘자기 배려’의 초석을 구축한 ‘자기 테크놀로지’가 존재했다. 《알키비아데스》에서 알키비아데스는 부와 용모 등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정치계에 입문하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스스로 적들과 비교해볼 것을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배려가 무엇인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자기 배려’로부터 타자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도출될 수 있도록 ‘자기 배려’를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배려’는 자기를 인식하는 데 목적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원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말로, 신탁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신중함을 경고했던 것이다.

서양 역사에서 기원후 1, 2세기는 자기 배려의 황금기였다. 그것은 신분과 관계없이 만인에게 항시 부과되는 보편적인 원칙이었으며, 철학자들은 자기 배려를 필생의 일로 여겼다. ‘자기 배려’는 성년에 실천되어야 하므로 그 최고의 단계와 보상의 순간은 노년에 주어진다. 세네카는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늙기 위해 살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언제 죽더라도 완벽한 만족의 상태, 즉 노년에 접어든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모든 불행, 사고를 품위 있게 견뎌내는 것 또한 성숙한 인간이 행해야 할 자기 배려의 모습이다. 자기 실천은 사회적 실천과 연관되어 있는데, 자기와 자기의 관계구축이 곧 자기와 타자와의 관계에 접속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와 맺는 언어 관계에서 도덕성을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불교문화 속에서 자기 배려의 전통은 승려뿐 아니라 재가자를 위해서 강조되고 있다. 38가지의 길상한 일을 말한 《망갈라 숫따(Mangala sutta, 吉祥經)》에서 “앗따삼마빠니디 짜(Attasammāp-aṇidhi ca)”, 즉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조절하는 것은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에 해당한다. 앗따삼마빠니디(Attasammāpaṇidhi, 올바른 자기 통제)는 믿음이 없을 때 믿음이 스며들게 하고, 덕이 없을 때 덕스럽게 하며, 인색한 경우에 관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행위, 말, 생각에 의한 나쁜 행동을 삼가는 것을 뜻한다. 선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은 인도와 그리스 모두 고대문명의 기본적인 관점이었다.

붓다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 경제적인 생존과 교육적인 발전을 위해 일하고 게으름을 내쫓음으로써 “올바른 자기 통제”라는 축복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마음이 조절되고 통제되고 순화된다면, 신체적인 행동과 언어 행동도 순리에 맞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개개인 사이에서 자비를 나누고 사회 속에서 우정 어린 관계를 맺는 것이 불교에서 본 길상한 일이며, 불교가 꿈꾼 이상적인 문화라고 말한다.

《망갈라 숫따(Mangala sutta)》에서는 길상한 일로 다음 네 가지 역시 말하고 있다.

 

첫째, 바후삿짠짜(Bāhusaccaňca)-예술과 일반 지식에 조예가 깊다.

둘째, 십빤짜(Sippaňca)-직업적인 분야에 숙련되는 것

셋째, 위나요짜 수식키또(Vinayo ca susikkhito)-개인적인 규율에 있어서 잘 훈련되어 있는 것

넷째, 수바시따 짜 야와짜(Subhāsitā ca yāvācā)-유쾌하게 얘기하는 것

   

불교는 이상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예술과 지식, 직업적 숙련, 도덕성, 사교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네 가지 덕성은 큰 축복으로 일컬어지는데, 마치 바퀴와 같이 회전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생에서도 계속된다고 하여 ‘바퀴(Cakka)’라고 한다.

바후삿짜(Bāhusacca, 多聞, 博識)는 배운 과목이 숙달되는 것을 뜻한다. 붓다는 “지식은 인간의 보물”이라고 말하였는데, 승려가 배워야 하는 것이 수따(Sutta, 戒經)와 게이야(geyya, 頌)와 같은 삼장 율법이라면, 세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계를 제공하는 직업적인 문제, 교육, 상업, 의학, 문학, 예술이나 음악을 배워야 한다. 붓다는 예술과 여러 지식에 박식한 때 세속적인 생활과 담마의 두 영역에 정통하여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붓다는 배운 사람은 보석으로 장식한 사람처럼 두드러질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귀의처가 될 것이며, 유명해지고 부와 다른 세속적인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지식의 수행으로 준수하거나 절제해야 하는 것을 준수하거나 절제함으로써 다음 생에서 좋은 운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익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 단련은 명상과 같은 수행과 계율의 실천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전통에서 이끌어온 푸코의 ‘자기 배려’는 안정적이고 흔들림 없는 자아를 기른다는 점에서 불교적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수행 전통은 근대 이후 사라졌으나 최근 타자 중심의 윤리적 실천과 함께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탈종교시대에도 종교 활동은 줄어들지 않겠지만 내적이고 진정한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은 회심이나 눈부신 통찰의 순간에 시작될 수도 있지만, 더 높은 정신적 수행으로 이어지는 ‘자기 배려’ 문화가 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시대에 요청되는 불교의 문화적 기여는 이처럼 자신을 배려하고 영혼을 양육하며 서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평등하고 탈권위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 ■

 

명법
구미 화엄탑사 주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동 대학원 미학과 졸업(박사).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 운문승가대학 졸업. 주요 저서로 《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등과 〈서양 현대예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에 대한 반성과 제언〉 외 논문 다수. 현재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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