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 기념특집 | 불교, 이상사회를 꿈꾸다

1. 들어가는 말

필자에게 청탁된 원고의 제목은 ‘불교가 꿈꾸는 이상국가’이다. 글을 시작하려다 보니 두 가지 이유로 참 난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이유는 꿈은 꾸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를 불교라고 할 때 누가 꾼 꿈인지가 너무 모호하다. 그래서 부득이 논의를 끌고 가는 내용을 초기 경전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둔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범위를 한정해도 붓다나 초기교단의 아라한들이 실제로 이상국가라는 꿈을 꾸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문제는 불교와 국가라는 조합이 방외지사들에게는 너무 생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가는 자족적 공동생활의 단위이고,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공동의 도덕적 목적이다. 공동의 도덕적 목적은 국가가 가장 좋은 공동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덕적 사회의 실현은 국가목적이고, 가장 높은 단계의 정치적 지향점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상이 되는 것이며, 또한 이상국가를 구성해 낼 수 있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국가가 실현해야 할 목적의 설정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어떠한 국가도 물질적 번영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도덕적 심성 고양이라는 과업을 외면하거나 포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정치 공동체도 국가의 존재 이유와 관련되는 구성원의 정신적 성숙을 국가의 임무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만약 이 임무를 외면하거나 포기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점유한 영역 내에서 단지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폭력집단에 불과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정신적 원리들이 사회적인 가치와 이상 그리고 이익의 의미로 전환될 수 없거나 혹은 공동체의 도덕적 목적 실현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그러한 원리들은 사회 내에서 생명력을 갖고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정치라고 한다. 따라서 정치적 사유의 본질에는 반드시 윤리적 측면이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됨의 고유한 가치는 모든 정치사상의 기초”이고, 국가는 “전체 도덕세계의 수호자”라고 하는 정의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정치 혹은 국가와 종교는 서로의 영역이 다른 별개의 현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존재 이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른 영역으로 규정되는 정치와 종교의 표피적인 관계와는 달리 양자의 심층에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양식을 규정해 주는 분리 불가능한 연기적 관계망이 공유되어 있다. 이 점이 정신적인 영역의 뒷받침이 부실한 공동체에서의 삶은 그 방식과 방향의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이 결핍될 수밖에 없어진다. 반면에 삶의 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과 유리된 정신적인 가치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불교에는 이러한 논리와는 반대의 의미를 갖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필자의 논지는 여말선초 성리학 배경의 억불정책론자들의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초의 최승로에서부터 시작되어 조선 초의 정도전에서 절정에 달한 그들의 불교 폄훼 주장의 요지는 불교의 가르침에는 애당초 국가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의리와 공의를 망각하게 하여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는 반사회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반박은 논외로 하고, 국가나 정치에 대한 교조의 입장이 가르침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포인트를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고타마 싯다르타는 자신의 선택 여부나 이후의 행적과 관계없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정치적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는 단순히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자가 아니라,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왕자였다. 둘째는 29세에 결행한 유성출가 전에 이미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통하여 64종의 학문과 29종의 무술과 병법에 통달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붓다와 상가는 매우 비정치적인 입장을 견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왕과 연결된 사안들이 있었고, 정치 · 경제적 유력자들과도 접촉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넷째는 성불 후 교화활동을 시작한 붓다는 당시 재위하고 있던 군주들에게 좋은 정치, 훌륭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문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붓다가 왕들을 교화한 내용이나 그들에게 정치적인 자문을 해준 내용들은 비교적 소상하게 그 전말이 경전에 전해지고 있다. 그 속에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그가 성취했던 학문과 무술과 병법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는 추론일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은 불교의 이상국가 개념에 접근할 수 있는 분석 대상 자료들이라고 생각된다.

2. 국가란 무엇인가?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본질적으로 조화와 협력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행위도 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 때문에 공동체는 언제나 불가피하게 구성원 사이에서 노출되는 갈등 요소를 제거하거나 축소시키면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 양식 때문에 인간사회에는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집단적 행위나 제도적 장치로서의 국가나 정부가 필요한 존재로 대두하게 된다.

카야노 도시히토(萱野稔人)는 국가란 “인간공동체가 갖는 정치기구로서 어느 일정 지역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즉 법 규정과 법질서유지라는 합법적인 폭력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공동체”라고 했다. 따라서 국가는 ‘폭력과 관련된 운동’이 된다. 전쟁이든 범법자의 체포나 처벌이든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가지는 것은 국가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과는 달리 헤겔은 “국가는 구체적인 자유의 실현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하였고, 이 명제는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근대정치이론의 양대 방향을 이루고 있는 변증법적 국가론의 핵심이다.

카야노 도시히토는 국가의 본질을 알기 위해선 우선 그 개념과 탄생 과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고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국가는) 물리적 폭력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라는 베버의 정의이다. 고대국가에서부터 현재의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영역 안에서 폭력을 독점해야만 국가가 성립한다는 정의는 변하지 않는다. 국가를 포함한 정치단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다종다양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국가를 다른 단체로부터 분리해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그러므로 국가란 사회계약론자들의 주장처럼 주민이나 대중들의 협의에 의해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가장 강대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나라,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신봉승의 표현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왕위를 버린 붓다의 국가와 통치자에 대한 가르침

베버(Weber)는 출세간을 강조하는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을 “궁극적 목적이 열반을 성취하는 것인데, 정치는 열반의 길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초기불교는 특별하게 비정치적이고 반정치적인 것으로 정치적인 이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스스로 확인하고 체험한 ‘존재의 궁극적인 존재양식’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진 교리체계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불교의 지향점은 세간의 일인 정치와는 친화적인 요소보다 상충될 수 있는 소지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정치를 보는 불교의 근본적인 입장에 대한 베버의 비교적 정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주장은 베버의 평가에 반전의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뒤르켐은 종교도 “하나의 사회적, 집합적 산물”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소위 종교적 관념의 범위를 넘어서는 어떤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불교의 경우를 뒤르켐식 언어로 표현해보면, 불교 교단이 아무리 출세간적 원칙을 견지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종교 행위가 사회의 다른 요소들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역의 관계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종교현상에는 다양한 측면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리나 교단사만이 아니라, 혼재되어 있으면서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다른 측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현상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측면들 중에서 정치 · 사회적 측면은 종교의 존재양식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일반론에서 불교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거기에는 반드시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일정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으로 이루어진 한 사회의 질서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정치현상이며, 붓다 시대에는 국왕의 통치행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때문에 국왕의 통치행위에 의해서 삶의 질과 내용이 결정되는 민초들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통치자의 출현을 고대하였고, 불교도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가 주된 관심사가 아닌 불교도, 특히 재가자들의 의식 속에는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좋은 통치자와 나쁜 통치자에 관한 개념들이 자리 잡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붓다는 비록 제도적이고 정치 · 사회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구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고, 당시의 여러 나라 국왕들에게 이러한 문제의 해결이 국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 즉 왕과 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반복적으로 가르쳤다. 중생들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붓다의 연민과 사회고의 제거가 정치적 사안이라는 문제의식은 2,6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책무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한 고통은 죽음의 고통과 같기” 때문에 베풂은 최고의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빈곤에 못지않게 관심을 보인 분야가 환자에 대한 간호 영역이었다. 그래서 “나를 시중들 듯 그 마음으로 환자를 시중들도록 하라.” “병자를 돌보는 것은 나를 돌보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라고 가르쳤다. 그뿐만 아니라, 붓다는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을 잘 받들어야 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이나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아야 한다.”고 노인과 고독한 사람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국가의 임무라는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겠다는 붓다의 이상은 출세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었음을 이러한 가르침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붓다는 자신이 통치자나 사회개혁가가 되는 것을 마다했고, 교단 내에 국가권력과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나 기구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붓다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당시 왕들과 지배계급들에게 좋은 통치자가 되는 길과 좋은 국가를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붓다의 국가나 정치에 대한 설법 내용은 이상주의적이거나 현실주의적인 어느 한 측면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도둑의 현상에 비교된 경우도 있고, 중생들의 사회고를 제거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현상이라는 내용으로 설법이 전개된 경우도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가는 그때 그곳에서 살아간 통치자와 백성들의 의식 수준과 행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나 제도, 이념 등도 무상을 넘어설 수는 없다. 무상은 찰나도 쉼이 없는 지속적인 운동이고, 이 운동에는 정해진 방향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이 변화의 방향이 악(惡)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선(善)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불교적인 측면에서 본 통치자의 기능이고, 국가와 정치현상이 존재해야 할 이유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나 통치행위가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지 않게 작동하는 국가가 바로 불교의 이상국가이고, 불교도들이 염원하는 정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붓다는 정치권력의 타락을 매우 경계하는 입장을 여러 경전에서 피력하고 있다. 경전의 곳곳에는 ‘정부라는 제도를 인간 타락 시대에 필요한 불행’이라거나 타락한 왕이 인민에게 주는 고통은 도적이 양민에게 주는 고통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렇게 붓다 역시 국가 발생기원론에서부터 국가를 ‘필요악’으로 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변화가 불가능한 불변의 속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연기론적 세계관이라는 본질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않는 창조적 적용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좋은 통치자와 덜 나쁜 국가

국가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이상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불교는 국가의 기능이나 성격 그리고 정부의 형태를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본다.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성격에 연동하여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의 조직과 기능, 통치자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나 통치자의 역할도 무상의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기론적인 시각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된 정치 혹은 국가에 대한 개념 정의는 영원히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존재 방식에 대한 확인에서 출발하여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불교를 흔히 초세속적인 종교로 규정한다. 그러나 오랜 불교사 속에는 초세속적인 가르침을 승계한 불교의 교단과 세속사인 정치가 붓다가 단호하게 견지했던 원칙에 맞지 않는 어색함을 연출하면서까지 밀도 높게 결합된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이 어색한 부조화를 조화로운 일로 분식해 낸 근거 역할을 한 것이 많은 경우 전륜성왕 개념이었다.

전륜성왕 개념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무력이 아니라 진리로 지배하는 불교의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자리 잡은 개념이다. 이 개념은 불교에 수용된 이후에도 언어적 표현 방식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내용 면에서는 홍법의 수단으로서의 왕권이라는 의미가 부가된 변화를 겪은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명칭에 대한 언어적 표현은 동일하지만, 그 내용은 절대왕권의 옹호가 아니라 왕권의 남용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로 성격이 전환된 것이었다. 그것은 권력을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자비실천의 도구로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은 선출된 최초의 통치자 마하삼마타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통치자에 대한 보편적 호칭인 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과 민초들의 좋은 통치자 출현에 대한 염원이 맞물리면서 일어난 변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쇼카왕의 치세라는 역사적 경험은 이러한 경향에 결정적 자신감과 그러한 국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쇼카 왕은 이 세상의 어떠한 인간도 어떠한 시대에나 지켜야 할 영원한 이법인 다르마(dharma)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고, 그의 재위 시에 세운 비문들에 그의 행적과 다르마를 새겨 두었다. 비문에 나타나는 그의 다르마 내용은 ‘부모에 대한 효양, 친척 간에 화목, 종교가나 수행자에 대한 존경과 공양, 생명을 죽이지 않고 보호함, 외로운 노인과 어린 자녀에 대한 보호, 노예에 대한 올바른 대우’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다르마의 내용은 특정 종교나 전문적인 수행자의 윤리가 아니라, 당시 인도의 대다수 종교 윤리와 대체로 일치되는 것이었다. 이는 보편성과 대중성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이며, 그가 광대한 제국의 통치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불교도들은 아쇼카의 다르마를 불교의 가르침인 법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물론 이러한 불교도의 입장은 아쇼카왕이 독실한 불교 신자이면서 승단을 보호하고 많은 후원을 한 왕이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아쇼카 다르마가 불교도의 재가윤리 범주에 포함되는 내용들이라는 점이고, 또한 그것은 불교도의 사회적 실천덕목인 자비의 내용으로 여러 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전륜성왕이 통치하는 불교의 이상국가는 “불교의 본질적 가치인 자유 · 평등 · 복지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이다. 이는 깨달음을 통하여 체득되는 해탈이라는 정신적 경험을 공동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며, 그 방법은 자비의 실천과 최소한의 수준에서 재가자의 5계가 보편적인 윤리규범이 되어 일상적으로 실천되는 국가나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혹은 왕의 존재 이유인 ‘도덕적 사회의 건설’이라는 세속적 국가들이 추구하는 최고 수준의 목표와도 근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태국의 현 라마왕조 여섯 번째 왕이었던 와치라웃(Wachirawut: 1910~1925)왕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큰 시사점을 준다.

도덕적 행위에는 유행이 없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타인에게 의존하여 생존하는 한 정직, 신뢰, 명예로운 행위 등은 항상 고결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태국인은 불교의 오랜 가르침을 확고히 신봉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존경을 얻을 수 있고 진실한 문명에 이를 수 있는 길은 법의 길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질 높은 공동체의 구현, 즉 도덕적인 공동체의 건설에 있기 때문에 국가는 “도덕세계의 수호자”이고, 이 일을 수행하는 최고의 책임자가 바로 통치자이다. 불교도들은 전륜성왕을 도덕세계의 수호자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통치자로 개념화했다. 이 때문에 전륜성왕이라는 용어에는 이상적인 통치 자질의 전형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소유한 우주적 군주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정의와 보편적 진리의 위력에 의거하여 세계를 평정하고 통치하는 왕 중의 왕 전륜성왕이 통치하는 나라는 백성들의 삶이 풍족하고 안락하며, 높은 덕성을 실행하고, 법을 준수하며, 편리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붓다는 당시 인도대륙에서 나라를 경영하고 있던 많은 왕에게 좋은 국가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교훈과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쳤다. 붓다 당시 인도대륙에는 군주정과 귀족적 공화정부라는 두 가지 형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붓다는 어느 한쪽을 비난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승가의 제반 운영규정을 명시한 율장에서 율을 운용하는 방식이 공화제 운용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간접적이지만, 붓다의 국가형태에 관한 선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국가기원론과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로밀라 타파르(Romila Tha-par)는 “군주제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비판이 사회계약론이라는 가장 초기 경전의 국가기원에 관한 불교도들의 설명”이었다고 평가했다. 붓다가 실질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국가 혹은 정부의 형태가 아니라 그 정부에 의해서 실행되는 정책의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무아의 인간관, 자기실현의 무한 가능성(불성)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실현 방법인 도덕성(계율)이 국가의 정책 결정과 실천과정에서 실질적인 기능을 하는가 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 속에 내재된, 이상국가를 해명할 수 있는 핵심적 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가자들은 초기불교 이래로 깨달음의 세속적 가치인 자유 · 평등 · 복지사회가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염원했고, 후대의 불교도들은 그러한 이상사회를 불국토 혹은 정토라고 불렀다. 불교도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세속의 이상사회는 기본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의 최고 가치인 깨달음의 추구와 거기서 파생되는 결과로서의 자비실천이 선순환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된 사회구조와 그러한 윤리관이 확립된 사회였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정신과 육체에 대한 내외의 부당한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 인간 가치에 대한 인위적이고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 경제적으로는 적어도 가난 때문에 도덕적 수치심을 상실할 정도의 궁핍으로부터는 해방된 사회, 사회적 약자가 정책적으로 보호받는 사회, 정신적 가치의 생산자들이 존경받는 사회 그리고 오계가 보편적인 윤리규범으로 실천되는 도덕적인 국가사회를 말한다.

이상사회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통치자의 출현에 대한 기대로 연결된다. 유능한 통치자란 고통스러운 현실을 정토에 가까운 사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통치자이고, 불교도들은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통치자를 전륜성왕이라고 불러왔음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불교도들의 사고방식에 자리 잡은 정토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통치자인 전륜성왕은 국가와 백성들을 내우외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백성들을 궁핍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진 군주에 대한 기대가 응집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권력행사는 내면적 동기에서부터 현실적인 운용에 이르기까지 도덕적인 사회건설이라는 목표에 집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륜성왕을 수식하는 외형적 장엄과 조건들은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용상 좋은 사회의 건설에 필요한 수단이나 기재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치자의 통치를 통하여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목표는 불교의 본질적 가치인 자유 · 평등 · 복지가 일상화되는 국가사회의 건설이다. 이는 깨달음을 통하여 체득되는 해탈이라는 정신적 경험을 공동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며, 그 방법은 자비의 실천과 오계를 국가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행동 규범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전륜성왕의 전범으로 인정받는 아쇼카왕의 경우를 통해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후대의 숭불 군주들의 롤 모델이 된 그는 통치 내용이 자비의 실천 그 자체였던 치적으로 인해 “왕의 모습을 한 철학자” 혹은 “왕관을 쓴 성자”로 평가되는, 인도의 역사에 실존했던 통치자였다.

 

5. 나가면서

불교의 알파요, 오메가인 연기법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성을 갖는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탐구 조망을 제공한다. 이념이나 제도들은 정치적 조건과 환경에 의하여 형성되기도 하고, 해체 소멸되기도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만 작동하는 유동성 그 자체로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자체와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불교적 원칙이다. 불교의 이러한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 역시 제행무상이라는 세상을 보는 교리적 원칙으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불교인들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정치제도를 최상의 것 혹은 절대적인 것으로 지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불교도들은 교리적으로 살생, 투도, 양설, 사음, 음주를 장려하거나 묵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한, 특정한 정치제도나 이념 혹은 통치자를 배척하거나 백안시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동일한 논리로 현재 상황에서 아무리 유용하고 적실성이 높은 이념이나 제도, 정책일지라도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타당성을 갖는 절대선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교의 내재적 자기 가치는 불교적 언어구조와 의례 및 상징을 통하여 표출된다. ‘좋은 통치와 좋은 나라’를 표현하는 불교적 언어는 ‘정법치국’이고, 정법으로 다스려지는 국가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행위의 주체를 뜻하는 통치자에 대한 구체적인 상징어가 ‘전륜성왕’이다. 전륜성왕이 언급된 많은 경들에는 정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왕만이 전륜성왕의 권위와 존엄을 인정받는 것이지, 혈통이나 세습 등 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오랜 불교사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서 지배층이 불교의 군주론을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오용한 경우는 있었지만, 그러한 일시적이고 단면적인 양상을 불교의 전체적인 속성으로 간주할 경우, 과도한 단순화가 초래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불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최고의 종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논리 신앙체계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군주 혹은 통치자의 권력 강화와 권력행사만을 일방적으로 정당화 내지 합리화시켜 줄 수 있는 교리적 근거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근본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교리와 정책이 내적 일관성을 견지하는 국가가 불교가 혹은 불교도들이 초기불교에서부터 꿈꾸어 온 이상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태적 개념이나 고정된 제도 혹은 형태로는 파악이 되지 않고, 오로지 역동적인 기능으로 접근해야 파악이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윤세원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진흥왕과 전륜성왕 사상-아쇼카 ‘따라 하기’와 ‘넘어서기’를 중심으로〉 〈선출공직 진출후보자 선택의 불교적 기준〉 〈현대사회의 병리적 작동원리와 불교의 역할〉 등이 있고, 저서로 《중국적 사유와 삶》 《백범 김구》 공저로 《사회학적 관심의 동양사상적 지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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