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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유적 답사로 보는 우리 불교  
2019.11.21. 105회 열린논단
[0호] 2019년 11월 21일 (목) 이희봉 중앙대 명예교수
   
 

 시작에 

  필자는 건축학을 전공, 문화인류학을 부전공, 즉 사물학과 사람학을 융합 전공하였다. 인도 전역을(파키스탄 간다라, 네팔 포함) 누비며 불교 사찰 유적뿐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교도 죄다 답사하고자 하였다. 사람이 사물을 만들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사물이 사람을 형성한다는 전제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문은 “왜 불교발상지 인도는 수출만 하고 정작 인도에는 불교가 소멸되었는가?”하는 것이었다.  

  답사에서 얻은 수확은 첫째로 불교 유적 특히 석굴 답사를 통하여 사찰이 태생하여 탑당과 승원으로 구성되어가는 과정을, 둘째로 숭배 대상물 불상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대승불교로의 큰 변화를 거치는 과정과, 셋째로 힌두 부흥운동에 의해 불교가 점차 힌두불교가 되며 흡수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불교가 한자문화권 중국을 통하여 간접 도입되면서 상당수의 근본적인 번역의 오류가 천오백년이상 관습적으로 지속되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바로잡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다. 또한 현재 한국 불교가 원래의 석가모니의 불교가 맞는가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되었다. 

  <법보신문>에 「건축학자 이희봉 교수의 인도 불적 답사기」로 2011.11.30부터 2012. 12.30까지 1년 이상 격주 연재, 법보신문(www.beopbo.com) 들어가서 검색창 ‘이희봉’ 치면 26회 연재 전부 읽기 가능.  

 

1. 불교사찰의 시원

  함께 수행하는 석가모니 제자 집단은 거주처 숙소가 필요하였다. '가람(伽藍)'은 산스크리트 상가라마(sangharama) 음역 僧伽羅摩의 한자 축약어로서 수행집단(sangha)의 ‘즐거운 거주처(ram)’ 뜻이다. 점차 불교집단 용어로 굳어졌다.     

  단독 독방의 수행처에서 시작되어 점차 독방군집의 안마당을 갖는 ‘비하라(vihara)’로 이루어진다. 의역하면 승원(僧院)이다. 우리 전통주거 안채처럼 네 변의 독방열과 가운데 안마당의 네모평면으로 최종 정착된다. 독방은 보통 성인이 큰大자로 누울 딱 한 평 크기로서 석굴 독방의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덜 파낸 곳이 돌침대가 된다.      

 

2. 인도탑 스투파 

  석가모니 입멸 후 인도 전통 장례 화장 후 타고 남은 유골 즉 사리(sarira)를 수습하여 8부족이 나누어 가서 각지에 묻은 둥그런 봉분이 근본8탑의 인도탑 ‘스투파(stupa)’이다. 한자음역 졸도파(卒堵波)-탑파(塔婆)에서 줄여 탑이 되었다. 아소카 왕이 다시 8만4천개로 분배하여 동아시아에 퍼지게 된다. 비교적 온전히 남은 유적 산치 스투파 형태를 보면 큰 반구형 봉분이다. 외피는 석판으로 덮었다. 아랫부분에 상하 2중 탑돌이 길과 울타리가 있고, 꼭대기에는 고귀한 분에게 씌워주는 양산이 3중으로 솟아있다. 봉분은 산스크리트 ‘안다(anda)’로서 ‘알’이다. 평지에서는 반구형으로 축조되나 석굴에서는 온전한 알 공 모양으로 조성하고자 한다. 

  인도 불교를 대변하는 스투파의 입면은 크게 세 부분으로 아래 탑돌이길을 포함한 대좌 기단이 있고, 가운데 둥근 부분 산스크리트어 알인 안다(anda) 대부분을 차지하고, 맨 위에 작은 궁전을 짓고 꼭대기 고귀함의 상징 양산 차트라(chattra)를 씌운다. 

  스투파와 탑은 완전 같은 말이나 형태상 원형인 인도탑은 스투파라 구분 호칭한다. 놓치기 쉬운 강조점은 처음 절은 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3. 스투파 모신 탑당이 예배처로 정립되다. 

  불교는 금욕 고행과 명상으로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을 제자들이 따라 수행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석가모니를 낳은 시대 배경의 초기 힌두교 바라문(Brahma)교가 조물주 창조신을 숭배하는 것과 달리 불교는 처음부터 숭배 종교가 전혀 아니었다. 자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부처님 입멸 후 제자들이 사라진 스승에 대한 서운함에 발자국, 빈 옥좌, 보리수 등 상징적 대상물을 추모하였다. 점차 재가신자들 중심으로 유골을 묻은 스투파가 숭배의 중심으로 굳어졌다. 출가제자들도 대세를 외면할 수 없어 따라하게 되어 스투파를 모신 공간이 숭배 예배처로 성역화, 곧 ‘차이탸(chaitya)’로 의역하면 ‘탑당(塔堂)’으로 정착되었다. 사찰은 독방군의 승원 여럿에 하나의 예배처 차이탸로 구성되는 것으로 굳어졌다. 간다라에서는 초기 불교에서 불필요하였던 식당과 창고가 추가되는 사찰이 형성된다.   

  둥근 인도탑 스투파의 숭배방식은 ‘탑돌이(pradakshina)’가 기본이었다.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성소를 우요(右繞)하는 태양 회전 방향 방식이다. 스투파 탑돌이길 외곽으로 기둥열로 또는 울로 둘러쌌다. 따라서 최초 차이탸는 원형 평면이었다. 

  다음으로 스투파 숭배 전면 예배가 더하여 져서 평면상 앞 공간이 발달하며 길어져서 차이탸는 지성소 원형 평면에 덧붙여 그 앞 장방형의, 전체로는 말굽형 평면으로 정착되었다. 석굴암 평면이 원형으로서 중심 앞 공간이 조금 넓은 편심 원형임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4. 인도탑 스투파가 동아시아 탑이 되는 과정  

  스투파가 숭배 중심으로 정착되며 둥근 반구형 또는 구형이 점점 높아진다. 대좌가 높아지고 알이 길어진다. 또한 제일 꼭대기 자그마했던 양산이 점차 층층으로 높아져서 전체를 압도하게 된다. 

  불교는 간다라 지역으로부터 파밀고원으로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불경과 불상과 스투파라는 실물을 통하여. 중국에서 불경과 불상은 쉽게 이해했으나 잘 모르는 스투파는 불상을 모신 집 지붕에 올라앉게 되었다. 시선을 압도하게 된 스투파 꼭대기 층층양산이 결국 동아시아에서 층층 솟아오른 고층 누각의 탑으로 번안되었다. 원형과 가장 가깝게 팔각과  정방형 평면으로. 

 

5. 왜 절을 사찰이라 부르는가?   

  앞서 말한 대로 승가라마에서 온 ‘가람’이란 명칭과 더불어, 절을 ‘사(寺)’라 부르는 연유도 한국 불교에 잘 알려져 있다. 즉 후한 명제 때 서역에서 불경을 싣고 온 말이 처음 외교관청에 머물렀던 연유에 그 자리에 백마사(白馬寺)를 짓게 되었고, 관청의 사(寺)가 불교의 절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도 한자사전에는 寺가 관청, 관아, 환관의 뜻이 남아 있다. ‘시’ 발음) 처음에는 인도 불교가 도교 바탕의 중국으로 들어오며 불상을 모신 절을 그들이 이해한 대로 사당에 제사지내는 사(祠)로 불렀었다. 이해 불가한 스투파는 축소하여 불상 사당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금산사 미륵전 앞의 탑이었었다가 불타서 없어졌다는 대장전 지붕위에 지금도 이 전통은 남아있다. 

  그러나 왜 절을 ‘사찰’이라 부르는 지 아는 사람은 불교학자도 스님도 못 보았다. 구형의(또는 반구형) 인도 스투파 대좌가 점점 높아지고 특히 층층 양산이 인상적으로 발달하여 중국 목조건물의 다층 누각의 탑으로 변환된다. 처음 중국에서 붓다(Buddha)는 부도(浮屠)로 음역되어 탑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절 전체 형태상 바닥으로 낮고 넓게 깔린 사(寺)와 고층으로 우뚝 높이 솟은 탑(塔)이 전체 경관 특징을 형성했다. 그래서 초기에 절을 ‘탑사(塔寺)’라 불렀다. 앞서 말한 고귀함 상징인 탑의 양산은 산스트리트로 ‘차트라(chattra)’, 음역하여 ‘찰다라(刹多羅)’, 줄여서 ‘찰(刹)’이다. 6세기 북위(北魏)의 낙양가람기에 “금찰은 영대에 비해 높고 강전은 아방궁처럼 장엄하였다.”(金刹與靈臺比高, 講殿共阿房等壯). ‘금찰’은 금 양산이다. ‘찰’은 탑의 제일 꼭대기 양산의 음역어로서 곧 탑을 대표하는 말로 바뀌었다. 즉 찰은 탑이라, ‘寺刹’은 절을 이르는 말 ‘塔寺’를 글자순서만 바꾼 똑같은 말이다. 고로 원 글자 뜻대로 엄밀히 하면 탑이 없는 또는 탑이 중요하지 않은 절은 사찰이라 부를 수 없다.   

  우리 불교 미술, 건축 관련 학자들이 ‘刹’이 ‘양산’임에도 불구하고 탑의 중심 ‘기둥’을 가리키는 말로 지금도 여전히 오해하고 있다. 여러 번 얘기해도 잘못을 전혀 고치지 않는다. 탑의 중심기둥은 야쉬티(yashiti)로서 그냥 받치는 작대기 뜻, 찰간(刹竿) 또는 찰주(刹柱)는 ‘찰다라-야쉬티’, 우리말로 양산대일 뿐이다.  

   
 

6. 상륜(相輪)? 바퀴와 양산도 구분 못하다니?  

  우리는 탑의 꼭대기를 상륜(相輪)이라 부른다. 바퀴모양이란 뜻이다. 학술용어는 물론 전국 문화재 안내판에 어김없이 그리 쓰여있다. 앞서 필자는 탑 꼭대기에는 고귀함 상징 양산으로 씌워져 있다고 말했다. 인도 스투파 꼭대기의 층층 양산이 동아시아로 들어가서 고층탑이 되었다고 얘기했다. 양산 ‘차트라(chattra)’의 음역 찰다라(刹多羅) 줄여 찰(刹)로. 과거 경전 번역과정에서 실물을 못 본 어느 스님이 형태상 비슷한 양산을 바퀴로 혼동해서 천7백년 가량 잘못이 동아시아에 지속되었다. 더 악화시킨 것은 근대 한자문화권 학문을 선점한 일본인 학자들이 잘 모르고  오류를 확대재생산 하였고 현재의 한국학자들도 그저 답습하기만 한다. 바퀴 ‘차크라(chakra)’는 마차 바퀴 또는 비슈뉴 신의 미사일 원반 무기이다. 불교에서 진리의 법륜 다르마-차크라(dharma-chakra)로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탑 꼭대기에는 고귀함의 상징 양산이 씌워져야지 바퀴가 올라갈 수는 없다. 초기 스투파 부조에는 바퀴와 양산이 구별되어, 법륜 바퀴 위에 고귀함을 표시하는 양산을 씌우기도 한다. 보리수 나무 꼭대기에도 양산을 씌우기도 한다. 또한  동아시아 탑의 꼭대기를 보면 아래서부터 위로 사각상자의 노반, 구형의 복발, 꽃모양 앙화, 그리고 상륜, 다시 그 위에 불꽃모양 수연과 구슬 모양 보주로 구성된다. 이를 총칭해 ‘상륜부(相輪部)’라 부른다. 바퀴 모양이 전혀 아닌데도 상륜부라 칭한 것은 근대 일본인 학자들의 형태지각 인식의 무능함에 기인한다. 우리 학문에 슬픈 것은 필자가 여러 번 불교미술사학 건축역사학 학자들에게 잘못되었음을 학술발표하고 교과서나 논문에 수정할 것을 제안했으나 식민시대 일본인들이 잘못 한 짓을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학술용어로 반복하여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학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자신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필자에 대해 반론을 전혀 하지 않고서.       

     

   
 

7. 복발(覆鉢)? 신성한 탑 위에 밥그릇을 엎어놓다니?

  인도 스투파의 ‘알’의 뜻 둥근 몸체 ‘안다(anda)’는 어김없이 동아시아 탑 꼭대기에 축소되어 올려 진다. 그런데 오로지 한자문화권에서만 엎어놓은 탁발 밥그릇, ‘복발(覆鉢)’이라 부른다. 오류의 기원은 1300년 전 당나라 현장법사의 인도 기행문 ‘대당서역기’에서 비롯된다. 그 후 탑 관련 중국 한자 번역 경전에서 모두 복발로 지칭하게 되었다. 근대 일본인 학자들이 학술용어로 굳혀버렸다. 청산해야 할 식민잔재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석가모니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즉석 스투파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제자가 석가모니께 공경하는 방법을 물으니, 가지고 있던 장삼을 네모로 반듯이 접은 위에 공양 밥그릇을 엎어놓으면 스투파가 된다고 가르쳐주었노라고 적혀있다. 현장의 기록은 사실상 성립할 수 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는 살아생전 제자들에게 기존 바라문교처럼 사물이나 자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불교에서 유골을 묻은 스투파 숭배는 석가모니 사후 한참 후에야 출현했는데, 살아있는 자신을 숭배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은 명백히 후대에 꾸며낸 말이 된다. 현장은 외부 기행자였으므로 스투파 몸체가 알이라는 속뜻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복발, 즉 우리말 ‘밥그릇을 뒤엎는다.’는 것은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불교에서도 매우 불경스러운 행위다. 몇 년 전 미얀마 승려들이 군부독재 반대 비폭력 데모를 할 때 공양 밥그릇을 뒤엎어 놓는  행위로 의사 표현을 했다. 또한 마하승기율의 ‘밥그릇 뒤집기 결의’ ‘복발갈마(覆鉢羯磨)’는 비구들이 재가신자를 징벌하는 결의로서, 시주 받을 때 그의 앞에서 공양밥그릇을 뒤엎음으로써 공덕을 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밥통같이, 고귀하고 신성한 탑 위에 밥통을 엎어놓고도 그대로 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미술사학자 건축사학자들은 불교의 의미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대상을 오로지 사물화하여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를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탑의 ‘복발’은 이제 불교계에서 나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필자는 대안으로 ‘알’의 산스크리트 ‘안다(anda)’를 직역하여 불교의 알, ‘불란(佛卵)’으로 제안하였다. 

     

 8. 사리란 무엇인가?

  산스크리트어로 ‘사리라(sarira)’는 ‘신체’ 또는 ‘유골’을 말한다. 전통장례 화장(다비茶毘) 후 사리를 수습하여 겹겹 항아리에 고이 담아 탑 속에 봉헌한다. 중국에서 얻어온 진신사리를 모신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에서 적멸보궁 성지로 대접받는다. 불보사찰 통도사에 자장율사가 얻어온 진신사리도 어금니이다. 언제 부터인가 유골이 구슬 보석처럼 바뀌었다.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부처님 진신사리 얻어온 기록에 “사리 몇 알(粒)과 머리 뼈 조각, 어금니”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리는 뼈와 구분되어 구슬로 변했다. 사리는 점차 신성화를 넘어 신비화 되어 스님의 공력이 높을수록 많은 사리가 나온다는, 경쟁적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법정스님이 돌아가시며 “내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아라.”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원 글자 뜻 그대로 보면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유골 전체 재와 뼈가 다 사리인데 다시 뒤적여 더 찾을 사리가 뭐가 있겠는가? 의학적으로 인체 내부 사리 형성에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신비화의 극치는 조선왕조실록세조 조에 여러 번 나오는 사리 분신 기사이다. 기도 법회를 지극히 하면 사리가 저절로 자체 분신하여 몇 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도 스투파는 처음에는 진신사리를 모셨으나 점차 사리 없어도 스투파 모양을 만들어 신성시 하였다. 특히 돌을 깎아 만든 석굴의 스투파는 안에 사리를 전혀 넣을 수 없지만, 스투파 형태는 사리 유무에 관계없이 신성시 된다.        

   
 

9. 알의 상징성. 

  현대물리학 우주 창조 빅뱅 이론 오래 전부터 힌두 문명은 세상은 '우주 알(cosmic egg)'로부터 부화되었음을 말해왔다. 인도탑 스투파의 몸체를 알로 지칭하는 이유는 속에 묻은 사리를 점차 깨어나 만방에 퍼져나갈 알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리는 어김없이  항아리에 겹겹으로 고이 모신다. 최종적으로는 금이나 유리 항아리에. 스투파 오류용어 복발(覆鉢)이 아닌 ‘불란(佛卵)’은 사리 알을 모신 바깥 용기로서 역시 알이다. 인도에서 물이 귀하므로 물 항아리 자체는 귀하게 여긴다. 힌두 사원 첨탑 꼭대기에는 물항아리 조형물이 반드시 올라간다. 

  절에 가면 유난히 꽃그림이 많다. 항아리에서부터 꽃이 피어나는 모습의 ‘가득찬 항아리(purna-ghatta)’다. 인도 스투파 꼭대기 양산이 꽃모양으로 점차 분화하여 피어나는 조각이 부지기수로 많다. 외기둥 양산이 세 갈래 휘어져 퍼져나가고 만발하여 휘늘어져 퍼져나간다. 가득찬 항아리와 스투파는 동일시된다. 국내에서 발굴된 사리 용기 몇몇은 아예 알 모양, 불란으로 되어있다.

  절에 가면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단청 ‘머리초’ 오랜 세월 지나며 뜻은 잃어버리고 그저 문양으로만 남았다. 불교 뿐 아니라  유교 건축에서도, 궁궐이나 정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운데 문양을 석류동(石榴垌), 즉 석류항아리라 부른다. 석류처럼 보이나 실은 알을 낳는 장면이고 사리 항아리에서 사리가 깨어나 알처럼 퍼져나가는 장면이다. 갈라진 틈으로부터 항아리가 나오고 항아리는 다시 알을 낳는다. 알을 단청에서 뜻 모를 민주점이라 부른다. 깨친 부처의 알은 깨어나서 ‘휘(輝)’라고 이름하여 무지개 파동으로 점차적으로 퍼져나간다. 알에서 깨어나 식물의 싹으로 변환, 화려하게 퍼져나가는 문양은 불교 단청의 기본이 된다. 우리가 탑의 알 불란(佛卵)을 복발 뒤엎은 밥그릇이라 오류 호칭하여 부처님의 진리 알이 깨어나 사방에 퍼져나감을 차단해 버리는 만행이 져질러 진다.    

  

   
 

10. 불상의 등장으로 온 커다란 변화  

  인도는 석굴의 나라다. 대부분 불교인 1,200여 곳의 석굴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승가 집단이 모여 영구적 석굴 사원을 파서 조성했다. 현재 석굴이 귀중한 것은 땅에 축조한 건축은 오랜 세월 다 허물어져 바닥 기초만 남은데 비해 석굴은 처음 모습 초기 불교를 볼 수 있는 역사의 보고이다. 또한 세월이 지나며 점차 변화해 나간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특히 우상숭배를 혐오하는 이슬람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불상이 파손된데 비해 석굴에는 비교적 남아있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불교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불상의 등장이다. 대승불교라 일컫는 불상의 등장은 단순한 형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 불교는 석가모니 말씀에 따라 금욕 고행 수행하는 철학적 사색적 종교였다. 당연히 대상을 숭배하지 않는 ‘무색(無色 formless)’의 종교였던 반면 힌두의 전신 바라문교는 절대자 창조주를 설정하고 여러 신들의 형상을 만들며 제물을 놓고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공양을 드린다. 인간이었던 스승 석가모니는 점차 신으로 받들어지며 신비화 되어 하늘로 밀어 올려져간다. 바라문과 점차 유사해 진다. 대부분 불교의 의례 용어는 바라문에서 빌려온다. 이를테면 공양(供養) 뿌자(puja)도 신에 제물을 바치며 기원하는 의례로서 석가모니 불교에는 원래 없던 것이다. 

  수년전 아프간 극단주의 탈레반이 세계적 유적 바미얀 석불을 대포로 쏘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슬람은 형상을 철저히 배격하기 때문에 영국 이전 인도를 침공하여 불교 사찰을 부수고 특히 불상의 목은 죄다 잘려나가며 파괴되었다. 만약 불상의 등장을 우상숭배로 간주한다면 2천년 불교미술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중국 불교의 유명한 단하소불(丹霞燒佛)은 잘 알려져 있다. 단하천연(丹霞天然) 스님이 추운날 불당에서 불상을 꺼내 불에 땐 사건으로 절이 발칵 뒤집혔다. “사리가 나오는가 보려고.” “이놈아 나무 불상에서 뭔 사리가 나오는가?” “사리도 안 나오는 걸 뭘 모시고 그래.” 단순히 선종 역설의 우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근자에 들어 여러 절마다 큰 역사를 일으키며 동양 최대의 불상 운운하며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의문이다.  

  생전 꼭 가보아야 할 세계문화유산 아잔타 석굴에 가면 변화 과정을 잘 볼 수 있다. B.C. 1세기부터 A.D.1세기까지 몇 개의 석굴을 팠다. 초기 단순 소박한 스투파를 모신 탑당굴 두 개와 승원굴 세 개로 시작하였다. 그 후 3백년간 잠잠하다가 A.D.5세기경 불상의 파도가 밀려오며 휘황찬란 난리가 났다. 두 개의 탑당굴의 스투파에는 전면에 불상이 자리잡게 되고 빙 둘러 부조가 빽빽이 새겨진다. 하늘로 올라간 부처님 주위에는 천녀와 천상 악사 이를테면 건달바도 조각된다. 승원굴은 조용하고 엄숙하던 초기와는 달리 정중앙 속에 지성소에 불상모신 방이 조성되고 앞에 배전이 형성된다. 거주처 승원굴이 불상의 예배굴과 합쳐진 것이다. 안마당 가운데 마당안의 마당 만다파(mandapa)라는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춤추며 공양하는 의례공간이 조성된다. 또한 아잔타는 벽화로도 유명하다. 조각 그림이 화려해지고 불교예술은 대승불교가 되면서 꽃피게 되었다.           

 

11. 만신전으로 폭발한 엘로라 석굴 

  아잔타 석굴은 불교만의 석굴인데 비해 엘로라 석굴은 불교 뿐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석굴이 나란히 함께 있다. 불교는 처음 싯달타 왕자가 해탈함으로써 비롯된 개인 수행 종교에서 신을 숭배하는 종교로 급격히 바뀐다. 무색(無色)의 종교에서 색, 즉 형상의 종교로 탈바꿈한다. 유교 창시자 공자는 인간 스승으로 남은데 비해 붓다는 신으로 올라가 신상으로 숭배된다. 바로 옆의 힌두교 사원과 닮아있다. 엘로라 불교석굴 승원굴은 더 이상 승원굴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 벽면에 보살상과 협시 상으로 가득 채워진다. 관음, 미륵, 문수보살과 더불어 재물 복덕을 주는 잠발라,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 조각상이다. 관능적 표현의 협시 여성상과 타라 보살을 비롯하여 미투나라 하여 남녀 쌍의 사랑행위도 적나라하게 조각해 놓는다. 우주 생명력을 성으로 표현하는 힌두교와 같아진다. 

  대승불교는 곧 힌두화 되고 힌두화된 탄트라 불교 즉 밀교로 발전하여 티베트를 비롯하여 동아시아로 퍼져나가게 된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완전 힌두교에 흡수되며 사라지게 된다. 

  고려시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수많이 나오는 이적과 주술, 이를테면 사천왕사 문두루 비법은 석가모니 불교가 맞는지? 힌두 불교는 아닌지 의문이 든다.   

 

 마치며

  지금까지 필자는 주장 모두를 학술논문으로 입증 뒷받침한다. 필자는 인도 전역을 답사하며 사물 유적을 통하여 나름대로 불교를 말하였다. 다만 필자는 불교학자는 아니므로 만약 불교 해석에 잘못이 있다면 듣는 분들께서 기탄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중심 용어

⓵ 스투파(stupa)- 인도탑
⓶ 차이탸(chaitya)- 탑당(塔堂). 차이탸 내부 지성소에 스투파 모심. 예배처,  
⓷ 비하라(vihara)- 승원(僧院). 거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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