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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의 불교학자 <40> 한종만
[79호] 2019년 09월 02일 (월) 김호귀 kimhogui@hanmail.net

1. 머리말

   

석산(釋山) 한종만(韓種萬, 1931~2016)

한 인물은 인물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이후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물의 개인에게만 한정되어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인물은 개인의 행장을 중심으로 인물이 누렸던 당시의 사상적인 동향과 시대적인 추이 등이 종합적으로 감안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20세기 한국이라는 국가는 어느 시대보다도 그리고 어느 국가보다도 굴곡이 여울진 시대였던 만큼, 그 가운데서 생존했던 사람들의 면모는 그 시대성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20세기 한국의 종교지형은 원불교를 비롯한 신종교의 발흥과 함께 불교라는 이름이 붙은 종단에서도 진각종과 천태종 등의 종조가 출현했음을 볼 수가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에 힘입어 전통의 불교계에도 자각의 싹이 트면서 교단의 조직을 정비하고 교세를 확장하며 교리를 정립하는 등 각 종교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시기였다.

한국의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석산(釋山) 한종만(韓種萬, 1931~ 2016) 교수는 자신의 신앙을 원불교의 가르침에 두었고, 나아가서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전통적인 삼교의 종교사상에 이르는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기타 동양철학의 사상과 신종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기울여 넓고 다양한 사상을 섭렵하여 해박한 성과물을 내놓았다. 이러한 점에서 석산 한종만 선생은 현대라는 다종교시대의 종교연구에서 삼교회통의 연구를 통하여 폭넓은 족적을 남김으로써, 보다 넓게는 한국의 사상적인 지평을 확장하는 데 널리 공헌함으로써 그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특히 선생은 원불교 신앙인으로서, 원불교의 교무로서 그 원류를 밝혀내는 일환으로 전통 불교의 선종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여 선종의 조동종 연구에 깊이 천착하여 가시적인 연구업적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석산이 개척했던 한국 조동선 연구의 선구자로서 면모를 중심으로 선생이 성취했던 학문의 열정적인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학문연구로 일관한 생애

호는 석산(釋山)이고, 원불교 교무로서 법명은 정석(正釋)이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로서 학계에서는 한종만 교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박양녀(朴良女, 법명 良吉) 여사와 1남 2녀를 두었다. 석산 한종만 선생은 1931년 음력 5월 8일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원불교에 입문한 이래로 원불교 교정원의 산업부, 재무부, 총무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30세(1960) 때 원광대학교 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이듬해 31세(1961) 때부터는 대마교당의 교무를 비롯하여 동산산원의 교무를 역임하였다.

이후, 35세(1965) 때부터는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의 교수로 정년(1996)에 이를 때까지 근무하였다. 1973~1975년에는 한국불교학회 감사를 비롯하여, 45세(1975) 때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진리관의 회통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49세(1979) 때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였고, 50세(1980)에는 원광대학교 도서관장을 거쳐 교학대학장을 경력하였으며, 그로부터 10년 동안(1980~1990) 한국공자학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51세(1981)에는 1년 동안 일본불교대학 객원교수를 지냈고, 일본종교학회 · 일본인도학불교학회 · (일본)조선학회 회원 및 한국불교학회 이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53세(1983) 때는 한국종교학회 상임이사 및 국제불교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55세(1985) 때는 원광대학교 기획실장, 그리고 56세(1986) 때는 범한철학회 부회장 · 한국동양철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57세(1987) 때는 원광대학교 대학교단 교감 및 원불교교수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59세(1989) 때는 범한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60세(1990) 때는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61세(1991) 때는 원불교교수협의회 회장 및 원광대학교 원불교학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66세(1996)에 원광대학교 교수를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활발한 저술 및 학술활동을 하다가 2016년 6월 23일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석산 선생이 남겨준 저술 및 논문 등 연구의 성과물은 다음과 같다.

《불교범론》을 비롯하여 《원불교 정전해의》 《원불교》 《원불교학개론》 《종교와 원불교》 등 원불교학과 관련된 저술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민중불교의 이념과 전개》 《불교와 유교의 현실관》 《고운 최치원》 《한국조동선사》 《한국불교사상의 전개》 등 원불교 이외의 분야에도 괄목할 만한 저술을 선보임으로써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에도 큰 힘을 쏟았다. 나아가서 한국 전통종교의 사상과 관련된 저서를 10여 권 이상 발간하였고, 정년 이후에도 여러 권을 저술하였으며, 그동안 100여 편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하는 등 선생의 학문탐구 열정은 마지막까지 지속되었다.

3. 원불교 신앙론의 이해와 실천

   

《원불교대종경해의》(1999)

소탈하면서도 자애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선생의 일상은 집과 근무지를 오가는 규칙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여, 흡사 선종 조동선의 특색으로 언급되는 세밀한 생활방식을 많이 닮아 있었다. 선생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서양철학에 관심을 두었지만,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3학년 때는 중국의 철학에 관심을 보였고, 4학년 때는 다시 불교학에 관심을 두고 심취하였다.

원불교의 《정전》과 《대종경》의 사상적인 바탕에는 전통의 불교와 유학의 사상이 근거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 선생은, 보다 깊이 있고 폭넓은 사상을 탐구하려는 의욕에서 연구의 관심을 불교학 나아가서 중국철학에 두기 시작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교수 시절에는 강단에서 십수 년 동안 중국철학을 강의하였고, 30여 년 동안 불교학을 가르치면서 연구실에서는 그에 따른 연구를 진행하였다. 선생은 불교와 중국철학 등의 비교를 통하여 자신이 신앙하는 원불교의 사상이 보다 새롭게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요한 관심사인 원불교의 사상을 천착하는 데 크나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실제로 선생의 원불교학 강의와 연구의 경향은 전통적인 역사를 지닌 다양한 사상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보다 완전해질 수가 있었다. 따라서 선생은 일찍부터 불교사상은 오랜 역사와 다양한 종파의 발전적인 분화에 의하여 그 사상의 깊이와 폭이 너무 방대하여 그 핵심을 온전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었음에 비하여, 비교적 신생종교에 해당하는 원불교야말로 다양한 불교사상 가운데서도 그 핵심적인 사상을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일례로 선생은 선의 분야에서 불교의 경우에는 고요함을 중심에 두고 수행을 진척시켜 나아가는 것에 비하여, 원불교의 경우는 불교보다 동적인 측면이 강조됨으로써 일상의 생활선을 강조하고 있음이 엿보인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반야심경》 및 《금강경》과 같은 전통의 불교사상만이 아니라 선 수행과 같은 기존의 수행법에 대한 발전적인 개발의 적용 등을 근거로 하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인 원불교의 역동적인 가르침을 교묘하게 승화시켜갔던 선생의 안목에서 출현한 자신감이었고 그러한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선생의 밝은 안목과 지속적인 노력은 불교학에 관련된 수많은 저서뿐만 아니라 《원불교정전해의》를 뒤이어 1999년(원기 84)에 펴낸 《원불교대종경해의》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원불교대종경해의》의 사상적인 밑바탕에는 기존의 사상적인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선생의 이러한 통찰력의 소산물이었다.

석산 한종만 선생은 원불교의 교도로서 일생을 사는 동안 원불교에 대하여 깊게 그리고 넓게 연구활동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원불교의 신앙과 관련하여 누구보다도 심도 있고 폭넓은 연구성과를 발표하여 원불교 신앙론을 정착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995년에 출간된 《원불교신앙론》은 바로 그의 원불교의 신앙에 관한 그동안 20여 편의 연구논문을 엮은 종합적인 결과물로서 원불교의 교단은 물론이고 현대 한국의 종교연구에서 신앙에 대한 의의와 가치를 새롭게 주목하게 해주었다.

선생은 원불교 신앙론의 핵심을 중국철학에서 말하는 음양상승의 원리와 인도 사상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원리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음양상승과 인과응보는 관계성이고 유동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같은 원리라는 것을 정립하였다. 전자는 우주대기를 파악하는 원리이고 후자는 인간행동을 파악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음양상승하는 도를 따라서 인간의 행위는 명확하게 선악 사이에 과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상승의 우주론적 원리가 인간의 행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신앙론의 중요한 이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론은 사은(四恩)의 실천이 다름 아닌 일원상의 이치임을 확인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런 점에서 선생의 원불교 신앙의 근거는 궁극적으로 일원상의 진리 바로 그것으로서 처처불상의 법신불이었다. 이와 같은 원불교 신앙에 관한 연구는 선생의 연구를 통해서 더욱더 심화되고 확충되는 결과가 도출되었는데 이런 점에서 선생이 1995년 원불교출판사에서 출간한 《원불교신앙론》의 내용이 특히 주목된다.

4. 한국 조동선 연구의 선구자

   

《불교와 한국사상》(2009)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생의 문제로부터 회의가 발생하였지만 소태산 종사는 우주의 문제로부터 의심이 발생하여 인생 문제까지 파고들었다. 종사는 우선 9살 때부터 별자리를 보고 홀로 의심을 품기 시작한 이래로 형제 부모의 인연관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의심의 문제가 확대되었다. 마침내 산상기도를 비롯하여 도사를 찾아다니며 1916년에 입정을 경험한 연후에 출정하여 대각을 성취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일원상(一圓相)의 이치였다.

소태산 종사가 경험한 일원상의 이치는 불교와 도교와 유교 등 전통적인 삼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비롯하여 근대에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새롭게 출현했던 신흥종교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것으로 유교의 사서 · 《소학》, 불교의 《금강경》 《선요》 《불교대전》 《팔상록》, 선가의 《음부경》 《옥추경》, 동학의 《동경대전》 《가사》, 기독교의 구약 · 신약 등에 두루 통하는 깨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소태산 종사가 우주 대자연의 현상에서 의심이 발동하여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를 깨치고자 한 끝에, 마침내 만유가 하나의 체성이고 만법이 하나의 근원으로서 생멸이 없는 도를 깨쳤던 것이다.

또한 인간의 인과 연의 관계 및 죄와 복의 문제에 의심이 발동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감응보복이라는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소태산 종사의 발심과 대각의 내용이 직결되어 있었던 근거였다. 발심이 그대로 정각과 통하는 이치였다. 처음부터 달라진 것이 없이 그대로 성취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소태산 종사의 경험은 다름 아닌 선종의 조동종에서 본래성불에 근거하여 본래불인 자신을 자각하는 좌선의 수행법과 다름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원불교의 이치에 조예가 깊었고 소태산 종사의 가르침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 일생을 살았던 석산 한종만 선생은, 소태산 종사부터 시작된 원불교의 신앙론에 대하여 깊게 천착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그 사상과 수행의 원리가 선종의 조동종의 교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파악하고서 새롭게 조동선의 이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관심을 직접 연구하여 천착했던 결과는 조동종과 관련한 수 편의 논문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1998년 불교영상에서 펴낸 《한국조동선사》라는 저술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따라서 선생에게 조동선에 대한 연구는 원불교 수행론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불교 신앙의 일환이었다.

한국의 불교학계에서 그동안 선종의 조동선과 관련한 논문이나 책으로는 한기두 교수가 여러 편의 논문을 엮어서 낸 《한국선사상연구》가 있다. 김영두 교수가 쓴 논문으로는 《범한철학》 제7집의 〈고려 중기 이후의 조동선〉 및 《한국불교학》 제16호 〈나말여초의 조동선〉 등 간간이 연구성과물이 출현하기도 하였다. 기타 2002년에는 이창섭 · 최철환 공역으로 일연의 《중편조동오위》가 번역물로 발간되었다. 2004년에는 사단법인 한국불교조동선림에서 편집하고 불교춘추사에서 발간한 《조동선학논총》 제1집이 출현하였다. 또한 불교영상에서 1996년에 출간한 《조동종의 원류를 찾아서》 등이 있다.

기타 석사학위 논문으로는 이동준(월호)의 1986년 〈도원선사(道元禪師)의 좌선관(坐禪觀): 정법안장(正法眼藏)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을 중심으로〉가 있고, 최종선의 2017년 〈진헐청료의 묵조선 연구〉가 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김호귀의 1998년 〈묵조선에 관한 연구〉가 있고, 이창안(철우)의 2015년 〈설잠 김시습의 선사상 연구: 성기론과 성구론을 중심으로〉가 있다. 기타 한국의 조동선과 관련된 논문을 작성한 사람으로는 고익진, 민영규, 채택수(인환), 김지견, 김호귀, 최귀묵, 조명제, 정영식, 최석환, 고영섭 기타 등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조동종과 관련하여 누구보다도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천착하여 한국의 조동선 연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석산 한종만 교수이다. 선생은 원불교의 교무이면서 원불교의 수증론과 일맥 상통하고 있는 조동종의 선수행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조동선에 대한 연구서인 《한국조동선사(韓國曹洞禪史)》(1998년, 불교영상)를 발간하여 한국불교사에서 출현한 조동종의 전승과 그 사상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한국 조동선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연구를 개척한 《한국조동선사》

《한국조동선사》는 이미 1996년 불교전기문화연구소에서 편찬하고 불교영상에서 출간한 《조동종의 원류를 찾아서》 가운데 들어 있는 제2장 제1조 동산양개 및 제3장 입당선승과 조동선사의 대목을 포함하여 한종만 선생이 그동안 발표했던 여러 편의 글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서 한국불교의 관점에서 시대순으로 고찰한 연구서이다. 선생은 이 책을 통해서 한국에서 조동선의 명맥이 실제로 유지되고 있었음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책은 전체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중국 조동선의 기본성격

이 대목에서는 조동선의 원류를 조계혜능의 돈황본 《단경》에서 추구하고, 그것이 석두희천을 거쳐서 동산양개와 그 제자인 조산본적과 운거도응에 의하여 형성되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곧 돈오와 점수를 원만하게 수용하는 것을 조동선의 주요한 경향으로 간주하고 그 근거를 돈점개립(頓漸皆立)이라는 혜능의 법어에 두고 있다. 임제종은 물론이고 조동종이 남종의 계승임을 감안한다면 혜능의 돈점개립이야말로 그 원류가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혜능의 게송에 보이는 ‘불성상청정(佛性常淸淨)’이라는 말은 불성이 항상 원만하게 구비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본래성불의 사상적인 계승임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이 《참동계(參同契)》에 보이는 가르침으로 전승되어 돈과 점을 함께 수용하는 의미로서 본래성과 현실성을 대변하는 영원(靈源)과 유주(流注)를 철견하는 것이 바로 조동선의 근원이다.

제2장 입당선승과 조동선

이 대목에서는 한국 조동선의 수입을 신라 말기 구산선문의 형성에서 찾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 조동선의 원류를 석두희천과 그 문하인 약산유엄과 천황도오 및 단하천연 등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나말 및 여초에 형성된 구산선문의 개조들은 모두 직간접으로 조동선의 영향을 받았다고 간주한다. 또한 신라 말기 입당선승의 갈래를 세 부류로 파악하고 있다. 첫째는 동산양개 및 운거도응의 법맥을 전승한 경우이다. 둘째는 석상경제의 법맥을 전승한 경우이다. 셋째는 구봉도건, 설봉의존, 투자대동의 법맥을 전승한 경우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 말기 곧 9세기 중반에 선종오가의 하나로서 형성된 조동종은 청원행사의 법계를 계승한 동산양개와 조산본적의 선풍을 근거로 조동종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동산에게는 이후 조동선의 근본적인 교의를 형성하고 있는 조동오위(曹洞五位)의 근원인 《보경삼매(寶鏡三昧)》를 비롯하여 《오위현결(五位顯訣)》 《오위송(五位頌)》 《공훈오위(功勳五位)》 《삼삼루(三三漏)》  《삼로(三路)》의 교의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서 조산본적은 스승이 남겨둔 동산의 오위설을 보다 구체화시켜 오위설을 정중편(正中偏) · 편중정(偏中正) · 정중래(正中來) · 편중지(偏中至) · 겸중도(兼中到)로 정립하였다. 그리고 세 가지 자유자재한 보살 행위를 의미하는 삼종타(三鍾墮)를 제시하고, 기타 사문이류(沙門異類)를 시설하여 납자들로 하여금 수행과 깨달음과 그 실천을 거양하였다. 이후 동산과 조산의 조동종지는 조산본적의 법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단절되어버렸다. 그러나 동산의 다른 법계인 운거도응으로 계승됨으로써 그 문하에서 20여 명 이상의 신라 유학승들이 그 조동선법을 수입하였다.

나아가서 중국의 조동선은 동안상찰의 《십현담(十玄談)》, 법안문익의 《십현담주(十玄談註)》, 대양경현의 《오위송(五位頌)》, 투자의청의 《오위송(五位頌)》, 단하자순의 《오위서(五位序)》, 천동정각의 묵조선(黙照禪)으로 계승되었음을 서술하였다.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조동선 사상을 연구해 온 선생의 견해로는 한국 선사상에 일관되게 조동선이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구산선문에 그 시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구산문의 경우도 홍주종보다도 오히려 조동선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여 일정 부분 조동종에 대한 반감 내지 오해가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진단하여 마조 계통 중심의 구산문 형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 까닭은 조동선의 범주를 동산과 조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약산유엄-도오원지-석상경제의 계통을 비롯하여 천황도오 및 단하천연으로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산과 조산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조동선풍의 법맥은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입당 유학승들에 의하여 전승되는데 몇 가지 계열이 형성되었음을 《한국불교학》 제16집에 수록된 김영두 교수의 논문 〈여말선초의 조동선〉을 인용하여 서술한다. 동산양개로부터는 금장, 운거도응으로부터는 형미 · 여엄 · 이엄 · 운주 · 경유 · 혜, 소산광인으로부터는 경보, 곡산도연으로부터는 긍양, 구봉도건으로부터는 현휘 · 청원 · 국청, 곡산장으로부터는 서암 · 박암 · 대령, 운개지원으로부터는 와룡 · 충담 등의 법맥이 계승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이들에 대한 전등사서의 기록을 통해서 활동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제3장 고려시대의 조동선

보각일연의 《중편조동오위》를 중심으로 그 구성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서 조동선에 대한 일연의 견해를 고찰한다. 《중편조동오위》의 저자를 한국인이라고 밝힌 사람은 일본의 우이 하쿠주(宇井伯壽)의 《제삼선종사연구(第三禪宗史硏究)》였지만, 그 당사자를 일연(一然)이라고 밝힌 사람은 민영규 박사로서 1974년 연세대학교 《인문과학》 제31 · 32집을 통해서였다. 한종만 선생은 우선 3권의 구성에서 저자를 비롯하여 찬술자 내지 성격이 모호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하여 명쾌한 해설을 붙여두고 있다.

우선 《중편조동오위》의 구조에 대하여 자세하게 나열하고, 설잠 김시습(1435~1493)의 〈서문〉에 기록되어 있는 ‘전부수징상주설잠(傳付守澄上主雪岑)’에 대하여 김지견 교수의 〈중편조동오위서고(重編曹洞五位序考)〉를 인용하여 설잠 김시습이 일본의 승려 준(俊) 장로에게 전부(傳付)했다는 것을 해명한다.

또한 조산본적의 제자 조산혜하(曹山慧霞)의 〈서문〉 및 광휘(廣輝)의 〈서문〉에 대하여 설명한다.

《동산오위현결》에 대한 혜하의 간(揀), 광휘의 석(釋), 일연의 보(補)에 대하여 설명한다. 

《동산삼구(洞山三句)》는 동산의 삼구와 백장의 삼구와 일연의 보로 구성되어 있다.

《한한거사조동찬(閑閑居士曹洞贊)》은 조병문(曹秉文 ?~1232)이 조동의 사상을 찬탄하고 일연이 보를 붙인 것이다.

마지막 〈발문〉을 통하여 한국불교전서 제6권에 수록된 《중편조동오위》의 판본은 일본의 연룡(淵龍)이 만년산(萬年山) 임방선인(林芳禪人)이 비장(祕藏)했던 것을 1680년에 중간(重刊)한 판본임을 설명한다. 그리고 《중편조동오위》의 내용은 동산의 《오위현결》의 핵심적인 내용임을 강조한다.

선생은 일연의 〈서문〉을 분석하여 조동선의 사관(史觀)에 대하여 설명하고, 동산의 《동산오위현결》 및 조산의 《축위송(逐位頌)》, 동산의 《동산삼구》, 조병문의 《한한거사조동찬》 등에 대하여 보(補)의 내용을 분석하여 일연의 조동선에 대한 입장을 자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로써 일연이 《중편조동오위》를 편찬한 가치와 의의에 대하여 조동선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제4장 조선시대의 조동선

조선시대의 경우는 조선 초기와 중기와 말기 이후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조선 초기의 조동선에 대해서는 설잠 김시습의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비롯하여 《조동오위요해》를 소개하고 분석하여 고찰함으로써 고려시대로부터 조동선풍이 단절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계승되었음을 고찰한다.

선생은 조동선의 가풍이 주도면밀한 섬세함을 특징으로 파악하고 정편오위설(正偏五位說)과 《십현담(十玄談)》을 통해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정편오위설은 동산양개의 《오위현결》을 기초로 하여 조산본적이 구체화시킨 것이다. 그 설명에는 《주역》의 원리를 원용하여 우주 변화의 미묘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설명한다. 이것은 바로 정편오위설의 내용에 포함된 묘용의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십현담》은 동안상찰의 저술로서 정편오위를 구체화시킨 것으로 평가한다. 곧 오위를 십현의 열 가지 항목으로 확대해석하여 이(理)와 사(事)의 둘이 원융의 관계로서 열려 있는 관계[回互]임을 해명하여 선의 궁극적인 경지를 터득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후에 청량문익에 의하여 《십현담청량화상주(十玄談淸涼和尙註)》가 출현하였는데, 청량문익은 《십현담》의 내용에다 현실성을 강하게 부여함으로써 조동선의 현실성을 보완했다고 평가한다. 이것이 한국에 전승되어 김시습에 의하여 1475년에 조동오위설의 의미와 어구로써 주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현담요해》였다고 확정한다.

이로써 선생은 정편오위설을 낱낱이 분석하여 고찰하고, 《십현담요해》에 관해서는 청량문익과 설잠의 견해를 상호 비교한다. 따라서 그 차이점에 대하여 문익의 경우는 개념적인 설명에 치우친 반면, 설잠의 경우는 현실성을 강하게 부여했다는 점으로 결론을 짓는다. 이로써 설잠의 조동선관이 지니고 있는 현실긍정이 이유에 대하여 설잠의 경우 유교적인 현실참여의 성격이라는 사고를 지니고 있었던 불자로서 심유적불(心儒跡佛)의 내면 가치를 품고 있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나 《십현담》이 지니고 있는 현실참여적인 가르침은 내외화융 사상 곧 현실긍정으로 나아가는 대접근책이고 조화사상의 맹아였다고 진단한다. 그것은 동산오위 속에 드러나 있는 빈주(賓主)의 관계 및 군신(君臣)의 관계 등의 비유를 통하여 초월세계와 현실세계의 관계를 파악한 것이었음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로써 선생은 조선 초기에 조동선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분명하고, 《십현담요해》는 조동오위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설잠의 조동선관은 전체적으로 현실긍정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결론을 짓는다.

나아가서 선생은 다시 《조동오위요해》에 대한 설잠의 견해를 고찰한다. 곧 《조동오위요해》에 대한 설잠의 입장을 조동선에 대한 창조적인 체계라고 판단하는데, 그것은 바로 조동선을 깊이 이해하여 유교와 도교를 회통시킴으로써 한국조동선사의 새로운 사상체계를 형성하였다고 평가한다.

먼저 《조동오위요해》의 구조를 주석과 게송 등을 중심으로 열 가지 단락으로 파악한다. 그 가운데 선생이 주목한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도융(道隆)의 〈오위군신도서(五位君臣圖序)〉에 대한 설잠의 주석은 조동오위에 대한 의미를 살리면서도 임제선의 격외선 도리를 종회무진하게 응용함으로써 조동선을 창의적으로 해명했다. 둘째는 단하자순(丹霞子淳)의 〈오위서(五位序)〉에 대한 설잠의 주석은 주렴계의 《태극도설》과 주자의 《태극도설해》를 구체적으로 인용하여 조동선과 《주역》 및 성리학의 공통점을 밝혔고, 위백양의 《참동계》를 인용하여 조동선과 도교의 공통점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조주삼문(趙州三門)〉에 대한 게송은 작자가 미상으로 되어 있지만 그 송에 대한 주석은 바로 설잠의 주석임을 고찰하였다.

조선 중기의 조동선에 대해서는 청허휴정과 환성지안의 저술, 그리고 사명유정과 소요태능과 무경자수 등의 몇 가지 글에 의거한 조동선의 이해를 중심으로 단편적인 조동선리를 고찰하고 있다. 특히 청허휴정을 비롯하여 이후의 사명유정 · 소요태능 · 무경자수가 보여주고 있는 단편적인 자료를 통하여 조동선의 사상과 그 흐름에 대하여 고찰한다.

청허휴정은 《선가귀감》에서 조동가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편의 가르침으로 오위를 시설하여 삼종근기를 교화하였다. 보배칼을 휘둘러 무수히 많은 사견을 잘라버리고 널리 통하는 현묘한 길을 보여준다. 세계의 시초인 위음왕불이 출세하기 이전의 찬란한 광명과 억겁 이전의 본래경지이다. 본래 정(正)과 편(偏)을 나눌 수가 없고 유(有)와 무(無)를 가를 수가 없다. 선생은 여기에 보이는 오위의 설명이야말로 조동종지의 핵심으로 간주한 것이다.

사명유정의 경우에는 〈증대마도승만실(贈對馬島僧萬室)〉에 드러나 있다. 곧 정중편과 편중정은 한 가지이므로 정과 편이 서로 오가더라도 이와 사가 오롯하다. 다시 정중래를 향해보면 이전과 같이 도리어 정중편으로 들어간다. 정중편은 이가 그대로 사이고, 편중정은 사가 그대로 이이며, 정중래는 이의 본래로부터 사의 현실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바로 이와 사의 원융임을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오위관에 대하여 청허의 경우에는 체(體)를 중심으로 파악했다면, 유정의 경우에는 용(用)을 중심으로 파악했다는 점으로 설명한다. 기타 청매인오(靑梅印悟)의 〈과수도영(過水覩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소요태능이 파악하고 있는 조동오위의 내용은 편이 오고 정이 가도 걸림이 없어 정과 편이 시방에 편만하며, 정중래가 겸중도가 되니 이 일구는 영롱하여 더 이상 머물 곳이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열린 관계[回互]와 닫힌 관계[不回互]의 교묘한 관계를 본래가 그대로 현실로 움직이고 있는 정중래의 작용이 바로 겸중도의 작용에 다름 아니라고 이해한 것이다.

한편 무경자수(無竟子秀)에게는 〈선가정편설(禪家正偏說)〉이 있다. 여기에서는 정편의 회호가 드러나 있는 까닭에 때로는 정이 되었다가도 때로는 편이 되어 서로 무궁한 모습이 마로 선도의 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체와 용이 일리(一理)이건만 그 일리의 자취마저 초월하는 것이 바로 선도의 종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수의 〈선가정편설〉은 정편불이의 경지를 무극으로 본다. 무극의 자성은 뚜렷하고 고용하며 현묘하고 밝은 경지인데 바로 그 상황에서 정편회호가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에 정편의 무궁을 선의 본체로 간주하고 정편의 불측(不測)을 선의 작용으로 간주하여 체용의 논리로서 정편오위설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여기에서 선생은 다시 무극의 경지는 유학의 영향으로 보고, 체용을 나눌 수 없는 일리(一理)로 간주하는 것은 임제선의 영향이라고 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시대적인 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청허의 4대 후손인 환성지안(喚醒志安)에게는 선종오가의 종합적인 교의서에 해당하는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가 있다. 그 가운데 조동종의 교의에 대해서 정편오위(正偏五位) · 공훈오위(功勳五位) · 군신오위(君臣五位) · 조산삼타(曹山三墮) · 동산삼삼루(洞山三三漏) · 동산창도삼강요(洞山唱導三綱要) 등을 시설하여 그 설명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환성은 조동종지에 대하여 향상(向上)을 해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편오위와 공훈오위는 동산양개가 시설한 것이고, 군신오위는 조산본적이 시설한 것으로 이들 3종 오위의 시설은 모두 정편오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타 조산의 삼타(三墮) 및 동산의 삼삼루(三三漏) 등은 납자가 닦아가야 하는 수행의 향상사를 겨냥한 것에 해당한다. 삼강요(三綱要)는 이사와 명암 등의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수행의 묘용에 대한 것이다.

또한 조선 말기 이후의 조동선에 대해서는 한용운의 《십현담주해》를 중심으로 조동선리의 주석을 중심으로 그 사상적인 단편에 대하여 고찰한다. 선생은 만해 한용운의 《십현담주해》의 고찰을 통하여 조동선풍이 조선시대 말기 이후에도 존속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십현담》의 성격이 다분히 조동선적인 사상과 상황에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상적인 구조와 내용이 또한 임제선에 비하여 보다 점진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생은 《십현담》에 설해진 열 가지 주제항목의 순서에 따라서 낱낱이 설잠의 주석과 만해의 주해를 비교하여 그 동이점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까닭에 조선 초기와 후기의 조동선풍의 이해에 대한 모습까지도 엿볼 수가 있다. 그 결과 선생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첫째, 《십현담》은 분명히 조동선 계통에 속하는 선서로서 그 가운데에는 조동선풍이 존재하고 있다. 둘째는 열 가지 주제항목의 단계마다 완결된 성격이 강하다. 이것은 세밀한 조동선풍에 부합되어 선의 경지를 매 단계 구별하고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십현담》의 원문은 심인의 출발점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본체와 현상의 일체감이 비대해져가는 것에 비하여 만해의 《주해》는 점진적인 비대의 방식이 아니라 직입적인 해석으로 되어 있다. 셋째는 현실지향적으로서 중생이 생활하고 있는 현장이 곧 열반세계라는 것이다. 곧 현상에서 법신을 추구하는 점이다. 넷째는 이타행을 강조한다. 삼세제불이 소가 되고 말이 되는 보살행의 피모대각으로서 중생구제에 힘쓰는 까닭에 흔쾌하게 시장에 들어가서 교화의 손을 드리운다. 다섯째는 만해 자신의 선적 체험을 《십현담주해》 속에 간접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만해가 독립운동을 한 것도 그리고 문학을 한 것도 가열찬 구도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제5장은 부록 편으로 민영규 교수가 발굴한 《중편조동오위》 및 《중편조동오위요해》를 수록하여 연구의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조동선은 중국의 조동선의 수입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수입된 이후로는 독자적인 전승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중국 조동선의 교의에 대하여 일연과 설잠과 환성과 만해 등을 통하여 한국적인 주해 및 이해가 존속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선생이 보여준 노력에 따른 성과였다는 것은 물론이다.

5. 석산의 조동선 이해

필자가 석산 한종만 선생을 처음으로 뵌 것은 1990년대 동국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불교학회 발표회장에서였는데 그때는 발표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필자가 2000년대 초반 영산선학대학교에 몇 학기 출강하던 즈음에 영산선학대학교에서 주최한 학술발표회장에서 필자는 발표자로 선생은 필자의 논문에 대한 토론자로 다시 만나 뵐 수 있었다. 앞의 발표순서에서 논자와 토론자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선생은 필자에게 말씀했다. “우리는 저렇게 싸우지 말자.” 그 말을 듣는 순간 회의장의 청중들은 모두 그 유머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필자는 나름대로 선생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까마득한 후배를 위한 세심한 배려였을 뿐만 아니라 평소의 살림살이가 이와 같은 발표회의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생이 원불교의 교무로서 원불교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이면서 전통 불교 가운데서 선종의 조동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원불교의 선이 지향하는 수승론과 선종의 조동선의 수증관이 상통한다는 점에 착안했기 때문이지만, 그에 대한 하나의 사상적인 근거로는 돈황본 《단경》에 근거하여 선의 수증관에 대하여 조동선의 경우 돈점개립(頓漸皆立)이라고 간주한 점에 주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후 선종의 조동선법에서 수행과 깨달음의 관계성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돈점개립은 돈오와 점수가 원융하게 성취된다는 의미로서 돈오로부터 출발하고 이에 점수를 통해서 돈오를 자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점수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돈오되어 있는 상태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행위이다. 그 때문에 조동선의 수증관은 깨달음에서 출발하여 깨달음으로 회향하는 입장이다. 이 경우에 수행은 깨달음의 유지이고 실천이며 깨달음은 수행의 모습으로 전개되고 귀결된다. 선생은 바로 이와 같은 근거를 돈황본 《단경》에서 그 원류를 찾고 있다. 이 점은 9세기 중반에 조동종이 형성된 이래로 조동선의 수증관을 일관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이와 같은 수증관의 전개는 석두희천의 《참동계》와 동산양개의 《보경삼매》 및 《오위현결》을 거치면서 조산본적에 의하여 정립됨으로써 조동종의 수증관은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동선의 흐름에 대하여 선생은 세 가지의 특징으로 파악하였다. 첫째는 정(正)이라는 본래성과 편(偏)이라는 현실성을 열린 작용[回互]을 통해서 일치시켜 본래와 현실을 하나로 보아 현실에서 본래성을 발견한다. 이는 현실에서 선의 진실한 경계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실천론이다.

둘째는 동산양개가 납자를 지도하기 위하여 시설한 삼로(三路)를 비롯하여 조동선의 일관된 흐름은 집착이 없는 행위 곧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 선의 체험으로서 이는 많은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경지이다. 이것이야말로 공사상의 극치이다. 삼로는 조도(鳥道)와 현로(玄路)와 전수(展手)이다. 조도는 새가 허공에 흔적을 남겨두지 않고 날아가듯이 자유자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로는 불도야말로 상대적인 대립을 초월한 미묘한 경지로 납자를 인도하는 길이다. 전수는 납자를 인도하기 위해 활용하는 갖가지 수단이다.

셋째는 보살행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짐승의 털을 뒤집어쓰고 머리에 뿔이 달린 축생이라는 피모대각(披毛戴角)이라는 보살의 실천을 통해서 고된 노력을 거쳐 중생과 하나가 되어 몸과 목숨을 바쳐 중생을 구제하는 이타행의 궁극을 밝혀내었다. 이것은 견성성불이라는 자기수행의 선의 경지를 초월하여 무아의 실현이라는 선의 사회성을 밝혀낸 것이다.

이와 같은 조동선에 대한 선생의 안목에 따르면, 조동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확장해서 살펴보아도 한국의 조동선에 보이는 이와 같은 특징은 중국에서 발생하고 전승된 조동종지와 더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조동선의 전승이 인간의 본래적인 청정성을 추구해온 까닭이었다. 그것은 인간 곧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라는 것과 그것을 보살행으로 현실에서 일상의 수행으로 승화시켜 전개해왔다는 조사선풍 바로 그것이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조동선의 가풍은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한 명도 예외가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처님과 동일한 마음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 곧 본래성불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선의 비조로 간주되고 있는 보리달마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둘째는 어떤 수행보다도 좌선의 수행을 순일하게 진행하는 지관타좌(只管打坐)를 통하여 개개인이 본래부터 구비하고 있는 불심의 신령스러운 작용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셋째는 일상의 행동거지를 비롯하여 마음 씀씀이의 지해가 일여하여 실천하는 작용과 이해하는 지식이 반드시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몸과 마음의 일치로서 마음으로 수행하고 몸으로 사유하는 신심일여(身心一如)의 가르침이다.

넷째는 일거수일투족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주도면밀하고 용의주도한 종지를 일상의 생활에서 그대로 본래성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먹고 자며 일하고 사유하는 모든 위의가 깨달음의 모습 아닌 게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항상 어디서나 어느 때나 어떤 상황에서라도 전일한 입장을 견지하여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의미하는 불법(佛法)이란 다름 아닌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평상시의 모습인 위의(威儀)를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곧 불법즉위의(佛法卽威儀)의 종교적인 삶이 바로 조동종의 종지이다.

선생이 탐구해온 한국 조동선의 사상과 역사는 결국 선생의 학문적 영역이 원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흥종교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전통적인 삼교의 이치와 한국의 사상체계 속에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곧 조동선의 종지는 원불교의 선수행이 보다 역동적이고 일상성을 강조한 측면과 관련된 까닭에 기존의 불교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더욱더 발전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 착안하여 전통수행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수행법의 개발 및 그 응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생 자신의 삶 속에서 묻어난 모습으로서, 한 군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과 수행의 주제를 갈구하는 구도자로서 자신의 원불교 신앙의 역동적인 가르침을 추구하여 도출한 결과였다. ■

 

김호귀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국대학교 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박사학위 논문은 〈묵조선에 관한 연구〉.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 강사 역임. 주요 저술로 《묵조선의 이론과 실제》 《선문답의 세계》 《조동선요》 《규기 금강경찬술》 《원효 열반경종요》 등의 저서와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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