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 사성제로 세운 대승공동체 설계도

박경준 동국대 명예교수가 《불교학의 사회화 이론과 실제》를 펴냈다. ‘삶의 예술로서의 응용실천불교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40여 년에 걸쳐 저자가 고민하고 실천해 온 학문적 화두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이자 학자로서 삶의 발자취이다. 

사실 우리 학계에 응용불교, 실천불교라는 개념이 학문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토대는 저자의 학문적 성과에 의지한 바가 크다. 저자는 붓다의 교설을 언어와 문자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가르침으로 재해석하였다. 개인적 종교사상이라는 불교에 대한 일방적 시선을 확장하여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윤리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모습으로 조망함으로써, 불교를 유기적이고 역동적이며 총체적인 ‘삶의 예술’로 전환시킨 것이다.

저자는 불교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통속적인 오해를 철저하게 연기법과 사성제를 통해 타파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여기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불교사상을 소생시킨다. 불교 교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통해 ‘삶을 위한 깨달음’이라는 실천적 불교정신을 되살린 것이다. 이로써 불교는 ‘삶의 예술’이며, 깨달음은 신비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생활세계’가 된다.

이 책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이론적 정초로서, 연기상의설과 업설에 대한 일반적 해석을 재검토하고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았다. 제2장은 대승 불설 · 비불설, 일천제 불성 유무론, 빨리어 경전과 대승경전의 사상적 차이 등을 분석하여 불교혁신운동으로서 대승불교 정신을 재각인시켰다. 제3장은 재가자와 출가자의 수평적 관계, 전륜성왕 사상의 기원과 의미, 염불 수행 등을 고찰함으로써 재가자의 위상과 수행의 지향을 논하였다. 이 세 장은 주로 ‘불교학의 사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제4장은 소비대중문화, 노동문제, 사회적 갈등 인식 등 불교에서 본 문화의 진보에 대한 창의적이고 폭넓은 의견을 피력했고, 제5장은 암베드까르, 성철 스님, 휴암 스님, 문수 · 정원스님 등을 중심으로 불교의 개혁과 사회참여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제6장은 전법교화학 정립 방안, 가족포교, 종교인 과세 등 전법 · 교화와 관련한 이론과 실천 사례를 소개하였으며, 제7장은 불교생태학과 불교경제학에 대한 구체적이고 발전적인 추진 방향을 탐색하였다. 이 네 개의 장은 ‘불교학의 사회화’ 실제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29편의 논문들이 7개의 소주제 안에 나뉘어 실려 있지만, 사실 모든 논문은 ‘불교학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고 있다. 여기서 ‘사회화한다’는 ‘사회에 적용한다’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적용이 불교에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 불교교리를 특정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재단하고 덧칠하지는 않았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후에야 불교학의 사회화 이론은 사회구성원 전체와 공유될 수 있고 그에 따른 실천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연기설의 사회적 의미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연기법에서 출발한다.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연기법은 오랫동안 ‘상의성’으로 해석되어 왔고 그 근거로 ‘갈대 묶음의 비유’가 사용됐다. 그러나 오래되고 견고한 이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연기법을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저자는 이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우선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는 공간적 상의성으로,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은 시간적 계기성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은 문맥상 전혀 근거가 없음을 검증을 통해 증명하였다. 더구나 공간적(동시적) 상의성이란 자기모순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황에서 차(此)와 피(彼)를 구별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갈대 묶음의 비유는 12지 중 식(識)과 명색(名色)의 관계에 대한 비유이므로, 일체제법에 대해서까지 확대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저자는 ‘차유고피유’와 ‘차기고피기’는 유전연기, ‘차무고피무’와 ‘차멸고피멸’은 ‘환멸연기’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고, 이는 ‘고(苦)의 자각을 통한 고의 극복’이라는 사성제의 실천적 가르침과 같은 의미라고 파악했다. 

업설이나 인과응보의 윤회설 역시 저자는 자유의지와 공업(共業) 사상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불교적 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한 능동적 · 자율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자유’ 사상에 통하고, 업보는 그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책임’ 사상과 통한다고 파악한다. 이로써 업설과 윤회설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원리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행위와 창조적 노력을 설하는 상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생관을 함의한 가르침으로 확장된다. 

특히 업의 과보는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적 ‘법과 제도’를 통해서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듯 업설의 심리학적 해석, 즉 양심에 입각한 인과응보는 전통적인 윤리학적 인과응보보다 현대인에게는 더 설득력 있는 교설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업설의 기초가 되는 교리인 십이처설에서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중생과 자연(사물)의 관계로 재설정한다. 결국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도 중생의 자유의지에 의해 다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공업 사상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불교사회학, 불교경제학, 불교생태학, 전법교화학 등의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지속했던 기저에는 연기설의 창조적 비판정신과 사회적 의미, 실천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자리이타와 불교사회교리

불교 구성원이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직접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응용불교, 실천불교, 참여불교가 있다. 인도에서 신불교 운동을 일으킨 암베드까르에 대해 저자는 불교관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그가 ‘개인’에 갇혀 있는 불교를 ‘사회’로 이끌어낸 점을 높게 평가한다. 또 정원 스님과 문수 스님의 선택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삶을 산 ‘대자대비의 보살행’임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바로잡았다. 

이 반대편에는 순수불교, 은둔불교 등이 자리한다. 현대의 대표적 선승인 성철 스님은 장좌불와(長坐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을 실천하며 출가수행자의 본분에 충실하였던 분이다. 그런데 저자는 스님이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혹독한 수행정진을 한 것은 현실 사회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관계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출가자의 청빈한 삶은 재가자의 보시에 대한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실천한 것이며, 적극적인 이타의 삶을 강조하는 종정 법어를 내리는 등 간접적 · 우회적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도 사회참여의 방법이다. 저자는 물질 지향적이고 감각 지향적이며 유희를 본위로 하는 소비대중문화의 문제를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에 대입하여 불교적 비판을 하고, 그 대안으로 열반 문화를 제안한다. 또 환경문제와 불평등을 야기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경제체제를 중도의 지족(知足)에 바탕을 둔 보시와 자비의 따뜻한 경제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촉구한다. 저자가 환경생태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구체적 생활 및 행동규범’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생태 분야뿐 아니라 문화나 경제 등 모든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때 기준이 되는 불교사회교리를 정립하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불교사회교리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떤 형식의 참여를 선택하더라도, 참여는 권리와 책임을 동반한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인 과세에 대한 불교적 관점〉 논문은 불교사회교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출가자의 경제윤리, 노동, 세금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제시하고, 기득권의 과세 반대 주장을 불교교리로 논박하였다. 침묵으로 사회적 이슈를 외면해오던 불교계의 고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깨뜨린 것이다. 2018년부터 종교인 납세 제도가 시행되었다. 우리 사회가 열반의 이상향을 향해 조금씩 변화되는 길목마다 저자의 학문적 성과가 디딤돌이 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고득락과 응용실천불교

저자는 불교의 존재 이유가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단언한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든 고통을 여의고 안락을 얻게 하는 것이 불교라 한다. 또한 저자는 불교가 지향하는 열반의 이상은 ‘서로 돕고 나누는 삶(정어, 정업, 정명)’에 의한 따뜻하고 원만한 인간관계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고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의 삶은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 없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개인과 사회는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이고, 개인적 탐욕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탐욕도 존재한다. 저자는 사회적 탐욕을 ‘개인적 탐욕을 촉발시키는 사회시스템’으로 파악한다. 종교 또한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종교는 사회적 탐욕에서 비롯된 여러 폐해에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고 진제와 속제가 걸림이 없다면 불교는 이제 세속의 정치현실까지도 껴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교리를 논하든, 사회적 실천을 논하든, 수행이나 계율을 논하든 그 시작은 거의가 사회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왜 책머리에서 불교학의 사회화, 불교학의 생활화가 학문적 화두라고 밝혔는지, 그리고 그가 수십 년 동안 이 화두를 놓지 않고 오매일여 매달렸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7월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이 책이 선정되었다. ‘불교학자’가 ‘불교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불교학의 사회화’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이미 학계와 전문가에게는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불교학이 사회의 엔진이 되려면 일반 대중의 집단 지성과 행동이 필수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 속으로 저자의 외침이 퍼져나간다면, 불교학의 사회화는 깨달음의 사회화와 둘이 아니며 우리 사회는 열반의 대자유로 가득한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

 

정헌열 /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불광연구원,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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