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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가벼워지기
[79호] 2019년 09월 01일 (일) 김우남 소설가

요즘 틈이 나는 대로 집 안팎을 들쑤시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버리는 일, 비우는 작업이다. 장롱 속에는 유행이 바뀔 때마다 혹은 치수에 맞추느라 구입한 사시사철 옷이 너무 많다. 언젠가 살을 빼면 입겠다며 서랍 깊숙이 넣어둔 옷도 만만치 않다. 부엌 선반에는 혼수 세트에서부터 선물 받은 것까지 별로 사용하지 않는 그릇들이 차고 넘친다. 색깔이 예뻐서, 모양이 달라서, 기분전환용으로…… 별의별 이유를 붙여서 구입한 화장품과 필기도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것들을 세 단계로 나누어 놓는다.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주거나 기부물품으로 처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남편과 내 책 이백여 권을 기증하고 에코백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아직도 읽은 책, 안 읽은 책, 읽을 책 등 이런저런 책들이 내 방의 삼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년부터 갑자기 시력이 나빠지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졌다. 눈이 불편하고, 촉각이 무뎌지고, 기억력은 깜빡깜빡, 나이라는 경고등을 켜고 있었던 것이다. 아, 유한한 존재인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구나. 크든 작든 내가 경험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씩 늙어간다는 걸 지혜를 키우는 일이라고 하는가 보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서서히 체득하게 되니까. 

“비우고, 내려놓고, 명상하고, 모른다 하고…… 그러면 단지 돌멩이가 물속에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이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행위가 무슨 대단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고 마술을 부린다고 한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헤르만 헤세는 비운다는 것을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새가 울 듯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도 이참에 책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아까워서 들었다 놨다 하던 책을 채마밭에서 채소 솎아내듯 단숨에 뽑아낸다. 

이번에는 옛 사진들 차례다. 주르륵 늘어놓은 사진들이 한 사람의 역사를 시간별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을 들추어보는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너덧 살의 아들과 딸이 빨간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사진이 있다. 얼핏 보면 애들이 한껏 멋을 부린 것 같은데 사실은 유치원에서 이를 옮아와서 약을 뿌리고 있는 모습이다. 친정아버지의 사진은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삼십 대 중반의 멋진 청년 시절부터 엄마랑 둘이서 함께한 경주여행 그리고 뇌졸중이 심해져 요양원에 계실 때의 사진까지…… 생신을 맞아 고깔모자를 쓴 아버지는 틀니를 뺀 채 크게 웃고 계시는데, 노래를 부르는 나는 울기 직전이다. 

사진을 찍던 순간 그대로 환히 웃고 있는데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사람이 내 곁에서 없어져도 나이 들고 병들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거라고 덤덤한 척 받아들였던 나. 그런데 살아생전 그분의 작은 제스처, 특이한 말투와 버릇까지 기억해낼 만큼 가까운 인물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힘겹다. 그것들이 사진이라는 실체로 눈 앞에 펼쳐지니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슬픔 때문에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현재를 씩씩하게 살아내기 위해 그들을 잠시 마음속 한 귀퉁이에 밀쳐두고 못 본 척한 게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나이 듦과 아픔, 늙음, 죽음…… 그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미래다. 

나는 누렇게 바랜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한 장 한 장 추억이 묻어 있어 모두 소중하고 귀하다. 하지만 이 또한 사라지고 마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 아이들은 그 안에 담긴 깊은 사연은커녕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진들이 허접쓰레기로 남기 전에 내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아쉽지만 나는 가위를 찾아 든다. 

우리가 어려운 순간마다 찾아가 지혜로운 답을 구하곤 했던 비구니 스님이 올해 97세이시다. 그분은 최근까지 직접 전화를 받고 사찰 안팎의 대소사를 챙기셨다. 평소 조용하던 분이 눈 한번 크게 뜨면 젊은 상좌들이 쩔쩔매곤 했다. 그런데 올해 부쩍 기운이 없어서 거의 누워 계시고 조금씩 기억을 잃어 가는 걸 본다. 그 연세에 치매기가 없는 것만도 대단하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것 아닌가.

“조금씩 기억을 지우셔야지. 그렇게 가벼워지셔야지.”

버린다는 의미가 이렇게 크게 확장될 수 있다니……. 그러자 버리고 비우고 정리하고 가벼워지는 것, 이 모든 행위가 더 아름답고 더 귀한 일처럼 여겨졌다. 나아가 같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을 덤으로 얻었다. 

오늘도 나는 좀 더 가벼워지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기웃 버릴 물건을 찾고 있다.

 nim1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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