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카페와 공방으로 쓰는 곳이 있다기에 일부러 구경한 적이 있다. 먼지에 그을린 골조와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벽체가 스산했다.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어느 작가의 공방 문에 맵시 있는 손글씨로 써놓은 한 구절, “씨앗은 강하다”. 노후한 장소였기에 저 문장이 강렬했을 것이다. 초보 농부인 내게 ‘씨앗’은 숭고한 무엇이다. 

작년 11월 처음으로 마늘을 심었다. 마늘은 겨울 동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동면하듯 있다가 봄이 되면 싹을 내민다고, 말로는 그렇게 들었지만 내가 심어놓은 마늘도 과연 그럴 것인지 내심 초조했다. 얼까 봐 너무 깊게 심은 것은 아닌지, 거꾸로 심은 것은 아닌지, 씨마늘은 건강한 것들이었는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밭에 갈 때마다 어지러웠다.

마늘 순이 올라오자 잡초들도 덩달아 삐죽이 올라왔다. 아직 어리지만 뽑아주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본다는 말에 마음이 급했다. 언 땅이 녹고 몇 차례 비가 내리자 잡초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뿌리를 깊게 뻗으면 뽑을 때 마늘 뿌리를 흔들 수 있다. 명아주가 많다. 어른들 얘기에 따르면, 명아주는 가볍고 단단해서 지팡이를 만들었고, 나물로도 먹었다. 그러나 마늘밭의 명아주는 잡초일 뿐이다. 요놈은 뿌리가 아래로 뻗어 위로 잡아당기면 쉽게 뽑힌다. 문제의 잡초는 바랭이, 쑥, 쇠뜨기, 환삼덩굴이다. 이것들은 뿌리를 옆으로 뻗어 번식하기에 영역이 넓다. 뿌리가 끊겨도 다시 싹을 틔운다. 흙을 움켜쥔 힘도 강해서 크기 전에 손보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농사는 고역이다. 단순해 보이는 잡초 뽑기도 만만치 않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온몸의 근육이 굳는다. 쪼그려 앉아 세 시간 정도를 기어야 한다. 잠깐 쉬려 일어나려고 하면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아이고 아이고, 신음 소리가 절로 난다. 두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목을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기를 두어 번 하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몸꼴이 돌아온다. 젓가락질하는 손이 가늘게 떨린다. 주먹을 움켜쥐면 손가락 관절이 아프다. 이러다가 근골격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밭일을 할 때는 기어다녀야 한다고 했던 화천에 사는 농부의 말이 백번 옳다.

농사일은 300평 이상이 되면 기계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가족들 모두가 논밭일에 나섰고 이웃들과 품앗이를 했지만, 독살림하는 요즘은 경운기와 관리기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공동 노동의 전통을 되살려내는 일이 절실하다. 기계가 있어서 노동이 절감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계가 모든 노동을 대체하진 못한다. 예초기를 예로 들어도, 모든 작물에 적용되진 않는다. 마늘의 경우가 더욱 그러한데, 마늘은 10cm 간격으로 심으니 기계로는 풀을 뽑아낼 수 없다. 경운기와 관리기로 두둑을 만들었어도 마무리 작업은 손이 필요하다. 옆으로 퍼진 흙을 삽으로 올려주어야 하고, 배수로 작업의 마무리도 삽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닐도 기계로 씌우는데 군데군데 너풀거리는 비닐에는 삽으로 흙을 떠서 덮어주어야 한다. 삽질의 고단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농사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없진 않다.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인데, 품삯을 치러야 한다. 대농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할뿐더러, 노동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돈에 실려 옮겨가는 것일 뿐이다. 지난봄에 병훈이가 논의 퇴수구를 보수했는데, 논둑을 허벅지 깊이까지 파고 배수 파이프를 다시 묻었다. 천 번이 넘는 삽질을 했을 것이다. 전화 한 통화로 포클레인을 불렀으면 30분이면 끝났을 일이지만, 그 비용을 생각하며 주저했을 것이고, 그래서 몸으로 때웠을 것이다.

농사를 하면서 내게 찾아온 몇 가지 변화가 있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몸이 고단하니 나도 모르게 일찍 잠이 드는 까닭이다. 매일 여명의 아침을 맞이한다. 커튼을 젖히면 눈이 부시다. 기분 좋은 시작이다. 노동이 주는 선물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기록하는 것이다. 농사는 1년 단위의 반복이다. 관찰하고 실험한 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기록하지 않으면 경험으로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상 상황과 관찰했던 것들, 작업 내용, 당시의 느낌 등이 적힌 작년의 기록은 올해의 교사 노릇을 한다. 올해는 감자를 심으면서 새로운 실험을 했다. 씨감자를 온상에 가식해 싹을 틔우는 것과 함께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장마철보다 이르게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만큼 뿌리를 많이 내리지 않았다. 씨감자 밑에 깔아놓은 지푸라기가 보온효과를 내려면 물에 흠뻑 적셔져야 하고 최소 3주의 시간이 지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록해놓은 결과와 과정을 되새겨 내년 농사에 반영해야 한다.

연일 땡볕이지만 농부는 쉬지 않는다. 고추는 장마 뒤에 방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병이 돈다. 콩은 순지르기를 해줘야 하고, 노린재 피해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우리 밭은 농약과 제초제, 토양살충제를 쓰지 않는다. 대신 은행잎이나 자리공 삶은 물을 이용해 벌레를 쫓아낸다. 천연농약은 화학농약에 비해 살충효과가 떨어지니 더 자주 뿌려주는 수고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1년 중 농사의 시작은 언제일까? 봄이 아닌 가을이다. 농부는 가을걷이를 하면서 내년에 심고 가꿀 작물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에 따라 밭을 정리한다. 밑거름을 넣기도 하고 수확하고 남은 잔여물을 다시 흙으로 돌려놓는데, 이것들은 눈에 덮이고 비와 바람에 썩고 씻기며 거름이 된다. 흙을 만드는 것인데, 씨 뿌리기 전까지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농사의 시작이다. 흙을 잘 만들어놓지 않으면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 무대의 막이 오르는 게 공연의 시작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지 않고서는 막이 오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생략하고서는 보여줄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농사만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게 있을까. 수확은 땀방울의 무게에 정확히 비례한다. 왜곡이 없다. 초보 농부의 짧은 경험에 기대어 보건대, 그러므로 과(果)보다는 인(因)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인과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거늘, 아무래도 인과에 더 깊이 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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