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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도보여행
[79호] 2019년 09월 01일 (일) 김태형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다시금 그때의 일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글로 옮기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인연이 생겼는지, 왜 하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안 봤으면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아주 우연히 그 사건 현장에 있게 됐다. 처음 현장을 목격했을 때는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었다. 아, 말로만 듣던 자살의 현장이 이런 거구나. 물론 혼자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관을 비롯한 현장 수습 전문가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공포. 어둠이 내리자 환한 방안이 아니면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날이 밝아 하루를 시작해도 그 두려움은 밝음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마침 휴가가 있어 산속이 아닌 바닷가로 도망쳤다. 바다로 도망치면 벗어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그 두려움은 그 장소를 벗어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침 숲속으로 들어가니 다시금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두려움 속에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일 때문에 사건 현장 근처를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오금이 저려 한 발 한 발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아침에 혼자 일과를 시작하는 일터에서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틀어놓고 일을 했다. 그나마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그 두려움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 폭력을 휘둘렀다. 그 두려움에 한 방 맞을 때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파왔다.

한편으로는 이 두려움과 공포가 어디서 오는가 관찰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그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지 않고 말로만 들었다면 그래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날짜를 계산해보니 그가 자살을 한 지 49일이 되는 날이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소주 한 병을 사서 사건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심장은 왜 그리 쿵쾅거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던지. 겁에 질려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틀어놓고 현장에 도착했다.

“부디 이승에서의 아픔은 모두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며 그가 마지막을 맞았던 소나무 주변에 술을 뿌리고 나도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축원을 하고 돌아서니 보름 가까이 나를 괴롭혔던 두통과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그해 초여름 《삼국유사》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 조(條)를 읽다가 문득 진정 스님이 의상대사를 찾아가 불법을 배우겠다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부석사에서 경주 황복사까지 걸어 가보기로 했다.

여름 휴가를 이용해 3박 4일간 부석사에서 경주까지 약 200km를 걷기도 하고 어떤 구간은 버스를 타기도 하면서 도보여행을 했다. 그때 봉화를 지나 안동 경계에 진입했을 때 발에 물집이 생겨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다리는 아프고…… 힘도 들고…… 다시 돌아갈까……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다. 양말을 벗고 물집 잡힌 발을 보니 더 아팠다. 가만히 발을 내려다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발이, 그것도 물집 잡힌 곳이 아픈데 왜 내가 아프다고 죽네 사네 하고 있지? 발이 아픈 것이지 내 머리가, 내 팔이, 내 배 속이 아픈 게 아닌데, 왜 내가 아파서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순간 온몸을 휘감았던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발은 아팠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발은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은 거기까지였다. 물집이 터져 아픈 거기까지.

그날 저녁 안동에서 자고 다음 날 시내를 벗어나 임하면을 지나 길안면을 거쳐 현서면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영천까지 갔다. 안동에서 현서면까지 한낮 기온은 30도를 넘었지만, 그날 50km 정도를 걸으면서 육신의 고통으로 마음이 휘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힘들고 아프면 잠시 쉬었다가 가고 걷는 도중 발에서 생기는 통증은 그것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었다.

‘그래, 물집이 생기고 살갗이 벗겨지면 아픈 거야, 그건 당연히 아픈 거야……’

그렇게 아픔을 바라보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의상대사가 낙산사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했다는 《삼국유사》의 〈낙산사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寺二大聖觀音正趣調信)〉 조(條)를 읽고 태백산맥을 넘어 낙산사까지의 홀로 두 번째의 도보여행을 했다. 20시간 동안 약 70km를 걸어 태백산맥을 넘었던 그때, 노루재를 오르면서 새벽안개의 물 입자 하나하나가 얼굴에 닿는 그 느낌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2015년 봄과 여름과 가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나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파란 하늘 아래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가는 조계산의 푸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jprj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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