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 문제의 제기

이 글에서 우리는 만일 부처님께서 2005년 한국의 이 땅에 오셨다면 오늘의 한국의 정치현실을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을까? 어떠한 가르침을 주시었을까? 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은 이 땅의 불자들이 오늘의 한국의 정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평가하여야 하고, 어떠한 대안을 제시해야 옳은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불자다운 것인가? 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보는 것이 오늘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정치의 관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2. 정치의 두 가지 병
오늘의 한국의 정치는 두 가지 큰 중병(重病)앓고 있다. 하나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국민 분열과 갈등'에만 치중하지 '국민통합과 화합'노력은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정치가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고 화합하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국민 분열과 갈등을 자극하고 선동하여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에 유리하도록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정치가 '過去와의 전쟁'에 매몰되어 있고 '未來의 건설'에는 관심이 적다는 사실이다. 과거와의 싸움만 하고 있지 미래를 향한 희망의 청사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여(與)는 과거와 싸움하고 있고야(野)는 여와 싸움하고 있어 여야모두가 반대는 하고 있으나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우리는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공허하고 빈한한 정치이다.

3. 제1의 문제: 국민 분열과 갈등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국민은 여러 가지로 분열되어 있고 상호 불신과 적대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세대 간 불신과 계층 간 갈등과 지역 간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천의 맥아더 동상문제나 강정구씨 발언 등으로 촉발된 국가정체성을 중심으로 좌와 우 혁신과 보수 간의 이념의 갈등과 대립은 심히 우려할 정도로 첨예화되고 있다.

어느 국가나 어느 사회에나 갈등과 대립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나라의 정치가 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을 통합하여 가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그러한 통합의 노력을 하고 이를 성공시킬 통합능력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가 통합보다는 오히려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분열을 이용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우리는 유사민주주의 혹은 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포퓰리즘이란 본래가 대중의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대중의 정서와 감성을 중요시하는 정치형태이다. 그런데 본래 포퓰리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극적 포퓰리즘으로서 이것은 정치가 대중의 정서에 아부하는 정치행태이다. 국리민복을 위한 올바른 정책의 수립보다도 목소리큰 집단의 주장과 타협하고 그들의 감성에 영합하는 정치를 말한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번창하면 국가정책은 사공이 많아서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과 변화를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앞으로 21세기 나라선진화를 위하여서는 반드시 많은 올바른 개혁(평등주의적 개혁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혁)을 하여야 하는데 포퓰리즘이 번장하면 이들 개혁이 다 물 건너가게 된다. 선진화를 위한 개혁이 모두 실패하게 된다.

두 번째 종류의 포퓰리즘은 공격적 포퓰리즘이다. 공격적 포퓰리즘은 단순히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는데 끝이지 않고 대중의 정서를 창출하고 조작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일반적으로 공격적 포퓰리즘은 우선 국정과제를 단순화하고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원화한다. 그리고 정치적 상대를 악의 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해 대중정서를 선동하고 여론을 조작한다.

예컨대 국토의 균형발전은 중요한 국정과제이다. 여러 정책(국토종합공간계획, 예산과 규제의 실질적인 지방분권, 인재의 지방유도 등)을 종합적 복합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용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를 지극히 단순화시켜서 "균형발전을 위하여서는 수도를 이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국토의 균형발전이 안 되는 것은 수도를 이전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된다.

그리고 국민을 수도이전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이원화시키고 분열시킨다. 찬성은 선이고 반대는 악이다. 그리고 주장한다. 국토의 균형발전이 안 되는 것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서울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의 기득권구조야 말로 국토의 불균형발전이라는 사회적 악의 원인이라고 선동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공격적 포퓰리즘이다.

부동산가격의 안정정책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서는 많은 정책수단(공급증대, 수요감소 등)이 종합적으로 복합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가격이 안 잡히는 이유는 서울에서 사는 투기꾼 때문이라고 단순화 한다. 특히 강남에 살고 있고 또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세금폭탄을 내려서 혼을 내야 한다고, 국민을 강남대 비강남으로 대립시키고 분열시킨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수도분할이전은 물론이고 정부산하 170여개의 공공단체를 지방에 나누어준다고 발표함으로써, 정부가 앞장서서 부동산가격을 전국적으로 올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교육개혁이 안 되는 것은 정부의 '평등주의적 교육개혁정책'과 '정책의 일관성 부족' 때문인데도,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이 안 되는 것은 서울대학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대학이 교육부정책에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정책이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대학까지 평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이를 따를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서울대학의 진정한 문제는 세계최고대학과 경쟁을 제대로 할 능력이 있는가? 아닌가가 문제이고 고민이다. 세계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이 세계화시대에 국내대학들을 평균화 내지 평준화시키는 것은 한마디로 국망(國亡)의 정책이다. 이렇게 시대의 변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 상식 이하의 주장까지 난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공격적 포률리즘의 상황이다. 우리의 정치는 과연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려 하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하여 국민들을 오도하고 국민들을 더욱 분열 갈등하도록 만들려 하는가?

만일 이러한 상황을 부처님께서 보시면 무엇이라고 하실까? 부처님은 분명 화합과 통합을 중시할 것이기에 아마 이렇게 시작하실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각자 자신의 주장을 너무 절대화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좌도 우도 혁신(진보)도 보수도 성도 악도 다 상대적인 가치임으로 자신을 절대화하지 말고 자신을 상대화하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상대로부터 배우라고 하실 것이다. 아상(我相)을 버리고 남으로부터 배우라고 하실 것이다.

진보(進步)가 진보의 가치를 보다 풍성하게 하려면 반드시 보수의 가치를 배워야 함을 이야기 하실 것이다. 그리고 보수도 마찬가지로 보수의 가치를 보다 풍요롭게 하려면 진보의 이야기를 잘 수용하여야 함을 이야기하실 것이다.

사상도 버려야 하거든 하물며 법상(法相)이겠는가 하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되어야 진정으로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 상생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법칙'이 우리의 '불성의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하실 것이다.

그리고 포퓰리즘, 유사민주주의에 대하여선 분명히 선을 그으실 것이다. 포퓰리즘은 무명(無明)의 정치,탐진치(貪嗔癡)의 정치, 즉 어두움과 미움과 시기의 정치임으로 가능한 빨리 버리라고 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포률리즘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그리고 법치주의도 나아가 올바른 공동체주의도 모두가 파괴될 것임을 심각하게 경계하실 것이다.

과거 스탈린이나 히틀러의 좌우독재 모두가 포퓰리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실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들이 공격적 포퓰리즘의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치적으로 등장하였다는 역사적 사실(史實)을지적하실 것이다. 그리고 독재는 반생명적, 발불성적 이기 때문에 반드시 멀리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실 것이다.

4. 제2의 문제: 과거와의 투쟁

요즈음 우리 정치는 '과거와의 전쟁'에 빠져있다. 물론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과거를 올바로 균형 있게 평가하여야 우리는 미래에 대한 올바른 교훈과 지침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역사에는 功도 있고 過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과를 반성하고 공을 계승하여 나가는 발전적 역사계승론(發展的 歷史繼承論)은 올바른 역사관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는 과거의 역사는 모두 잘못되었으니 이를 심판하고 청산하겠다는 자학적 역사청산론(自虐的 歷史淸算論)이 나오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모두가 잘못되었으니 이것을 모두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가 세운 나라이다. 그러니 친일분자를 찾아내어 이를 청산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해방 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자가 승리한 역사이다. 그러니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이들 친일, 민족분열, 독재에 아부한 기회주의자들을 청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는 역사를 흑과 백으로 나누려는 이분법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 예컨대 친일과 반일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독재와 민주도 마찬가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자사이에는 친일도 반일도 아닌 거대한 보통사람들의 회색지대가 있다. 또한 친일과 반일의 역전 그리고 재역전의 경우도 많다. 더구나 역사는 그 누구도 역사(역사책임)로부터 자유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모두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일제에 나라를 잃게 된 것이 을사오적(乙巳五賊)때문일까? 그 들만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잃지 아니 했을까?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둘째는 누가 판단하느냐 이다. 누가 역사청산을 하느냐이다. 우리나라 역사 특히 근현대사에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있는 사료도 제대로 분류되고 정리되지 않은 부문이 많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에게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역사를 청산한다고 나선다면 과연 역사정리가 제대로 될까? 정치적 목적의 배제가 가능할까? 정치적 목적이 작동한다면 역사청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여야 하는 악순환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역사정리일까?

우선 역사의 정리는 역사학자들이 하여야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그동안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제대로 조사 연구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제는 좀 더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학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참조: 이러한 목적으로 1997년 정신문화연구원 부설 현대사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설립 후 1년간 의욕적으로 많은 연구실적을 올렸으나 1년 후 정권이 바꾸면서 구조조정의 차원에서 없애버렸다)

정치는 역사학자들이 근현대사 정리를 보다 잘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고 정부 내부자료의 자유열람권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가들의 조사연구가 끝나면 그 조사연구 결과를 놓고 정치인들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상벌과 서훈을 행하고 만일 상처받은 국민마음이 있다면 이를 위하여 국민화합과 통합을 위한 조처를 취하면 된다. 역사가들보다 정치가들이 먼저 나서면 안 된다. 그러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역사정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역사청산'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청산을 다시 하여야 하는 악순환을 맞게 된다.

지금 우리 정치가 보다 주력할 것은 미래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오늘날 국민들은 '경제적 고통'과 '교육적 고통'에 크게 시달리고 있다. 이불황과 실업의 늪은 언제 끝나는지? 과연 앞으로 우리경제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 현재와 같은 교육을 시켜도 우리 후손의 미래는 과연 밝은 것인지? 언제쯤이면 과외비 없이도 교육이 가능한지? 등등을 고민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정치라면 국민들에게 적어도 이들 경제와 교육문제에 대하여서 만이라도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와의 투쟁은 정파적 정치적 이해를 위하여서는 대단한 중요한 정치게임일지 모르나 분명 국민외면의 정치, 민생무시의 정치게임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계신다면 무엇이라고 하실까? 이 중생들아 너희들 중에 아무도 역사(역사적 책임)에서 자유스러운 자는 없다. 모두가 그 나라의 역사의 업(業)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생에게는 공업(共業)과 별업(別業)이 있다고 내가 가르치지 아니하였더냐. 을사5적만이 친일을 하여서 너희 나라가 일제의 식민화가 된 것이 아니다.

이미 당시에 살아있던 많은 사람들, 임금부터 시작하여 고관대작 그리고 학자 유생 농민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을사보호조약을 보고 의분으로 할복한 의인(義人)들도 일정부분 나라가 망하는 역사의 공업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다 참회하여야 한다. 언필칭 친일한사람들 반일반 친일한 사람들 그리고 중간의 많은 사람들 모두가 다 참회하여야 한다. 물론 친일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참회하여야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진정한 참회는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데 있다. 진참회(眞懺悔)는미래를 향하여 하는 것이다. 망국의 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과연 경제적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중국의 대경제권의 부상에 기대여 살아가는 변방경제, 내지 하청경제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과연 정치적 자유민주화에 성공할까? 국민들이 투표로 정권을 바꿀 수 있게 되었음으로 민주화에는 성공하였지만 과연 앞으로 포퓰리즘의 덫, 유사민주주의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은 민중민주주의의 유혹을 벗어나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실히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로 갈 수 있을까?

오늘날 한반도는 냉전이후 동북아에 새로운 외교안보질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는 와중에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떠한 자기목표와 자기구상을 가지고 이러한 신질서창조에 참여하고 있는가? 아니 참여하여야 하는가? 우리사회일각에서 나오는 친미냐 친중이야 하는식의 20세기적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21세기 나라의 세계경영을 할 수 있는가? 등등 우리나라를 보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걸려있는 이러한 당면 문제들을 올바로 푸는 것이 진정으로 과거역사를 정리하고 참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부처님께서 계시면 아마 이상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5. 정치성공을 위한 불자의 자세

만일 계속하여 우리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과거와의 전쟁에 골몰하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민생을 외면한다면 그리하여 결국 국가 실패의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간다면 우리 불자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몇 가지 방향으로 입장의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본래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기 어려우니 각자 마음의 번뇌를 없애는 수양부터 하자. 내 마음이 청정하여야 국토가 청정할 수 있으니 우선 마음을 청정하게 지켜 나가자. 이 모든 정치의 실패가 실로 나와 깊은 연기적관계가 있으니 우선 나부터 이렇게 된 상황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반성하자. 그러면 내 주위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국토가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우선 각자의 '마음개조'부터 시작하자는 주장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국민을 통합하는 세력을 만들고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세력을 만들자. 국민을 분열시키는 세력, 포퓰리즘 세력, 과거와 전쟁하는 세력을 설득하여 나가자.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나가자. 좌와 우를 하나로 묶고 혁신과 보수가 대화하도록 만들어 극단적 생각을 버리고 모두가 보다 합리적이 되도록 만들자(양변을 버리고 중도를 취하도록 하자). 낡은 구진보와 낡은 구보수의 시대착오적 미망에서 벗어나, 21세기적 합리적 신진보와 합리적 구보수가 손을 잡도록 만들자.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미래건설의 그림을 그리자. 한마디로 '세계개조'로 들어가자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두 가지 길에 대하여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하실까? 어느 쪽 손을 들어주실까? 생각건대, 우선은 모두가 중요하다고 하시지 않을까? 각자가 자신이 믿는 바를 우선 '제대로''열심히' 하라고 하시지 않을까?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열심히 하고 마음개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개조를 열심히 하라고 하시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시대 불자의 가장 큰 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다. 방일(放逸)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싶으실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마음개조'하면서 그 원력으로 '세계개조'를 하라”고 가르치시고 싶으실 것이다. 같은 이야기이나 “'세계개조'하면서 그 원력으로 '마음개조'하라”고 가르치시고 싶으실 것이다. 두 개를 함께 하는 것이 옳다. 결코 둘이 아니라고 가르치시고 싶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지향하는 본마음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이 올바른 불교와 정치와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원리적으로 불교와 정치를 구별할 수 없고 왜냐하면 세법(世法)과 불법(佛法)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를 내세워 정치를 멀리하거나 정치를 내세워 불교를 멀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나는 마음개조를 하니 세계개조는 나의 관심이 아니라고 하거나 나는 세계개조를 하니 마음개조는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불법이 아니다.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우리 불자의 병은 우리의 방일에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동체에 대한 책무와 시대와 역사에 대한 책무의 방기(放棄)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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