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만해축전에서

두 선지식께서 만해마을에서 손을 마주 잡으셨다. 종단 살림을 맡으신 가산 대종사님께서 만해사상선양회 총재로서 만해축전 행사에 동참하시면서였다. 깊고 무심한 설악이 오대양 건너 육대주에서 오신 수상자들과 축하 대중으로 야단(野壇)이 법석(法席)일 때였다.

그렇게 두 선지식은 서로를 위로하셨다. 서울로 돌아오시는 길에 가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셨다. 

“만해 스님의 후신(後身)이 틀림없어!”

2007년 어느 여름날

백담사 무산 큰스님께서 불교대백과사전 편찬 정진도량에 첫 발걸음을 하셨다.

그때는 가산지관 대종사님께서 총무원장 소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대종사께서는 오후 5시 조계사 청사를 퇴청한 후, 걸어서 연구원에 들러 작업원고 감수본 등을 수령하시고, 저녁 공양 후 주석처 경국사로 돌아가는 일과를 한결같이 하시던 시절이었다.

이미 칠순 하고도 한참이 지난 두 어른 큰스님께서 마주하셨고, 소찬에 맑은 국수를 맛있게 드셨다. 오랫동안 늘 함께했던 도반인 듯 도란도란 말씀도 나누었다. 두 분 모두 환한 미소에 밝고 또 아름다우셨다. 그날 그 시간은 상락(常樂)에 아정(我淨)하였다. 

2011년 깊은 겨울날

무산 큰스님께서 가산 대종사님의 병상을 찾으셨다. 이별이 언제일지 모를 막막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음력 12월 9일 대종사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셨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가로수를 뽑던 날

무산 큰스님께서 강남 불교평론 편집실로 부르셨다. 가까이 처음 뵈었다. 가산 대종사님 열반 후 여덟 달, 연구원 대중 모두 슬픈 장막에 갇혀 있을 때였다. 연구원 살림을 물으셨다. 그리고 긴 시간 무산 큰스님의 인생 여정을 담담히 들려주셨다. 시간이 길어지자 일만 원권 지폐를 드문드문 주셨다. 어른 이야기 오래 들어주는 값이라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건네주신 하얀 봉투 가득 연구원 대중을 위한 격려의 선물이 있었다. 인연(因緣)이 심심(甚深)하다.

불교대백과사전 편찬 정진도량에 숨통이 트였고, 대중 모두는 힘을 내었다.

2016년 초여름 즈음에

무산 큰스님을 가산 대종사가 떠난 연구원 법인 대표 자리에 모셨다. 대중 모두 든든했다. 무산 큰스님은 그저 담담하셨다.

2017년 어느 날

병상에 계신 무산 큰스님을 찾아뵈었다. 뵈온 중에 그나마 밝고 유쾌하셨다. 그리고 ‘할 일 모두 하고 훌쩍 떠나버린 가산지관당이 무척 부럽다’고 하셨다. 가만히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후학(後學)은 무어라 해도 애통(哀痛)한 일입니다. 오래 세간에 머무셔야 합니다.” 하였다. 

선지식이 부재(不在)한 세월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일 뿐이다.

2018년 새해 아침  

무문관 정진에 방해될까 두려워하며, 서면으로 새해 문안 여쭈었다. ‘지금은 치골(癡骨)이 세상사에 흥심이 없어 금족(禁足)하고 있다.’ 하시며, ‘부디 대사림편찬불사 속히 회향하였으면’ 하셨다. 

참으로 송구하다. 고군분투하시다 열반에 드신 두 선지식(善知識)에게. 

2018년 음력 4월에  

마침내 우리를 떠나셨다. 설악에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큰스님께서는 불타는 옷을 벗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더 뜨겁고 두렵다.

2019년 다시 늘푸른 4월에 

무산(霧山) 대종사님! 가산(伽山) 대종사님! 두 분 모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두 분이 가끔 상면하던 그때는 이미 우리 종단의 지남(指南)으로 행보하시던 시절이었다. 많은 이야기도, 번다한 만남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자(獅子)를 탄 문수(文殊)인 듯, 코끼리 등 위의 보현(普賢)인 듯, 여의(如意)를 지니신 듯, 있는 그대로 모든 일을 서로 잘 아시는 듯하였다. 

2012년 가산 대종사께서 먼저 열반에 드셨고, 무산 대종사께서는 무심한 듯 담대하게 연구원 도량을 보살피기 시작하셨다. 특별한 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큰 사랑이셨다.     

두 선지식이 동행하신 길, 부주열반(不住涅槃)의 대비대행(大悲大行)을 회상해 본다.

법의(法衣)는 이미 불타는 세간(世間)의 화염(火焰)으로 뜨거웠고, 포단(蒲團) 위 사위의(四威儀) 또한 중생들의 눈물로 요동치는 위태로운 파도(波濤)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뜨거운 불꽃 한 숨이 높은 파도 끝 푸르디푸른 날에 스치며 백련(白蓮)으로 피어나듯, 열반 즈음에 서로를 알아보셨다. 선지식의 행로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두 선지식 간에 오간 그 심연(深淵) 또한 가늠할 길이 없다.

우리 모두 두 선지식을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다. 

 dhat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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