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해 본지 경영부주간

내가 소년 시절이었을 때 우리 마을 뒷산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나가기 시작할 때부터 대들보가 될 만한 나무는 대들보로 베어져 나가고, 기둥이 될 만한 나무는 기둥으로 베어져 나가고, 서까래가 될 만한 나무는 서까래로 베어져 나갔으며, 잡목이나 작은 나무는 땔감으로 베어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뒷산에는 여기 저기 쓸모없고 볼품없는 나무들만이 남게 되었고, 조상님의 묘소가 있는 산등성이에는 등 굽은 소나무 한 그루가 덩그렇게 남아서 선산을 지키게 된 것이다. 마치 여러 자식이 있지만 총명하고 재주 있는 자식은 다 서울로 부산으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나고, 지질이도 못난 자식이 조상님의 기제사를 다 받들면서 부모 곁을 지키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맏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공부시켜 놓으면 동생이 그랬고, 동생들을 공부시켜 놓으면 맏형이 그랬다.

진여화는 우리 절 총무다. 여러 형제자매가 있지만 팔십 노부모는 혼자서 생활을 한다. 나이 많은 노인들은 알 수가 없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다급한 일이 생기면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할 일도 있다. 그렇지만 다 서울로 부산으로 각각 자기 일이 바쁜지라 부모 곁에는 있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 밑에 차가 7대나 되는데, 쓸데 있는 차는 한 대도 없다.”

요즈음에는 어지간하면 한 집에 두서너 대의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 부모 밑에 딸린 4남매 부부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 대수를 합하면 전부 7대나 되지만, 직장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부모님이 다급 할 때, 혹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차는 한 대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네가 조금 도움을 주는 구나!”

진여화는 승용차도 있고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는 편이다. 또한 부모님과는 같은 동네 멀지 않는 곳에 살고 있으므로 다른 자식들보다 쉽게 부모님들을 도울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의 고마움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못난 딸이 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맏아들을 그리워하고 떠나있는 자식을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그럴 때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진여화는 참는다. 못난 자식 의지해서 살지만 잘난 자식을 자랑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모습인가?

달포 전에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강릉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타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바쁜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 내 자리에 앉았다. 심야버스는 언제나 만원이다. 바쁜 일을 마치고 늦게 내려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뜻일 것이다. 스스로 80세라고 소개한 정숙하고 깔끔한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할머니는 주변의 승객들이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아들은 치과 의사인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 집안의 큰 행사에 참석했다가 강릉 집에는 오지 못하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래서 나 혼자 강릉으로 가게 되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훌륭하게 자라고 잘 되어 있는 자식을 여러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일상의 왕래에서도 노인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집안 행사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부대끼고 난 다음에 있어서랴! 할머니가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멀미를 하기 시작하였고, 숨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였다. 옆 자리에 앉았던 젊은 아주머니가 등을 두드려 주고 가슴을 어루만져 주면서 뒷바라지를 하고 위로의 말을 하였다. 그때마다 자기 몸도 못 가누는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아들은 치과 의사인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 집안 행사에 참석했다가 곧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결국 구토를 하였고, 주변 사람들은 할머니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온갖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다. 실로 극진한 보살핌이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에 대한 고마움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려움을 보살펴주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오직 아들 자랑뿐이었다.

“우리 아들은 치과 의사인데, 지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강릉까지 오는 동안 수십 번 똑 같은 말은 반복하였다. 마음속에는 훌륭하게 키운 잘난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였다. 얼마나 대견할까! 어디에다 견줄 수 있을까!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이다. 그런 까닭에 그 할머니도 아들의 성공에 의지해서 자기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측은하고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어렵고 힘들어 할 때 그 잘난 자식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치과 의사라 할지라도, 국회의원 장관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자식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과 같이 바쁜 시대에서는 부모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 자식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게 되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않는 것 같다. 못난 자식이든 잘난 자식이든 부모 곁에서는 함께 살 수가 없는 세월이고, 부모를 보살필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가난했던 지난날을 생각한다면 오늘날은 천지개벽의 시대이다. 풍요의 시대이고 편리함의 시대이다. 왕이라 해도 오늘날의 풍요와 편리함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시대이다. 그 풍요와 편리함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만족과 행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오히려 고통과 괴로움의 연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 누군가가 부모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럴 사람이 없다.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자식이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등 굽은 소나무가 있었으므로 선산은 허전하지 않았고, 못난 자식이 옆에서 지켜주었으므로 부모는 행복해 할 수 있었다. 시절인연인가? 몇 년 전 우리 절 앞에 있는 수십만 평의 산림을 벌목하였는데,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소나무든 잡목이든 가리지 않고 남김없이 다 베어 나가고, 선산 주변에는 등 굽은 소나무는커녕 텅텅 비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등 굽은 소나무도 선산을 지켜주지 않고, 못난 자식도 부모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 곁에 있어 줄 자식을 아예 기대하지도 말아야 하는 시대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부모님의 마음에 여유와 평안이 깃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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