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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78호] 2019년 06월 01일 (토) 이경철 시인 ·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나요. 어, 어이……왜, 안 오요. 백담사는 눈에 파묻혀 있는데…… 천지가 하얀데…….” 

한 천년이 또 한 천년으로 넘어가며 묘한 설렘과 불안에 휩싸여가던 연말, 출근해 일을 시작하려던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로도 먼 소리인데 펄펄 눈 내리는 소리, 쌓인 눈에 나뭇가지 뚝, 뚝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무렵 신흥사, 낙산사 등 설악산과 해안에 있는 절과 암자를 총괄하는 회주이던 오현 스님은 암자와 다름없던 설악산 속의 백담사에 주석하고 있었다. 세상을 위해 뭔 일을 펼치러 그 깊은 산 속에 들어가신 걸까, 오는 눈발에 산새 길도 끊긴 백담사에 올라갔다.

그때 “만해 장사를 할 거야.”라는 말도 들었던가. 스님은 백담사를 손수 중건하시며 전국의 문인들을 그 깊은 산 속으로 불러 모아 애드벌룬도 하늘 높이 띄워놓고 만해축전을 벌였다.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백담사 아래 교통 좋은 곳에 직접 풀도 뽑고 돌도 걷어내 가며 만해마을을 조성해 문인들에게 집필공간도 마련해줬다.

 

스님은 2001년 봄 《유심(惟心)》을 시전문지로 복간했다. 《유심》은 1918년 9월 1일 만해가 창간해 그해 12월 1일 3호까지 냈던 잡지. 《유심》을 복간해 몇 호 내고 나서 내게 물으셨다. ‘유심을 들춰 보니까 어떻더냐’고. 이물 없이 묻는 말에 여느 때와 같이 이물 없이 말씀드렸다. ‘원고료 수준으로 단연 최고이고, 해서 최고의 시인 필자들이 모인 최고의 잡지다. 그런데 필명으로 보아 한참 못 미치는 필자들이 눈에 너무 많이 띄는 것 같다’라고. 

“야, 모르는 소리 마라. 그런 시인들 우리 유심에 실어주지 않으면 어디에 싣겠느냐. 유명 무명 다 실어줘야지. 꽃밭에는 이름난 꽃들만 피는 게 아니라 이름 있건 없건 피어나서 더 예쁜 게 꽃밭이야.” 

아, 스님의 그 말씀에 나는 얼마나 작고 부끄러웠던지. 

《유심》은 복간 무렵 상당한 원고료를 줬다. 시 한 편 싣고 상상을 넘는 고료를 받은 한 가난한 시인은 ‘무슨 큰 상금을 받는 줄 알았다. 시 한 편으로 가장 정갈하게 대접받는 것 같았다’며 오랜만에 가난한 시인의 긍지와 보람을 말했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스님의 시 〈부처-무자화(無字話) 6〉다. 말 없는 이야기,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말의 길 끊겨야 닿을 수 있다는 참진 세상이라는데도 이 시를 보면 나는 강물도 없이 범람하는 강, 다 건네주고 나서 그 마지막에 뗏목다리마저 떠내려 보내는 부처, 통 큰 생불(生佛)로서 시인을 떠올렸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이라며 당신이 아무리 나를 짓밟아도 기꺼이 험한 세파 건네는 나룻배 되어주겠다고 나선 스님이 만해. 그런 만해를 업고 세상을 건네주는 뗏목다리를 놓아주고도 결코 앞에 나서거나 말하지 않는 무자화 부처님이 스님이었다. 

절집은 물론 우리 사회 큰 어른으로, 또 남들도 다들 그리 부르니까 스님을 나도 ‘큰스님’이라 부르다, 한번은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너는 다 좋은 데 ‘큰스님’이라 부르는 것은 싫다. 다 버리려고 사는 중들한테 무슨 큰 중 작은 중 계급이 있겠느냐.”며 정색하고 호통을 쳤다. 아, 그러나 세상 계급 없다는 스님한테는 항상 서열이 있다. 당신은 항상 마지막이고 남들을 맨 앞에 생각하는.

 

스님을 처음 뵌 건 1980년대 말 인사동 골목 한 음식점. 스물 남짓의 시인들이 조촐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놓고 시조의 현실참여와 현대화를 응원하기 위해 조그마한 상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남루하기 짝이 없는 한 스님이 합석했다. 한마디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만 계셨다. 

자리가 파할 때 스님이 여비를 나눠줬다. 적잖은 액수였다. 곱하기 스무 명 해보니 그 돈이면 상 제정 추진비로는 넉넉할 거 같아 좌장 격인 시인에게 그리하자며 도로 주려 하니 “냅둬라.”는 스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그런 기세에 눌린 시인도 차비니 그냥 집어넣으라 했다. 대체 저 스님이 누구냐 물으니 신화처럼 들어왔던 그 ‘낙승(落僧)’ 시인이셨다.

그렇게 스님께 난 처음부터 30년간 줄곧 호통과 욕만 먹어왔다. 그런데 지난해 5월 30일 신흥사에서 스님 만장을 들고 나온 아침부터 건봉사에서 다비식을 끝낸 밤까지 어찌 그리 눈물이 앞을 가리던지. 뼈까지 다 타 들어가 재가 돼 광막한 어둠 속으로 날아가 원적하시는 걸 보며 어찌 그리 눈물이 범람하던지…….

 

며칠 장대비 쏟아낸 비의 신 쁘라삐룬

먹구름 회오리 동공 속에 드러나는 휑한 하늘

불어난 강물에 잠긴 징검다리 팔랑팔랑 건너는

물잠자리 날개에 촘촘히 맺히는 햇살

 

백척간두 태풍의 눈깔 속 잠깐의 고요… 훤히 눈 뜨는 세상

 

봄꽃 이울고 짙푸른 녹음마저 타들어가던 불볕가뭄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살도 뼈도 마디마디 다 사르고

저 고요 속으로 떠난 그 사람

먹구름 장대비 눈물 그리 범람케 하더니만,

 

스님이 원적하신 걸 보고 돌아온 얼마 후 불어 닥친 태풍 쁘라삐룬도 못내 슬퍼 장대비로 울고 있는 것 같아 써본 졸시 〈태풍의 눈깔〉이다. 

내 깐엔 그렇게라도 울고 스님이 중창한 북악산 자락 흥천사가 우리 서울 집 지척에 있어 이른 아침마다 가보곤 한다. 목탁일랑 꼬리에 달아놓고 호랑이를 타고 웃으며 시공(時空)을 달리는 바깥벽 탱화 속 스님 한 분, 영락없는 우리 오현 스님이시다.                 abkc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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