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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내리는 아침, 폭설처럼 흰 꽃이 내려앉은 이팝나무를 발견했다. 거실 창가에 앉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려고 할 때였다. 한참 동안 홀린 듯이 바라보던 나는 흰쌀밥이 귀하던 시절의 조상들이라면 가히 먹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었겠단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게에 겨워 가지를 늘어뜨린 이팝나무의 하얀 꽃은 나에게는 밥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에 쓸어 담아 눈사람이라도 만들고 싶은 놀이 충동을 불러왔다. 유난히 꽃이 풍성한 이팝나무 밑에는 밤새 세워둔 내 승용차가 있다. 검은색 상판 위로 작고 하얀 꽃이 수없이 떨어져 첫눈처럼 얇게 덮여 있다. 부드러운 술라웨시 커피는 은은한 꽃냄새를 잔향으로 남기며 입 안 가득 퍼졌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잊었던 루신의 책 제목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함초롬 이슬 머금어 생생하게 피어난 꽃을 지켜보며 오래 기다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이던가.

기억 속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아침 꽃을 떠올려 보았다. 상고머리 시절의 어린 나. 미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선다. 전날 저녁에 그어놓은 비질의 흔적이 곱게 남아 있는 마당에 나는 제일 먼저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당을 가로지른 자전거 바퀴 자국을 발견하고 만다. 바퀴 자국은 서리꽃처럼 섬세하게 피어 있다. 읍내 농협 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벌써 출근을 한 모양이다. 나는 철제 대문 옆 자그마한 화단으로 다가가 머리를 깊이 숙여 땅을 들여다본다. 작약의 순이 돋아나고 있다. 가을에 아버지가 구해 온 구근을 내가 직접 심은 작약은 며칠 전만 해도 굵은 고사리처럼 올라왔는데 이제는 아기 손바닥처럼 잎을 펼치고 있다. 나는 노랑과 초록, 그리고 한 방울의 밤색 물감을 섞어야 나오는 연둣빛 싹을 아기 돌보듯이 아낀다. 손가락을 대보니 촉촉하고 연약한 줄기가 아기 살결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나는 작약을 떠올려 보았지만, 사실 분홍빛 그 꽃을 주워본 적은 없다. 돌려 잡은 새색시 붉은 치마처럼 고혹적으로 피어났다가 화끈하게 붉은 자락을 떨어뜨리는 꽃이기 때문이다.

내가 꽃을 주운 것은 대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리 없이 서 있는 벽오동 꽃이었다. 보랏빛 그 꽃은 통꽃으로 떨어져 오랫동안 마당 위에서 뒹굴었다. 호기심에 주워들어 코끝에 대어 보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향기가 진했다. 영혼마저 흔들리게 하는 혼돈의 향기. 나는 어떻게 그 에로스적 감각을 알게 된 걸까. 루신의 수필집 내용은 기억하진 못한다. 다만 그 제목만이 수풀 속에 있던 오래된 팻말처럼 아침 산책길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새벽에 자전거 발자국을 남긴 채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고로 생을 다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나는 일찌감치 성인이 되었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까 봐 속으로 떠는 여자가 되었다.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졸업과 동시에 혼인했다. 곧바로 건강한 아들도 순산했다. 내 인생은 평탄했다. 남편은 억울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승진했고, 아들은 부끄럽지 않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도 졸업했다. 누군가 행복한 인생이었냐고 물으면, 하루하루는 힘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 편이라고 말할 정도다. 오늘 나의 하루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 어떤 식으로든 힘들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들의 방을 흘깃 쳐다본다. 늦잠을 자는 걸 보니 오늘은 아르바이트 일이 없나 보다.

‘창밖의 이팝나무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는 행복한 나무야, 할까. 아니면 이 꽃들을 언제 열매로 키워내나, 하며 걱정할까.’ 갑자기 드는 생각이 엉뚱했다.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뉴스를 검색했다. 다음 순간, 팔과 목덜미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돋았다. 1972년생인 그(혹은 그것)가 돌아온다. ‘1972년에 발사되었지만 지구 궤도를 벗어나는 데 실패했던 옛 소련의 금성 탐사선 ‘코스모스 482호’가 오늘 오후에 지구로 추락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기사는 마치 72년생인 나에게 꽃을 주울 때가 되었다는, 이제는 마당에서 나뒹구는 꽃의 고독한 시취를 맡으라는 저녁 종소리처럼 들렸다.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우주 잔해물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에어로스페이스 코퍼레이션과 미 우주군에 의하면 대략 오후 3시경으로 예상된다 한다.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려나. 나는 벽걸이 시계를 흘깃 본다. 오전 9시 25분. 아들의 방문을 다시 살펴본다.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오늘도 늦잠을 자려나.

‘53년 만에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착륙선 ‘코스모스 482호’의 무게는 495킬로그램. 크기는 1미터. 금성 대기권 진입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본체가 다 타지 않고 지표면에 도달할 수 있다.’ 비슷한 착륙선이라는 베네라 8호의 자료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흰색 캡스 경보기를 떼어내 거꾸로 들고 보는 것처럼 생겼다. 1972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발사된 그(그것)는 엔진 오작동으로 인해 금성 궤도에 머무르고 말았는데, 우주선은 네 조각으로 분리돼 일부는 48시간 후 분해됐고, 착륙선은 더 높은 타원형 궤도로 상승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고도가 조금씩 낮아졌다.

53세가 된 금성 탐사선이 대기권에 진입하면 대기권의 저항을 받아 최종 240킬로미터로 충돌할 것이라 했다. 금성으로 진입할 때 사용할 낙하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작동하지 않을 거라 했다. 500킬로그램의 자동차가 떨어지는 충격이라니!

결국 기자는 ‘첨벙, 쿵, 비명 중 하나’가 될 거라는 표현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그(그것)’가 바다나 사막에 떨어지길 바라지만 어쩌면 인간이 사는 지역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건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으로 가득한 흐린 하늘에서 커다란 자동차가 떨어지는 모습이 순간 눈앞에 펼쳐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눈꺼풀 안쪽으로 수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폭설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심장이 뛰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중절모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하늘에서 우산을 쓰고 내려오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골콩드’처럼 허겁지겁 자동차에 우산 하나씩을 달아주었다. 그제야 호흡이 가라앉고 손끝이 경련을 멈추었다.

‘이 기사를 어떻게든 아들이 보지 않게 해야 해.’ 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아들에겐 꼭 숨기고 싶은 소식이었다. 아들 방을 다시 확인했다. 아직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자는 게 분명했다.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끝에 놓인 액자 속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난해 여름에 찍은 사진 속의 아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두 눈은 먼 곳을 향해 있는데 그 시선이 닿은 곳이 어디인지 나는 짐작으로 알 수 있다. 옆에는 늑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늑대 역시 고개를 높이 치켜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때 늑대 동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데서 평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아들과 늑대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눈에 띄어 사진에 담은 것이다. 몽골의 한없이 넓고 푸르른 하늘……

 

 

사진을 한참 보고 있으니 몽골에서 보낸 시간이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 한여름의 몽골 여행은 우연한 결과일 뿐이었다.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우리 가족은 너무도 지쳐 있었다. 더위를 핑계 삼아 각자 짜증을 부려댔고, 급기야 아들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음이 먼저 아프기 시작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우리는 일상에서 탈출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도 저도 보기 싫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몽골행 패키지여행 상품을 신청했다. 왜 하필 몽골이었을까? 돌이켜보니 북쪽이니까 좀 시원할 테고, 유목민이 사는 초원의 땅이니까 눈은 더 시원하겠지, 하는 단순한 이유였다. 아들은 그저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다. 소득 수준이 낮은 북쪽 나라에 대한 얕보기가 작동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막상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서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공항 면세점에서 상품을 사는 재미에 대한 기대일 뿐이었다. 휴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남편은 결국 동행하지 못했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공항에 내렸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배가 고팠으나 여행사에 갇힌 수인처럼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기에 아무 곳이나 들어가 먹을 것을 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작은 버스는 열댓 명의 일행이 타자 남는 좌석이 없었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맨 뒤에 앉은 아들이 등 뒤쪽에 쌓인 가방들이 찌그럭대는 소리를 참다가 이윽고 “아, 시끄러워!”라고 투덜댔다. 내가 “이게 바로 이 여행을 선택한 이유라고 생각해. 야생의 오프로드 체험.”이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테렐지 국립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드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푸르른 대지 위에서 염소와 양, 말과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다. “몽골은 한국보다 열다섯 배 큰 영토에 인구는 330만 정도만 삽니다. 몽골 국민에게는 일정 규모의 땅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서 유목 생활을 하든, 아니면 남에게 팔든 그건 자유예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수십 년간 죽어라 일하고 알뜰하게 절약해 겨우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 내 입장에서는 저 넓은 땅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일행 중 누군가 땅값을 물었더니, 한국 돈으로 치면 아주 싼 금액이라 했다. 갑자기 아름답게만 보이던 대초원이 사들이고 싶은 부동산으로 보였다.

“뭐야, 낙타를 탈 수 있다더니, 낙타는 어디에도 없잖아!” 아들이 또다시 투덜거렸다. 그러고 보니 낙타가 보이지 않았다.

“낙타는 고비사막 근처로 가야 있나 봐.”

나는 아들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겨우 아들을 설득해 데려온 여행이었다. 하긴 친모와 여행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친구들을 모아 여행할 주변머리도 없었다. 아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대학을 다녀서인지 유독 친구가 없었다. 아들의 대학 생활에는 신입생 환영회와 오리엔테이션, 엠티와 축제도 없었다. 심지어 강의도 대부분 동영상으로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선후배는 물론이고 학과 동기생들끼리도 서로 알지 못했다. ‘도대체 아들 친구라던 녀석들은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걔들도 혼자 노는 생활에 익숙해졌나?’ 때로는 더럭 겁이 나곤 했다. ‘저러다가 히키코모리가 되어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는 게 아닐까?’

초원 위에는 하얗고 둥근 유목민 전통가옥 ‘게르’가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었다. 성인 두세 명이 한 시간 이내에 조립할 수 있고 30분 이내에 분해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달팽이처럼 제 집을 싣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였던가. 남편과 함께 텐트를 마련해 소백산 계곡으로 야영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빠와 함께 텐트 치는 일을 해냈다. 대견해 보였다. 하지만 한밤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열어 놓은 창으로 비가 들이쳤다. 이불과 가재도구들이 다 젖어 날이 새기만 기다리면서 추위에 벌벌 떨었다. 그 뒤로 다시는 아무도 야영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아니다. 그 때문이 아니다. 그 뒤로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고, 사교육에 내몰렸고, 치열한 입시경쟁에 뛰어든 뒤로 온전한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 기껏해야 호텔에서 1박2일 휴가를 보내거나 그도 아니면 당일치기로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게 다였다.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악악, 비명을 지르다가 내려오는 것. 기구에서 내려 한숨을 깊이 내쉬며 지루한 일상이 롤러코스터 타는 인생보다는 나을 거라고 믿는 것. 그러니 안전하게 살려면 좋은 대학 인기 학과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 아이는 바쁘게 학교와 학원을 오갔고, 나와 남편 역시 비싼 사교육비를 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그나마 즐겨 온 짧은 여행마저 점점 더 줄어, 주말에 1박2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 웃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언제 도착해요?” 앞자리에 앉은 일행 중 누군가가 물었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쯤 더 가야 해요. 퇴근 시간대라 더 늦어질 수도 있고요. 도로 사정이 나빠서 막히면 언제 풀릴지 모르거든요.”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요?”

“글쎄요. 이곳 사람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요. 일을 서두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도착 시간을 묻지 않는 편이지요. 대략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뒤에는 도착할 것 같긴 해요.”

“아이고, 속 터져.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면 두 배 차이 나는 건데.”

일행들 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빗방울이 후드득, 창문을 두드렸다. 버스가 높은 언덕을 오를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어 언덕 아래로 향해 내려가는 내내 경사가 심한 흙길이 이어졌다. 모두 입을 다문 채 버스 움직임에 집중했다. 안전한 지대에 도착해서야 안내자가 입을 열었다. “요즘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원래 몽골은 여름에도 건조한 날씨인데, 이상기온 탓인지 며칠간 비가 내려서 언덕길이 아주 위험해졌답니다. 더 이상 이런 코스는 없을 겁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푸른 초원 위에 가득한 하얀 양 떼가 보였다. 그 틈에 염소와 말, 누렁소가 점점이 흩어져 풀을 뜯었다. 안내자가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유목민은 시력이 5.0 가까이 된답니다. 그래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동물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는데, 주인이 동물의 신체에 자기만의 색과 모양의 표식을 남겨 구별하는 겁니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눈이 썩 좋지 않아요.”

끝없이 이어진 초록 들판과 먼 산을 바라보자니 긴장했던 눈 근육이 저절로 이완되었다. 아들의 표정도 아까보다 편안해 보였다.

아들이 처음 눈이 아프다고 호소한 건 버드나무 꽃가루가 날릴 무렵부터였다. 겨우내 제 방에서 겨울잠 자는 곰처럼 지내던 끝이었다. 오랫동안 아들은 밤늦도록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보며 놀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드는, 그래서 해가 중천에 떠오르다 못해 점심때가 다 되어서 겨우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눈부신 아침햇살을 보는 것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었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도 한동안 제 방에 머물며 전날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보았던 미디어콘텐츠를 이어보거나 게임의 다음 단계를 달성하려고 열을 올렸다. 전쟁터에서나 들릴 법한 거칠고 요란한 파열음이 아들 방 문틈에서 새어 나올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거칠게 뛰었고, 초조함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그만 좀 멈추고 나가라고 닦달해야 겨우 밖에 나갔다. 오후 늦게 아들이 겨우 근린공원에 다녀오면 그제야 나도 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밖에 나갔던 아들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집안에 들어오더니, 자기 방에서 고함을 지르며 신음했다. 깜짝 놀란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방문 안쪽으로부터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며 재차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 봐, 제발!”

방문 앞에서 한참을 호소한 끝에 아들이 문을 열었다. 침대에 무참히 쓰러져 있던 아들은 휴지로 눈물, 콧물을 닦아낸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엄마, 어떡하지? 나 큰 병에 걸린 것 같아. 눈앞에 자꾸 이상한 게 보여. 하얀 점 같은 게 보여.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비주얼 스노우’라는 병이래. 신종 희귀병이라 안과에 가도 의사들이 잘 모른대. 치료법도 없어서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한대. 어떡하지? 평생 이러고 어떻게 살아?”

“일단 안과부터 가자. 의사들이 모르는 병이 있다는 게 좀 이상하구나. 안 되면 큰 대학병원이라도 가지, 뭐.”

“소용없어요. 아주 희귀한 병이라서 의사들도 잘 모른대.”

“그렇게 희귀한 병이 있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알아냈어? 그게 더 이상하구나.”

“며칠 전부터 눈이 불편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겨우 찾았어요. 암튼 희귀병인데, 이것 때문에 실명이 오진 않지만, 고칠 수도 없대. 아, 이제 어쩌면 좋아.”

“그래도 병원에 한번 가 보고 생각해 보자. 응?”

“좀 전에 이미 다녀왔어요. 의사 말이 망막도 깨끗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대. 난 이 하얀 점 때문에 불편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런 소리를 하잖아.”

나는 어이가 없다 못해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아들에게 중상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눈앞에서 매일 눈이 내려. 햇볕이 쨍쨍 쬐는 날에도 늘 폭설이 내린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속상하겠나.”

“그럼, 지금 나를 좀 봐. 엄마 얼굴에도 흰 눈이 쏟아져? 이 집안에 눈이 쏟아져?”

“아니, 여기선 안 그래. 집에서는 괜찮은데, 밖에만 나가면 그래. 옆집 지붕 위로도, 치킨집 간판 위로도, 늘어선 차량 위로도 쏟아져. 심지어 천변 공원에도 하얀 눈송이 같은 게 내려.”

‘이런 해괴한 일이 있나.’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버드나무 솜털이 날리는 걸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올봄에는 강변에 작은 하루살이가 유난히 많이 생겼다던데 혹시 그걸 본 게 아닐까. 아, 그게 아니면 어쩌지? 이를 어쩌면 좋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들이 신경쇠약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마음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침착해야 해. 침착해야 해.”라고 같은 말을 혼자 되뇌며 온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7월의 몽골 낮 기온은 24도로 적당했지만, 햇살이 매우 강했다.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이 내렸다. 밤이 되니 밤바람이 차가웠다. 겨울에는 영하 20~30도 내외의 추위가 찾아오고, 북서쪽 지역은 영하 40~50도까지도 떨어진다는 말에 실감이 갔다.

밤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원래는 밤하늘의 별을 보러 가기로 된 날이었지만 저녁 이후로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해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숙소에 마련된 텔레비전을 켰다가 꺼버리고 다시 멀뚱히 천막집 천장을 바라보는데 아들이 또다시 낙타 타령을 했다.

“누군가 말과 낙타를 경주시켰대. 176킬로미터 장거리를 달렸는데 말이 낙타를 가까스로 이겼어. 다음 날 경주에서 이긴 말은 죽어버렸지. 낙타는 살아서 천천히 숨을 쉬며 사막을 걸었는데 말이야.” 나는 뜨끔했다. 아들 석현은 바란 대로 유명 대학, 인기 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학업에 열중하지 못했다. 제 방에 굴을 파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운동조차 멀리해 체력도 약해졌다.

“말도 멋있는데 왜 꼭 낙타를 보고 싶어?”

“난 언제나 자신을 사막의 낙타라고 여겨왔거든. 거센 사막의 바람도 뜨거운 태양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길의 끝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오아시스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없었어. 등에 키워 놓은 혹이 점점 작아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낙타가 아니라고 여겨졌어. 혹 없는 낙타가 어디 있어? 난 다시 낙타가 되기 위해 메마른 먹이를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등에 지방이 다시 차오를 테지. 몸에도 다리에도 힘이 차오르겠지. 하지만 그다음에는 또다시 사막을 건너는 고통이 되풀이될 테지. 그러느니 차라리 낙타 되기를 포기하기로 했어. 난 낙타였지만 이제는 아니야. 그래서 아직 낙타로 살아가는 그놈을 만나보고 싶어졌어. 그놈을 위로해 주고 싶어졌어. 아니, 그놈에게 속삭여 주고 싶어졌어. 이 바보야, 더 이상 낙타로 살지 마.”

“그럼, 그 낙타는 어떻게 살아가니? 낙타가 낙타가 아니면 그대로 버려져 제 목숨마저 위험해질 텐데?”

“바로 그거야. 주인이 포기한 낙타는 사막에 버려지겠지? 그럼, 그때부터 그 낙타는 자기 삶을 살게 될 거야. 야생 낙타가 되어, 이리저리 헤맬지언정 주인의 노예가 되어 의미 없는 사막 횡단을 중단될 테지. 안 그래?”

“미안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사람들은 낙타 고기를 좋아해. 낙타 가죽도 요긴하게 쓸 줄 알지. 심지어 낙타 눈깔은 남성들에게 인기 좋은 상품으로 팔리지.”

아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인간은 정말 너무 잔인해. 이젠 야생 낙타가 되는 꿈마저 포기해야 한단 말이야?”

아들이 신음을 토해내듯 말했다. 낙타의 크고 괴이한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소와 양의 울음소리가 섞인 듯 들린다는 그 소리를 ‘저주의 절규’라고 한다던가. 그래서 영화에서 괴물의 포효 소리를 만들 때는 낙타 울음소리를 섞는다던가. 저녁 내내 사막의 모래 위를 걷는 외로운 낙타가 눈앞에서 서성거렸다.

 

 

“내 전화기 어디로 갔지?”

아들이 제 방에서 뛰쳐나오며 외쳤다. 아주 큰 일이 발생한 것처럼. 요즘 사람들에게 전화기는 생명줄처럼 소중한 필수품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순간도 전화기 없이 살지 못하는 중독증 앞에서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짐짓 태연한 양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아들과 늑대가 대면했던 아주 특별한 하늘을 탐사선 잔해가 종잇장 찢듯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우당탕 추락할 것 같아 또다시 눈앞이 아찔했다.

“어딘가에 있겠지. 천천히 찾아보고 이리 와서 아침이나 먹자. 너 좋아하는 달걀 토스트야.”

“아침부터 웬 토스트? 아침엔 기름진 밀가루 음식 먹지 말라더니.”

“그냥, 심심해서.”

아들이 토스트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다시 말을 붙였다.

“우리 점심에는 외식이라도 할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 하나 생겼더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있지?”

아들이 달력을 훔쳐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떡하지? 어버이날 선물…… 못 샀네.”

“괜찮아.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 넌 나랑 백화점에 들러 선물을 사 줘. 아빠 것도 준비했다가 저녁에 퇴근하시면 드리자.”

나는 아주 침착하게,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대사를 읊었다. 아들은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재빨리 속으로 계산했다. 점심 식사 후 곧장 선물을 사러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보면 오후 3시는 넘길 수 있을 거야. 아들은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가 외출 준비를 하려면 앞으로도 한참은 기다려야 한다. 이팝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아들의 사진을 보는 동안 내 의식은 다시 지난해 여름의 몽골로 이동한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이제, 그만 가자!” 나는 아들에게 소리쳤다. “으음” 하고 스물여덟 다 큰 아들이 침대에 누운 채 겨우 답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때도 아들은 제 방을 놔두고 내 침대에서 자곤 했는데 등교 준비는 언제나 순탄치 못했다. 아이를 여러 차례 불러대거나 소리를 버럭 질러야 했다. 책가방을 챙기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가방은 언제나 전날 밤에 챙겨 놓아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그건 번번이 실천되지 않는 항목 중의 하나였다. 당시 내가 직장에서 퇴근해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일곱 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거의 아홉 시가 넘었다. 아이는 그제야 밀린 학원 숙제를 시작했고, 바짝 대들어서 하면 금방 끝낼 분량인데도 질질 끌다가 눈을 비비며 침대로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아침 전쟁을 하고 저녁 씨름을 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렀고 아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군 복무와 대학 과정까지 마친 상태다. 이십 년 전에 꿈꾸었던 미래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대학만 가면 좋겠다, 군대만 무사히 다녀오면 된다, 대학 졸업 때까지 등록금 대줄 형편만 유지되기를, 하면서 바랐으니 얼추 다 이룬 거다. 이제 남은 건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하길 바라는 소원 하나, 그뿐이었다.

‘그다음에는 이제 손을 완전히 뗄 거야. 알아서 살라고 해야지.’ 그렇게 결심한 지가 벌써 몇 년째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한 그 고비에서 아들은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무기력증.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부른다.

사실 나는 아들의 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느라 자정 넘어서까지 버티다가 새벽에야 겨우 눈을 붙이는 생활 방식이 몹시 못마땅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아침에 못 일어나고, 출근 시간이 이른 직장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인데도 언제나 세상 탓만 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수없이 그 원인을 헤아려 봤으나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들의 무기력증이 오래되면서, 종일 제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다른 증상까지 불러왔다. 운동 부족과 비만.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로 인해 자신의 심신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필 그것을 심각한 병과 연관 짓고, 그걸 고민하느라 절망적으로 신음하는 데에는 부모로서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봄철 내내 눈의 이상증세를 호소한 것도 그런 현상의 일환이었다.

“오늘은 산으로 갈 거야.” 등산화를 꺼내며 아이에게 한 번 더 확인시켰다. “등산화로 갈아 신어야 해. 알았지?” 꼭 그런 것까지 챙겨줘야 하나, 싶으면서도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으음” 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게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밖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초록빛 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졌고 초원 끄트머리에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 있었다. 강 너머 높이 솟은 산등성이 뒤에는 높은 산이 겹겹이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오니 속이 다 후련해졌다. 공기도 더없이 신선했다. 달콤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젯밤에 같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여행사 일행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침 식사 전에 가방을 버스에 두려는 모양인지 모두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나왔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이었다. 언제나 전체 일정에 쫓겨 허겁지겁 움직여야 하는 상황. 짧은 환희의 순간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게르의 문짝을 열어 안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짐 싸고 나와. 모두 이미 움직이고 있다!” 아들은 그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아침 먹으러 간다.” 그러면서도 막상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먼 산의 사면은 깎아지른 듯이 경사가 깊었는데 산의 남동 면은 민둥산처럼 보이는 데 반해, 북사면은 훤칠한 침엽수가 촘촘히 심겨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방향으로는 나무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들은 모자 달린 웃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왔다. 짐을 싸기는커녕, 외출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였다. 밥이라도 먹으러 나온 게 어디냐, 생각하며 말없이 레스토랑 쪽으로 걸어갔다. “내 참, 이게 무슨 게르야. 온돌에다 수세식 화장실 달린 게르도 있나?”

아들이 비아냥거렸다. 깔끔하고 따뜻해서 만족한 숙소가 아들에겐 못마땅했나 보았다.

“말똥 타는 연기와 털가죽 냄새가 나는 진짜 유목민의 천막집이라도 기대했니? 막상 그런 곳에 갔더라면 코를 감싼 채 밤새 뒤척였을걸?”

간단한 아침 식사 후, 겨우 챙겨 들고나온 여행 가방을 운전사에게 맡기고 버스에 오르자마자 아들은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하는 눈치였다. ‘지난밤에도 습관대로 늦게 잤을 테니 고단하겠지.’ 나는 입을 삐죽거렸다. “자, 다 타신 것 같으니 이제 출발합니다.” 여행 안내원의 신호에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름 그림자가 초원 위를 지나가는 게 보였다. 거대한 괴조의 움직임처럼 섬뜩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언제 어디서고 닥쳤다. 졸인 설탕물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휴양지에는 숲과 계곡, 초원과 기암괴석이 많았다. 거북 바위와 바위 동굴, 그리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리야발 사원에 들렀다. 영어와 몽골어로 쓰인 144개의 불경 표지판이 성전 가는 길옆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지만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었다. 사원은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언덕 위에 숨어 있었다. 108개의 계단과 절벽 위의 사원이 언뜻 코끼리 머리처럼 보인다더니 그럴듯했다. 108개의 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헉헉 찼다.

안내자가 사원 앞에서 몽골불교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몽골불교는 샤머니즘과 텡그리즘 토착신앙이 불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혼합되어 있다. 일부 티베트불교와 달리 육식을 허용하는 경향도 있는 걸 보면 고기가 흔하고 채소가 귀한 유목민의 환경이 계율에 반영된 것 같았다. 육식을 금하는 한국불교 역시 농경문화에 적합하게 적응한 결과일 터. 그러고 보면 세상사 절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사원 외부에는 문맹자들을 위해 몽골어로 호르뜨라고 불리는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는데, 호르뜨를 시계방향으로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 역시 낯선 문자를 모르는 문맹자답게 호르뜨를 돌리는 것으로 경전 읽기를 대신했다. ‘부디 아들이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호르뜨를 한참 돌리고 보니 우리 일행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사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문득, 몇 해 전에 실상사 도법 스님께서 법구경 이야기 한 구절을 들려주며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몸의 중심은 그때그때 아픈 곳입니다. 그물의 그물코처럼 공동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생각한다면, 고통받는 그를 돕기 위해 공동체도 함께할 겁니다.” 나는 그 말의 참뜻을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점심에는 목장으로 갔다. 주인이 직접 만든 ‘허르헉’이라며 안내자가 자랑스레 말했다. “허르헉은 먹기 좋게 썬 양고기에 감자, 당근을 뜨겁게 달군 차돌과 함께 솥에 넣어 익히는 요리인데,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남자가 만들어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이 ‘차강데이(몽골 유제품)’ 중에서 ‘타락(몽골식 요구르트)’과 ‘수테차(우유 넣은 차)’, 그리고 단단한 아롤(우유 과자)을 내왔다. 한쪽에서는 말린 말젖 가죽에 넣어 발효시켰다는 아이락(마유주)을 돌렸다. 맛을 보니 새콤한 맛이 나는 저알콜 음료였다. 이윽고 따끈한 허르헉이 나오자, 몇몇은 가방에서 몽골 맥주 ‘보르기오’와 보드카 ‘징가스’를 꺼내 음식과 함께 마셨다. 어린 양으로 요리해서인지 잡냄새도 없고 맛이 좋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몰려드는 파리 떼의 방해로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오후에 도착한 곳은 테렐지 국립공원이었다. 해발 2,664미터라 하지만 버스가 고지까지 올라와서 그런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언덕을 지나 산 정상에 오르는 내내 보이는 야생화가 유난히 고왔다. 정신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던데, 사진 찍기 바쁜 여행자도 마찬가지인가요?”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명언을 농담 삼아 건네며 빙긋 웃는 사람은 여행단 중 한 명이었다. 버스로 이동할 때 내 앞자리에 앉은 그는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부인하고 딸이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아, 제가 꽃에 홀려서 그만. 이 순간만은 슬픔을 잊고 있었네요.” 나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농부가 말했다. “난 꽃보다는 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사과 농장을 오랫동안 운영해 왔거든요. 전에는 사과꽃이 만발하면 귀찮을 정도로 많은 벌이 여기저기서 붕붕 날아다녔지요. 하지만 요즘엔 세상 귀한 게 꿀벌이에요. 그놈들이 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모두 여기에 와 있군요. 허허.” 

그제야 나도 벌과 나비가 유난히 많이 날아다니는 걸 알아챘다. 농부는 벌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말해 주었다. “올봄에도 꿀벌이 집단 실종되어서 피해가 막심합니다. 겨울철이 따뜻해 벌의 생체리듬 깨지는 것도 문제고, 기껏 봄인 줄 알고 나갔다가 난데없는 폭설과 냉해를 맞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 남용도 원인 중 하나이고.”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연신 내 반응을 살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한창 일해야 하는 여름철 꿀벌의 수명은 40~50일인데, 1초에 200번 날개를 펄럭이며 5킬로미터 밖까지 날아가고 하루 1만 개의 꽃송이를 찾아다녀요. 그렇게 생을 다하도록 모은 꿀이 겨우 찻숟가락 반쯤인 5그램이지요. 500그램 한 병을 모으려면 100마리가 무려 5~6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그러니 달콤한 꿀이 얼마나 귀한 겁니까?”

“정말 귀한 달콤함이네요. 그러고 보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달콤한 잠깐의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러자 농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우리 집 딸도 마찬가지예요. 맨날 응석만 부릴 줄 알지 인생의 쓴맛을 도통 맛보려 하질 않아요. 그래서 결혼도 안 하겠다고 하고. 쓴맛이 사는 맛이란 걸 알 만한 나이도 되었거늘……”

그러고 보니 늘 붙어 다니던 그의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농부는 “여기 올라오는 것도 귀찮다면서 딸과 아내는 저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답니다. 몽골 아이스크림은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면서 연신 핥아대고 있어요.”라며 다시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장성한 아들 걱정하는 거나 농부가 말 만한 처녀 걱정하는 거나 매한가지로구나.’ “그 댁 따님은 꽃이로되 피어나지 않으려 하고, 우리 집 꿀벌은 벌이되 꽃을 찾아다니지 않는 허약 벌이니, 참 걱정이네요.” 농부가 내 농담에 한참을 따라 웃었다.

사진 찍느라 지체하는 동안 아들은 벌써 산 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비지땀을 흘린 끝에 겨우 정상에 올라가 보니, 눈앞의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거대한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발아래 사방으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초원과 산봉우리가 연이어 펼쳐져 있었고, 위로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디푸른 하늘이 그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었다. 눈부시도록 햇빛 환하고 드넓은 공간이 주는 격정은 잠시 뒤 깊은 정적 속에서 지극한 평온함으로 나를 이끌었다.

산 정상에는 몽골어로 ‘어워’라 불리는 돌탑이 있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돈이나 술, 우유를 뿌린다고 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워 주변을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고, 돌 조각 하나를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돌이 된 양 한참을 가만히 선 채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깃발에 적힌 소원을 바람이 신에게 날라다 준다고 믿는 몽골 사람들처럼. 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늑대 동상 옆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늑대와 아들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보였다. 아들의 시선은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 문득 사진을 찍어두고 싶어졌다. 나는 아들과 늑대를 한 장면에 넣어 카메라를 눌렀다. 앵글 속의 늑대는 신 앞에 앉아 앞다리를 세우고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지 마라. 바라는 순간 더 큰 겁이 날 뿐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세상을 무서워하면 세상도 너에게 무섭게 대할 거야.” 그런 말도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제 와 생각하니, 바람이 들려주는 야생의 목소리였다.

 

 

아들이 음악을 틀었다. “유 캔 낫 킬 미! 아임 올레디 데드!” 경쾌하다 못해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실내로 가득 퍼져갔다. 당신은 날 죽일 수 없어! 난 이미 죽어 있으니까! 외쳐대는 외국 가수의 노랫말이 가슴을 두드렸다. 아들은 웃고 있었다. 외식하고 백화점까지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온 뒤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늘에서 자동차 무게의 물체가 떨어지는 두려움 따위는 없는 얼굴이었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무너질까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이제 한 시간쯤 남았다. 나는 뉴스를 검색하지 않는다. 실패한 탐사선이 지구 위 어디엔가 떨어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모든 일이 일어나 운명이 결정될 때까지 모르는 편이 나으니까.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나는 아들이 그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다. 너무 힘들어할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심지어 두려워하는 것조차.”

어디선가 그런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이건 우리 세대의 일이에요. 고통도 해결도 우리가 해요. 그러니 제발 참견을 멈춰요!”

뉴에이지의 노랫말인가? 아니면 이번에도 내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어떤 울림인가? 나는 허겁지겁 벽시계를 올려다본다.

‘몽골 대평원. 그곳에서 동물은 인간의 일부고, 인간도 동물의 일부다. 동물은 드러누워 식물이 되고, 식물은 일어나 동물이 된다. 강물이 구름 되고, 구름이 비나 눈이 되어 땅 위로 쏟아지듯이. 그 영원한 순환 속에서라면 인간은 오히려 안심하며 살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온갖 중상모략과 비밀스러운 결탁, 빠르게 가까워졌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미련 없이 헤어지는 복잡하고 불안한 현실은 늘 불안과 현기증을 일으킨다. 오늘날 정착민의 후예들은 삶에 적응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게 유동적인 환경이라서 액체세대라고 불린다는 요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감지하나 보다. 부모가 청춘을 다 바쳐 집 한 채 구할 때까지, 아니 부모들이 상층회로에 들어가기 위한 발버둥을 멈추고 현실에 굴복할 때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에 더 민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민감한 자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시련을 견뎌야 한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 끝에 아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내려온 우리 일행은 시내 숙소로 가기 위해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커다란 구름 그림자들이 하나둘 나타나 초원 위를 유유히 흘러갔다. 마치 끊임없이 흐르는 뉴에이지 음악처럼. 적당히 느리고 적당히 단순하고 적당히 경쾌한 흐름의 뉴에이지 음악을 아들은 종종 즐겼다. 삶이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라던가. ‘아무렴 너희가 자식을 키우고 돈을 벌고 빚을 졌다 갚았다 반복하면서 자산을 늘려온 부모 세대만큼 힘드니?’라고 묻고 싶을 때도 많았다. ‘엄살꾸러기! 정신 차려!’라며 야단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간 말들은 언제나 원치 않는 화살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꽂히곤 했다. ‘입 닥쳐!’ 나는 속으로 나에게 소리쳤다. 산 정상에서 들은 바람의 소리를 나는 그날 밤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어쩐 일인지 그 뒤로 아들은 눈의 이상증세를 호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소소하게 아프다고 할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후 세 시다. 나는 그제야 뉴스를 검색한다. 다행이다. 구소련의 실패한 금성 탐사선은 남태평양에 떨어졌다. 한국 시간으로 10일 오후 2시 30분쯤 칠레 남단 서쪽 남태평양 인근에 추락했다고 우주항공청이 밝혔다. 53세의 실패한 코스모스 482는 바다에 떨어지면서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나는 그 기사를 아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럼, 물고기들은? 바다표범이나 고래 같은 덩치 큰 바다 생물들도 피해가 없대?”

뒤늦게 기사를 읽은 아들의 엉뚱한 반응에 나는 기가 막혔다. 나는 종일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은 고래를 걱정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순간 난감했다. 액체세대라 액체로 된 바다 상황에 민감한 걸까? 그도 아니면 몇 해 전에 본 영화 ‘아바타2’의 영향일까? 53세의 고체세대인 나보다는 액체세대 아들의 생각이 자유로운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는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아침 꽃을 주워야 하는 저녁. 집 밖으로 나가 자동차 위에 떨어진 꽃잎을 손으로 쓸어 담아 코끝에 댄다. 아직 향기가 남아 있다. 나는 코스모스 482처럼 금성에 닿지 못한, 실패한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만큼은 이 꽃잎처럼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이번에는 봄꽃을 무겁게 매단 채 바람에 흔들리는 이팝나무에 귀를 갖다 댄다. 나무는 무거운 가지를 버텨 보려 더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김재영

성균관대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소설가 등단. 소설집 《코끼리》 《폭식》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등이 있음. 남북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예술교육연구소 ‘바라’ 대표, ‘제주 외국인평화공동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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