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 제기 

종교가 공익에 헌신하는 순기능을 하여 왔으나 어떤 종교는 사회적 역기능을 수행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진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듯한 종교가 때로는 진리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란 한편으로 현실적인 고난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 고난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종교가 현실적 고난을 은폐하거나 숙명으로 체념하게 하거나 내세로 투사할 경우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계급구조가 빚어내는 사회적 정치적 고난의 악순환이라는 문제를 종교라는 지배 이데올로기 비판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1960년대 초 독일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의 대화’를 통해 등장한 정치신학은 고난의 문제를 실존론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영역 안에서 생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존재하는 다차원적 고난의 문제로 취급한다. 정치신학에서는 역사적 예수의 삶과 통찰을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새롭게 조망한다. 예수는 단지 죄 사함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신이 인간이 되신 구원자’일 뿐 아니라, 로마의 식민지 통치와 유대교의 성전 체제가 빚어낸 정치적 사회적 억압과 착취와 차별로 인한 민중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전복적(顚覆的) 지혜’를 가르친,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사회적 혁명가나 변혁가로 이해하려고 한다. 

마르크스의 종교에 대한 정치사회적 비판을 수용한 위르겐 몰트만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정치사회학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참다운 항거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몰트만은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민중을 해방하는 대신에 민중을 억압하는 작용을 한다면 마르크스주의도 ‘민중의 아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삶의 다차원적 고난의 문제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진정한 기독교야말로 ‘민중의 아편’이 아니라 ‘자유와 해방의 누룩’이며,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정치 비판적인 종교라고 하였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고집멸도(苦集滅道) 등을 가르친 역사적 붓다야말로 ‘고난을 드러내고 이를 멸할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종교의 정치사회적 본질을 가장 잘 설파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타마 싯다르타가 말한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이나 팔고(八苦), 이어서 등장한 108 번뇌는 모두 개인적이고 실존적으로 그리고 형이상학적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초기불교 가르침 역시 당시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四姓制度)라는 계급 체제에 대한 정치사회적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볼 수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힌두교의 근본 사상인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윤회(輪回) 사상이 카스트 제도로 정치 이념화한 정치사회적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고타마 싯다르타의 초기 가르침의 핵심인 삼법인(三法印)에 해당하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에 관한 가르침을 카스트 제도를 배경으로 하는 인도의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려고 한다. 아울러 인도에서 불교가 정착하지 못하고 현재 불교인 비중이 0.7%이며 카스트 제도가 실제로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초기불교의 정치사회적 담론이 취약하였기 때문이라는 점도 제시한다.  

 

2.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四姓制度)의 정치사회적 함의

1) 아리안(Arian)족의 침입과 베다(Veda) 시대

인도문명은 기원전 1500년경 코카서스의 북부로부터 아리안족이 원주민 드라비다족을 침입하여 인도의 독특한 환경하에서 생겨난 힌두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초기에는 토속 신앙과 융화되어 현세의 행복과 편리한 삶을 위해 인드라(Indra), 아그니(Agni), 바루나(Varuna) 같은 신들을 찬송하고 제사하는 것을 중시했으나, 아리안족은 이전의 무수한 신들을 조직 통일하여 자신들의 신을 최고 유일의 자리에 확고히 하려는 작업을 하였다. 아울러 원주민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자 피부색과 직업에 따른 계급을 만들어 나갔다. 

기원전 1000년경에 이르기까지 힌두교 초기 경전인 베다가 형성되었다. 네 개의 베다에는 ‘만유의 독일주(獨一主) 또는 유일신 신앙’을 담고 있으나, 각종 신에 대한 찬미, 제사 때의 축문, 주문 등이 포함되었다. 아직 사회적 혼란기였으므로 아리안족이 선주민인 드라비다족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을, 제사를 위한 재물의 공급으로 정당화시킨 기록을 베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후기 베다에는 유일신 신앙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유일 원리’에 대한 모색이 있었고, 이어서 우주의 유일 원리의 개체적 원리로 여겨지는 ‘원형적 인간’을 뜻하는 원인(原人, purusa) 사상이 나타난다. 

 

2) 브라마나(梵書) 시대의 범아일여 사상과 카스트 제도의 형성

베다 시대 이후 인도사회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아리안족의 침략전쟁이 종식되고 정착과 더불어 사회질서의 안정이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 둘째, 아리안족과 원주민 사이에 집단 공존의 필요성 때문에 원시사회의 노동이나 생업의 종류와 조건에 따라 희미하게나마 계급성을 띤 사회구조가 굳어져 갔다. 

기원전 7~5세기에 이루어진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가화가 인도 전통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였으며, 빈부의 양극화에 따른 계층 분화는 이 시기의 불교 문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리안족의 신에 대한 제의에 종사하는 승려들에 위해 베다를 해석한 주석서도 이때 나타났다. 그것을 브라흐마나(Brahmana, 梵書)라 불렀다. 이들은 베다의 내용을 승려 계급에 유리하도록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하였다.

범서에서는 만물의 유일한 원리를 브라흐만(Brahman, 梵)이라고 해석하여 “태초에 브라흐만이 있었다.”라고 했다. 브라흐만을 상(常), 유일(唯一), 주재(主宰)로 해석하고 이로써 현상계의 만물이 형성되었고, 또한 만물은 브라흐만에 귀일(歸一)한다고 했다. 브라흐만 사상이 점차 아트만(Atman, 我) 사상과 공존하면서, “진실과 고행으로 아트만을 보고자 힘쓰는 사람은 자신 안에 아트만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최초에 브라흐만이 있었다”와 “최초에 아트만이 있었다”가 병행하여 표현되었다. 

더 나아가서 ‘브라흐만이 곧 아트만이다’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태동하였다. 범아일여는 브라흐만이 우주적 아트만이고 아트만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개체적 브라흐만이라는 의미이다. “아트만이 곧 브라흐만이다”는 명제에서 아트만은 곧 승려 계급을 지칭한다는 해석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브라흐만교의 승려를 브라민(Bramin)이라 지칭했다. ‘아트만이 곧 브라흐만’이라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승려 계급인 ‘브라민이 곧 브라흐만’으로 격상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승려 계급을 최고의 신적 지위인 브라흐만의 지위에까지 격상시켰다. 승려 계급은 자신들을 신의 대행자가 아니라 신으로 권력화한 것이다. 

승려들은 베다의 주석서인 범서(梵書)를 그들의 권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해석했다. 승려 계급만이 베다를 알고 제사를 행할 수 있으므로 이 범아일여의 교리는  승려 계급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까다로운 제사 의식의 전문가로 등장한 승려 계급은 무한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승려 제도가 정착되면서 인간을 원천적으로 생각하는 자(영혼이 있는 자)와 단순히 일만 하는 자(영혼이 없는 자)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승려 계급의 종교적 권한이 강화되면서 계층 분화가 더욱 강화되어 카스트 제도로 정착되었다. 베다에는 이러한 카스트 제도가 창조신화에 근거해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신들이 푸루샤(原人)를 분할했을 때, 몇 부분으로 나누었던가? 그들은 그의 입을, 그의 두 팔을, 넓적다리와 발을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그의 입은 브라흐만(Brahman)이 되고, 그의 팔은 전사(戰士, Rajanya), 넓적다리는 평민(Vaisya), 발은 종(Śūdra)이 되었다. 

제1계급 브라흐만은 성직자이기 때문에 직접 군사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초기에는 전사(Rajanya)들이 그들의 팔다리 노릇을 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전사 계급이 실질적으로 정치와 경제의 실권을 행사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역할을 했다. 전사 계급에는 왕족과 귀족과 관료들이 포함되면서 이들을 제2계급 크샤트리아(Kṣatriya)로 칭했다. 승려 계급은 제사에 필요한 제물(祭物)과 자재의 공급이라는 명목으로 전사 계급의 전쟁과 약탈을 정당화하고 이들을 교묘히 통제하였다. 

승려 계급과 크샤트리아 계급은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평민들에게 농업, 상업, 목축일 등을 하게 하였다. 직업적 전문가나 기술자와 예술가도 평민을 지칭하는 제3계급 바이샤(Vaisye)로 취급되었다. 

크샤트리아 계급에 의해 전쟁 포로로 잡혀 온 자들을 제4계급 수드라(Sudra)라 하였다.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일종의 노비이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상위 계급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들은 주인이 버린 옷을 입거나, 먹다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다. 

승려들은 제사 의식이 복잡화될수록 남다른 지혜로 신의 뜻을 구사하는 것으로 주장했으므로 다른 계급은 그들이 주장하는 신의 뜻을 따라야만 했다. 심지어 “브라흐만을 낮춰보는 사람은 그 자신의 근원을 해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위 존재(계급)를 해하면 더욱 죄악을 키우게 될지라.”라고 했다. 따라서 사회 조직의 계급적 위계질서가 확고했으며 무자비한 통제와 착취와 차별의 악순환이 종교적 교리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신분이 다른 계급 간에는 혼인을 금했다. 이러한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의 ‘범아일여와 업보와 윤회’ 사상을 근거로 정당화되어 사람들이 이를 숙명으로 여겼다. 

 

3) 범아일여 사상의 기초로서 윤회 및 업 사상

범아일여 사상은 신과 인간의 ‘신비적 합일’이나 ‘존재론적 일치’라기 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신의 의지에 일치하는 경지에 이르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의지의 일치’는 ‘신의 법대로 행하면 신이 될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누구든 지금도 ‘나는 브라흐만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지혜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은 자는 신도 다스리지 못하니, 그는 곧 신의 아트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된다. 첫째, 왜 승려들만이 범아일여가 가능한 계급으로 태어났는가? 둘째, 범아(梵我)의 본질이 영원불변한다면 현실적으로 생사가 분명한데 자아(Atman)의 영원한 지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서 자아의 실체가 불멸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불멸하는 자아가 윤회(Samsara)한다’라고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승려 계급만이 현실적 행복과 불멸이 가능한 특권을 누리는 이유를 생사를 넘나드는 업보와 윤회의 교리로 설명한 것이다. 

아트만의 불사(不死)에 대한 설명은 이러하다. 아트만(我)은 이 생명 저 생명으로 윤회하는데, 그것은 자아가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윤회전생(輪廻轉生)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곧 업(Karma)이라고 설명한다. 불사의 생을 얻기 위해 성업(聖業)과 정업(淨業)의 업력(業力)이 필요한데, 그 방법을 지(知)와 행(行)으로 보았고, 그것은 제사 방법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에 따른 제사의 실행을 뜻한다. 현생(現生)의 이러한 업력(業力)이 가능한 브라흐만 승려 계급만이 불사에 이를 수 있는 것이 된다. 현생의 악처(惡處) 즉 다른 계급에 있는 자들은 신의 뜻을 가장 잘 아는 브라흐만 승려의 뜻에 따르는 것이 곧 선업을 쌓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생의 뜻에 따라 후생의 재생처(再生處)가 선처(善處)나 악처(惡處)로 결정된다. 따라서 현생의 제처(諸處), 즉 사성(四姓)의 카스트 계급은 그 원인이 전생의 업보에 있으므로, 그것은 절대적이고 운명적이다. 계급제도의 사회적 현실적 모순을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해 절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계급 질서에 충실하여야 윤회를 통해 후생에는 선처인 브라흐만 승려 계급을 업보로 받고 그때 비로소 불사의 길이 가능한 성업과 정업을 쌓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다른 계급에 속한 인간들은 내생의 선처를 업보로 받기 위해 브라흐만이 지배하는 계급 질서에 맹종해야만 했다. 

 

4) 우파니샤드 시대와 카스트 제도에 대한 도전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브라흐만은 우주의 전체 원리이고 아트만은 인간의 개체적 주관적 원리이지만, 전체를 떠나 개체가 없고 개체를 떠난 전체는 무의미한 것으로 설명한다. 전체 원리와 부분 원리의 대립은 일시적이며 서로 떠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본질은 아끄샤라(不壞者)이며, 불괴자의 본질은 인식자(vijnata) 그 자체이고 인식자 자체는 식(vijnana)이다.”라고 하였다. 아트만은 불멸자이며 그 본질은 식(識) 또는 혜(慧, prajna)라는 것이다. 그리고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기 위한 식(識)의 방법인 복잡한 수행 과정을 4기로 나누어 범행기(梵行期), 가주기(家住期), 임루기(林樓期), 여행기(旅行期)라 하였다. 수행 내용에는 베다 수학과 제사 및 고행이 포함되었다.

브라흐만을 아는[識] 방법인 수행 과정에서 형식주의적 폐단이 생겨나자, 식(識)이나 혜(慧)를 단지 제사에 관한 감각적 지식이 아니라, 내심(內心)에서 발현되는 직관적 예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트만이 브라흐만을 객체적 대상으로 파악지 않고 범아가 일체가 되는 직관적 예지를 주장하는 파도 생겼으며, 이들은 “직관적 지혜가 아트만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범아일여 사상이 진일보했으나 업(karma) 사상은 그대로 계승하였다. 

 

행위로 지은 업, 스스로의 마음으로 지은 업 그리고 또 다른 (전생의) 업이 한데 어우러져 다시 새로운 육신을 입게 되도다.

본체와 현상의 불일치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보다 좋은 몸으로 태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까닭을 업(Karma)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선업에 의해 선해지고 악업에 의해 악해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드는 대로 행하는 대로 그대로 되리니,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자가 되리오,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자가 될 것입니다. 선이란 선한 행위로 만들어지는 것이요, 악이란 악한 행위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죽어 다시 태어나는 곳을 범계(梵界)와 조계(祖界)로 나누고, 그 업력(僕力)을 쌓는 법도 역시 범도(梵道)와 조도(祖道)로 나누었다. 브라흐만 승려뿐 아니라 누구나 고행이나 명상으로 진리를 터득하면 죽어 범계(brahma-loka)에 가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조도(祖道) 즉 제사, 선행 보시(布施)를 하여 부조계(父祖界, bitr-loka)에 간 사람은 조도의 업보인 브라흐만을 받는다. 그러나 범도나 조도를 모르고 악행을 한 사람은 악업인 칸달라(candala) 즉 개, 돼지, 새, 곤충 등의 업보를 받아, 나고 죽고를 거듭하는데 그것이 제3의 주처(住處)라고 설명한다.

우파니샤드를 보면 후기 베다에 나타나는 전리품의 도난과 분배의 부정 때문에 브라흐만 계급에 대해 반기를 든 사례들이 등장한다. 브라흐만 계급을 절대시하는 사회제도의 모순과 승려 계급의 착취에 대한 각성과 반격이 크샤트리아 계급에 의해 빈번히 야기되었다. 승려 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하층민들에게는 브라흐만교가 아닌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3. 사성제의 정치사회학적 함의 

고타마 싯다르타가 당면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고(人生苦)의 문제였다. 삼법인(三法印)의 첫째가 일체개고이고 이는 고집멸도의 사성제로 체계화되었다. 출가의 동기를 단순히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절감한 것이라는 것은 문학적 장식에 불가하다. 그가 일체(一切)가 고(苦)라고 했을 때, 인생고는 인생에 대한 관념적, 철학적 사색에서 생긴 불안이나 절망이나 비관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고통이다. 붓다의 이러한 가르침을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재조명해야 한다. 

기원전 6세기경의 힌두교 카스트 제도가 정착된 후 불교가 출현하였다. 싯다르타가 태어난 석가(Sakya)국은 정치적으로 주권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강대국이었던 코살라(Kosala)국에 예속된 인구 백만 명 정도의 주로 농업과 목축을 주로 하는 작은 영토의 자치주에 불과했다. 정반왕(淨飯王)의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역시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브라흐만 승려의 착취와 승권(僧權) 절대화에 대한 각성과 반격을 가한 위대한 선구자였다. 

붓다가 성도(成道) 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에게로 찾아와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부대중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당시의 한 초기불교 공동체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카스트 구분이 가능한 360명 중에 브라마흐나는 131명이고 크샤트리아(캇띠야)가 89명이며, 상인 평민이 55명이고 수드라(숫다) 6명, 카스트 밖에 있는 불가촉민이 19명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불교 공동체에는 “모든 카스트,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토마스는 “교단 안에서 카스트는 소멸하였다. 그리고 낮은 카스트 사람들이 승려로 인가받은 많은 사례가 있다.”라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거대한 항거의 증거였다. 따라서 초기불교의 가람(伽藍) 공동체 출현은 그 자체로서 근대적 사회적 변혁의 상황이며 진보적인 시민운동의 전개 과정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 공산혁명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 놓은 불가항력적인 계층적인 계급사회는 개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박탈하고 고통의 악순환을 강요하는 종교적 사회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에서 모든 정치사회적 고통의 원인이 되는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근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카스트 제도의 교리적 근거가 되는 범아일여 사상이나 윤회설을 비판한 통찰을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성도(成道)에 들어간 심리 전개를 밝힌 것이 여럿이 있지만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은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체계화한 것으로 초기불교의 요체로 찬양되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고집멸도 가르침에서 고통의 원인이 무지이며 전도망상(顚倒妄想)이라는 점을 개인 차원이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볼 수 없을까? 힌두교의 범아일여 사상이야말로 카스트 제도를 통해 계급사회를 영속화하고 정당화하는 ‘전도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착을 버리고 정치사회적 고통의 원인이 되는 거짓된 정치 이데올로기를 멸절(滅絶)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① 고제(苦諦): 고는 “여실상(如實相)이므로 여실지(如實知)”해야 하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고통을 실제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의 근거는 숙명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 원인을 분석 규명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여야 한다. 아픔을 나의 것으로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아편이나 환상으로 그것을 도피하거나 고행으로 대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픔은 인간 본래의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전도된 생각[顚倒妄想]’에서 비롯됨을 규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당시 힌두교의 가르침 중에 가장 전도된 망상이 범아일여와 업보에 따른 윤회설에 근거한 카스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② 집제(集諦): 고의 뿌리[根據]에는 집착이 있다는 분석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無常], 거기에는 고정적인 실체라는 것이 없는데[無我], 거기에 무엇인가 상주불변(常住不變)의 실체인 나[我]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겨서 고통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苦]고 본 것이다. 개인적으로 집착은 갈애(渴愛)와 무명(無明)이지만, 사회적인 면에서 지배계급의 권익 확장, 약탈 및 착취, 그릇된 지배 논리가 된 교리, 전도된 종교가 고의 원인이다. 이것들은 절대 숙명이 아니며, 제1계급과 제2계급이 결탁하여 카스트라는 계급제도를 유지하려는 집념을 간파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③ 멸제(滅諦): 고의 원인을 제거하는 길을 제시한다.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 즉 알지 못함이니, 알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카스트 제도와 같은 전도된 지배 논리를 알고 지배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다차원적 고통의 사회적 원인이 되는 모순적인 계급제도를 멸절시키는 것으로도 해석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은 그 자체가 계급사회를 만드는 폭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꿈꾼 것은 제도적 폭력이 없는 사회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카스트 제도는 제도적 폭력이므로 정치사회적 폭력이 없는 사회를 이루려면 카스트 제도가 해체되고 멸절되어야 한다. 

④ 도제(道諦): 이는 아픔으로부터 일탈하여 아픔이 없는 환상 세계로 도피하거나, 아픔을 아픔으로 극복하려는 고행(苦行)에 빠지거나, 아픔을 일시적으로 망각하는 직관의 세계로 잠적하는 것이 아니다. 아픔과 괴로움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 아픔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묵인, 무마되는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 논리 구조와 체계를 과감하게 타파하는 바른길을 제시한다. 팔정도(八正道)는 바로 이 길을 가르친다.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행하고, 바로 나아감에 따라 고를 제거하고 또다시 새로운 고를 발견하여 부단히 제거하는 수행과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이 진리이다. 팔정도를 통해 진리에 눈을 뜨게 되면 마침내 갈애를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解脫] 이상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예수가 로마 식민지하에서 식민 통치가 빚어내는 정치사회적 고통에 항거하기 위해 ‘전복적 지혜’를 가르친 것처럼,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도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왜곡된 계급 질서 탓에 고통당하는 민중들이 이러한 정치사회적 고통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전도된 생각을 전도하라’는 정치사회 구조악에 대한 개혁의 외침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4. 범아일여 비판과 제법무아의 가르침

초기불교의 삼법인 중 둘째는 제법무아이다. 불교의 가장 중요하고 특수한 무아(無我, anātman) 사상이며, 종교 사상에서 불교의 특수한 공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의 관점에서 고의 원인을 무지와 갈애라고 보았을 때, 그것은 브라흐만 승려의 종교적 특권에 대한 탐욕과 불변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에 대한 무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전도된 생각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我, atman)의 실재를 가정하고 그 영원 불사에 대한 신념이며, 승려 계급만이 온갖 특권을 독점하려는 욕망이다. 힌두교의 아트만 사상이 범아일여 사상의 기초가 되었고, 범아일여 사상에 근거하여 승려 계급이 제1계급으로 특권을 누리기 위해 카스트 제도라는 폭력적 계급사회가 생겨났다. 그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는 힌두교가 주장하는 영원불변의 자아가 있다는 ‘아트만 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제법무아를 가르친 것이다. 아트만이 있다는 주장은 무지(avidya)에 의한 독단이라고 거부했다. 

모든 진리의 기초는 ‘아트만이 없다’는 것이라는 제법무아는 “나의 근거로 유일 절대인 영원불변의 근거는 없다. 나의 본체적 근거로서 영적인 나 즉 브라마니즘에서 주장하는 나는 없다. 그런 뜻에서 무아 곧 Nirātman이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있는 나는 영원 불멸자로서 아트만이 아니라 일상적 현상적 나, 즉 아함(aham)이다. 현상적인 나(aham)를 설명하기 위해 고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의 오온(五蘊)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였다.

나[我]가 있다면 그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다섯 요소[五蘊]가 있을 뿐이다. 나의 형체[色], 나의 느낌[受], 나의 생각[想], 나의 행위[行], 나의 인식[識], 이 다섯이 모여[五蘊] 나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나를 구성하는 이 다섯 요소가 모여서 나를 이룬다. 이 다섯 요소를 제외하고 따로 불변의 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다섯 요소 역시 집합이산(集合離散)하고 성주괴멸(成住壞滅) 하는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불변한 나로서 아트만이 존재할 수 없다. 나를 이루는 이 변화무상한 다섯 요소를 제거해 버리면 결국 나는 없게 된다는 뜻에서 무아이며, 이 다섯 요소 자체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무아이다. 전자는 무아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나의 존재가 집합이산 한다는 뜻이고, 후자의 무아는 시간적 의미에서 나의 모든 행위가 무상[諸行無常]하다는 뜻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참된 자아의 영원성을 깨달아 우주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체인 브라흐만과 하나 되는 합일(合一)의 원리를 깨닫는 데 있다면, 불교적 해탈의 방정식은 인연 연기설을 깨달아 공(空)과 무아의 실체를 깨닫는 데 있다. 싯다르타는 제법무아의 깨달음을 통해 범아일여를 가능케 해주는 영원불변의 자아가 없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브라흐만교 핵심 사상의 자기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불멸의 자아를 통해 불멸의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려는 모든 종교적 시도의 근거를 무너뜨린 것이다. 범아일여의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도된 생각을 전도”시킨 것이 바로 무아에 대한 깨달음이다. 베다나 우파니샤드와 초기 불경에서조차도 연기나 업이나 윤회 같은 단어는 공통으로 등장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은 힌두교 경전에는 무아(無我)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5. 윤회설 비판과 제행무상의 가르침

고타마 싯다르타의 근본 깨달음 중 제행무상의 가르침이다. 제행무상의 가르침은 힌두교의 업보에 따른 연기윤회설에 대한 전복적 통찰로 해석할 수 있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만사가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브라흐만교는 ‘이것’이 ‘저것’의 존재 생멸의 인과가 된다고 했다. 따라서 “사람은 선업에 의해 선해지고 악업에 의해 악해진다.”는 업보설을 가르쳤다. 현상계의 실제적인 사회적 고통의 원인은 카스트 제도와 같은 사회질서의 모순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 원인을 개체 인간의 현생 악행이나 전생의 업보에서 찾으려 했다. 이 세상의 고통을 저세상에서 그 원인을 찾게 하고, 이 세상의 고통은 저세상의 결과라는 업보 사상과 윤회 사상은 원인에서 결과를 추구하려는 허망한 도덕적 인과법칙이다. 브라흐만교는 이러한 업감인연설(業感因緣說)을 통해 전생과 후생의 기계적 윤회설을 교리화함으로써 카스트 제도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절대 불변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았다. 

이에 대해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렇게 이것이 있는 고로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는 고로 이것이 생하며 이것이 없는 고로 이것이 없고, 이것이 변하는 고로 이것이 변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변하는 고로 이것이 변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이것 자체의 존재 생멸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이것이 변하여 이것을 변하게 하는 것’도 존재 생멸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변화하기 때문에 반대로 삶의 고질적 악순환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역동적 가르침이다.” 따라서 석가모니에게는 “연기법 자체가 변혁의 법, 변혁의 원리, 변혁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러한 연기설을 상호의존적 생기설(inter-dependent arising)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기법은 갈대 묶음의 비유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세 개의 갈대를 빈 땅 위에 세울 때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서는 것과 같이 만일 하나를 빼버리면 둘도 쓰지 못하고 만일 둘을 다 빼버리면 하나도 쓰지 못하게 되니 서로서로 의지하여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영원불변한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같은 원인이라도 변화무상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제행무상의 깨달음을 통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의 절대 숙명론의 근거를 무너뜨린 것이다. 

도덕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처럼 영원불변의 도덕적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개체적 자아로서 아트만이 없으므로, 인과론적으로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 순서의 윤회론은 거부되었다. 

김재영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민중을 괴롭히는 ‘탐(貪), 진(瞋), 치(痴)’라는 삼독(三毒)을 가르친 것을 카스트 제도가 빚어낸 사회적 고통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다. 카스트 제도 때문에 승려 계급들의 탐욕과 착취로 인해 민중들은 빈곤에 처했고, 무사 계급의 빈번한 전쟁과 폭력으로 인해 민중들이 분노하게 되고, 거짓된 교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각종 병적 사회적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빈곤 폭력 질병 이 세 가지가 초기불교가 문제 삼는 사회적 위험, 사회적 고통의 핵심이다. 카스트와 같은 사회체제나 희생제의와 같은 사회 관습들도 많은 사람들의 빈곤 폭력 질병의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비판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타마 싯다르타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이러한 사회적 고통이 원인이며 조건들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고타마 싯다르타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정치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고통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켜 확대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도는 아픔을 아픔으로 알지 못하는 왜곡된 인식의 틀을 제거하여 아픔을 아픔으로 직시할 수 있는 바탕을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아픔이 있는 현실을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6. 맺는말 

2011년 기준으로 인도의 불교인 수는 전체 인구의 0.7%에 불과하다. 불교가 인도에서 쇠퇴한 외적 내적 원인이 여럿 있지만,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도불교의 학문화’라고 한다. 5세기 전반기에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나란다 대학이 창건된 후, 인도불교는 ‘학문화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후 8세기, 9세기, 10세기를 거치며 불교는 점차 거대한 승원 안에서, 왕족들이나 귀족들의 비호를 주로 받으며 일반과 유리되어 갔다. 산스끄리뜨어를 통해 경전을 연구하는 승원에 갇혀 민중의 언어와 민중의 삶과는 단절되어 간 것이다. 결국 불교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었던 사람은 교육받은 지식계급 또는 상류계급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인도 헌법에서는 불가촉천민과 같은 카스트 차별을 위법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인도 헌법에서도 ‘상위(일반) 카스트와 하위 계층’은 물론 인도 영토 내의 비문명화된 부족들을 ‘지정 카스트나 지정 부족’으로 분류하여 특별 보호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행정이나 인구 조사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식적 분류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위 카스트 또는 일반 카스트(Forward Castes): 인구의 30.80%.
기타 하위 계층(Other Backward Classes): 인구의 41.0%.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 인구의 19.7%.
지정 부족(Scheduled Tribes): 인구의 8.5%.

이처럼 인도에서는 실제로 카스트 제도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초기불교는 카스트 제도의 근간을 거부하는 싯다르타의 많은 가르침을 현학적인 토론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힘을 쏟았다. 따라서 인도의 불교는 힌두교 시절부터 견고하게 정착된 카스트 제도를 변혁시키는 동력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울러 “불교는 카스트 사회 밖에 독자적 집단으로 존재하지도 못했다. 불교도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응집시킬 ‘독자적인 생활 규칙이나 통과의례’로 인정할 만한 것이 없었다.” 교단이 확장되고 교세가 커지면서 카스트 제도하에 놓여 있는 중생들의 정치사회적 고통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됐다. 결국 중생과 유리(遊離)된 불교는 인도에서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재가 신도들은 힌두교 의례를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의례가 힌두화되자, 인도불교는 점차 정체성을 잃고 힌두교에서 각종 신들마저 차용해 왔다. 그러다 결국 인도의 불교는 거대한 카스트 제도를 변혁하지 못하고 힌두교에 용해되었다. 오히려 중국과 동남아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인도의 상류계급은 그 성격상 사회변혁의 주체라기보다 사회질서의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에 카스트 제도라는 정치사회적 근본 모순을 변혁할 의지가 없었다. 더불어 인도의 불교는 정치사회적 변혁을 실현할 사회적 위치에 이르지 못했고 그러한 의지도 약했기 때문에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허호익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학사, 석사, 박사). 대전신학대학교 은퇴 교수. 백낙준 명예총장 비서, 한국기독교학회 총무, 한국문회신학회 부회장, 한국조직신학회 회장 역임. 《한국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천지인신학》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신학》 《동성애는 죄인가》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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