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생명윤리를 말하다

1. 머리말

고령화 지수는 65세 이상 인구와 14세 이하 인구의 비율로 인구 고령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8.4%인 950만 명으로 고령인구 비중은 계속 증가하여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 대비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화 사회로 인하여 노동력 부족, 생산성 저하, 노인 부양비 상승, 의료 및 복지 비용 증가 등의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국가적 차원이 아닌 한 개인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늙음, 병듦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연명 의료는 고령화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8년 김 할머니의 가족은 의료 기술로 삶을 연장할 것인가에 대한 첫 재판을 제기하였다. 김 할머니는 폐암 여부를 진단받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김 할머니의 가족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했고, 김 할머니는 2010년 1월 10일, 연명치료를 중단한 지 201일 만에 사망했다. 김 할머니의 판결 이후 현재 우리나라는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연명의료의 의미와 그 결정 과정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2. 연명의료의 의미와 결정 과정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의 환자에 대한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제4호 및 동법시행령 제2조). 연명치료의 종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 생명 유지술,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이다. 연명의료 결정 제도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보건복지부는 임종 과정에 이르기 전, 즉 건강할 때 자신의 연명의료 결정을 사전에 결정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결정’ 제도를 마련하였다. ‘사전연명의향서’를 통해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혀둘 수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 결정 절차를 3단계로 나누고 있다. ‘사전의료연명결정’ 단계를 포함하면 연명의료 결정 단계는 총 4가지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는 사전 연명의료 결정이다. 두 번째 단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이 연명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네 번째 단계는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제시된 연명의료 결정 단계의 내용은 위의 표와 같다.

이 글에서는 각 단계에 따라 이와 관련된 불교의 가르침을 논의하고, 삶과 죽음에 관한 지혜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3. 사전 연명의료 결정과 불교

최근 우리나라는 평균 수명의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잘 사는(well-being) 개념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은 자신의 죽음을 존엄하게 받아들이고, 인간답게 죽을 권리와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웰다잉의 한 방법으로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의학적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했을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견을 작성하는 문서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만 19세 이상의 사람이 의학적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에 관한 의사를 사전에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기 이전에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정신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해와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작성된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 판단에 기초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에 대한 물음으로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다. 종교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불교 또한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존재의 근본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 교육기관이었던 강원에서 스님들이 합송하는 《제경서문》 중 〈대총상법문체설〉 〈선가귀감〉 〈왕복서〉 등은 인간의 근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총상의 법문의 근본이라는 것은 이른바 중생의 마음이다. 중생의 마음 중에는 진(眞)과 망(妄)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진(眞) 중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연(緣)을 따른다는 것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망(妄) 중에는 체(體)가 공(空)하다는 것과 일을 성사시킴이라는 것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온 이후로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으로 얻을 수 없고, 모양으로도 얻을 수 없다. "

"가고 오는 것이 끝이 없으나, 움직이고 고요함은 하나의 근원이라."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모습[相]의 근본이 되는 체(體)는 자신의 마음이다. 이 중생의 마음은 선가(禪家)의 ‘한 물건’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왕복서〉의 ‘하나의 근원’으로 설명된다. 즉 체(體)는 ‘중생심 안에 있는 진(眞)’ ‘한 물건’ ‘하나의 근원’이라고 표현되었고,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 체는 ‘한 물건’으로 본래로부터 밝고 신령스러워서 일찍이 태어남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 또한 〈왕복서〉는 가고 오는 것, 태어남과 죽음이 끝이 없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 하나의 근원이 체로 표현된다고 한다면 삶과 죽음, 늙음과 고통, 행복과 슬픔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대총상법문체설〉은 삶과 죽음, 늙음과 고통, 행복과 슬픔 등의 모든 상(相)이 진(眞)과 망(妄)이 화합한 생멸의 모습으로 설명한다. 즉 체의 근원은 생로병사가 없다[妄]고 하지만 현상[相]으로는 생로병사가 존재한다. 이는 생멸문으로 망(妄) 중에 공(空)하면서 동시에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생로병사 그 자체가 진인 모습이면서도 망이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행복한 열반·해탈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명으로 인하여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고, 이루어 내고 싶은 마음으로 생멸의 사바세계를 살아간다. 

앞에서 말한 모든 총상의 법문은 생로병사라는 불변하는 근원적인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는 중생의 마음이다. 모든 현상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과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 진과 망이 함께 있음을 체득하는 것은 불교의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 불교 수행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무엇이 수행인가? 지관문(止觀門)이다. 이른바 지(止)라고 하는 것은 일러 일체 경계 모습[相]을 멈추는 것이다. 사마타관[止]을 따르는 뜻인 이유이다. 이른바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생멸 모습[相]을 분별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관(觀)을 따르는 뜻인 이유이다. 무엇을 수순한다고 하는가? 그것은 이 두 가지 지관(止觀)을 점차로 수순하여 연전하는 것을 두 가지[止觀]로 서로 버리고 여읜다는 이유이다. 

위의 경전 내용은 불교 수행인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를 통해서 일체 경계의 모습[相]을 멈추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지관 수행은 삶의 모든 순간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지혜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건강할 때 지관 수행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생로병사에 대하여 잡아함은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루나야, 너는 마땅히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색은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알아야 하나니, 이것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如實知)이라 한다. 수루나야, 거룩한 제자는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떠나 해탈하며,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괴로움·번민에서 해탈하느니라.

위의 부처님 말씀은 ‘사실 그대로 아는 것[如實知]’을 통해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괴로움·번민에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지관 수행을 통해 자신의 죽음에서 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목표가 지관 수행을 통한 해탈에 있다면 앞으로 겪어야 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미리 결정하는 사전 연명의료 결정 과정은 명료한 가치 판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사전 연명의료 결정은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 목표 의식, 본인의 질환에 대한 처지 및 미래에 대한 선호도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진다. 자신 삶의 모습[相] 속에 진리의 체(體)가 함께하고 있음을 믿고, 삶의 목적을 생로병사로부터의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면, 이것이 사전 연명의료 결정에 명확한 기준이 된다.

 

4.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 결정 과정과 불교

담당 의사와 전문의는 환자에게 환자의 건강 상태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연명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임을 알려 주게 된다. 환자는 자신이 죽음에 이를 것을 예상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할 경우 수일 내에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국민의 82%가 ‘조력 존엄사’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한 말기 환자가 됐을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91.9%로 나타났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통증을 가급적 느끼지 않아야 한다’(20.1%)로 응답했다. 그리고 가족이 병 수발을 오래 하지 않고,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는 과정에서 느껴야 하는 신체적 고통과 죽음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논의되었던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의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죽음 이후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압도당한다. 이러한 고통과 불안 그리고 걱정에 대해서 대승불교는 부처님과 보살들에 대한 믿음으로 지혜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보살은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태어나고 죽는’ 과정을 고달픈 생각이 없이 보살의 행을 닦는 분이다. 보살은 전생에서 중생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운다.

대왕께서는 한량없고 갓이 없고, 주재가 없고, 의지할 데 없는 무명 중생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고, 구호하고, 이롭게 하고, 비추어 주시며 의지할 데가 되시나이다.

“한량없고 갓이 없고 주재할 수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은 태어나는 곳마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비추어 주며 의지할 데”가 되어 주신다. 특히 보살은 삶의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이 될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길을 열어 보여 주신다. 이러한 보살의 행(行)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여, 이 대장부는 네 가지 폭포에 빠진 이를 위하여 법의 배를 만들며, 나쁜 소견의 수렁에 빠진 이를 위하여 법의 다리를 놓으며, 어리석은 밤중에 헤매는 이를 위하여 지혜의 등불을 켰으며, 나고 죽는 벌판에 다니는 이를 위하여 성인의 길을 보이며, 번뇌와 업의 중병에 앓는 이를 위하여 법의 약을 주며, 죽은 액난 만난 이를 위하여 감로수를 먹여주며, 세 가지 독한 불에 들어간 이를 위하여 선정의 물을 뿌리며, 근심 걱정이 많은 이에게는 편안하게 위로하고, 생사의 옥에 갇힌 이에게는 효유하여 나오게 하며, 소견에 속박된 이에게는 지혜의 검을 주고, 삼계(三界)의 성에 머문 이에게는 해탈문을 보이며, ……중략…… 나고 죽는 성에 갇힌 이는 온갖 지혜의 성으로 들어가게 하느니라. 

앞의 경전에 나타난 보살의 원력은 믿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미칠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러한 믿음을 ‘모든 공덕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 보살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는 보살의 원력을 의지하여 죽음과 죽음 이후의 다음 생을 준비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아래와 같다.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하늘에 오르고,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악도(惡道)에 떨어지며,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세상을 제도하니, 이와 같이 다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인연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하여 《능엄경》은 더욱 구체적으로 죽음의 이후의 생(生)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난아, 애정은 적고 생각이 많은 이는 날아오르는 것이 멀지 못하여 날아다니는 신선, 귀왕(鬼王), 야차, 나찰이 되느니라. ……중략…… 애정과 생각이 균등한 이는 날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인간에 나거니와, 생각은 밝으므로 총명하게 되고, 애정은 어두우므로 혼돈하게 되느니라. 정이 많고 생각이 적은 이는 축생에 들어가되, 중(重)하면 기는 짐승, 경(輕)하면 나는 짐승이 되느니라. 정이 7푼이요 생각이 3푼이면, 수륜(水輪)을 지나 내려가서 화륜(火輪)의 갓에 나게 되나니, 맹렬한 불기운을 받아서 아귀(餓鬼)가 되므로 몸에는 항상 불이 타고, 물도 몸에 해롭게 하여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백천 겁을 내느니라. 정이 9푼이요, 생각이 1푼이면 화륜(火輪)을 뚫고 내려가서 풍륜(風輪)과 화륜(火輪)이 맞닿은 데까지 들어가되, 경(輕)하면 유간지옥에 나고 중(重)하면 무간지옥에 나느니라. 순전한 애정만인 이는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위의 경전은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의 형태로 천상의 존재, 신선, 귀왕, 야차, 나찰, 인간, 축생, 지옥에 태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죽음 이후의 다른 생을 맞이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보살의 서원에 대한 믿음은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에 큰 위로와 의지처가 된다. 《화엄경》은 보살의 서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남자여, 마치 큰 허공은 모든 세계가 그 가운데서 생겨나고 없어지지마는, 조금도 분별이 없고 본 성품이 깨끗하여 물들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고 걸림도 없고 싫음도 없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어서,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모든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같이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러하여, 허공과 같이 넓고 큰 마음으로 서원이란 바람 둘레[風輪]를 일으켜 중생들을 거두어 줄 적에 나쁜 갈래를 여의고 좋은 곳에 나게 하며, 모두 온갖 지혜의 지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모든 번뇌와 나고 죽는 속박을 멸하고 걱정되고 기쁘고 고달픈 마음이 없게 하느니라. 

위의 경전 내용은 보살의 서원을 허공에 비유하여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 분별이 없는 것, 성품이 깨끗하여 물들지 않고, 어지럽지도 않고, 걸림도 없고, 싫음도 없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닌” 것으로 설명한다. “나고 죽는 속박”의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걱정, 기쁨, 고달픔이라는 마음을 없게 하는 것은 우리의 본래 성품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물들지도 어지럽지도, 걸림도 없고, 싫은 것도 없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본래 성품에 대한 믿음과 함께 보살의 서원에 기대어 임종의 순간에 천상이라는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은 두려움, 걱정, 분노, 슬픔, 공포를 넘어 또 다른 생(生)을 맞이하게 한다.

 

5. 환자 가족의 연명의료 결정 과정과 불교

연명의료 결정의 마지막 단계는 환자 본인과 환자의 가족 그리고 담당 의사(전문의)가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이다. 만일 환자의 인지 능력과 의사결정의 판단력이 없는 경우 전적으로 가족과 담당 의사가 환자의 연명치료 가부를 선택해야 한다. 환자가 사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사결정을 남겨 놓았다면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러나 환자가 사전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견을 남겨 놓지 않았고,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라면 환자의 가족이 연명의료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담을 통한 연명치료 결정의 고려 항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의료진의 정확한 설명을 근거로 환자의 예후에 대한 이해 

둘째, 환자 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의료와 삶에 대한 가치 파악

셋째, 환자·보호자·의사 간의 의견 합의

넷째, 가능한 의료 자원 및 서비스의 이용 방법, 경제적 상황 고려

 

환자의 가족 또는 보호자는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판단할 때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고려하게 된다. 환자의 보호자는 가족의 고마움, 죽음이라는 이별에 대한 슬픔, 병 수발이라는 현실적 어려움 및 경제적 부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감정적 부분과 현실적인 경제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불교 교리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이별의 슬픔이다. 돌아가신 선망 부모를 위하여 기도하는 경전으로 《부모은중경》이 있다. 이 경전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설명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러한 법문을 내가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나라 왕사성 기타숲 외로운 이 돕는 절에서 큰 비구 삼만팔천 사람과 보살마하살 대중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대중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시다가 해골 한 무더기를 보시었다. 부처님께서는 해골 더미를 향하여 다섯 활개를 땅에 던져 예배하시었다. 아난과 대중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삼계의 큰 도사(導師)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오매, 여러 사람의 귀의(歸依)하고 공경하는 터이어늘 어찌하여 해골 더미에 예배하시나이까?”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시었다. 

“아난아, 네가 비록 나의 큰 제자로서 출가한 지 오래었거니와 사리를 널리 알지 못하는구나. 이 한 더미 해골이 혹은 내 전생(前生)의 조부모도 되었을 것이요. 또 여러 대에 나의 부모도 되었을 것이므로 내가 지금 예배하는 것이도다.”

환자의 가족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죽음이라는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복잡한 감정의 상태에서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과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앞의 글에서 서술한 불교의 윤회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을 또 다른 생을 통한 만남의 기약으로 대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둘째, 연명의료에 대한 현실적인 경제적 측면이다. 생활이라는 경제적 현실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아함 제126 《행욕경(行欲經)》에 잘 나타난다. 아래 경전은 재가자가 재물을 구하고 사용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 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여인이 정숙하고 어질다면 여인의 색이 없을 것이다. 아주 정숙하면 곧 두 가지 선한 가르침을 지닐 것이니, 이미 두 가지 선한 가르침을 받았다면 생업을 다스려 수입을 늘리려 하고 성내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집안을 지키려 한다. 이와 같은 여인은 단정함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이 여인은 다만 마음으로 하는 사람일 뿐이니, 남자 형제가 많아 강하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집안이 세력이 있고 귀하다고 스스로 높이려 들지 않으며, 또한 재산이 많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내세우지 않을 뿐이다. 곧바로 가르침을 받으며, 이미 가르침을 받았으면 잘 지녀서 게으름 피우지 않으니, 곧 생활의 방도를 세우려 하고, 마음이 화평하여 성내는 일이 없고, 집안일을 버려두지 않으며, 곧 생활의 방도를 세워서 집안을 잘 지키기 위해 걱정한다. 이와 같은 것이 정숙하고 어진 여인의 뜻이다.”

위 경전의 내용은 재가자가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구하고 절약하여 쓰며 만족할 줄 알고, 부모와 형제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경전의 내용은 여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것으로 2,500년 전 인도의 사회구조와 시대적 배경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를 오늘날 현대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적용할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명확한 것은 부처님께서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의 경제생활에 대해서 재산과 집안을 지키는 일을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명의료 결정 과정의 판단 기준으로 자신의 병 수발을 오래 하지 않는 것과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을 두 번째 주요 요인으로 응답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연명치료와 관련된 경제적 부담은 의료비에 잘 나타난다. 개인별 총 의료비는 연명의료 중단자가 미중단자에 비해 평균 1,445만 원을 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가 건강보험 차원에서 무의미한 생명의 연장과 경제적 부담은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로 나타난다. 이는 국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최소화하여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환자는 죽음의 과정에서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지혜가 요구된다. 또한 환자의 가족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이별의 고통,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부처님께서 삶의 매 순간 인지하고 결정해야 하는 지혜로운 선택의 방법으로 지관(止觀) 수행을 말씀하셨다. 지관 수행은 일체 경계의 모습[相]을 멈추고, 버리며,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환자의 가족은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의 슬픔, 상실감, 회한, 미련, 고마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경제적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에서 나올 것이다.

 

6. 맺음말

생로병사는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죽음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연명의료 결정은 자신의 죽음 과정에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연명의료 결정은 환자, 환자의 가족, 전문의사의 상담으로 이루어진다. 

대승불교는 생로병사 그 자체가 불변하는 근원적인 진(眞)과 망(妄)이 함께 있는 중생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생로병사를 포함한 모든 상[相]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 진과 망이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관 수행은 ‘사실 그대로 아는 것[如實知]’으로서 ‘태어남·늙음·병듦·죽음과 근심·슬픔·괴로움·번민에서 해탈’할 수 있도록 한다. 지관 수행을 통한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해탈인 깨달음과 윤회에 대한 믿음은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 과정에서 판단의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된다. 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과 보살의 원력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 이후의 다음 생을 준비할 수 있다. 

환자의 가족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죽음이라는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슬픈 감정의 상태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족으로 함께하면서 기쁘고, 슬프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괴롭고, 즐겁고, 가지고, 버리고, 편안하고, 두려워하는 무수한 경계에 대해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환자의 가족에게 윤회는 또 만남을 기약하는 것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준다. 

또한 연명치료로 인한 경제적 비용의 증가는 연명의료 결정의 중요한 판단 요인이다. 지관 수행은 이별과 죽음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상태와 경제적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연명의료 결정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

 

선오 minja6056@gmail.com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 졸업. 대전에서 중등교사로 근무.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도덕교육적 관점에서 본 한비자의 法·勢·術〉로 석사학위 취득. 출가 이후 동학사 강원과 제방 선원에서 수행.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어린이 불교 교육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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