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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아날라요 지음 《자비와 공(空)》
자비는 어떻게 깨달음의 발판이 될 수 있나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신진욱 buddhist108@hanmail.net

저자소개 : 아날라요 스님
1962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95년 스리랑카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2000년 스리랑카의 페라데니야 대학에서 《염처경(Satipaṭṭhānasutta)》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에는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교수자격시험(habilitation)을 통과하였다. 현재 함부르크 대학의 누마타 불교연구센터(Nu-mata Center for Buddhist Studies)의 교수이자, 대만의 다르마 드럼 인문과학연구소(Dharma Drum Insti-tute of Liberal Arts)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된 연구 분야는 초기불교이며, 특히 한문 아함경, 명상, 불교의 여성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자비와 공(空)》
민족사 2018년 11월 출간, 350쪽

독일 출신 아날라요 스님✽의 《자비와 공(空)-초기불교 명상 수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의 핵심 개념인 자비와 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붓다의 초기 설법 가운데 자비와 공이라는 주제와 연관된 부분을 빨리 경전, 한역 아함경, 산스끄리뜨 경전과 티베트 경전에서 내용을 발췌해 친절하게 비교 ・ 검토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불교에서는 현상은 영원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본다. 얼핏 보면 나무로 만든 탁자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본질적으로 개체적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관찰하는 관찰자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활동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탁자는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형상의 단계에서 나무로 만든 탁자는 나무들, 공기, 토양, 햇빛, 물, 목수 등 탁자의 존재에 기여한 수많은 것들과 분리될 수 없다. 이들 각각은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며, 깊은 통찰의 수준에서는 독립적이고 분리된 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현상의 공한 본질을 깨닫는 것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을 이원화하는 개념적인 구조를 세상과 존재들이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비개념적, 비이원적인 것으로 자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들은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하는 존재 방식의 힘을 통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이 모두 선천적으로 분리되고 독립적인 것처럼 물질과 서로의 존재들을 구체화하고, 집착하고, 이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 그러나 공에 대한 깊은 통찰은 모든 존재는 근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공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타자들이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구체화된 심상을 투사하면서, (좋은 것은) 집착하거나 (싫은 것은) 밀어냄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존재들을 향해 무조건적인 연민심을 가지고 세상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세상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모든 구체화된 집착을 넘어서는 공에 대한 비개념적 통찰은 고통의 원인에 계속해서 붙잡혀 있는 존재들을 향한 깊은 연민심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연민심의 튼튼한 토대가 되는 깊은 통찰이야말로 지혜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자비와 공(空)-초기불교 명상 수업》은 서구 심리학을 기반으로 자기 자비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자비의 불교적 맥락을, 불교 수행자들이나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빨리어, 한역, 산스끄리뜨어, 티베트어 경전을 동시에 다루고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전통을 아우르는 저자의 연구 방법론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경전 번역 및 연구 방법론은 서구의 명상가들, 임상심리학자, 그리고 불교를 공부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저자의 글이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존재의 실상을 밝히려고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가슴 따뜻한 감동을 주는 것은 교학과 수행을 겸비하고, 직접 수행을 통해서 체득한 내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연민의 성격에 대해, 2장에서는 표준적인 사무량심 안에서 연민이 놓여 있는 맥락에 대해 살피고 있다. 3장에서는 연민을 성숙시킴으로써 기대되는 결과에 대해, 그리고 이어지는 4, 5, 6장에서는 공(空)을 탐구하는 데 주력하고, 특히 명상을 통해 공으로 점차 나아가는 것에 대해 다룬다. 7장에서는 명상 수행을 하면서 연민에서 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8장에서는 《업에서 생긴 몸 경(Karajakāya-sutta)》 《공에 대한 작은 경(Cūḷasuññata-sutta)》 《공에 대한 큰 경(Mahāsu-ññata-sutta)》에 대응하는 중아함의 해당 경전의 번역문을 실었다. 

책에서 저자는 특히 연민의 기능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붓다의 초기 설법에서 연민의 의미를 이해하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맥락 안에서 그것을 파악하면서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때, 연민을 동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며 슬픔의 정서로 이해를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오히려 저자는 연민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슬픔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민은 타자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며, 상대방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연민이 빠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 연민을 사무량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마 사무량심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도를 닦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개인의 성장을 돕고 다른 사람도 그와 비슷한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강력한 힘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연민은 사무량심과 결합될 때 온전해진다. 연민이 기반하고 있는 자애는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애착과는 구분되며 분노에 대한 해독제로서 특정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무한하게 퍼져나간다. 또 연민은 더불어 기뻐함과 평점심으로 보완되는데, 이때 아주 깊은 평정심은 지혜바라밀과 동일하다. 이러한 연민심은 큰 바다처럼 광활하여 평온하고 무엇이든 배척하지 않으며 깊은 배려와 보살핌으로 감싸 안는다.

불교에서는 연민심과 지혜는 새의 양 날개처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지혜바라밀을 깨닫는 잠재력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으나 분리되고 독립적이며, 대상에 집착하는 우리의 뿌리 깊은 경향성이 비개념적, 비이원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근원적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연민심의 일차적 반응은 세상에 대한 비이원적 지혜이기 때문에 연민심을 기르는 것은 자아와 이원론에 집착하는 좁은 범위로부터 우리를 자유로워지도록 돕고, 비개념적 지혜와 무한한 공의 세계로 마음의 틀을 확장하는 용기와 힘을 준다.

무한하고 분리되지 않은 공의 지혜를 기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연민심을 더 많이 향상시킨다. 불교 수행자들은 마음의 힘을 실어주는 연민심 명상을 집중적으로 수련하여 비개념적 지혜를 함양하고 그것을 다시 연민심을 강화하는 동력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그리고 적대적인 사람을 향해 점진적으로 연민심을 배양하고,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서 연민심을 기르는 것까지 가르친다.

연민심의 힘은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자유를 발견하도록 돕는 방편적 수단이자 일종의 깨달음, 즉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한 염원에 이르게 하는 경로이다. 이러한 염원을 보리심(bodhicitta)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연민심과 지혜를 온전하게 깨닫고자 하는 보살의 서원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연민심은 마음챙김과 통찰을 심화시키는 깨달음의 전 과정과 명백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연민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서 물러나 있어야 하며, 몸 ・ 말 ・ 정신적 행위에 친절함을 결합함으로써 본격적인 수행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연민은 자기를 정화하고 내적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인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까시나 수행이나 호흡 수행도 수행자를 집중으로 이끌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연민 수행은 집중은 물론 수행자의 태도와 정신적 상태까지 변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사무량심 중 특히 연민은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를 갖지 않고 갈망과 감각적 욕망, 그리고 혐오로 반응하던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연민 수행에서 공 수행으로 나아가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사무량심의 함양이라는 큰 맥락 안에 연민을 설정한 뒤에 공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명상 수행에서 사무량심의 주요한 단계들을 자세히 살피며, 특히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사무량심의 확산 수행과 깨달음의 요소를 함양하는 수행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의 본질이 무상하다는 통찰을 얻을 때,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힘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같은 공감과 연민심은 온화함을 증진시키고 수용적인 마음챙김의 자질을 제공하며 더 넓은 통찰을 가능케 한다. 종국적으로 다른 이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고통에 대한 연민심과 이에 대한 자각을 향상시킨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공에 대한 통찰이 깊어질수록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자아에 속한 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명상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을 향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과정, 즉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의 전체 궤적을 단계별로 자세히 제시해 수행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연민의 발판 위에서 모든 욕망과 번뇌를 소멸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에 동참하길 희망해 본다. ■

 

신진욱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동국대학교 선학과 · 법학과, 동 정보산업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석사, 철학박사). 미국 우스터 주립대학 연수. 국제공인 MSC(Mindful Self-Compassion) Teacher. 《깨달음의 길》 《고통의 바다에서 하하하 웃으며 헤엄치는 법》 등의 공역서가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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