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큰 화두중 하나가 웰-빙(Well-being)이다. 전통적으로 한국문화에서는 어떤 대상에 짝을 찾아주고 싶어 한다. 처녀 총각에 짝을 찾아주는 일이 큰일이듯. 그렇다면 웰-빙에게는 어떤 짝이 있을까. 웰-다이잉(Well-dying)? 이를 무엇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 웰(Well)의 사전적 해석은 형용사, 부사, 감탄사, 명사 다양한 우리말이 대응되고 있다.

“잘, 훌륭하게, 완전히, 적당히, 건강하게, 확실히, 만족스러움, 좋음.” 그리고 웰-빙(Well-bing)은 복지, 안녕, 행복, 번영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요즘 시중에서는 웰-빙을 '참삶'이라고 우리말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웰-다이잉(Well-dying)을 '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상하다. '참'에 대한 반대어는 '거짓'일 텐데, '거짓 죽음'도 있다는 말인가?

이제 웰-빙이란 말은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데도 별 불편 없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웰-다이잉 이 그대로 통용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웰-빙은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삶'을 뜻하지만, 웰-다이잉은 죽음에 대해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형용사를 부친다는 것이 뭔가 이가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다.

죽음이란 '불행하고, 슬프고, 건강을 잃은' 생명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인생의 시작과 끝이 생과 사로 맺어지는 것이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함께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모습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생사일여)라고 했다. 이 말을 풀이하면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삶이 있다면, 죽음 또한 그러하다는 풀이가 되겠다. 그리고 반대로 죽음이 '불행하고, 슬프고, 건강을 잃은' 생명이라면, 우리의 삶이란 '고통스러운 바다'(苦海)임을 부처님은 깨달은바 말씀하지 않았든가.

그 어느 쪽이든 보기에 따라 다를 뿐이다. 생사를 초탈한다는 말은 이미 죽음을 있는 그대로 맞이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탐진치의 욕심에서 비롯된 분별심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기피 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다면, 죽음 또한 자연의 순리로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마음으로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생사(生死)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생사를 불문하고…' '사생결단하고...' '생사가 걸린..' 사는 것과 죽는 것은 극단의 대조적인 별개의 현상이지만 이를 합친 단어를 일상어로 사용 한다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별개의 현상을 하나로 엮어내는 문화문법이 있기 때문이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한국의 전통문화문법을 대대문화문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전통사회의 대대문화문법

한국사회의 밑바닥에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것은 한국인이 오랜 역사적 시간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오면서 쌓아 온 생활양식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로부터 생존을 위한 농사짓는 법이며 하늘과 조상에 바치는 제사, 희로애락을 함께하면서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축척된 모든 지혜가 생활양식 속에 베어 들어있다. 최근 수십 년 간 우리가 경험한 총체적 사회변화 속에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지던 생활의 지혜가 더 이상 의미 없고 소용없는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농사를 중심으로 한 생업은 어느 듯 상공업 중심의 생업으로 바뀌었고, 농촌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친족중심에서 직장중심의 인간관계로 우리 삶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변화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밑바닥에는 아직도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생활방식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대도시 아파트에 살지만 옛날 시골 장터 같은 노점상이 아파트 주변에 펼쳐지고, 친족간의 왕래는 큰일을 만날 때 마다 다시 재활성화 되곤 한다.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방식은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문화적 전통이다. 우리의 이 문화적 전통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본인은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첫째 한국인은 농경사회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점과, 둘째 중국의 한자(漢字)문화권 속에 살아왔다는 점이다.

농경사회는 농사를 짓는데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차적으로는 가족과 친족이 함께 일하고 다음으로 이웃해 살고 있는 동리사람들이 품앗이로 서로 도와야한다. 농사는 무엇보다도 자연의 절기와 환경에 순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과학 기술문명으로 조성된 현대 상공업 사회는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을 위주로 하는 사회이어서 농경사회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기본인 농경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서로 간에 순응하며 안정적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현대사회는 성원들 서로 간에도 적대적 경쟁관계 속에서 살아야한다. 그래서 끝없는 긴장과 대립 속에서 계약적인 법률적 조정을 통해 서로 간에 분업을 지속하는 하는 것이다.

가족적 인간관계는 농경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가족단위를 넘어서는 친족관계도 가족관계의 확대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연 집단도 가족관계로 확대되고 있고, 나라 전체가 국가(國家)라는 표현 속에 가족을 뜻하는 집 가(家)자가 들어갈 정도로 가족관계의 확대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집안에 어른이 있듯이, 마을에도 어른이 있고, 나라에도 어른이 있어야한다.

어른은 그가 거느린 사람들을 단속하고 인도해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여기에는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회제도적 장치가 있게 마련이다. 효와 충이라는 유교적 이념은 바로 이러한 사회제도적 장치를 뒷받침하는 근간이다. 일년을 단위로 하는 연중행사에는 설날과 추석 등에 조상님들에게 가족과 친척이 모여 합동으로 조상숭배의 제사 의례를 통해 서로 한 핏줄의 후손이라는 집단의식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제사 의례에서 누가 어떤 순서로 절을 올리느냐에 따라 서로 간에 위계 서열을 재점검하기도 한다. 집단성과 위계적 등급성은 가족생활의 눈에 보이지 않은 문화문법이다.

농경사회의 가족생활에 내재한 문화문법은 현대 산업사회의 가족생활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가족집단에서 비롯된 문화문법은 가족집단을 넘어선 여러 사회집단에서도 소속집단의 경계를 따지고, 집단내의 위계적 등급을 따지며 살아가고 있다. 소속집단의 경계를 따진다는 말은 상대가 같은 집안사람인가, 같은 고향사람인가, 같은 학교 출신사람인가, 같은 회사사람인가 등을 따지는 의식을 말한다.

위계적 등급을 따진다는 것은 가족관계에서 누가 손윗사람인가, 학교 선후배 사이에서 누가 선배인가, 누가 나이가 많은가, 누가 직장 선배인가 등을 따지면서 등급의 상위에 있는 사람은 하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대접 받을 것을 기대하는 문화문법이다. 여기 한 가지 더 추가되는 문화문법의 규칙이 있다. 집단성과 등급성을 잘 지속하기 위해 때로는 “연극/의례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럴 수도 있지!”, “없던 일로 합시다.”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뵈?!”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문화문법이다. 이러한 문화문법을 통 틀어서 ‘우리주의’ 또는 ‘가족주의 문화’라고도 하나 본인은 이러한 한국전통 문화문법을 “대대적 문화문법”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국전통 문화문법을 “대대적 문화문법”이라고 풀이하는 근거는 한국 전통사회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자문화권의 일환으로 파악해야한다는데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문화」의 「문」자도 원래의 뜻은 문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문양과 일맥상통한다고도 보겠다.

나는 조선전통문화의 문법을 이러한 한문자에 내재하는 '음양적 원리에 입각한 대대(對待)적 인지구조'라고 정의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대대적 문화문법'이라고 규정해 보았다. 대대(對待)는 for와 against라는 pro-con의 개념이다. 즉 相「對」하고 反「對」하는 對이요,「待」遇하고 期「待」하는 待이다. 어쩌면 시(是)비(非)의 논리의 세계이다. 이는 곧 음과 양의 이분법적 「對」의 개념이요, 음과 양의 「待」의 화합으로 만물을 화생시키는 개념이다. 대대는 바로 이 상보적 음양의 작용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대적 인지구조는 레비-스트로스가 말하고 있는 인간사고의 기본구조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을 “서로의 짝”으로 보는 것은 이러한 한자문화권의 대대적 문화문법에서 비롯되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남녀노소”라고 일컫는데도 남녀를 짝으로 설정하고, 이어서 노소를 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다시 사람의 일생을 “생노병사”로 보든가 아니면, “관혼상제”의 통과의례로 보는데 서도 “서로의 짝”의 개념은 일관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사람은 태어나서 늙는 것이오, 병들어 죽는 것이다. 어른으로 관례를 치르고 혼례를 치러야 하고, 죽으면 장례를 치러야하고 이어서 자식들은 매년 제사를 올리며 죽은 이를 잊지 말아야한다.

서양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 신의 아버지 크로노스 신은 자기 부인이 자식을 낳으면 낳는 족족 잡아먹어버린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부인은 마지막으로 낳은 제우스를 숨기고 갓 난 짐승을 대신 먹게 하여 제우스를 살린다. 뒤에 장성한 제우스는 어머니로부터 자기 형들과 누나들을 모두 아버지가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이고 아버지 뱃속에 있던 오누이들을 살려낸다. 이 신화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생존(being)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하는 가를 말하고 있고, 앞선 세대는 죽어야(dying) 새로운 세대의 시대가 열린다는 뜻도 함의하고 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태어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의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죽어야한다. 죽지 않으려 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다. 우리의 문화전통에서 본다면 이 서양 그리스 신화는 너무 끔찍하게 들린다. 그러나 “세대는 변해야한다”는 사실은 동서양이 차이가 없다. 부처님도 “제행무상”이라고 하였고, “생주이멸”이라고도 하였다. 우리의 문화전통에서 죽음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위상”을 달리한다. 세상을 떠났으므로 “신적인 존재”가 된다.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면서 죽은 자는 산자 사이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한국인에 있어서 중요한 사회적 의례로 손꼽힌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 상례(喪禮)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잊고 산다. 그러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에 접하게 되면 새삼스럽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은 특히 전통적 의례인 상례에서 그대로 만나보게 된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가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다 함께 생각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죽음을 맞은 사람이 가족의 일원일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서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 사이였다면 한 집안의 큰일로 여긴다. 옛날 농촌사회에서는 농사일에 공동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며 살았다. 동네사람 모두가 한 집안 친척처럼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기 때문에 어느 집안에 일어난 초상도 동네 전체의 초상으로 여겼다.

상을 당한 가족을 위로하고, 장례를 치르기 위한 모든 일을 일가친척과 이웃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다. 모든 것을 함께 해온 농촌사회에서는 동네 청장년들이 위친계라는 계(契)조직을 일찍부터 만들어 이끌어 왔다. 집안의 어른들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초상을 위해 미리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병자에게 죽음이 임박해 오면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그 죽음을 지켜본다. 유교전통에서는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지막 이승의 작별을 지켜보지 않으면 가장 큰 불효(不孝)로 여겼다. 부모가 돌아가실 경우 마지막 유언을 듣는 기회이기도 하다. 병자가 숨을 거두고 운명을 하면 젊은이가 곧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고 지붕위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며 ‘아무개 복’(復)하고 세 번 부른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 북쪽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해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대문밖에는 사자(使者)상이 차려진다. ‘저승에서 죽은 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오는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음식상’이다. 죽은 자의 혼을 부르는 ‘복’(復)이라든가, 사자 상을 차리는 ‘사자 밥’ 풍습은 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속신앙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모가 돌아갔을 때 장자는 상주가 되나 슬픔에 젖어 있기 때문에 상례의 총 지휘는 호상(護喪)이 맡게 된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관련된 업무를 분담시키며 처리한다. 부고를 내고 평소에 사귀던 사람들에게 알리는 등 장례 절차를 치르는데 일련의 일을 호상이 지휘, 처리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가정의례준칙으로 부고를 돌리지 못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한사람의 죽음은,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바람처럼 빨리 전해지기 마련이다. 옛날 촌락사회에서 마을 전체가 초상에 참여하듯이, 부음을 들으면 곧 문상을 가는 것이 우리의 예의인 것이다. 상주를 위로하고, 죽은 이에 대한 조의를 표시하고, 부의금을 내고 서로의 친분관계를 다시 한번 다지는 것이다.

옛부터 초상이 나면, 초상이 난 집에서는 지인 들이 모여 밤샘을 한다. 주로 젊은이들이 중심으로 망자(亡者: 죽은 자)가 있는 곳을 밤새도록 함께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주와 그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며, 외롭게 홀로 두지 않으려는 애틋한 풍습이 아직도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요즈음도 이러한 전통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오는데 병원 영안실에는 한편에서는 슬픔에 젖은 상주가 있고 또 한편에서는 조문객들로 성시를 이룬다.

미국에서 장례 치르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적이 있다. 장례는 전적으로 장의사에게 맡겨지는데 시신도 물론 장의사에게 맡겨져 진행된다. 우리 같이 밤샘을 한다든지 술상을 차려 손님을 대접하고, 화투놀이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촌락에서 행해지던 우리의 풍습은 오늘날 우리의 산업화된 도시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도시화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망자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만나게 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유교에서의 기본정신은 ‘죽은 이를 살아 있는 이 섬기듯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상례부터 제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생각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상례도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꾸미는 일이라고 풀이된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 배고프지 않도록 입에 쌀을 넣어주고, 혹은 노자(路資: 길가는 데 필요한 돈)돈으로 동전을 넣어주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쌀을 망자의 입에 넣을 때 “천 석이요, 이천 석이요” “삼천 석이요”하고 외치는 풍습도 있었다.

시신을 염해서 묻고, 관에 넣을 때는 상주와 상제가 참여해서 곡(哭)을 한다. 죽은 망자에 대한 슬픔의 표현인 곡은 상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입관하고 난 다음에는 아침저녁으로 관 옆에 서서 곡을 하기도 한다.

다음에 상복(喪服)을 입는 절차는 전통적으로 매우 복잡했다. 상복을 오복(五服)이라 해서 다섯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복을 입는 사람들을 오복지친(五服之親)또는 유복자(有服者)라고 한다. 죽은 망자와 얼마나 가깝고 먼 사이인가에 따라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다르고, 상복에 쓰이는 재료와 종류도 다름은 물론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일 경우 둘 다 3년간의 상복을 입지만, 상복의 재료가 다르고, 아랫단을 꿰맨 것과 꿰매지 않은 것으로 구분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 또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는데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 경우에 할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상장(喪杖)을 짚고 1년 동안만 상복을 입는다는 등 가족성원의 구성이 어떠한 경우 어떤 유형으로 상복을 차려 입느냐 하는 것을 매우 복잡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죄인이 된 것과 같다고 유교 전통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마땅히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데 자기의 잘못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 그러한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기간이 길고, 재료가 굵은 삼베로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을 입은 사람은 죄가 가장 크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복의 종류는 가족의 위계서열을 일깨우는 역할도 한다. 가족에 있어 자기의 위치가 어디쯤 있는가를, 상복을 입게 됨으로써 자각하도록 일깨워 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장례는 각자가 가족의 구성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리고 앞으로 알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사회적으로 공인 받는 의식이기도 한 셈이다.

죽은 자의 신분에 따라 옛날에는 석 달 또는 한달만에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일반 서민은 3일장, 5일장 등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달랐다. 죽은, 망자가 살아서 어떻게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조문객의 문상을 받느냐로 판가름 받기도 한다.

꽃가마 상여는 새로운 세계로 출발한다는 뜻이다. 조상들은 저승으로 갔지만, 이승에 남아있는 자손들은 망자를 3년 동안 조석으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받들어 모신다. 이것은 가족주의 문화전통 속에서 조상이 언제나 자손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례(祭禮)의 문화적 전통

우리 사회의 변화는 생활의 어느 한 부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총체적 변화이기 때문에 도시, 농촌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계층이나 직업을 불문하고,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동안 경제개발을 목표로 한, 산업구조의 전반적 재편성은, 과거의 농경사회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생활환경을 그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변화도 전통적 생활방식에 안주해서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산업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면 밤낮으로 뛰며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의 변화에 맞춰 그렇게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변화의 물결이 강하면, 그 만큼 변화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물결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때로는 변화자체가 두려울 때도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문명은 변화를 예측하고, 변화를 통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앞으로 닥칠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자연변화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는 그 속에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 그리고 무수한 별들, 바람, 비, 산과 강등에 내재하는 어떤 초자연적 존재를 믿었다. 과거의 농경사회는 자연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에 내재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너머에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초자연적 존재에 대하여 생명을 유지시키는 음식을 바치며 기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인간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천지신명에게 인간의 보살핌을 기원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인간이 사는 것은 사회이다. 사회는 인간이 태어나는 가족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족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상 없는 자손은 없다. 오늘에 우리가 있는 것은 조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상은 살아생전뿐 아니라,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자손을 돌보고 있다고 믿었다.

한국에서 가족이 강한 결속력을 가지는 것은, 돌아가신 조상이 언제나 후손을 돌보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상이 후손을 돌보고 있다면 자손은 조상의 공덕을 잊어서도 안 되고, 조상이 후손을 돌보듯이, 자손은 조상에 대해서 계속해서 그 공덕을 기려야 한다.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 계실 때와 같이 효(孝)로써 받드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이 살아서 앞에 계시는 듯해야 하고, 돌아가신 분 섬기기를 살아 계신 분을 모시듯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일반가정에서 봉행 되어 오던 제례(祭禮)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당제이다. 집안에 사당을 모시고, 고조이하 4대의 신위를 봉안하는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돌아가신 기일에는 제사를 올렸다. 집안에 큰일이 생겼을 때 반드시 먼저 아뢰고,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먼저 조상의 사당에 올렸다. 계절이 바뀔 적에도 사당에서 제사를 올렸다.

특히 동지(冬至)에는 시조제(始祖祭)를 올렸는데, 동지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출발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입춘(入春)에는 선조제(先祖祭)라고 해서 시조이하 고조이상을 제사지내는데 만물이 싹트기 시작하는 입춘을 맞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기제(忌祭)를 올리지 않는 4대조 이상에게는 3월 상순에 묘제를 올렸다. 사대봉사(四代奉祀)라 해서 위로 4대까지는 돌아가신 날에 기제를 올렸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흔히 행해지고 있는 제례는 차례(茶禮), 기제, 시제(時祭)등인데, 차례는 사당제와 함께 혼합되어 지역과 가문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대체로 설날, 대보름날, 한식, 단오, 칠석, 추석, 중양, 동지등에 지내는데 이중에서도 설과 추석에 많이 지내고 있다. 시제는 묘제, 묘사, 시향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따져보면 우리의 조상들은 옛날에 한 해를 제사로 시작해서 일년 동안 끊임없는 제례로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제례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만큼 중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점에서 일상생활의 주기를 가늠하고, 생활의 구심점을 찾는데 조상을 생각하는 것이 그 정점을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제사상을 준비하는 데는 몸과 옷차림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다한다든지, 제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며 절을 하면서 오늘을 있게 한 조상님들을 새롭게 다시 뵙는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그것을 진열하는 과정에서 선대의 어른들이 어떻게 했던가를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들이 배우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제삿날에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가 어떻게 무엇을 도와야 할 것인가를 의논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제 때는 지방각지에서 모인 친족들이 종친회를 열어 종친회사업과 결산보고를 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생활은 점차로 핵가족을 중심으로 분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 치러지던 각종의 의례들을 점점 더 멀리하게 만든다. 시간의 여유가 없고, 그리고 끈끈하게 묶어 놓았던 동족간의 유대도 옛날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물결이 간헐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민속 설이 새롭게 부활되고, 이에 따라 음력설날 제사지내는 풍습도 되살아나고 있다. 설날과 추석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은 새삼스럽게 뿌리를 찾아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모습의 한 단면인 셈이다.

한나라의 문화적 전통은 그 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한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가족주의라는, 가족을 중심으로 결속되고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데 있었다면, 그 가족의 근원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흔히 하던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오늘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시 다음의 자손들에게 튼튼한 뿌리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나오는 말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로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오, 무형의 존재로 자손들을 돌보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내어줄 사람이 없다든가, 제사를 지내줄 자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인연업보로 이어지는 윤회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의가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자손이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며, 제사를 받고 안 받고 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이승을 떠났으면 저승에 태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을...

그러나 웰-빙과 웰-다이잉을 이야기하고 보니 우리의 선인들이 살아온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아야만 했고, 그 가운데 그 분들의 생각과 의례를 다시 되새겨 보면서 적어본 이야기이다. 오늘날 이러한 이야기는 지난 이야기다. 이른바 웰-빙 족들에게는 무의미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고, 마음먹기 달렸다”면 죽음에 대한 관점도 각자 자기식의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한 가지 관점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전통사회는 어떤 한 가지 지배적인 관점으로 모든 사회성원들에게 강제적으로 따르게 하였다.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웰-빙이라는 하나의 단어도 이를 각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실재로 어떻게 무엇으로 그 내용을 만들고 있는가를 본다면 천차만별일 것이다. 웰-빙이라는 유행어로 포장된 각종 상업적인 내용의 상품소비 활동이 결코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삶”을 보장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웰-다이잉 역시 각자 자기 식으로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웰-다이잉은 웰-빙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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