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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홍법사 “포교 노하우? Just Do It!”
현장보고 | 한국불교 희망을 찾아서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하성미 hasm77@daum.net

일상의 안부를 물을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내면은 더 많이 공허해 합니다. 

마음은 내가 가진 것과 상관없이

순간순간의 감성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때때로 묻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내 마음은 지금 안녕하시냐고…….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버릇처럼 핸드폰을 확인한다. 어김없이 들어와 있는 카톡 메시지, ‘홍사홍사(홍법사랑 홍법사진)’에 빨간색 표시가 떠 있다. ‘마음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는 부산 두구동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의 메시지가 다정하게 들렸다.

며칠 전, 수년 동안 이어온 SNS 포교 방향을 바꿨다는 심산 스님은 아이디를 불러달라고 했다. ‘핸드폰 문자 포교는 식상하지 않을까?’ 기가 막힌 새로운 포교 방법이 궁금하던 차였고 노하우를 알려주기를 기대했다. ‘근데 핸드폰 SNS 포교라니……’

시큰둥하게 아이디를 불렀고 홍사홍사에 가입됐다. 

“포교 노하우를 전해주세요.”

스님은 잠시 침묵했다. 

“노하우?” 

심산 스님은 미간을 모으고 눈을 치켜뜨고 작은 눈을 깜빡거렸다. 

“글쎄,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런 게 있을 수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답을 안 하시려나? 왜 답을 안 해 주시지?’란 생각으로 다시 물었다. 그리고 분명 놀라운 포교 방법이 있을 거란 확신으로 눈에 힘을 주고 기다렸다. 

“허허 글쎄…… Just Do It!(그냥 하는 것) 맨땅에다 헤딩이었어요. 포교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사용했다는 게 답인 거 같아요. 가끔 포교 방법을 묻는 스님들이 있긴 했는데, 그럼 이 말은 잊지 않고 해줍니다. 처해 있는 상황, 즉 ‘바로 그곳이라서 가능한 일을 해보자’란 의지로 시작하라고요. 모든 제반 상황을 갖춰 포교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처한 환경에서 바로 당장 시작하세요” 

지금 서 있는 그곳이 곧 밑천이란 뜻이다. 다른 기반에 눈을 돌리는 시간도 아깝다는 말이다. 일단 손에 쥐고 있는 것부터 당장 시작하면 길은 보이고 문은 열리고 서광은 비친다는 설명이다. 

홍법사도 그렇게 시작됐다. 
 

비닐하우스 법당에서 시작한 홍법 

2002년 동짓날,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심산 스님은 부산 두구동 홍법사에서 첫 법회를 봉행했다. 나무와 풀 그리고 낡고 초라한 요사채가 첫 법회에 함께했다. 

창건주 고(故) 하도명화 보살의 ‘절을 짓고 싶다’는 원력에 고개를 끄덕이고 찾아온 곳이 바로 지금의 홍법사 터인 신창농원이었다. 당시 농원은 그린벨트에 묶여 불사조차 할 수 없는 땅이었다. 

스님은 무엇을 꿈꿀 수 있었을까? 첫 법회가 있기 전, 6개월간 스님은 요사채에서 은거하며 ‘홍법(弘法)’만 머릿속에 담고 궁리했다. 

당시 부산 두구동은 변두리에 위치해 접근이 어렵고 사람들이 찾기엔 불편해 도심 포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천년고찰도 아니어서 조건으로 보면 가진 것 하나 없고 한계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어떤 각오로 그럼 첫 법회를 여신 건가요?”

당시 포교 계획이 궁금했다. 

“물론 상황은 열악했지요. 그러나 어려워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만 먼저 생각을 했지요”

당장 법당이 필요했다. 스님은 30평 남짓의 농장 관리 사옥을 개조해서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첫 시작 법회에 찾아온 불자는 10명이 전부였다. 

포교만 생각하는 의지는 불가능한 조건을 가능한 상황으로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불사를 막는 그린벨트는 자연을 보호하는 보호막으로 바뀌었다. 무성한 나무와 꽃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동물들이 있어 자연이 살아 있는 천혜의 생태 환경이 되었다.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데다 평지여서 법회를 열기 좋았고, 학습터로도 인기를 끌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미타대불이 불자들을 맞이하는 부산 홍법사 전경

불리한 환경을 장점으로 생각을 전환한 뒤 심산 스님은 모든 이가 찾아올 수 있는 홍법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스님은 템플스테이 사찰로 등록했고 그 결과 홍법사는 2002년 조계종 종단에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 사찰을 지정할 때 전국 5개 사찰 가운데 하나로 인정을 받았다. 단청과 기와 등 화려하게 꾸민 법당도 없었지만 농장이 가지고 있는 자연을 학습터로 이용했다. 불교 포교뿐 아니라 교육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홍법사를 찾았고 외국인을 위한 법회와 활동을 넓혀가며 한국인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영어와 자연, 과학 체험 등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문화로 모든 이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템플스테이는 성공적이었고 문화 프로그램을 찾는 학부모와 어린이 그리고 연세 많은 어르신까지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불교 법회와 기도라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버리고 모든 이가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열린 공간을 지향해 이룬 결과였다. 일명 마트형 문화센터처럼 각종 학습 및 문화 프로그램들이 주말마다 열렸다. 절에서 기타를 배웠고 영어를 공부했으며 성악과 발레를 익혔다. 

취미와 신행활동까지 모든 분야에 활짝 문을 열어두었다. 홍법사는 1세 영아부터 100세까지 연령을 초월했고 불교 신자와 비신자까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첫 법회를 봉행한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30평 사옥은 점점 좁아졌고, 스님은 옆 건물을 허물어 비닐을 잇고 공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법당이었지만 사람들은 넘쳐났고 함께해야 할 일도 넘쳐났다. 

5년 후, 기적처럼 그린벨트 지정이 풀렸다. 마음속에 그려두었던 불사를 드디어 시작할 수 있었다. 2008년 6월, 지금의 대웅보전을 짓기 위해 기공식을 열었고 1년 만에 완공했다. 

“가피!” 

불사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스님은 “오직 ‘가피’ 이 단어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기공식 후 공사가 진행됐다. 콘크리트를 붓고 난 후 굳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내린다고 해 모두의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홍법사에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

“홍법사 다리 건너에는 비가 왔지만 경내에만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구름에 구멍이 난 것처럼 홍법사에는 해가 비췄다. 콘크리트가 다 마르고 나서는 인부가 한 번 씻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500평이 넘는 곳을 무슨 수로……’ 스님은 방법이 없었다. 그냥 공사를 진행해야 하나 걱정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물이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비!”

일기 예보와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또 홍법사에만 비가 쏟아졌다. 정확하게 500평을 다 씻기고 난 뒤 예불을 시작하기 전에 비가 그쳤다. 

비가 내린 뒤 스님은 공사 현장에서 우두커니 서서 말을 잇지 못했다. 환희심에 가득 차 부처님만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대웅보전을 바라보았다.  

홍법사의 불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10년 10월 10일 개원 7주년에는 아미타대불 점안식을 열었다. 아미타대불의 높이는 21m로 건물 높이까지 더하면 45m에 달하는 국내 최대 좌불상이다. 아미타대불에는 달라이 라마가 보내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금정산과 철마산 자락이 연잎처럼 둘러싸고 있다. 낮에는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내리비추며, 해 질 무렵에는 붉은 황혼이 광배가 되어 온 중생을 맞이한다. 깊은 밤 아미타부처님 옆으로 떠 있는 밝은 달은 마치 부처님과 속삭이는 모습이며 함께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듯 황홀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름다운 극락세계에 머무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홍법사에 서면 부처님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듯 포근함마저 감돈다. 

“스님, 이렇게 큰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이유가 있나요?” 

이번 질문에도 스님은 빙긋할 뿐 침묵이다. 그리고 이내 살짝 장난기 있는 눈빛으로 변하더니 속삭이듯 “옆에 교회 때문에.”라고 답한다. 

   

홍법사 대광명전에서 열린 세계선차아회(2017.9)

이번에도 예상이 빗나갔다. 굉장한 원력을 담아 멋지게 설명해 주실 줄 알았는데…… 

“사실, 아미타부처님을 처음 모시려 했을 때는 크기가 작았어요. 그런데 옆에 교회 십자가가 탑 때문에 위로 삐죽 서 있는데 안되겠더라고요. 저것보다는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너무 단순한 이유라 말하기도 좀 이상해요.” 

십자가보다 더 높이 부처님을 모셔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내 바위보다 더 굳은 스님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오직 부처님을 최고로 모시고 싶어 하는 스님의 올곧은 마음이 이룬 불사였으리라. 

홍법사는 정토를 상징하는 대웅보전 원형법당을 중심으로 그 위로는 전국 최대의 아미타부처님이 부산을 내려다보고 있다. 법당 오른쪽에 난 숲길을 따라가면 독성각이 있으며, 전각 안에는 창건주 하도명화 보살이 평생 원불로 모셨던 나반존자가 창건 이념 ‘홍법’의 의지를 들려주듯 자리하고 있다. 또한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생태학습장, 수각, 연못 등을 만날 수 있으며 잔디밭은 불자와 시민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홍법의 주인은 ‘수행 공동체’ 

지난해 2018년 12월 9일 홍법사는 개산 15주년을 맞아 기념음악회 ‘홍법 칸타타’를 부산 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했다. 

이날 심산 스님은 “영 · 유아 어린아이부터 연세 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취미 생활에서 믿음 깊은 신행생활까지 함께 어울려 만들어가는 홍법사 공동체”라고 홍법사를 정의했다. 홍법사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이다. 

홍법 칸타타에서는 이 말을 증명해주듯 유아부터 청소년, 청년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모두 빠짐없이 무대에 올랐다. 

 

온 정성 가다듬어 큰 정성 올리옵고 

바른 뜻 고요한 마음 정성 모아 

홍법의 노래 공양 올리옵나니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진리로 살게 하시옵소서 

 

무대 막이 오르자 1부가 시작됐다. 무대 스크린에는 간절한 발원을 담은 글이 모두의 마음을 대신하듯 적혀 있고 스님들은 목탁을 치며 무대를 돌고 ‘도량석’으로 시작을 알렸다. 스님 뒤를 이은 청신녀와 청신사들은 연꽃등을 들고 천천히 무대 가운데로 나왔으며 무대를 환히 밝히는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이후 〈밀려드는 빛〉 〈법으로 하늘 열리고〉 〈청보리의 물결〉 등 홍법의 역사를 알려주는 곡들이 무대에서 울려 퍼졌다. 홍법사 동림 소년소녀합창단과 나이는 많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공양 올리는 혼성 합창단 청솔 등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자리였다. ‘홍법 공동체’ 그들을 향해 심산 스님은 “홍법사의 역사이며 앞으로의 미래”라고 말했다. 

홍법사는 무엇보다 각 신행 단체들의 협력과 봉사 활동이 뛰어나 큰 수레바퀴처럼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 발전의 주 원동력이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개인의 작은 사리사욕에서 떠나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익히며 노력하면서 그들은 함께 성장하고 부처님의 사람으로 자라갔다. 공동체의 힘을 배우며 성장한 그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홍법사 신행 공동체 가운데 자모회 ‘세향’을 만났다. ‘세상을 향기롭게’를 줄인 말인 ‘세향’은 자모들에겐 큰 의미가 됐다. 세상을 향기롭게 하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일 거다. 

처음엔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그렇듯 자식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기 위해 홍법사를 찾았다.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좋았고 아이들이 넓은 홍법사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들이었다. 

“홍법사는 보기에도 좋잖아요? 가족 농장 같고 푸른 잔디에 계절마다 피는 꽃과 열매 맺는 나무. 이런 곳이 있는데 멀리 놀러 갈 필요도 없고 또 절이니까 자녀 인성 교육도 될 거라 생각했죠.”

첫 시작은 대부분 이런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들여놓고선 그동안의 기대나 생각들은 착각임을 뼈저리게 알았다. 

   

부처님오신날 행사의 하나인 동자승들의 환계식

홍법사는 “자녀를 위한 신행처가 아니라 자모를 위한 특공부대(?)” 같았다고 했다. 아이들의 활동 지원뿐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 신행 활동 그리고 홍법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 불교계 대표 행사인 봉축행렬까지 참여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너무 커 처음에는 놀랐지만 참여하는 만큼 불교에 대한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홍법사 자모회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2002년 첫 법회 후 다음 해 바로 어린이법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주 5일 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주말 프로그램을 찾아야 했고, 홍법사에서 준비한 문화센터 교육은 주목을 받아 아이들이 늘어났다. 자모들이 함께 왔기에 자연스럽게 모임이 결성됐다. 홍법사는 자모들을 교육 주체로 삼기 시작했다. 

영어, 발레, 플롯, 댄스, 기타 연주, 사물놀이까지 각기 다양한 수업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었는데, 숨은 공로자가 바로 자모들이다. 주부들의 고학력이 한몫한 것이다. 

김경숙 소장(홍법사 청소년교육연구소)은 “요즘 어머니들은 모두 고학력이다.”라며 “매주 일요일에 진행되는 법회와 문화관 수업 주축이 어머니들이다.”라고 말했다. 

활동할 수 있는 판을 열어주고 서로를 위해 손발을 맞추면서 자녀를 위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스스로 궁리했다. 외부 강사비가 안 들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어머니들이 자녀교육을 부탁하러 왔다가 스스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자녀들을 더 알고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서로의 자녀를 책임지고 도와주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부처님의 법을 기준으로 교육하고 서로가 충고해주니 반박할 것조차 없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침이 곧 배움이 된다는 말은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를 넘어 신행 도반에게도 적용됐다. 좋은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법회반, 문화반 등 각 팀에 맞춰 전문팀을 꾸렸으며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해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자신의 아이들은 다른 부모를 스승 삼아 배웠고, 어머니들은 다른 가정의 자녀를 위한 부모가 됐다. 봉사를 통해 남을 위한 마음을 내는 것을 배웠고 사랑하게 됐으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바라보는 눈과 귀를 갖추게 되었다. 

홍법사는 신행 단체를 다채롭게 마련해 자모회뿐 아니라 합창단, 봉사단, 다도반 등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대부분의 신행단체가 자모회처럼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스승이 되기도 하며 제자가 되기도 하는 서로의 끈끈한 인연 공동체로 함께 성장 중이다. 


또 한 번의 도약 ‘불교의 생활화, 세계화’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

홍법사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불교의 생활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심산 스님은 조계종 부산연합회 회장으로 매년 재가자를 위한 안거를 실시했다. 재가 안거에는 2,000여 명의 부산 불자들이 매년 동참하고 있다. 안거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사항은 기본 수행법과 선택 수행법으로 나뉘어 있다. 기본 수행법은 수행 기간 동안 매일 지켜야 하는 수행으로 △삼귀의 △나와 이웃의 행복을 기원하는 수행서원문 염송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7보 선행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7보 선행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후 사방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 “삼계가 고통에 잠겨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선언에서 기초했다. 수행뿐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희사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보살행을 강조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수행지침이다. 

7보 선행에는 가족과 이웃, 도반을 위한 작은 선행, 환경을 위한 작은 선행, 생명을 위한 작은 선행 등이 포함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은 △사랑의 표정과 언행 유지하기 △웃으며 인사하기 △대형 마트보다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 상점 이용하기 △물은 한 번 이상 재활용하기 △채식 위주의 식단 실천하기 등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인 지침은 불자들의 생활을 불자답게 이끌었다. 홍법사 신도들은 주축이 되어 함께 동참했다. 그 결과 가장 큰 성과는 어린이 안거와 가정 신행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매일 밤 홍법사 가정의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함께 108배를 하며 기도를 올리고 사경과 사불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밴드에 자신들의 수행 이야기를 적어 올리고 서로를 독려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수행 기록은 무엇인가요?” 

가정에서 진행하는 그들의 수행 모습이 궁금했다. 김경숙 소장은 핸드폰을 열어 보여준다. 앞뒤가 막힌 주황색 텐트 속에 어린아이와 부모들이 합장한 채 서 있다가 몸을 숙여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다시 고개를 들자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린다. 

“여기는 집이 아닌 거 같은데 어딘가요?” 

“휴가 중에 텐트 안에서 절 수행을 하는 모습입니다. 자녀와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휴가 중에도 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가족이 함께 수행하며 생활 가운데 선행을 실천하고 서로 모범이 됐다. 수행을 기본으로 삼으며 가정이 곧 도량이 된 것이다.

어린이와 재가자 안거는 홍법사를 넘어 부산불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이끌어내는 전초기지가 됐다. 지금 현재도 어린이 안거와 재가 안거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 동참한다.

어린이들의 수행법은 특히 ‘내 안의 감사 향기’라는 프로그램을 이끌어냈다. ‘내 안의 감사 향기’는 매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부처님 앞에서 감사할 내용을 찾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린이 눈높이 안거 수행 프로그램’이다.어린이 ‘내 안의 감사 향기’ 회향식에서 심산 스님은 직접 어린이를 만난다. 만나서 합장한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수행 프로그램 책에 도장을 찍고 “잘했다.”며 눈을 마주친다. 아이들의 머리에는 스님들이 뿌려주는 꽃잎이 흩날리며 수행의 삶을 축복하는 의식도 진행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홍법사는 불교의 세계화를 꿈꾼다. 세계를 무대로 세계일화(世界一花)를 꿈꾸고 이루고자 진력한다. 이 꿈은 창건 당시부터 진행됐다. 2003년 국제불광회 한국 부산협회로 출범하고 국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몽골을 위한 사업으로 헌 옷 보내기도 진행했다. 한국-인도 수교 41주년을 기념하여 마하트마 간디 흉상을 홍법사 경내에 세우고 제막식을 열었으며, 인도 KITT 대학과 상호교류 협력도 체결했다. 이후에도 세계 차인들을 위한 축제 선차아회와 세계선차문화교류대회 등도 열었다. 

심산 스님은 “온 세상이 불국토가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정진할 것”이라고 홍법 칸타타 행사에서 밝혔고 대중들은 함께 동의하는 박수를 보냈다. 

홍법사 도량에는 매년 봄이 일찍 찾아온다. 아기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털옷을 입은 목련 싹과 함께 매화 향이 코끝에서 맴돈다. 조금만 지나면 벚꽃이 만개하여 아미타부처님 아래 화려하게 흩날릴 것이다. 아이들은 푸르게 올라오는 잔디 마당에서 뛰어놀고 가족과 함께 산책 온 시민들은 커피와 간식을 들고선 아이들을 부르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걸어가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가 다정하게 바라볼 것이다. 

2002년 오직 ‘홍법’만을 가슴에 품고 농원에 첫발을 내디딘 심산 스님은 아무도 없는 휑한 공간에서 풀 한 포기를 보았고 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금정산과 철마산 자락에 피어나는 황혼과 별빛을 바라보며 마음에 그렸을 것이다. 풀 한 포기, 작은 나무조차도 함께 홍법의 도구가 되고 공동체가 되는 극락정토, 홍법사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

 

하성미
현대불교신문 기자.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종교적 방황으로 힘들어하다 18년 전 인연을 맺고 불교에 귀의했다. 현재는 불교 홍포를 위해 글과 사진을 도구 삼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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