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육학년 초에 원주를 떠나 부산으로 왔지만, 거기서 거의 몰락하다시피 가난해졌다. 한 반년쯤 후 우리는 제주 바다를 건넜다.

부산에서는 더는 살 수가 없었다. 신선동 산(山) 어둠 속에서 내려다본 불빛들은 수없이 우리를 빨아갔다. 아래로 내려왔다. 저녁 때 도라지호(號) 끝에 매달렸다. 땅은 우리를 땅 밖으로 밀어냈다. ……우리는 제주해협을 건넜다. 옛날의 그 어떤 사람들처럼. 아침이 되니 큰 섬이 앞에 있었고 누이와 나는 난간에 앉아 바다와 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졸시 〈제주해협〉 부분

아는 이가 있었으나 우린 몇 달간 제주항 귀퉁이 화물상사 건물 2층 빈 공간에서 살았다. 전학해 거기서 학교에 다니고 중학교 입시를 봤는데, 장학생으로 합격이 되었다. 학비가 많이 면제되었지만 그 외 들어갈 비용 마련이 어려웠다. 평양간호전문학교에 다니다 육이오로 국군에 끼어 월남했던 어머니가 기지를 발휘했다. 내가 쓴 것처럼 해서 여기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다. 기자가 찾아오고 신문에 크게 났다. 졸업식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이 직원실로 오라 해서 가 보니 웬 스님이 와 계셨다.

얼마 후 제주 시내 외곽 별도봉 아래 자리한 원명사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원명사는 당시 우리 불교의 표본 같은 사찰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전국에서 객 스님들이 많이 왔다. 서옹 스님 문하의 태연, 적연, 원연, 통연 스님들이 사찰을 일구었다. 

3층 슬래브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1층엔 베나레스도서관 서고와 교실 한 칸의 금강고등공민학교가 있었다. 한두 해 전부터 와 머물고 있는 환속한 고은 시인이 국어, 미술을 가르쳤다. 바로 옆이 그의 방이었다. 2층엔 선방이 있었고 그 옆방에 행자라 이름한 나를 포함한 열 살이 좀 넘은 남자애들 너덧이 있었다. 스님 동생, 신도회장 아들, 어느 신자의 아들 등. 

나는 아침에는 버스정류장에 가서 짐짝 같은 만원 버스를 타고 시내 중학교에 갔지만, 집에 돌아올 때는 동문로를 지나 사라봉 옆길로 공동묘지를 지나 별도봉 아래로 내려왔다. 고은 시인이 시내로 나갔다가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오곤 하시던 길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 자손은 차례로 오리라.
지난밤 모든 벌레 울음 뒤에 하나만 남고 얼마나 밤을 어둡게 하였던가.
가을 아침 재보(財寶)인 이슬을 말리며 그대들은 잔다.
햇빛이 더 멀리 내려와 잔디 끝은 희게 바래고
올 이른 봄의 할미꽃 자리 가까이 며칠만의 산국화가 모여 피어 있구나

— 고은 〈묘지송〉 부분

중 2 어느 날, 시험 때여서 나는 밤늦게 우리 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잠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후원에서 보살님이 우리 수에 맞게 쟁반에 무얼 가져오셨다. 수정과라고 했다. 난생처음 먹어 본 수정과는 너무 맛이 있었다. 내 것을 다 먹고도 내 혀와 목구멍은 가만 있질 않았다.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다른 그릇으로 갔다. 얼른 곶감 하나를 꺼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공양 시간. 공양 간에 빙 둘러앉은 스님들 근 스무 분과 우리의 발우공양이 끝나자 통연 스님의 일갈이 떨어졌다. 

“어젯밤 보살님이 가져다주신 수정과에서 곶감 하나가 없어졌다는데, 바른대로 말해라!”

도둑의 제 발 저린 나는 얼굴이 빨개져 먼저 “나는 안 했습니다.” 하고 크게 말했다. 곧 들통이 났다.

나는 통연 스님에게 호된 꾸지람과 함께 긴 빗자루 체벌을 받았다.

 

집에 갔다 온
3일은 울먹울먹했다
고은(高銀) 선생은
삼일 낮밤을 자기도 했고
외출하면 공동묘지를 지나
밤중에 돌아왔다
별도봉(別刀峰)에서 주운
부산여중 2년 김일지의 시(詩)로
잠 못 이루고
먹구슬나무 아래서
난생처음 시를 썼다
처음 먹어본 수정과
다른 애 것의 곶감 하나를
빼먹고 거짓말을 해
매를 맞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까까중이라 놀려댔고
나를 데려온 스님은 소식이 없었다

— 졸시 〈화북에서〉 부분

다시는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았다. 그해 말, 2년의 행자(?) 생활은 끝이 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통연 스님의 약발은 얼마나 갔을까. 수정과 곶감은 그제나 이제나 너무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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