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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도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마라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김연호 제천 진주동물병원장

몇 해 전 여름날이었다.

소가 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제천 금성 대장리 고갯길을 넘을 때였다. 산비탈에 위태로이 피어 있는 ‘큰제비고깔’이란 아름다운 풀꽃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이토록 척박한 산비탈에 어떻게 귀한 풀꽃 씨앗 하나가 인연을 만나 발아했을까? 이후 난 대장리 고갯길을 넘을 때마다 그 꽃이 피어 있던 자리에 눈길이 절로 멈추곤 했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는 보이지 않아 그리움만 남아 있던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대장리 병풍산에 서녘 황혼의 옅은 여명 속에 산벚나무 꽃이 흐드러져 피어 있던 시각, 난 우공(牛公)의 난산을 해결해주려 그 고갯길을 다시 넘었다.

나를 부른 소 주인 윤 씨와 인연을 맺게 된 첫 만남이었다.  윤 씨는 차가 없었던지 산속 5리 길을 달음박질하여 큰길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산 계곡을 따라가자 우사에 안내했다. 방사된 40여 마리의 소들이 바깥과 훤히 통하는 축사 안에서 서거나 앉아서 그저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축사의 바닥도 배설된 오물도 없이 깨끗하여 윤 씨의 근면과 깔끔한 성격을 단박에 읽을 수가 있었다. 
윤 씨는 꼬리를 쳐들고서 양수 물을 쏟고 있는 분만기 산통의 소를 향하여 그저 자기 자식을 대하듯, “응, 잘 참았지-. 좋은 수의사님이 빨리 오셨다.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라이-.” 하면서 분만기 산통의 소를 한쪽 코너로 가만히 인도하여 묶었다. 소가 참 순하게 잘 길들어 있었다. 

요즈음 사육되는 소들은 식용으로 선호되는 육질을 만들기 위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자유를 차압당한 채 창공의 볕이 들지 않는 반 평 공간에서 자동 급식되는 사료로 사육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밀실 사육은 질병의 감염에 취약하기에 소독에 예방주사와 혈액검사는 필수가 되었고, 주삿바늘을 수시로 들이대며 집적거려 소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이 자기들을 위함이기보다는 인간들을 위한 꼼수라는 것을 본능으로 알아챘는지, 가운을 입은 수의사는 물론 낯선 사람의 기척이 있거나 얼쩡거리기만 하여도 얼마나 길길이 날뛰는지 모른다. 어떤 소는 꼭 투우처럼 뿔 머리를 치켜들고서 공중부양하며 위력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나이에 비례하여 순발력이 점점 느려지는 나로선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윤 씨의 40여 마리 소들은, 주인의 다정한 돌봄 덕분인지 눈망울에 타고난 맑음을 지닌 채 순박한 표정 그 자체였다. 이런 소의 성품이 난산시술에 부조가 되어서인지 제법 큰 수송아지를 수월하게 분만했다. 윤 씨의 소를 대하는 부드럽고 정성스러운 태도와 말 등, 인품이 범상치 않아 자연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그래서 묻는 나에게 그는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명문고를 나와 대학에선 사회학을, 대학원에선 유학(儒學)을 했다고 했다. 두어 해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한국국제협력단에서 근무하다 귀국하여 낯선 이곳에서 12년 전부터 소를 키우며 혼자서 산다고 했다.

우연히 송아지 한 마리가 지어미와 생이별하고 팔려나가는 게 하도 애처롭게 보여 그만 자신이 사서 키우게 된 것이 지금 축산의 시작이었단다. 한 마리보다는 몇 마리를 더 사랑하고 싶어져서 곧 여섯 마리의 송아지를 더 입식하며 성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40마리가 되었다고. 지금도 당시 시작했을 때의 어미 소 7마리는 그대로 있고 생산한 송아지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리 팔아서 사룟값에 보탰다고 했다. 그는 아침이면 우사에 물과 사료를 주기 위하여 가만히 축사 문을 열고서 문안 인사하기를 “잘 잤어?”, 저녁에 축사 문을 닫을 땐 “내일 아침밥 일찍 줄게.” 하면서 사람을 대하듯 하길 12년 동안 쭉 해왔다고 했다. 자칫 동료들이나 이웃에게도 하대의 말과 거친 행동을 하기 십상인 세상에 짐승에게까지도 동급의 생명으로 삼가듯 대접하는 윤 씨. 

난 그동안 40년을 넘게 우공만을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해오면서 “병고의 우공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있어 주길” 하는 기도를 쭉 이어왔다. 하지만 이는 우공의 생명에 대한 진정 어린 자비심보다는 경제적인 논리가 더 진하게 깔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윤 씨는 그렇지 않았다. 소에게 인간과 대등한 생명의 존엄성을 갖고 대하는 자비심의 여일함이 여러모로 묻어났다.

며칠 전 어느 초저녁이었다. 난 윤 씨에게 통신으로 저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지난봄에 내가 분만을 돌보아 주었던 그 13년생 소가 며칠 전에 죽었다고 했다. 소는 장간막 사이에 형성된 종양 같은 지방괴를 진단받았고, 지인들은 다만 몇백만 원이라도 받고 빨리 도축장으로 보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송아지 12마리를 낳아 식구가 늘어나게 한 은덕도 갚을 길이 없는데, 경제적인 타산만으로 도축장으로 보낸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단다. 

예전에 평생 농사일을 해주고서 송아지까지 해마다 한 마리씩 낳아주던 대문간의 지킴이 소를 한집안 식구처럼 여기며 생을 다하자 묻어주었다는 이야기를 간혹 들은 바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생이 다한 소를 묻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는 처음이었다. 

나와 윤 씨의 첫 인연인 13세 우공! 곡기를 끊은 지 일주일 만에 피골이 상접한 처량한 꼴로 목을 매고서 생의 마지막 숨결을 길게 몰아쉬며 눈꺼풀에 힘을 잃어 가더란다. 그 애정 깊던 소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진심 어린 목소리로 윤 씨는 빌어 주었다고 했다. “앞으론 절대로 소로도, 사람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해탈하거라.” 하며 두 눈을 살며시 감겨 주었다고 했다.

 왜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멈추라고 기원을 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윤 씨는 힘주어 말했다. 소로 태어난 송아지를 인간의 잣대로 젖을 뗄 때라고 다짜고짜 어미와 생이별을 시킨 뒤 소장수 차에 밀어 올리고서 매정하게 돌아설 때, 송아지는 발광하며 뒤돌아보며 나대고, 어미는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허공을 향하여 울어대는 것을 보자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큰 소가 갈 길은 결국 도축장뿐이라면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냐고 했다. 또 사람으로도 태어나지 말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고 묻자, 사람들도 자기만 잘 살겠다고 온갖 시기 질투에 이성을 잃고 정신없이 고생만 하다 가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니냐고 했다. 종교를 물으니, 부모 형제들과는 달리 자기는 불교에 가깝다고 했다. 

곧 60을 바라보는 윤 씨. 앞으로 저 어미 소들 다 땅속으로 잠들고 나면 송아지 몇 마리하고만 살면서 그저 사서삼경이나 읽으면서 살아가겠노라고 했다. 외딴 산골짜기에서 차도 없이 문화시설조차 변변찮은 환경에 살면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려는 마음 그대로 살아가는 윤 씨! 새삼 보살의 출현을 대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키우던 저 소들은 물론, 개들과 염소들도 결코 도축장으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같이 살다 생을 다하면 묻어줄 것이라고 했다. 

대장리 언덕 억센 석회석의 틈 사이에 피었던 큰 제비고깔 풀꽃 한 송이와, 그 산 밑에 자리한 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윤 씨의 미소가 겹쳐지며 자꾸만 내 눈에 어른거린다.

j-you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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