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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와 경전 -귀촌 1장 1과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홍신선 시인

“웬 비가 또 와. 쓸데없는 객수(客水)구먼.” 

“얼마 전엔 비가 안 와 난리드만, 쯧쯧.”

유리문 밖 터앝 두둑의 애늙은 벚나무가 후줄근하게 비를 맞고 섰다. 우세가 강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일 공칠 만큼은 온다. 매지구름이 몰린 것도 아닌데 새참 무렵부터 시작된 비였다. 나는 빗발들을 지켜보며 혼잣소리를 날린다. 터앝 고랑에 물이 어느 만큼 차는지 신경이 쓰인다. 고랑에 물이 차면 마당으로 넘쳐 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탓에 집 주위의 배수구들도 불안불안하다. 빗물은 제대로 빠져나가는지 어디 또 토사는 쓸리지 않는지 영 미덥지 않은 것이다. 물 한번 잘못 지나가고 나면 집 주변과 마당이 엉망이 되는 탓이다. 집도 한 삼 년 지나야 제자리를 잡는다는데…… 

결국 나는 창가에서 떠날 줄 모른 채 시간을 죽인다. 비는 오후까지 질금대다 그칠 마련인 거 같다. 하지만 이틀 사흘 간격으로 질금거리니 짜증이 난다. 더욱이 지금은 한참 벼 베기 철이 아닌가. 남들은 하루가 아쉽다는 판인데 객수만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땐 논농사가 없는 것도 다행이다 싶다.

이태 전 큰 결단을 내리고 찾아든 산골 마을이다. 남의 밭을 사서 집터를 일궈 조그만 농가주택을 짓고 이사를 들어온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픈 생활이 시작됐다. 갓 지은 집이라 매사 하나에서 열까지 내 손이 가야 무슨 일이든 돌아갔다. 그 전 아파트 생활과는 영 천지 차이였다. 아파트에선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는데 시골 단독주택은 그게 아니었다. 뭔 일이든 내가 손수 해야 했다. 그런데 일이 익숙질 않으니 남의 손을 빌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남의 손은 예외 없이 돈이었다. 그나마 물건값이나 마을 품삯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인데. 

“누가 책상물림 아니랄까 봐.”

학교를 막 퇴직하고 나서였다. 평생 해보지 않던 일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이런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주로 집사람이 한 소리였다. 책상물림이라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 일의 요령을 모르는 사람이란 쓴소리였다. 긴 세월 책상머리에서 책보네 시 씁네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그런 주제에 서툰 단독주택살이에 농사일이라니. 모든 것이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귀촌 이후 두드러진 변화의 하나는 날씨에 대한 관심이었다. 산골서 한 해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음력이 정확히 표시된 달력을 수소문으로 구하곤 했다. 양력과 음력이 대등하게 적힌 달력이면 더욱 좋았다. 우선 보기가 편했다. 그리고 절후(節候)가 잘 표시되어 있었다. 절집에서 제작한 달력이 주로 그랬다. 나는 이 달력을 걸어두고 시간 가는 것을 음력으로 챙긴다. 

비록 작은 평수의 터앝이지만 소채를 경작하는 데도 음력은 유효했다. 무슨 작물이든 제때를 놓치면 폐농하기 십상이다. 한데 음력 절기에 맞춰 종자를 놓거나 뿌리면 큰 실착이 없었다. 옛사람의 농가월령가가 실감으로 왔다. 시절의 변화를 음력 절기만큼 잘 나타내는 것도 드물다 싶은 것이다. 절기에 맞춰 살기가 시골살이에서는 가장 상책이란 생각도 들었다. 채소 농사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기울고 차는 달의 운행도 그대로 잘 들어맞았다. 음력에 의지해 살다 보니 이제는 툇마루에 드는 달빛에도 민감해졌다. 어느덧 내가 그 달빛의 명도에 따라 날짜를 가늠케쯤 돼 버린 것이다.

산골에 산 이후로 나는 잠이 깨면 인터넷부터 뒤진다. 뉴스나 이메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포털에서 그날 날씨를 꼼꼼히 챙기기 위해서다. 일 철이면 일 철대로, 깊은 겨울은 겨울대로 그날그날 날씨를 확인한다. 특히 비가 연일 잡혀 있거나 가뭄이 지속된다 싶으면 날씨에 대한 관심은 한결 더 높아진다. 

간 여름 고구마 농사는 날씨 탓에 망쳤다. 한 달 넘게 지속된 가뭄에 고구마는 넝쿨이 뻗질 못했다. 그러다 몽땅한 넝쿨 순에서 꽃이 듬성듬성 피었다. 이웃들은 고구마 꽃이 피면 길조라고들 했다. 꽃 피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이었으면 길조라고 둘러대나. 달포 넘게 든 가뭄이 지났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연일 비가 질금거린다. 그제야 비 맛을 본 고구마 넝쿨이 푸른 제 색을 띠며 뻗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많이 지나 밑 드는 기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나는 모처럼의 고구마 농사를 놓치고 만 것이다. 

“농사란 하늘이 멕여야 하는 거지 억지론 안 된다.”

평생 생업으로 농사를 한 선친의 말 한 대목이 그제야 다가온다. 결국 뭇 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은 절후의 순환에 따라야 했다. 거기다 작물들 나름의 천성과 습벽도 알아야 한다. 농사일 두 해, 이제 조금은 작물이나 푸나무들의 천성을 알 것 같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그들 나름의 엄정한 도(道)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엄정한 도 읽기에 열중한다. 이들도 읽기에 따라서는 경전이 아닐까. 그것도 누가 섣불리 고치거나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경전이 바로 자연이다 싶은 것이다. 

객수 탓을 하면서도 유리창 밖 비 오는 들녘을 여태 나는 하릴없이 지켜보고 섰다. 이 찬바람머리 저 들은 과연 경전의 무슨 대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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