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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독립’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77호] 2019년 03월 01일 (금) 박병기 budreview@hanmail.net

독립은 일차적으로 누구 또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스로 홀로 섬[獨立]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포함하고, 이것은 다시 물질적인 예속과 정신적 예속 모두를 넘어서는 것을 전제로 하여 가능해진다.

올해 들어 3 · 1운동 관련 이야기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다양한 행사는 물론이고, 여러 단체가 앞다투어 그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대학, 종교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3 · 1절을 전후하여 학술세미나, 전시회, 공연 등 그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3 · 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렇게 많은 행사들이 한꺼번에 추진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00년 동안 3 · 1운동의 정신을 충분히 새기고 기억해왔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오지 못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아직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문제 등 일본과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정신과 민족의 자긍심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뜻이다.

 

3 · 1운동과 불교

면면히 이어온 우리 불교의 역사 속에서도 3 · 1운동은 각별한 위상을 지닌다. 500년에 걸친 조선의 척불(斥佛)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던 불교계에 조선의 붕괴는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일제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도성 출입이 허용되고 승려의 천민 신분이 해제됨에 따라 당시 불교계가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 결과 많은 승려가 자연스럽게 친일의 길로 들어섰고, 일제 강점기는 자칫 식육대처(食肉帶妻)의 왜색불교로 점철될 뻔하기도 했다.

일본에 대한 기대를 품고 현해탄을 건넜던 청년 만해는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었고, 곧바로 귀국하여 항일의 길을 올곧게 걷는 것으로 불교와 민족을 향하는 자신의 항심(恒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통의 틀 안에서 성장한 용성의 경우도 왜색불교에 저항하면서 삼학(三學)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본연의 모습을 지켜내고자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3 · 1운동에 불교 대표로 참여한 용성과 만해는 불교계 내부의 저항과 불교계와 사회의 연결을 매개로 사회 전반의 개혁을 시도한 인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정신은 초월과 석전 등으로 이어졌고, 동시에 그들과 함께 상해임시정부 등에 참여했던 많은 불교청년들의 지난한 삶으로 구체화되었다. 

3 · 1운동은 불교계를 비롯한 천도교, 기독교 등 종교계가 중심이 되어 요원의 불길처럼 펼쳐졌던 민족 독립운동이자 정신적 자주를 외친 정신운동이기도 하다. 100년 전 종교계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 지주로서 위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 · 1운동 자체가 얼마나 성공했는가는 그것을 계기로 출범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실제적인 독립투쟁 역사로 이어진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불교에 주목하면 3 · 1운동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적극적인 개혁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만해의 ‘불교유신’은 물론이고, 석전의 불교개혁론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됨과 함께, 그 구체적인 노력이 수행이나 교육의 측면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불교는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물론 일제 강점기 불교계가 이런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여준 것은 결코 아니다. 대다수의 지도급 승려들이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친일의 길을 걸었다. 또 석전이 온 힘으로 지키고자 했던 중앙불교학교 같은 교육기관 또한 친일에 앞장선 승려들이 장악하는 흑역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일본불교학을 수입하는 것을 계기로 학문적 토대를 쌓은 우리 불교학계 또한 지나친 문헌해석학적 편향성과 문화식민지적 의존성을 함께 지니게 되는 한계를 보였고, 이 한계는 일정 부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쳤던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저항은 20세기 초반 윌슨의 민족자결 선언 같은 당시의 세계사적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임과 동시에, 중국의 5 · 4운동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21세기 초반 우리의 상황은 그런 노력에 힘입어 세계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위상과 힘을 가진 것으로 자평할 만하지만, 정신적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하다. 냉소적인 자기비하와 성조기를 태극기보다 우위에 두는 듯한 친미적 태도, 그런 가운데 심화되고 있는 청년들의 절망 등이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온전한 독립과 평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

2019년 남한 사회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러한 정신적 혼란은 우리 교육계의 흔들림 속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공허한 학력 추구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학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은 공교육 붕괴와 이에 따른 사교육의 비정상적인 팽창으로 이어진 지 오래고, 결과는 학교에서 교육을 찾아보기 어려운 불행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라면, 그런 교육을 우리 가정과 학교에서 찾는다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고통에 눈감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서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었음에도, 진보정권이라는 이 정권마저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듯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육계나 교육학계 내에 이런 현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없지 않고 그 노력들이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도 충분히 눈길을 주어야 하겠지만, 중첩된 사회문제가 된 교육문제가 단지 내부적인 노력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에도 함께 유념해야 한다. 

오히려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적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고, 그 중심 주체는 여전히 우리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이런 기대 또한 조심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과 불과 100년 전의 성과에 대한 기억의 되살림 속에서 그 가능성을 모색해야만 하는 절박감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평화에 기반한 통일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한 정신적 독립이다. 3 · 1운동 이후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좌우의 대립이 없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 광복 이후의 상황 속에서 외세의 적극적인 개입과 함께 극단적인 무력대립으로까지 진행되는 불행한 역사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어 평화의 역사를 쓰는 중이다.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확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평화에 기반한 통일의 길로 갈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불교는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 · 문화적 자산을 기반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랜 사대의 부정적인 역사와 친일, 친미로 이어진 정신적 식민지 상황은 이제 18세기 실학자들이 보여주었던 자주(自主)의 씨앗과 만해의 독립정신을 기반으로 온전한 정신적 독립의 추구로 이어져야 한다. 그 중심에 불교를 비롯한 종교가 있어야 하고, 우리 불교계가 자성(自省)에 기반한 실천을 통해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2019년 3월

박병기(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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