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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의 불교학자 <36>박선영
불교교육학의 초석을 놓다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박범석 vinetar@naver.com

1. 들어가는 말

   

열로(悅路) 박선영
(朴先榮, 1941~2018)

열로(悅路) 박선영(朴先榮, 1941~2018) 선생은 불교와 교육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정초하고 불교교육학의 체계를 세운 대표적인 학자이다. 불교학자와 교육학자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은 구도자로서 불교적 삶과 활동가로서 교육적 실천을 온몸으로 구현해 온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교육학도로서 불교학과 철학, 그리고 교육학의 세계를 넘나들다 보니 때로는 길을 잃고 망연자실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학문의 대해에 뛰어들어 헤엄쳐 가면서 고독과 무력(無力)을 쉴 새 없이 느껴왔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이 길에 얼마나 더 많은 외로움과 고달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

— 박선영 《불교의 교육사상》 중에서

학부 시절부터 연구실에서 조교 노릇을 하였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도 선생이 퇴임할 때까지 연구실을 지켰던 필자로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선생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평소 책에서 시선을 거둔 경우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책을 가까이하였고, 제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본인의 연구 분야에 대해 쉼 없이 대화를 이어갈 정도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분이었다. 선생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3학점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는 대학원생 사이의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식사 시간 내내 학문적 대화의 향연이 이어졌던 일들이 추억처럼 남아 있다.

부족한 제자로서 선생의 삶과 학문적 깊이를 가늠하여 소개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선생의 학문 여정에 대해 논의해 보는 것이 미약하게나마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대 때문이다.

 

2. 생애와 업적

194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찍부터 어머니 일안(一安) 스님과 수덕사에 들어가 동자승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불가(佛家)에 입문했기에 그의 몸과 마음에는 평생으로 이어지는 불자(佛子)로서의 정체성과 구도심이 이때부터 배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어린 나 하나를 데리고 출가하신 어머니를 따라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산사에서 자라게 되어, 나가면 학생이고 들어오면 승려인 이중신분 속에서 세간과 출세간을 넘나들며 세속의 학업과 초세속의 고된 수련을 동시에 해 나갔다. 이 세상에 의지할 단 한 분이신 어머니께서 내 나이 15세에 세상을 뜨시어 장작더미의 불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는 다비(茶毘)를 지켜보고 나 자신은 그 나름대로의 중대한 실존적 체험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 《불교와 교육사회》 중에서

선생은 청소년기를 승려로서 보내면서도 당시 명문고인 대전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할 정도의 영민한 수재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염불에 능했기에 수업 중 절에서 급하게 부르면 바로 달려가 염불을 해야 할 정도로 학생과 승려의 삶을 병행하는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 했다. 불심(佛心)이 가득한 그의 입장에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당시 더 큰 세속적 포부를 가지고 진학하기를 기대한 고등학교 측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지원하여 전체 수석입학과 전체 수석졸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선생의 명석함을 알려주는 사건이라기보다는 불교학에 대한 진정성과 간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일화라고 여겨진다.

대학 졸업 후 1969년부터 동국대학교 부속 중고등학교의 교법사로 활동했다. 교법사 활동을 하면서 저녁에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였고, 다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각각 교육학과 불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불교적 교육관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논문은 교육학의 관점에서 불교사상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되어 이듬해 한국교육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불교의 교육사상》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후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의 불교교육학계의 적지 않은 인정을 받았다.

선생은 1977년부터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교수로 재직하고 퇴임할 때까지 불교학, 종교학, 교육학을 바탕으로 동서 철학을 넘나들며 폭넓고 깊이 있는 학문의 세계를 펼쳐나갔다. 60여 편의 논문과 20여 권의 저서들이 말해주듯이 불교교육학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은 광범위한 사상 전반에 대한 관심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이 단지 학문의 틀에서만 머문 것은 아니다. 당대의 사회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침없이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려는 사회참여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었던 선생의 성품으로서는 청년기였던 4 · 19 혁명 당시에도 침묵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신문과 저널을 통해 꾸준히 문제의식을 제기하였고, 학술의 장에서도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해석을 제시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소 선생이 강조해 온 보살도로서 삶의 태도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태생적인 성정에서도 기인하겠으나, 자라온 특수한 환경에서의 반성과 성찰의 결과라고 추정해 본다. 다음의 회고에서 이러한 성장 과정이 잘 드러난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성미가 급하여 가랑잎에 불붙는 듯했고 고집이 세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나를 지켜본 어느 노선승은 나에게 탁발(托鉢) 즉 동냥을 해보도록 권했다. 시장바닥에서 탁발하는 도중에 나는 뭇 눈총과 조롱 및 비아냥거림을 받았고 자존심에 극도로 상처가 나는 장면에 여러 번 부딪혔다. 청소년기의 나는 수모에 가까운 그 모든 경우를 꾹 참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즉 하심(下心)하는 겸손과 아량의 덕을 닦는 수도를 이 시장바닥에서 한 셈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거니와 나 또한 본래 자존심과 고집이 유달리 세고 울컥 화를 잘 내는 성미이지만, 그럴 때마다 요즈음도 이 탁발에서의 일들을 되씹으면서 하심의 미덕을 가다듬곤 한다.

— 《불교와 교육사회》 중에서

 

주요 상훈

대한민국 건국포장 수장(1961년)
한국교육학회 학술상 수상(198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장(1984년)
뇌허 불교학술상 수상(1994년)
옥조근정훈장 수장(2006년)

 

주요 논저

1. 저서

《교육사신론》(2인 공저) 서울: 명지사. 1979
《불교의 교육사상》 서울: 동화출판공사, 1981
《불교와 교육》 서울: 동국대학교 역경원, 1982
《교육사 · 교육철학》(2인 공저) 서울: 갑을출판사, 1983
《불교와 교육사회》 서울: 보림사, 1983
《佛敎の敎育思想》 東京: 國書刊行會, 1985
《한국현대생활윤리》 율곡사상연구원, 1997
《한국의 종교와 인격교육》 아름다운세상, 1998
《한국교육사신론》 아름다운세상, 2003
《어린이의 인간학》(2인 공동번역 ) 아름다운 세상, 1996

 

2. 논문

〈불교적 교사관의 연구〉 《교육학연구》 제13권 제2호, 한국교육학회, 1975
〈대승불교사상에 대한 교육철학적 논구〉 《한국불교학》 제1권, 한국불교학회, 1975
〈불교의 인간관계관과 대자연관 연구〉 《연구논집》 제5권 동국대학교 대학원, 1975
〈불타 칭호를 통해 본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 《연구논집》 제6권, 동국대학교 대학원, 1976
〈불교사상으로 본 기초주의〉 《교육학연구》 제15권 제1호, 한국교육학회, 1977
〈대승불교의 시간관과 그 교육이념〉 《한국불교학》 제3권, 한국불교학회, 1977
〈John Dewey의 종교교육관〉 《사대논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제1권, 1978
〈교육애의 본질과 발현-불교의 자비관에 입각하여〉 《불교학보》 제15권, 1978
〈한국불교의 인간형성이론〉 《한국학보》 제12권, 1978
〈한국교육사에 있어서 불교사상〉 《한국교육사학》 제2권, 1978
〈불교의 아동교육관과 그 한국적 전개상〉 《교육사교육철학》 제3권, 1979
〈한국교육사의 학문적 반성과 과제〉 《교육학연구》 제17권 제2호, 한국교육학회, 1979
〈율곡의 교육사상 재검토〉 《새교육》 통권 제297호, 대한교육연합회, 1979
〈Pensée bouddhique dans l’historie pédagogigue de Corée〉 Revue de Kóree, Vol. Ⅺ, No.1, 1979
〈한국교육사와 시대구분의 본질〉 《한국교육사학》 제3권, 1981
〈고대 한국의 불교와 교육〉 《보고논총》 제8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B. 럿셀의 도덕교육사상〉 《정종박사 정년기념논문집》 1981
〈장자사상과 교육〉 《사원》 제11권,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1981
〈불교와 교육〉 《교육문제연구》 제2권, 동국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1983
〈한국불교사상과 그 현대교육적 의의〉 《연구논총》 제83-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불교적 교육과 종교적 다원주의〉 《한국불교학》 제11권, 한국불교학회, 1986
〈불교에 있어서 사회복지의 이념과 교육〉 《동국대학교 개교80주년 기념논총 불교와 제과학》 1987
〈한국 고대의 불교와 교육〉 《한국사상사학》 제3권, 1990
〈초기불교교단의 윤리적 성격과 그 교육적 의의〉 《한국불교문화사상사》 권하, 1992
〈뇌사자의 장기이식에 대한 불교적 지평과 그 교육적 함의〉 《불교학보》 제30호, 1993
〈불교와 부모의 자녀교육〉 《한국불교학》 제18권, 1993
〈자타불이적 수행과 교화의 신앙의례〉 《이성과 신앙》 제6호, 수원가톨릭대학,1993
〈합자연과 합사회의 양면성 문제〉 《교육학연구》 제31권 제41호, 한국교육학회, 1993
〈한국가정교육의 문제상황과 그 불교적 극복원리〉 《불교학보》 제31권, 1994.
〈불교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종교교육학연구》 제1권, 한국종교교육학회, 1995
〈현대 교육의 고민과 불교의 역할〉 《종교교육학연구》 제1권, 한국종교교육학회, 1995
〈한국종교들의 인간관과 인격교육의 가치요소〉 《종교교육학연구》 제2권, 1996
〈대승의 보살도와 평화교육〉 《태공 송월주 스님 화갑기념논총 보살사상》 1996
〈小 · 中學校の佛敎的宗敎性敎育〉 《日本佛敎敎育學硏究,》 5, 東京: 1997
〈불교사상과 한국교육사〉 《동국사상》 27 · 28 합집,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1997
〈초 · 중등학교와 종교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3권, 한국종교교육학회, 1996
〈중등학교의 인성교육과 교원양성〉 《교육문제연구》 제12집, 동국대학교 교육연구원, 1997
〈한국의 불교사상과 그 교육사적 의의〉 《교육연구정보》 제29호, 강원도교육연구원, 1998
〈한국종교들의 인간관과 인격교육의 가치요소〉 《종교교육학연구》 제4권, 1997
〈청소년의 삶과 공동체의식〉 《한국의 청소년윤리》 율곡사상연구원, 1997
〈정보사회와 청소년 문제〉 《과학사상》 제23호, 범양사, 1997
〈韓國敎育史における僧侶敎育とその現代敎育的意義〉 《日本佛敎敎育學硏究》 6, 東京: 1998
〈韓國佛敎史における佛敎の非形式的敎育機能〉 《日本佛敎文化論輯》 1998
〈한국불교 수계의식의 의미구조와 그 교육적 의의〉 《종교교육학연구》 제6권, 1998
〈정보사회에서의 교육과 한국문화의 정체성〉 《교육철학》 제21집, 1999
〈한국불교의 승가교육제도〉 《종교교육학연구》 제8권, 1999
〈중국 삼론학사에서 승랑시대 섭산 서하사의 가풍〉 《종교교육학연구》 제9권, 1999
〈新羅花郞徒の性格と僧侶郎徒の敎育的役割, 佛敎敎育 · 人間の硏究〉 齊藤昭俊古稀記念論文集刊行會, 2000
〈승랑연원의 중국 삼론사에서 남조문화와 양무제〉 명성 스님 고희논문집간행위원회, 2000
〈고구려 출신 승랑을 상승한 제2기의 가풍(3)〉 《종교교육학연구》 제11권, 2000
〈한국불교와 대학의 교양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12권, 2001
〈불교의 교사관: 비원의 보살도를 중심으로〉 《종교교육학연구》 제14권, 2002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와 종교교육〉 《종교교육학연구》 제16권, 2003

 

3. 학문적 성격

선생의 학문적 성격은 앞서 밝혔듯이 불교와 교육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담론의 장을 마련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일관된 사상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학문적 성격의 변화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선생의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후학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임의로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해 보았다.

 

1) 전기: 불교의 교육철학적 관심

이 시기는 선생이 석사논문을 발표한 1974년부터 박사논문을 집필한 1980년까지로 구분될 수 있다. 교육철학의 관점에서 불교의 교육사상을 모색하려는 초창기의 시도로서 불교적 교육관을 정립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 키워드를 보면 불교적 교육관, 불교의 인간관, 대승불교의 교육철학, 교육애의 본질로서 불교의 자비관, 불교의 인간형성론, 불교의 아동교육관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도는 불교와 교육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관련성에 주목하면서 교육의 핵심적인 사상에 불교적 시사점을 연관 짓거나 불교사상이 갖는 교육학적 의의를 찾으려는 시도로 드러난다. 당시까지 불교와 교육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학문적 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어렵고 힘든 학문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졌다는 관점은 불교교육학이 기해야 할 입각점을 분명하게 해준다. 인간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확신 속에 불교교육학은 뿌리박고 있다. 그러기에 묘법연화경에서는 상불경보살(商不輕菩薩)이 박해해오는 이교도들에게 합장하면서 ‘그대들은 언젠가는 성불할 것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 〈불교와 현대세계〉 《동국대 개교 70주년 기념 논문집》 1977

불교교육학이라는 학문 영역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학문적인 체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이때부터 뿌려진 씨앗이 후에 학문적 열매로서 드러나는 것은 후기에 가서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잘 드러난다.

 

2) 중기: 사회문제에 대한 응용불교학적 해석

불교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러나는 시기로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한 1980년 이후부터 한국종교교육학회가 출범하는 1995년 전후까지로 구분된다. 일종의 응용불교적 관심으로서 한국교육사, 도덕교육, 장자 사상, 종교 다원주의, 초기불교 윤리, 뇌사자의 불교윤리, 사회복지, 자녀교육, 가정교육 등의 키워드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석하려 하였다.

   
 

불교교육 분야에서는 이미 《불교의 교육사상》이라는 저서를 통해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어로 번역된 《불교의 교육사상(佛敎の敎育思想)》이 일본의 불교학자에게 준 영향이다. 필자는 2000년도에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学) 불교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실감한 적이 있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듣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불교교육 담당 일본인 교수 한 분이 내가 동국대학교에서 온 것을 듣고는 다짜고짜 박선영 선생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의 지도교수님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본인 가방에서 《불교의 교육사상》을 꺼내 빽빽하게 줄을 그은 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인 수업에서 쓰는 교재라고 하며 이 저서는 일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교교육의 독보적인 업적이라고 거듭 치하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인 교수가 이 저술에서 흥미롭게 주목한 점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보살과 중생 관계의 유비로서 설명한 점이었다.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둔 교사의 교육애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보살의 자비심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 불교교육의 원천으로 자리한다는 주장에 공감한 것이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상식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당시 불교교육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 학자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렇듯 고마자와대학이 불교학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대학이면서도 당시에 유독 불교교육 분야에서 연구업적이 미미한 점이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생의 《불교의 교육사상》이 그만큼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보적인 학문 영역의 성취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 있어서 동자(童子)와 동녀(童女)라는 말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포괄하는 용어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들이 보살로서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구도자로 표현된다. 화엄경의 선재동자나 대보적경에 나오는 묘혜동녀와 정신동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보살이 항상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라 화랑도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청소년은 불교에 있어 희망이요, 꽃이다. 어른만 못한 존재가 아니다.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강의 요지, 1981

 

3) 후기: 불교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 탐색

   
 

불교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고 종교교육이라는 담론의 장에서 불교교육이 논의되기 시작하는 1995년부터 정년퇴임까지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995년은 한국종교교육학회가 창립되는 상징적인 해로서 한국의 종교교육 연구에서 이정표가 되는 시기로 평가된다. 초대 회장이었던 선생은 창립 전후의 열악한 학회 재정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털어 모든 종교가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으며, 2대 회장인 김용표 교수가 취임하기 전까지 10여 년이 넘도록 학회 토대를 닦는 데 공헌하였다.

현재 한국종교교육학회는 한국종교학회와 함께 명실공히 종교학 연구 모임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종교들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열어 준 대표적인 학회로 자리하고 있다. 학회 초창기부터 학부생으로서 학회 일을 도왔고 후에 학회 간사와 이사를 거치면서 학회 성장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초창기부터 애써온 선생의 눈물겨운 노고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학회를 볼 때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게 된다.

한국종교교육학회의 창립과 발전은 선생의 삶에서나 종교교육과 불교교육의 장(場)에서 기념비적인 일로 사료된다. 당시 모든 종교가 편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였고, 종교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부터 여러 종교가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대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종교교육의 이론과 실천의 틀이 형성된 것은 이후의 종교 간 학술적 대화가 이룬 업적의 전형이었다고 평가된다. 한국종교교육학회의 발전은 초대 박선영 회장이 불교교육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2대 김용표 회장(동국대학교)을 거치며 불교교육의 이론적 틀을 심화시켰으며, 3대 김귀성 회장(원광대학교)에 와서 불교교육의 건실한 발판이 다져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종교교육학회 초기 3대에 걸친 회장단의 노력은 불교교육이라는 굳건한 토대에서 여러 종교를 화합시키려 노력한 점에서 불교교육의 가장 큰 결실을 이룬 학문적 업적으로 여겨진다.

선생의 학회 창립의 노력은 물심양면의 노고에 따른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당시 한국종교교육학회 회칙 제1장 제2조(목적)에서 보이듯이 “본회는 ‘불교’를 위시하여 ‘종교교육’에 관한 광범위한 이론과 실제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이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에 맞춰 불교교육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들이 교육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학회지의 불교교육 관련 논문이 다른 연구보다 압도적이었던 점은 선생이 불교교육 관련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쏟아내었고 이에 부응하는 불교교육 연구자들의 후속적 노력이 주된 원인이었다고 본다.

종교교육의 관점에서 불교교육의 학문적 정체성을 시도한 노력은 후에 불교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하나의 분명한 기준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교육학, 대승의 보살도, 학교교육과 종교교육, 승가교육제도, 승랑과 삼론사, 불교의 교사관, 정체성과 종교교육 등의 연구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교육학의 틀 안에서 교육이론을 전개하면서도 종교교육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퇴임을 전후하여 건강이 좋지 않았던 점이 곁에서 지켜본 제자로서 마음 아픈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 선생의 연구 활동이 더 이루어지지 못한 점 또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생의 그간 업적으로 본다면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 없으나 아직은 이른 나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던 선생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제자로서는, 더 풍성한 연구 성과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애석하게 느껴진다.

 

4. 사상적 유산

선생이 남긴 사상적 업적은 앞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다만 시기적인 구분이 아닌 학문 영역의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교육철학, 종교교육, 불교교육이라는 세 가지 부분으로 정리된다.

첫째, 교육철학의 영역이다. 불교학에 바탕을 둔 교육학도라고 종종 본인을 소개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철학의 영역에서 불교교육을 개척한 교육학계의 업적을 들 수 있다. 당시 교육철학은 주로 유학파들을 중심으로 서구의 사상이 주류로 전개되었고, 동양이나 한국의 교육철학은 기껏해야 유교가 중심을 이루던 시기였다. 서구 중심적인 교육철학과 교육사가 주를 이루었던 데다가, 그나마 한국의 교육사상은 유교 중심의 서술이 대부분이었던 점을 본다면 어느 모로 보더라도 균형이 잡히지 않는 학문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불교교육의 영역에서 선생이 이루어 놓은 연구 성과는 한국교육사와 교육철학의 영역에서 유교와 불교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고, 서구 중심의 교육철학 담론을 동양적, 한국적 사상으로서 대등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점이다. 교육철학과 교육사의 영역에서 불교교육의 역할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불교교육의 교육철학적 접근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종교교육의 영역이다. 종교와 교육이 만나는 영역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종교교육학회 이후 종교와 교육의 만남이 갖는 다면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시작한 점이다. 이전까지의 종교와 교육의 관계는 교육이 종교의 하위영역으로서 주종의 역할에 그친 일방적인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특정 종교집단이 교리를 전수하고 신앙을 주입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교육이 기능한 점에서 교육은 종교의 종속변수로만 간주된다.

그러나 종교교육에서는 오히려 교육 현상이라는 큰 틀에서 각기 다른 종교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기본적인 교육 현상을 중심에 두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복잡한 교육의 문제들을 개별 종교전통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대안을 낼 수 있느냐는 측면을 말한다. 즉, 종교의 교육적 측면만을 바라보던 시점에서 교육의 종교적 측면이 있음을 바라보도록 시점을 전환함으로써 종교와 교육의 관계를 풍성한 학문적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다.

끝으로 불교교육의 영역이다. 종교교육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교육적 측면과 교육의 불교적 측면을 쌍방향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점이 높게 평가된다. 쉽게 말해 ‘불교를 가르치면 그게 불교교육이다’라는 일차원적인 학문 관계에서 벗어나, 교육의 차원에서 폭넓게 불교를 사유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깊이 있게 교육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형성되었다.

불교교육에서 주목할 점은 ‘불교의 교육’과 ‘불교적 교육’의 구분에 있다. 이것은 존 듀이(John Dewey)의 ‘종교’와 ‘종교적’인 것의 구분에 착안하여 불교교육에 적용한 방식이다. ‘종교’라는 명사가 종교집단이라는 귀속성, 배타성에 있다면, ‘종교적’이라는 형용사는 체험하는 주체의 ‘경건한’ ‘신성한’ ‘거룩한’ ‘성스러운’ 상태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명사적 용법이 갖는 경직성과 형용사 용법이 갖는 역동적인 상태에 주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응용한다면 ‘종교인’이 특정 종교의 신앙인이라고 할 때, ‘종교적 인간’은 특정 종교의 귀속 여부와 상관없는 ‘종교적 지향성을 갖는’ 인간인 셈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이 주일에 예배나 미사를 드리러 가는 신앙인에 주목한 개념이라면, ‘기독교적 인간’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르고 성경을 본 적도 없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는 가장 ‘기독교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되는 셈이다. ‘불교인’과 ‘불교적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불교에 귀속된 신자로 그치느냐 진정한 실천적인 삶을 사는 ‘불교적’인 인간이 되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 자칫 전통적인 종교 공동체를 부정하고 개인의 실천적인 삶만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기독교인과 불교인은 ‘종교적인’ 인간으로서 기독교적 실천과 불교적 실천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종교의 귀속 여부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종교에서 지향하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교육에는 ‘불교의 교육’과 ‘불교적 교육’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다고 보았다. 불교의 교육은 승려교육이나 재가의 불자 교육 또는 불교의 포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등에서 그 전형적인 형태를 볼 수 있다…… ‘불교적 교육’은 불교에 대한 이해나 신행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이 모든 극단주의를 벗어나 나와 너가 둘이 아닌 경지에서 지혜와 자비를 발휘하면서 살 수 있게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교육이 불교의 입장에서 교육의 가치를 수용하여 실천하는 불교교육이라고 한다면, 불교적 교육은 불교의 가르침 속에 함축된 정신세계나 실천적 삶의 방식을 교육의 가치로서 귀하고 중하다고 판단하고 채택하여 실시하는 교육이라고 보았다.

— 〈불교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1995

불교교육의 영역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불교의 입장에서 해명되어야 할 교육 현상들이 있으며, 교육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불교의 인식론이 그것이다. 선생의 영향을 깊게 받아 온 필자의 고민도 바로 이러한 불교교육목적론, 불교교육방법론, 불교교육평가론 등과 같은 교육학적 입장에서 불교 이론을 해명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향후 이러한 방향에서 미약하게나마 성과가 있다면 그 공은 모두 스승이었던 박선영 선생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소박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5. 나오며

이상에서 열로 박선영 선생의 삶과 학문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선생의 학문적 열정과 구도자적 서원을 담기에는 지면도 부족하지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필자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사실 선생의 천재성은 학문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같은 풍류에도 번뜩였다. 선생은 소리에 능했기 때문에 염불을 잘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강의 중 각 지역의 민요 특성을 설명하면서 주요 구절을 한 번씩 직접 불러줄 때 학생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음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틈틈이 작업한 수묵화 작품을 볼 때마다 선생의 다양한 재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구도자이면서 교육자적인 선생의 삶의 원천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말이 생각난다. 필자는 선생의 재직 시절, ‘죽기 전에 붓다의 일대기를 교육적 관점에 꼭 다시 써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열정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의 삶이 붓다의 삶을 모델로 살아온 구도자이면서 교육자라는 점을 나중에야 체감할 수 있었다. 붓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단순한 욕구도 있겠으나 교육 실천가로서의 붓다를 직접 그려보고 싶은 열망은, 어찌 보면 불교교육학자로서 당연한 마지막 비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깊은 애잔함이 느껴진다.

선생의 재능과 열정으로 개척한 불교교육 분야의 학문적 업적은 후학들에게 친절한 안내서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엇보다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삶 속에서 일관되게 구현되어 온 실천의 힘은 불교학을 연구하는 신진 학자들이 배워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를 통해 자주정신과 겸손의 아량을 배웠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 이외의 그 어떤 권위도 모두 우상에 불과하고, 개인적 삶의 차원이든 민족적 문화의 세계이든 자주성을 결여한 것은 생명력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학문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그 어떤 학설이든 맹종만 하는 아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불교의 자주정신을 통해 영근 것이다.

— 〈한국일보〉 1982.6. ■

 

박범석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및 강사. 동국대학교 교육학 박사, 서울대학교 종교학 박사 수료. 동경대학 연구원,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주요 논문으로 〈불교교육학의 종교교육적 성격과 과제〉 〈인권 개념의 불교교육적 쟁점〉 〈욕망의 관점에서 본 불교의 교육론〉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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