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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종정제도의 기원과 전개*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김응철 sam1528@hanmail.net

 * 이 글은 고암대종사 열반30주년 추모 학술세미나 ‘한국불교의 역사적 전통과 미래’(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0월 12일)에서 발표된 논문을 축약 정리한 것이다.

 

1. 서언

종교단체는 광범위하고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정신적으로 지도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지위에 있는 수행자를 승왕(僧王), 종정(宗正), 대승정(大僧正), 관장(管長) 등과 같이 다양하게 부른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상징화된 정신적 지도자와 인적 물적 자원을 관리하는 종교 행정의 수반을 구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신적 지도자는 종정으로, 종교 행정의 수반은 총무원장으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그렇지만 국가에 따라서는 종정과 총무원장을 통합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기도 한다. 또한 특정 종단이나 종파만을 대표하는 수장도 있고, 다수의 종단과 종파를 모두 통합하여 한 사람이 관리하는 수장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권력과 승단의 지도자가 하나로 통합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사례는 군주가 출가하거나 승려 신분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르는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각 종단을 대표하는 승가 지도자를 종정(宗正)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종정이라는 호칭이 언제부터 왜 사용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본 연구에서는 종정에 준하는 승가 지도자의 호칭, 직위 등에 대해서 각국의 사례를 비교하여 분석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남방 상좌부불교, 티베트 중심의 금강승불교, 그리고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의 사례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2. 종정의 기원과 불교수반의 유형

1) 종정(宗正)의 기원

불교의 수장(首長)을 부르는 명칭은 문화권마다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정(宗正), 일본에서는 관장(館長), 중국에서는 협회장 등으로 불린다.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권에서는 대부분 승왕(僧王, Sangha raja)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전국을 관장하는 승왕이 임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각 종파를 대표하는 마하나야카(Mahanayaka)가 선임되는데, 이는 우리의 종정 개념과 유사하다. 제정일치 국가, 즉 세속의 통치자와 승왕이 한 사람일 경우에는 법왕(法王, Dharma raja)이라는 호칭도 사용한다. 그렇지만 세속의 군주가 불교를 잘 외호하며 원활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에도 법왕의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종정(宗正)의 어원은 중국 진(秦)과 한(漢) 대에 삼공(三公) 다음으로 중요한 중앙관제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종정(宗正)은 황족을 관리하는 구경(九卿)의 하나였다. 중국에서 종정이라는 용어는 송 대 이후에는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판종정경(判宗正卿)이 설치되었는데, 왕실의 종친들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종정경(宗正卿)은 왕의 근친을 관장한 종2품의 직제였다. 1894년에는 궁내부 관제를 개편하면서 종백부(宗伯府)와 종정부(宗正府)를 구분하였다. 종정부는 종친부의 역할을 계승하여 왕실 보첩을 봉장(奉藏)하고 종실의 각파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1895년 종정부는 종정원(宗正院)으로 개편된 이후 1905년까지 존속하였다. 1908년 원종 종무원이 설립되면서 종단 수반을 대종정(大宗正)이라고 하였다.

 

2) 불교수반의 유형

종교 수반을 지칭하는 호칭과 역할은 그 사회의 국가제도 및 권력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법왕, 승왕, 대승정과 승정, 종정, 관장, 위원장 등의 표현은 이같이 다양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명칭과 직제로 볼 수 있다. 종교 수반의 명칭과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가와 종교가 하나로 일치된 제정일치 국가의 사례는 티베트, 1920년대 몽골 등이 있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제정일치 국가의 수반이다. 달라이 라마는 판첸 라마 등과 함께 종교적 권위와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인도 망명지에서 세운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자브잔담바 훗탁트(Javzandamba Khutagt, 1869~1924)도 스님이면서 황제의 지위에 올랐기 때문에 전제군주이면서 불교의 수반 역할을 하였다.

둘째, 불교가 국교로 지정된 나라의 승왕(僧王)은 해당 국가의 전체 불교 종파를 관장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불교가 국교인 나라는 태국, 부탄, 라오스, 캄보디아, 칼미크 공화국 등이 있다. 태국과 부탄은 왕권국가로서 승왕, 대승정 등의 상징적인 불교수반이 활동하고 있다. 부탄의 경우는 5명의 원로가 만장일치로 추천하면 국왕이 대승정 격인 제켄포(Jekhenpo)를 임명한다.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으나 라오스, 캄보디아, 칼미크 공화국 등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승왕은 상징적인 지도자이다. 스리랑카불교는 승왕과 같은 초종파적 지도자는 없으나 각 종파를 대표하는 종정급의 승려들은 선출되고 있다.

셋째,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종교 인구의 다수가 불교도인 사회주의 국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는 베트남과 중국으로, 이들 국가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베트남불교협회, 중국불교협회 등과 같이 지역 사찰의 연합조직과 이들로 구성되는 전국 연합조직의 특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불교 수장은 대부분 협회장, 혹은 위원장 등의 명칭을 사용한다.

넷째, 다종교, 다종파가 활동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교는 종단, 종파, 교파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종정, 승정, 관장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한다. 한국, 일본, 대만은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완전한 다종교 국가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일당 중심의 권위주의 정권이 유지되고 있어서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불교협회는 싱가포르의 전체 사찰과 승려들을 관리하는 중앙조직이다.

 

3. 각국 불교수반의 명칭과 특징

1) 상좌부불교의 전통

남방 상좌부불교권에서 종교 수반을 부르는 명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승왕(僧王, Sangha Raja)이고 다른 하나는 법왕(法王, Dharma Raja)이다. 승왕은 종교공동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다수의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지덕(智德)이 수승한 스님에게 부여되는 상징적 수장으로서 지위를 의미한다. 승왕은 그 국가를 대표하는 승려 한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특정 사원의 대표를 임명하기도 한다. 법왕(法王)은 삼보를 외호하는 국왕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볼 수 있다. 스님들 중에서 법왕의 칭호를 얻은 사례는 군주의 지위에 올랐을 경우이다.

 

(1) 태국의 승왕(僧王)제도

태국에서의 승왕제도는 랏따나꼬신 왕조(Rattanakosin, 1782~현재)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태국에서 승왕제도를 처음 도입한 라마 1세 출로라께 왕(1782~1809 재위)은 즉위와 함께 불교교단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782년 처음으로 쏨뎃프라 아리야봉사나나(Somdet Phra Ariyavongsanana I Sri) 장로를 초대 승왕(僧王, 쌍카랏)으로 임명하였다.

현재 태국불교를 관장하고 있는 조직은 1902년 제정된 승가법에 근거하여 형성되었다. 이때 국왕은 종교의 수호자로서 권위를 갖게 하고 승가는 승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위계제도를 도입하였다. 1932년 입헌군주제가 등장하면서 승가의 자율성이 확대되었고, 1962년 승가법 개정과 함께 권위주의적인 승가제도가 형성되었다.

1992년 승가법 개정으로 승왕이 공석일 때 총리가 원로회의(마라테라싸마콤)의 동의를 얻어 원로승려 중에서 연장자를 추천하여 국왕이 임명하도록 규정하였다. 2004년 승가법에서는 승왕이 고령으로 직무를 할 수 없을 경우에 7명의 원로승려인 쏨뎃프라차카나로 구성된 위원회가 국왕에게 승왕을 제청하도록 규정하였다. 태국의 승가 조직은 승왕을 포함하는 21명의 원로회의와 5개 행정지역을 관장하는 승가 지역 담당자, 그리고 두 종파에서 각각 77개 도를 관장하는 도(道) 종무원장이 임명되고 있다.

 

(2) 미얀마의 종교성 장관

미얀마는 전통적인 왕조국가였으나 1924년부터 3차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일본에 점령당했다가 1948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영향력하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가 1990년부터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미얀마불교는 1961년 국교로 정해졌으나 다수의 소수 종족과 비불교도들의 불만이 표출되면서 불교 국교화법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1974년 헌법 조항에 “국가는 불교를 보호할 의무가 없다.”라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불교 국교는 폐지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미얀마 정부는 승가의 정화와 보호 및 전파를 위해 최고승가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미얀마불교 종파는 1990년 제정된 승가조직법에 의해 공인된 9개 종파(Nikaya)가 활동 중이다. 미얀마불교의 승단 및 제 종교의 관리 업무는 정부기관으로 설립된 종교성(宗敎省,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에서 담당한다. 그리고 불교 교단의 관리는 9개 종파에서 추천된 47명으로 국립승가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에서 승단의 제반 문제를 통괄하고 있다. 각 종파의 경우 종파를 관장하는 의장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종정예하와 같은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3) 스리랑카의 승왕과 종단의 승정

스리랑카의 모든 종파를 총괄하는 승왕(僧王)의 직제는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활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근 2세기 동안 어떤 승려도 이 자리에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스리랑카에는 승왕을 대신하여 씨암 니까야, 아마라뿌라 니까야, 라마나 니까야 등 3개 주요 종파의 대표자로 활동하는 마하나야까(승정, Maha-nayaka)가 있다. 마하나야까는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종파별로 승려들을 관장하는 최고위층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우리나라의 원로회의 의장 및 종정의 지위에 해당한다. 스리랑카 3대 종파에서 마하나야까의 칭호를 받은 종파는 씨암종(Siam Nikaya, 1753년), 아마라뿌라종(Amarapura Nikaya, 1803년) 그리고 라마나종(1864년)이다.

스리랑카에서 장로 스님들에게 마하나야까의 지위를 임명한 것은 1753년에 구족계 수지를 복원하면서 당시 승왕이었던 사라난까라(Weliwita Sri Saranankara) 장로에 의해 시작되었다. 마하나까야의 다음 서열은 아누나야까(Anunayaka)라고 부르는데 부승정 혹은 총무원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누나야까는 마하나야까의 직에 있는 승정이 열반할 경우 그 후임으로 승정직을 계승하는 지위에 있다. 다음 서열로는 한 지역에서 승가의 일을 관장하는 수석 상가나야까(Chief Sanghanayaka)가 있다.

 

(4) 캄보디아의 승정(僧正)

캄보디아는 2005년 기준으로 약 1,600만 명의 인구에 4,106개의 사원과 58,828명의 승려가 있다. 이 가운데 3,980개의 사원과 57,509명의 승려는 마하니까야(Mahanikaya) 종단 소속이다. 캄보디아에는 두 개의 종단이 있는데 나머지 하나는 담마윳따(Dham-mayutta) 종단이다. 캄보디아 불교는 1993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국교의 지위를 회복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자율적인 종단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각 종단은 승정(sangha nayaka)을 정점으로 하여 이를 보좌하는 라자가나(rajagana), 그 아래로 도(khet)별 최고승인 메꾼(mekun), 군(srok)별 책임 승려인 어누꾼(anukun), 그 아래로 각 사원의 주지인 쩌우 아티까으(Chau Athikar)와 일반 승려들로 구성된 위계적 조직이다.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지만 불교 인구가 전체 국민의 약 96%에 달하기 때문에 승가의 정신적 지도력은 매우 확고한 편이다. 특히 전국에 산재해 있는 사찰이 신앙, 교육, 사회활동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찰의 역할과 승가의 권위와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다.

 

2) 금강승불교권의 전통

(1) 티베트불교의 활불과 달라이 라마

티베트불교의 수장은 달라이 라마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겔룩파를 이끄는 종정이며, 동시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왕의 지위를 모두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불교를 상징하는 최고의 지위를 가진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577년 몽골 초원에 자리 잡은 북원의 황제 알탄 칸(1507~1582)이 내린 칭호이다. 알탄 칸은 당시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던 승려 소남갸쵸(bSod-nams rGya-mtsho, 1543~1588)를 몽골로 초청하여 만났다. 1578년 여름, 소남갸쵸는 쿠케누르의 차브치얄(Chabchiyal) 사원에서 만난 알탄 칸에게 “우주 군주이자 전륜성왕과 같은 쿠빌라이 칸의 환생자”라고 찬탄하였다. 이에 화답하여 알탄 칸은 소남갸쵸에게 ‘달라이 라마(Dalai Lama)’라는 칭호로 화답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호칭을 받은 소남갸쵸는 티베트로 돌아와서 스승인 걀와겐둔갸초(Gyalwa Gendun Gyatso, 1475~1542)를 달라이 라마 2세로 추증하고, 그의 스승 젠둔드럽(Gendun Drub, 1391~ 1475)을 달라이 라마 1세로 추증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달라이 라마 3세로 정한 소남갸초는 몽골제국의 원조 아래 군대를 갖지 않는 티베트의 실권자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 3세는 대원제국의 제사(帝師)로 활동한 파스파의 환생자로, 그리고 알탄 칸은 세조 쿠빌라이 칸의 환생자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티베트와 몽골제국의 정치적, 종교적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제4대 달라이 라마인 왼텐갸초(Yonten Gyatso, 1589~1617)는 몽골인 중에서 선택되었으나 제5대 달라이 라마부터는 티베트의 겔룩파에서 선정되었다. 그리고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갸초(Tenzin Gyatso, 1935~현재)가 현재까지 인도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2) 몽골불교의 활불 복드 게겐

청의 지배하에 있던 1700년대부터 1800년대 말까지 몽골불교에서는 복드 게겐 제도가 정착하였다. 복드 게겐은 젭춘담바 후툭투, 즉 젭춘담바의 환생자로서 권위를 갖는 종교적 통치자이다. 젭춘담바 후툭투는 몽골어로 복드 게겐(Bogd Gegeen)으로도 불리는데 게겐은 라마와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복드 라마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젭춘담바 후툭투(Jebtsundamba Khutuktu) 1세는 몽골 할하 지역 불교를 재건한 자나바자르(1635~1723)였다. 젭춘담바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 중에서 선정하였으나, 1758년 청의 건륭(Qianlong) 황제가 미래의 모든 환생자는 티베트 국민 사이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이로 인하여 몽골의 젭춘담바 후툭투 3세부터 9세까지의 환생자는 모두 티베트 내에서 배출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몽골의 신정체제가 유지되었다.

몽골불교의 수장인 복드 게겐은 제1대 젭춘담바 후툭투부터 제9대 잠발 남돌 초켸 곌첸(1936~2012)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복드 칸이라고 불렸던 몽골의 마지막 황제 자브잔담바(Javzandamba, 1869~1924)가 열반에 들면서 승가의 영향력은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 티베트불교계에서는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에 이어 몽골불교를 관장하는 복드 라마(Bogdo Lama)가 세 번째 서열에 해당하는 지위를 갖고 있다. 제9대 복드 게겐은 1959년 티베트에서 인도로 갔으며, 1991년 달라이 라마 14세에 의해 승인을 받고 2012년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열반하였다.

몽골은 1923년부터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가 유지되다가 1990년 민주화 과정을 경험하였다. 이 기간에 몽골에 산재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1990년 이후 활발하게 재건되고 있다. 현재 몽골불교를 대표하는 수장은 간단사 주지가 맡고 있는데 몽골불교회장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

 

(3) 부탄의 제켄포

부탄불교는 티베트불교 종파 중 카규파가 전파되면서 시작되었다. 7세기에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가 부탄에 2개의 사찰을 건립하였고, 인도의 승려 파드마삼바바가 인도불교를 전파하였다. 부탄불교의 수장은 1637년부터 시작된 제켄포(Jekhenpo, 대승원장)가 맡고 있다. 부탄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이지만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을 정도로 종교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신헌법이 제정되면서 불교계는 국가종교위원회(Dratsh-ang Lhentshog)에서 5명의 위원인 로폰(Lopons)이 회장을 선출하면 그 스님이 제켄포, 즉 대승원장에 취임한다. 이들 위원은 모두 드럭파 카규종파(Drukpa Kagyu sect)에 속한다. 제켄포는 드럭파의 수장이면서 부탄불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제70대 제켄포로 뚤쿠 지그메 초에다(Trulku Jigme Choedra)가 재임 중인데, 한국불교의 종정과 총무원장을 한 사람이 겸직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한다.

 

3) 대승불교권의 전통

(1) 일본의 관장제도

일본불교는 약 225개 불교 종파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신불분리 정책 이후부터 각 종단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관장(管長)’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사례를 보면 1952년(昭和 27) 종헌을 제정하고 현대적인 종단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때 영평사와 총지사를 양대 본산으로 지정하고 산하 사찰을 별원(別院)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별원의 주지가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대본산의 관수(貫首)를 겸직하도록 규정하였다. 따라서 조동종에는 2인의 관수가 활동하게 되었는데 선사(禪師)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 있게 했다. 관수는 대본산의 존엄을 상징하며 종단의 사표(師表)가 되고, 승려와 사족, 단도의 관리 및 신도의 교화를 관장하는 최고위직이다.

조동종은 크게 영평사와 총지사 등 두 개의 교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아우르는 상징적 대표자가 필요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장(管長)의 직제를 설립하였다. 관장은 조동종의 책임 역무원으로 영평사와 총지사에서 2년씩 번갈아 취임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조동종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일본불교는 종파를 초월하여 전국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는 불교수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종단별, 종파별 수장이 있고, 그 대표자를 관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2) 중국의 불교협회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1959년부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종교를 탄압하였다. 1979년 중국불교협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지역 불교협회들이 조직되었다. 현재 중국의 종교정책 및 관련 업무는 국무원 산하 직속 기관인 국가종교사무국에서 관장하고 있다.

중국은 인민들의 종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법적인 관리와 사회주의와의 일치성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종교정책은 삼자삼정(三自三定)으로 요약된다. 삼자(三自) 정책은 자전(自傳), 자판(自辦), 자양(自養)이다. 이것은 외부의 도움, 간섭, 지원을 배제하고 스스로 전도하고, 자체적 판단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정(三定)은 정해진 장소, 구역, 성직자 등에 의해서만 종교 활동을 해야 한다는 국가정책이다.

국가종교사무국이 중국 전역의 불교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중국불교협회다. 이 협회는 중국의 자치단체별로 모두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의 승가와 사찰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중국불교협회의 영향력은 지역 불교협회의 교세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중국불교협회는 회장과 부회장 등 임원진이 형성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재가불자들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모두 스님들이 담당하고 있다. 각 사찰에는 방장과 주지 등이 있는데 중국불교협회의 승인이 있어야 취임이 가능하다.

 

(3) 대만의 종단 수장

대만불교계는 전통 종단들과 신흥 4대 종단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이주해온 스님들 중심으로 중국불교회를 구성하였으나 중국 대륙에 유사한 조직이 형성되면서 대만불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만불교계는 종문(宗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각 종문의 수장에 대한 호칭은 대사(大師), 상인(上人), 법사(法師) 등을 사용한다. 불광산사를 창종한 성운 스님에게는 대사의 호칭을 붙이고, 자제공덕회 증엄 스님은 상인(上人)으로 부른다. 그리고 법고산사의 창종자인 성엄 스님에게는 법사(法師)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4) 싱가포르불교총회

싱가포르불교총회(SBF: Singapore Buddhist Federation)는 1949년 설립되었으며, 134명의 개인 회원과 128개 연구회원(2013년 12월 현재)이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불교 관련 기관과 불자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며 전법교화에 앞장서고, 불교문화, 교육, 사회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마하보디학교, 문수중학교, 싯다르타 아동보호센터, 청년 집단 활동, 다르마 교육 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불교총회의 조직은 회장, 부회장을 비롯하여 재정, 홍법, 교육, 문화, 자선 등 다양한 하위 조직을 운영 중이다. 총회의 임원은 약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싱가포르불교를 총괄하는 대표는 총회장으로 설립 이후 현재까지 35대가 구성되었다.

 

3. 우리나라의 종정제 변천과정

1) 종정제도의 도입과정

고구려의 삼론종, 백제의 율종, 신라의 화엄종 등과 같이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중국불교의 종파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이 시기에 다양한 종파가 유입되었기 때문에 전체 불교의 승가와 사찰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는 형성되지 못하였다. 다만 불교가 국교로 정해지면서 국사(國師)와 왕사(王師)의 직위가 도입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사를 임명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는데 임명권자는 국왕이었다.

왕사제도는 1392년 건국한 조선조 초기까지 이어졌으나 배불정책의 도입으로 소멸하였다. 특히 세종 6년에 전국의 사찰 대부분이 혁파되고 36개 사찰만 남게 되었을 때 이 사찰과 승적을 가진 수행자를 관리하는 주체는 사찰의 주지승이었다. 사찰이 점차 커지고 거주 대중이 많아지면서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사찰의 관리조직을 응용하였다. 사찰의 관리조직은 용상방(龍象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용상방에는 선원 사찰의 어른인 조실(祖室) 또는 방장, 선을 지도하는 수좌, 사찰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감원(監院), 사무를 총괄하는 유나(維那) 등을 비롯한 다양한 소임의 이름이 게시되고 있다. 용상방은 사찰의 행정적 조직체계와 사찰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소임자 및 직위체계를 보여준다.

국사 및 왕사 제도가 폐지된 이후 승직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기에 서산휴정이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으로 임명된 이후의 일이다. 당시 선조는 왜란으로 인한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자 승군 조직의 수장으로 서산휴정을 도총섭으로 임명하고 승군의 지휘를 위임하였다. 도총섭 휘하에 총섭을 두었는데 8도에 각각 2명씩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종료된 이후에도 총섭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국왕이 도총섭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계의 큰 사찰 주지 소임자를 사중에서 선발하였다. 그 결과 도총섭과 총섭은 관직이 아니라 사찰 내의 승직으로 전환되었다. 총섭제는 1899년 조선불교총종무소가 설립되고, 1902년 ‘국내사찰 현행세칙’ 36조가 제정되면서 섭리(攝理)라는 명칭을 도입하였다. 조선불교총종무소는 대한제국의 조정에서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국가 사찰 관리기관이었다.

당시에는 원흥사를 전국을 대표하는 대법산으로 정하여 여기에 총종무소를 두고 전국 13도를 관장하는 수사(首寺)로 중법산 16개 사찰을 지정하고 도별 종무소 역할을 부여하였다. 원흥사에 위치한 조선불교총종무소에는 도섭리 1인과 내산섭리 1인을 두었는데 도섭리는 현재의 총무원장, 내산섭리는 현재의 직할교구본사 주지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2년 수사찰 관리 업무가 궁내부 소속 관리서로 이관되면서 국내 수사찰인 원흥사의 승직에 변화가 있었다. 이때 교정(敎正)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좌교정과 우교정 각 1인이 임명되었다. 좌교정(左敎正)은 승직 전체 임원과 일반 사원의 사무를 지휘 감독하는 소임으로 현재의 총무원장과 같은 직위라고 할 수 있다. 좌우 교정의 임기는 12개월로 추망공선(推望共選), 즉 추천을 통해서 구성원들이 함께 선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오래가지 못하고 1904년 폐지되었다.

1908년 일본이 대한제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내정 간섭을 시도할 때 불교계는 원종(圓宗)을 설립하였다. 이 원종은 대한제국시대에 불교계가 자율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종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원종종무원은 이회광이 대종정(大宗正)에 취임하고 산하 조직으로 총무, 교무, 학무, 서무, 인사, 감찰, 재무 등의 부서가 편재하였다. 이때 최초로 불교계에서 종정이라는 직위명이 등장하였다.

1911년 사찰령이 제정되면서 사찰의 주지직 관련 규정을 둠으로써 전국을 통괄하는 불교계의 자율적 조직과 소임자는 사라졌다. 1912년 사찰령의 규정에 근거하여 30본산 주지회의가 소집되었고 여기에서 원종종무원을 해산하고 종명을 조선불교선교양종으로 변경하였다. 1929년 각황사 승려대회에서 조선불교선교양종 교무원 설립을 의결하였다.

1940년 조선불교조계종 총본사 태고사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근거하여 제1회 중앙종회를 개최하고 이 회의에서 초대 종정에 방한암(1876~1951)을 선임하였다. 그리고 이종욱(1884~1969)을 종무총장으로 지명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종무총장을 비롯한 모든 소임자가 사임하면서 조선불교조계종은 막을 내렸다. 이때 김법린 등은 이종욱으로부터 종권을 인수하면서 조선불교혁신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승려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승려대회에서 조선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의결하였다. 그리고 종정을 교정(敎正)으로 바꾸어 초대 한영, 제2대 한암, 제3대 만암 등으로 이어지다가 폐지되었다.

1954년 조계종비구승단이 결성되어 1962년까지 종정제도를 유지하였으며,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통합종단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1964년 한국불교태고종이 분종하면서 이후 우리나라는 여러 종단이 경쟁하는 다종단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종단마다 종정과 총무원장제를 중심으로 종권 구조를 확립하고 있다.

 

2)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종정제도 변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제도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종정 중심제하의 종정이고, 다른 하나는 총무원장 중심제하의 종정이다. 종정 중심제하에서 종정은 인사권과 재정권을 모두 관장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단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된다. 종정중심제는 1941년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법에서 규정한 이후부터 1978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총무원장 중심제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1941년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법에서는 종헌 제29조에서 “총본사 주지는 종정(宗正)이라 칭하고 본종의 대표로서 종정(宗政)을 총리(總理)한다.”고 종정 중심의 체제를 명시하였다. 그리고 종정이 중앙종회 의장을 겸직(제52조)하도록 함으로써 확고한 종정 중심제를 구축하였다. 이때 초대 종정은 한암중원(1876~ 1951) 대종사가 역임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개최된 전국승려대회에서는 불교의 종명을 ‘조계종’에서 ‘조선불교’로 바꾸고 일제가 제정한 사찰령을 부정하고 총본산 태고사법과 31본산제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조선불교 교헌을 제정하였는데, “교단 대표로 교정(敎正) 1인을 두고(제10조) 교정은 교정(敎政) 전체를 총람하며 일체의 교무를 재정(裁定)함(제11조)”이라고 규정하여 교정 중심의 운영체제를 명시하였다. 조선불교의 교정은 한영석전(1870~948), 한암중원(1876~1951), 만암종헌(1876~1957) 대종사 등의 순으로 역임했다.

그러나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승은 사찰 밖으로 나가라’라는 제1차 정화유시를 발표함으로써 분규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대처승 중심의 교권(敎權) 세력은 ‘조선불교 교헌’을 ‘불교조계종 종헌’으로 바꾸고 교정을 종정으로 환원하여 당시의 만암종헌 교정을 종정으로 재추대하였다. 그리고 조계종 비구승단 종정은 만암종헌(1876~1957), 동산혜일(1890~1966), 석우보화(1875~1958), 학눌효봉(1888~1966) 대종사 등의 순으로 역임하였다.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비구 측에서 종정(이효봉)을 대처 측에서 총무원장(임석진)을 선출하였다. 통합종단 종헌에서도 강력한 종정 중심제를 선택하였다. 고암상언(古庵祥彦, 1899~1988) 종정은 효봉 대종사와 청담 대종사에 이어서 1967년 3대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이어서 1972년 4대 종정에 재임하였다. 그리고 1978년 조계사 측과 개운사 측이 대립한 5대 서옹 대종사에 이어 6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1978년 제54회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에서는 종정의 지위를 약화시켜 본격적인 총무원장 중심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종헌 개정을 통해 종정의 종무행정 참여를 금지하고(제19조), 종단의 대표권자를 종정에서 총무원장으로 교체하였다(제49조).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하지만 총무원장은 중앙종회에서 선출하도록 하였다. 1981년에 성철 대종사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며 이후 서암 대종사가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1994년 종단 개혁과정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종헌종법으로 개정되면서 현재까지 총무원장 중심제는 지속되고 있다. 현행 총무원장은 각 교구본사를 대표하는 선거인단과 중앙종회의원이 참여하여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월하 대종사가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혜안, 법전, 법원 대종사가 종정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4. 결어

승왕, 대승정, 종정 등을 포함한 각국의 불교수반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는 최고의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한다. 이와 같은 지도력 때문에 불교수반이 비록 상징적인 직책이라 할지라도 세간의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세간의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님이 티베트불교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14세이다.

종정을 비롯한 불교지도자를 모시는 이유는 출 · 재가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부여하고, 종단과 종도를 이끌어 가기 위함이다. 또한 지도자를 발굴하고 그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종단과 불교계 전체를 활성화시키고 발전하도록 촉진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종정예하를 모시는 것은 종단의 수행 가풍이 계승되는 결과이다. 종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수행력을 가진 스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교계는 발전할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종정은 1900년대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가와 사회를 외호하고 종단을 이끌어 가는 매우 중요한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조계종단의 종정제도는 일본불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으로 수행 가풍을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로 수용한 직책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선지식이 종정직을 포함한 종단의 여러 소임을 맡아 불교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경기대학교 행정학과, 동 대학원 졸업(행정학 박사). 주요 논문으로 〈서산휴정의 사상과 화합정신 고찰〉 〈대한불교조계종단의 사원관리체제 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 《둥근 깨달음 천수경》 《불교지도자론》(공저) 등이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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