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사까는 앙굴리말라가 되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자’는 ‘손가락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오온을 여의지 못한 스승을 수행의 본보기로 삼았기에 자신 역시 오온을 반성할 계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마저 죽이려던 순간 앙굴리말라는 극적으로 부처님을 만났다. 그 이후 그는 타인의 분노를 고스란히 견디면서 자기 행위의 과보를 받았다. 더 많은 지식과 명성을 갈구하며 번민하던 오만한 지식인이 부처님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 앙굴리말라는 다시 아힘사까가 되었다. 비록 사람들의 분노로 인해 몸은 상처투성이지만 아힘사까의 마음은 환희심으로 빛났다. 아힘사까의 지식에 대한 집착이 앙굴리말라를 낳았지만 그의 지식은 앙굴리말라를 죽이는 지혜로 거듭났다.

아힘사까가 앙굴리말라가 된 이유는 칸트 철학의 맹점에서 찾을 수 있다. 로빈 메이 쇼트는 《인식과 에로스》에서 칸트 철학은 감정과 욕망을 인식과 분리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명제의 밑바탕에는 근대적 지식인의 지식관이 감정과 욕망이라는 인간 조건의 한 측면을 부정하면서 인식만 극대화시키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유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이다. 감정과 욕망이라는 육체성을 지우고 인식이라는 정신성으로만 인간존재는 실존할 수 없다. 아힘사까가 스승 애첩의 유혹에 흔들린 순간 그는 자기 욕망을 인정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가 내뿜는 에로스에 이미 감염된 것이다. 그가 자기 욕망을 대면하고서 용기 있게 욕망의 중심을 꿰뚫었다면 그는 앙굴리말라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자기 욕망으로부터 도망쳤기에 스승의 욕망도 보이지 않았다.

칸트는 지식인이 자기기만적 삶을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 버린 셈이다. 저자는 감정과 욕망을 에로스로 규정하면서 칸트 철학은 인식을 에로스와 분리하는 것을 지식의 전제조건으로 본다고 말한다. 지식은 인간존재의 자기부정 위에 자라는 나무인 것. 에로스는 감정 · 욕망 · 섹슈얼리티 등의 순수하지 못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감각과 이러한 것에 대한 사랑이다.

아힘사까가 에로스가 실존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학문적 명성만을 추구하는 기형적인 인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오온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학문과 수행을 했을 것이며, 바른 스승을 찾아서 떠났을 것이다. 인식은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배제한 순수하고 추상적이며 이성적인 관념의 세계이다. 아힘사까는 자신이 배제한 것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칸트 철학의 중심에는 여성을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하여 타자화시키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음과 몸, 추상성과 구체성,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경계 짓기를 통해 칸트는 순수한 앎이라는 절대지(絶對知)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힘사까의 학문적 야심 역시 타자화시킨 자신의 몸이 일으킨 반란이다. 유혹에 흔들린 아힘사까를 도리어 자기를 모욕했다고 모함한 애첩의 행위는 관능에 대한 적대감이 성적 존재로서 여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내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가 철학의 영역을 여성이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에로스를 철학의 영역에서 내친 것과 유사하다. 서양철학의 뿌리에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애초부터 지워져 있었고 여성은 결핍되고 무지한 존재이기에 지식의 영역에서도 추방해 버렸다.

내 지식욕의 근원에도 인식에서 에로스를 분리하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더 나아가서 인식에서 에로스를 지우고자 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라캉이 말했듯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자 했다.’

라캉의 이 말은 내 삶과 기막히게 딱 맞아떨어진다. 내 삶은 늘 의식이 무의식을 밀어내고, 이성이 감정을 억압하고, 인식이 직관을 배척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밀어낸 무의식과 감정과 직관은 늘 꿈으로 나를 역습했다.

나는 인식과 에로스의 분리를 내 식으로 해석한다. 인식은 관념의 세계로, 에로스는 실재의 세계로 나는 본다. 관념은 지식의 추상성을 통해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앎의 고착화이고, 실재는 앎의 자기 규정성을 파괴하는 삶의 실천 행위이다. 간명하게 말하면 인식은 추상적 관념의 세계, 에로스는 구체적인 실재의 세계이다. 앎과 삶으로 더 압축해서 말한다면 너무 자의적일까.

앎과 삶, 글쓰기와 삶의 일치가 내 살아감의 최종 목표였지만 나는 늘 앎을 우위에 두었다. 앎은 삶을 견디기 위한 무기였고, 순간순간 나를 파괴하려 돌진하는 울분으로부터 나를 막는 방패였다. 글쓰기는 삶을 벗어나려는 나를 반성하는 고투의 현장이었고 수행의 도반이었다.

결혼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몇 년 전 중도 포기한 불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후회도 없다. 삶은 수많은 반전을 예비한 소설처럼 결말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라서 나는 운명의 변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애쓴다.

아힘사까가 앙굴리말라가 된 이유 역시 앎과 삶이 다르다는 착각 때문이다. 앎과 삶이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 앙굴리말라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앎은 삶을 끌어당기면서 구체성을 얻고 삶은 앎을 자기 몸에 새기면서 내 안의 타자성을 극복한다. 인식과 에로스의 경계에서 나는 나를 타자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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