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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벽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인간의 의식이 객관적 실재의 반영이라고 보는 관점을 ‘반영론(反映論, reflection theory)’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다. 스탕달이 소설을 가리켜 “큰길을 달리며 주변의 경치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비유한 이래 ‘반영론’은 문학을 창작하고 해석하는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이론이 되었다. 거울이 문학과 예술의 ‘모방론’ 혹은 ‘반영론’의 객관적 상관물로 널리 인정받았던 이유는, 그것이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다수 사람이 거울에 비친 영상을 실제의 모습이라 확신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 꽤 닮긴 했어도 실제와 정반대다. 실제의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고, 실제 세상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시끄러운데 거울 속 세상은 소리가 없다(이상 〈거울〉).

거울은 나와 남을 비교하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백설 공주》의 왕비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냐?”고 묻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은 왕비님, 당신입니다.”라는 대답에 만족했던 왕비는, 어느 날 아침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성은 백설 공주랍니다.”라는 거울의 청천벽력 같은 답변에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했고, 그 때문에 불행했다. 근대 유럽의 여학교 기숙사에 거울을 비치하지 않았던 것도,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이 타인과 자신의 외모를 비교하며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리스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는 거울(水面)에 제 얼굴을 비춰본 최초의 인간인 동시에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님프였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수명이 궁금해 테이레시아스를 찾았는데, 예언자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란 답을 한다. 그의 예언대로, 나르키소스는 우연히 수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델포이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구가 새겨져 있다고 하거니와,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그게 자신인 줄 몰라 죽음에 이른 것이다. 불경에도 거울에 대한 비유담이 있다. 항상 거울 속 제 얼굴만 바라보던 아유나닷타가 진짜 제 모습을 보고 고민하다 미친 뒤 “네 얼굴은 네게 있다.”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고사가 그것이다. 거울의 허상(虛像)에 사로잡혀 헤매는 이들을 위한 경계이다.

그렇다고 거울이 부정적 이미지로만 표상되는 건 아니다. 중세 유럽에서 티끌 한 점 없는 거울은 성모마리아의 상징이었고, 이슬람의 수피교도들은 우주를 거울의 집합으로 보았다. 중국에서는 후세의 교훈이 될 만한 일을 흔히 거울에 비유하였는데, 사감(史鑑), 통감(通鑑), 경고(鏡考), 감계(鑑戒) 등이 모두 거울에서 파생된 단어다. 윤동주가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했던 것도 이런 성찰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심명(信心銘)》에서 “(거울 속에) 비친 것을 좇으면 실체를 잃는다[隨照失宗]”고 하여 외양에 현혹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그대들 스스로 돌이켜 볼 것[爾自反照看]”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선종의 시조 달마대사가 참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체적 실천 행위로 ‘벽관(壁觀)’을 주장했다는 것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종감 선사는 “이와 같이 마음을 안정함이란 벽관을 말한다. 객진위망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벽이라 한다[如是安心 謂壁觀也 客塵僞妄 不入曰壁].”고 하여,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벽처럼 단단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객진(客塵)’은 외부에서 비롯되는 더러움, ‘위망(僞妄)’은 인위적인 작위성을 가리킨다. 요컨대 객진위망이란 거울을 흐리게 하는 먼지 같은 것을 말한다. 여기서 ‘벽관’은 ‘벽을 본다’가 아니라 ‘벽이 본다’, 또는 (내가)벽이 되어 (나를) 본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내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벽이 되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기존의 관념을 벗어난 발상의 대전환이다.

최인훈은 1969년 동국대에서 문학강연을 하며 “불교, 그 정묘한 관념의 체계의 한 부분을 가지고 그럼직한 미학의 이론 하나 만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이란 엄청난 정신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나일론 팬티와 맞바꾸는 한국 문화 현실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최인훈은 “문화사적인 분노의 전사(戰士)라는 포즈”로써 짐짓 자괴감을 달래는 듯하지만, 불교적 상상력으로 주체적 문학세계를 구축하려는 열망은 꺼뜨리지 않고 더욱 심화시킨다. 그의 《구운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서유기》 《화두》 등은 불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정찬의 〈숨겨진 존재〉는 달마의 ‘벽관’에 가탁하여 자신의 소설관을 피력한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는 우연한 기회에 설악산에서 기이한 정신적 체험을 한 뒤 달마의 벽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는, “달마가 벽을 응시하듯 완전한 소설을 응시한다. 달마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이 달마를 보듯, 내가 소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나를 보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소설을 새롭게 인식한다. 화자는 그때의 소설을 “불멸의 언어, 우주적 언어”로 쓰인 것이라고 느낀다.

벽관의 소설학은 외부세계를 주체의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고 주체와 객체가 서로 위치를 바꾸는 복수적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향한다.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원근법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근대 서양화의 기법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포착된 사물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전체를 통찰하는 겸재 정선(鄭敾)의 화풍과 유사한 원리이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서양이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지금 우리가 하는 문학이 ‘재도지문(載道之文)’으로서 문학이 아니라 ‘리터러처(literature)’의 번역어로서 문학이므로 서양 이론을 참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근대문학 이전의 문학작품조차 서구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한때 중국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이 시인이나 시 연구가들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잊힌 책이 되고 말았다. 최인훈이 불교에서 그럴듯한 미학이론 하나 만들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구운몽》 등을 실험했듯이,

최근 나는 ‘거울과 벽’을 문학의 화두로 이런저런 공상을 한다. 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늘 제자리걸음이다. 사자가 우리 속에서도 제자리걸음을 멈추지 않듯, 나도 ‘거울과 벽’이란 화두로 씨름을 계속할 생각이다.

지난 7월 23일 소설가 최인훈 선생이 영면했다. 그보다 두 달 전엔 시조시인 무산 스님이 열반했다. 그리고 최근 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육신을 벗었다. 올 한 해에 한국문학의 세 거봉이 가셨다. 올겨울은 무척 쓸쓸하고 추울 것 같다.

cywoo@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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