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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가 문제다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송현주 순천향대 교수

필자는 이미 오래전 한국불교 의례의 현상과 미래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현대 한국불교 의례의 과제와 제언〉(《철학사상》 11, 2000)이란 논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글에서 필자는 한국불교 의례의 문제 상황을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하였다. 그것은 첫째 의례형식의 통일, 둘째 의례형식과 내용의 개선(의례의 현대화 · 간소화, 한글화, 법회의식의 정체성 확보, 찬불가의 문제), 셋째 새로운 의례의 계발, 넷째 불교의례의 교리적 정비였다. 그리고 ‘불교의례의 의미 회복’과 ‘수행(구도)의례의 강화’를 과제로 제시하고 제언하였다.

그런데 최근 몇몇 사찰의 일요법회에 참가하면서 한국불교 의례, 그중에서도 특히 일요법회는 글을 썼던 2000년의 상황과 내용에서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몇 부분에서 진전되고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지적되었던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일요법회의 운영과 불교인구의 감소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체계적인 설문조사와 정확한 통계에 입각한 생각은 아니다. 아직 하나의 인상이고 가정에 불과한 만큼 성급한 결론은 유보하고자 한다. 또 일요법회나 불교의례가 불교인구의 증감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인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불교의례의 단면은 한 종교 · 종단의 성격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지표로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6년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인구 통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는 감소했다. 2015년 종교인구는 43.9%로 2005년도의 52.9%에서 크게 줄었고, 무종교인이 2005년의 47.1%에서 56.1%로 늘었다. 통계청 조사 이래 처음으로 무종교인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불교인구는 최근 급감하고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불교인구는 총인구의 15.5%(762만 명), 개신교는 19.7%(968만 명), 천주교는 7.9%(389만 명)이며,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치면 기독교 인구는 27.6%에 달한다. 불교인구의 비율이 1982년에 29%, 1995년에 23.2%, 2005년에 22.8%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숫자이다. 인구 숫자로 환산하면 불교인구는 1995년 1015만 명, 2005년 1059만 명이던 것이 10년 만에 297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10년 새 120만 명이 증가한 개신교에 이전까지 불교가 차지했던 신도 수 1위의 자리를 내주었다. 2015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종교가 없고, 최대 종교는 개신교라는 종교지형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필자는 우선 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과 경기 지역 몇몇 사찰 법회에 참석한 바 있다. 이 법회들에서 필자가 느낀 소회를 종합하면 ‘한국불교 일요법회의 경쟁력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행 한국불교의 일요법회가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에 잘 부응하고 있는가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근대불교 이래 계속되었던 의례의 현대화 · 대중화 요구가 한국불교에서 지금까지 거의 무시되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한국불교 위기론과 불교의례의 개혁방안이 논의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87년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의 신도 수가 불교인 수를 능가했다고 보고되었다(정병조 〈한국사회의 변동과 불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논총》 87-3, 1987).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많은 연구는 한국불교가 침체기로 진입할 것임을 예견하였고, 불교의례의 재정비, 의례의 현대화와 한글화, 법회의례의 대중화, 불교 생활의식의 대중화 등을 제안했다. 많은 연구자는 공통적으로 의례의 문제가 한국불교의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변수의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했던 것이다.

이제 종교의례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례는 ‘성스러운 것 혹은 궁극적 실재와 관계하여 반복하는 정형화된 행위’이다. 이때 궁극적 실재란 인간의 본질적 운명이나 우주의 구조 등 해당 종교인에게 가장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 중요성을 지닌 것을 말한다. 의례가 지닌 종교적 힘의 핵심은 그것이 인간에게 참으로 성스러우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을 재현하거나 현존케 하는 능력에 있다. 의례가 창조해내는 종교 경험을 통해 참가자는 의례의 의미에 참여하며 궁극적으로 스스로 변화하는 힘을 갖게 된다. 또 종교의례는 주기적으로 신앙을 재창조하는 수단으로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강화해줌으로써 한 집단의 결속과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밖에도 종교의례는 축제의 기능, 오락적 기능, 심미적 기능 등 수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의 불교 신도 수가 감소하고 침체해 있다면, 그것은 불교의례가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초반 용성 선사와 만해 선사의 의례 개혁 노력과 문제의식이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며, 어떤 지점에서는 오히려 앞선 것으로 느껴진다. 용성 선사는 불교의식문의 한글화 · 현대화에 앞장섰으며,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1913)에서 불교의례의 개혁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만해는 불가에서 숭배하는 불상이나 그림이 너무 많아 번거로우니 석가불 하나로 통합하자고 주장했다. 또 불교의례도 너무 번잡하니 하나의 간결한 의식으로 만들자고 했으며, 부처에 대한 공양을 반공(飯供) 대신 법공(法供)으로 하고, 재(齋)공양과 제사는 복을 비는 의식이므로 폐지하는 것도 좋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의식 간소화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불교의례의 목적이 기복이 아니라 불교 본연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력수행(自力修行)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 핵심이다.

‘일요법회’에 국한해서 볼 때, 1980년대 이후 많은 연구자에 의해 지적되어 온 한국불교 의례의 문제점은 오늘날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천수경》 등의 송주, 독경, 정근, 헌공, 축원 등 조선시대의 의식문에서 볼 수 있는 전통의례를 계승하여 대부분 범어 다라니와 한문 게송을 가창(歌唱)하는 형식은 엄숙한 경건성을 유지하게 하지만, 의미 전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 전체적으로 의례가 복잡하며 반복적이고, 축원의식도 동참 불자의 주소, 성명을 일일이 낭독하여 시간을 끌어 지루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일요법회의 경우 ‘법회’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설법조차 없는 경우가 많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법문 시간이 짧거나 설법의 내용도 출세간 위주의 교리, 선문답 위주로 ‘알맹이 없는 설법’이 많다는 지적도 여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불교 의례의 통불교적 성격에 대한 비판도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한국불교 의례에는 너무 많은 존상(尊像)들이 등장하며, 한 대웅전 안에서도 여러 불보살에게 예경하는 의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존상들로 구성된 수많은 작은 예경의식들의 집합은 불교 신앙의 비확실성과 번잡성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이는 신앙 대상에 대한 대중의 응집력 약화를 불러일으켜 종교적 신성성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통불교 전통으로 인해 지나치게 복잡해진 한국불교 의식은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대두되어 온 만큼, 불교의례의 현대화와 관련하여 여전히 유효한 논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불자의 종교의례 참여빈도는 통상 다른 종교에 비해 적다는 불교신행의 일반적 특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법회나 불공 의식에 반드시 정기적으로 참여해야만 불교 신도인가 하는 물음에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의식에 참가하는 불교도들을 위해 의례의 형식과 내용을 좀 더 가다듬어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한 번의 참여가 커다란 만족감을 준다면 신도 수의 증감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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