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내 나이 60대 중반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이 80세이니 일생의 4분의 3 이상이 지나갔다. 과거가 미래보다 3배나 많은 셈이다. 인생의 향방이 대충 결정 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도 바꿀 수 있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논리적,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또한 불교 사상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 미숙하나 내 나름대로 말씀드려 보겠다.

우선 과거는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불교 연기론에 의하면 현재의 일들은 과거에 지어진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것이다. 현재의 결과가 좋으면 지난날의 그 행동은 잘한 것이고, 거꾸로 현재가 별로 좋지 않다면 원인 행위도 잘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지금의 결과와 상황을 좋게 만들면 과거를 바꾸는 셈이다. 옛날에 명백하게 잘못했더라도 거기서 배우고 극복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성취했다면 그 실수가 용납된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이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섰다면 그때의 괴로웠던 시간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과정으로 바뀐다.

신경과학적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뇌를 구성하고 있는 신경세포는 1천억 개가 있고 세포당 10~10,000개의 가지돌기가 뻗어 나와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다. 세포는 수많은 가지돌기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흥분 또는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다음 신경세포에 전달한다. 외부 정보를 선택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많은 세포가 이런 네트워크로 소통한 결과 기억, 계산, 판단, 논리적 사고 같은 지적 기능이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과거란 무수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억이란 신경학적으로 신경세포 간 소통 과정 자체다. 연결이 강화된 신경세포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기억의 흔적을 만든다. 어떤 원인에 의해 신호 강도가 변하면 신경세포의 흥분이 변하고 연결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면서 기억도 변한다. 즉, 과거가 변하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 감정, 판단 등과 다양하게 연결될수록 더 오래, 안전하게 유지된다. 이런 기억은 재생될 때 연결된 감성이 동시에 떠오른다. 여기에 현재의 새로운 판단, 감정을 덧칠하여 재기억하므로 다음번에는 새롭게 변한 기억이 나타난다. 이렇게 기억은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변하고, 이에 따라 마음속에 있는 과거도 바뀐다. 이를 불교식으로 해석하면 세상은 마음에 의해서 투영된 그림자로, 오직 분별 작용인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비슷하다.

사실 우리의 수많은 과거사가 이렇게 미화된 상태로 기억된다. 기억이 반복될 때마다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마음에 편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유식사상 중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말나식(末那識)과 같다. 추억은 항상 아름답고, 같은 일을 사람마다 달리 회고하는 이유다. 문제는 진실이 왜곡되고 인간사에서 비슷한 오류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기억에서 사실 자체와 주관적인 감정/판단을 분리해 보아야 한다. 과거사의 기억에 왜 그런 이성과 감성을 덧칠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고통스러운 기억에 이 방법이 유효하다. 회피하고 잊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 기억을 들여다보고 분석하여 정면으로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이 개인사를 글로 기록하고 정리해보는 것이다. 일기나 자서전, 자전적 수필이 그 예이다. 또 다른 방법은 명상이나 자기 성찰을 통하여 특정한 과거사를 분석하는 것이다. 진실을 파악하고, 왜곡된 판단과 과장된 감정이 생긴 이유를 찾아본다.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처음 생각보다 덜 심각한 경우가 많다. 참선과 신앙생활도 좋은 방법이다.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악연도 무조건적 사랑과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이겨 내기도 한다. 기억에 덧칠한 판단과 감정의 이유를 분석하면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알 수 있다. 마음을 공으로 비워서 과거를 정리하고 승화하면 인격 완성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유식론으로 표현하면 본래의 깨끗한 마음자리로 돌아가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청정성이 회복되어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지혜를 얻게 된다. 지금이라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 결과 여생을 깨우쳐 살게 된다면 그 인연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지나온 세월이 값지고 아름다운 과거로 바뀌는 셈이다.

과거는 대부분 행복한 추억으로 회상된다.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길이 낯설고도 아름답다. 빛의 방향이 바뀌고 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한 생명이 걸어온 기록이기에 아름답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활력 자체다. 무생명인 어떤 것보다도 가치가 있다. 병든 시간도 생명이면 가져야 할 시기이고, 어려웠던 기간도 피할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다.

공자는 60세가 되니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해서 이순(耳順)이라 했다. 다르게 말하면 공자가 지나온 삶, 모든 과거사가 이처럼 마음속에 정리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60을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미망에서 헤맨다. 여러분과 내가 이런 지혜를 얻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더욱 밝아지길 기원한다. 대부분의 시간이 간직된 과거를 적극적인 태도로 아름답고 가치 있게 바꾸어 기억할 수 있다면 여생에 큰 축복이 되리라.

jkch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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