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공동주관하는 제95회 열린논단이 지난 9월 20일 ‘일요법회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주제로 송현주(순천향대) 교수의 강연으로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송현주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이번 모임에서 정기법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검토하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특히 그 어느 때보다 전법활동이 침체되어 있는 현 상황과 수년전 발표된 불교신자수의 감소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전법활동 소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전법활동의 가장 중요한 방법인 정기법회 활성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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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논단 9월 모임 안내

주제; “일요법회 활성화를 위한 제언”
발제; 송현주 박사(순천향대 교수)
일시; 9월20일 오후 6시 30분
장소; 불교평론 세미나실(서울 강남구 신사동)
문의; 739-5781(불교평론 편집실)



일요법회의 현실과 한국불교의 미래 - 송현주

1. 필자는 이미 오래 전 한국불교의례의 현상과 미래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현대 한국불교 의례의 과제와 제언〉(《철학사상》 11, 2000)이란 논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글에서 필자는 한국불교의례의 문제 상황을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하였다. 그것은 첫째, 의례형식의 통일, 둘째, 의례형식과 내용의 개선(의례의 현대화·간소화, 한글화, 법회의식의 정체성 확보, 찬불가의 문제), 셋째, 새로운 의례의 계발, 넷째, 불교의례의 교리적 정비였다. 그리고 ‘불교의례의 의미 회복’과 ‘수행(구도)의례의 강화’를 과제로 제시하고 제언하였다.

그런데 최근 몇 몇 사찰의 일요법회에 참가하면서 한국불교의례, 그 중에서도 특히 일요법회는 2000년 글을 쓰던 상황과 내용에서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몇 몇 부분에서 진전되고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지적되었던 문제가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일요법회의 운영과 불교인구의 감소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 체계적 설문조사와 정확한 통계에 입각한 생각이 아니다. 아직 하나의 인상이고 가정에 불과한 만큼 성급한 결론은 유보하고자 한다. 또 일요법회나 불교의례가 불교인구의 증감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인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불교의례의 단면은 한 종교·종단의 성격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지표로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2. 2016년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인구 통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인구 는 감소했다. 2015년 종교인구는 43.9%로 2005년도의 52.9%에서 크게 줄었고, 무종교인이 2005년의 47.1%에서 56.1%로 늘었다. 통계청 조사 이래 처음으로 무종교인이 인구의 과반을 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불교 인구는 최근 급감하고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불교 인구는 총 인구의 15.5%(762만 명), 개신교는 19.7%(968만 명), 천주교는 7.9%(389만 명)이며,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치면 기독교 인구는 27.6%에 달한다. 퍼센트로 볼 때 불교 인구는 1982년에 29%, 1995년에 23.2%, 2005년에 22.8%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숫자이다. 인구 숫자로 환산하면 불교 인구는 1995년 1015만 명, 2005년 1059만 명이던 것이 10년 만에 297만 명이 준 것으로, 10년 새 120만 명이 증가한 개신교에 이전까지 불교가 차지했던 신도 수 1위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므로 2015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종교가 없고, 최대 종교는 개신교라는 종교지형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우리의 논의를 위해 올해 필자가 직접 참석하여 관찰했던 경기도 신도시의 한 사찰(A)과 서울의 두 유명 사찰(B, C)의 일요법회의 풍경을 간단히 스케치해보면 다음과 같다.

A 사찰(2018년 7월 15일, 비교적 역사 깊은 도심 사찰): 10시 시작한 의식은 천수경 독송, 관세음보살 정근, 축원으로만 이루어졌고, 1시간 만에 끝남. 참가자 약 20~30명.
B 사찰(2018년 8월 26일. 서울 강남 소재): 10시 조계종 법요집에 따라 천수경으로 법회 시작, 10시 20분경부터 관세음보살 정근 약 15분 진행. 10시 35분 정법계진언~ 예참 공양, 10시 40분 축원~관세음보살 발원으로 11시 3분 법회 마감.
C 사찰(2018년 9월 9일과 9월 18일. 서울 도심 소재): 10시 천수경, 불공의식 시작, 10시 15분 삼보통청, 10시 23분(혹은 25분) 서가모니불 정근, 10시 30분 정법계진언~ 헌좌진언, 10시 31분 예참공양, 10시 39분 축원~10시 55분 반야심경, 법성게, 11시 법문~ 12시 끝.

이 세 사찰의 일요법회에서 공통적 특기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사찰의 경우 법문(설법)이 없어서 법회라기 보다는 ‘불공' 의식이었고, 집전 스님은 불단을 향해 의식을 집전하고 신도들과는 아무 접촉 없이 퇴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B사찰의 경우도 역시 법문은 없었으며, 10시 20분부터 11시까지 무려 40분 동안 ‘관세음보살 정근’과 ‘축원’만 행해졌다. 이 시간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많아 분위기도 다소 산만했다. C사찰의 경우, 10시부터 11시까지 불공과 축원, 11시부터 1시간 설법을 안배하여, 일요법회는 총 2시간 소요되었다. 설법시간을 많이 할애한 점에서 일요법회에서 법문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법 이전 10시부터 무려 1시간 동안 불공과 축원만 진행한 것은 다소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이 법회들에서 필자가 느낀 소회를 종합하면 ‘한국불교의 일요법회의 경쟁력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행 한국불교의 일요법회가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에 잘 부응하고 있는가에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근대불교 이래 계속되었던 의례의 현대화·대중화 요구가 한국불교에서 지금까지 거의 무시되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4. 한국불교 위기론과 불교의례의 개혁방안이 논의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87년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의 신도수가 불교인 수를 능가했다고 보고되었다(정병조, 〈한국사회의 변동과 불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논총》 87-3, 1987).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많은 연구들은 한국불교가 침체기로 진입할 것임을 예견하였고, 불교의례의 재정비, 의례의 현대화와 한글화, 법회의례의 대중화, 불교생활의식의 대중화 등을 제안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의례의 문제가 한국불교의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하나의 변수라는 사실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제 종교의례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례는 ‘성스러운 것 혹은 궁극적 실재와 관계하여 반복하는 정형화된 행위’이다. 이 때 궁극적 실재란 인간의 본질적 운명이나 우주의 구조 등 해당 종교인에게 가장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 중요성을 지닌 것을 말한다. 의례가 지닌 종교적 힘의 핵심은 그것이 인간에게 참으로 성스러우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을 재현하거나 현존케 하는 능력에 있다. 의례가 창조해내는 그 종교경험을 통해 참가자는 의례의 의미에 참여하며 궁극적으로 스스로 변화하는 힘을 갖게 된다. 또 종교의례는 주기적으로 신앙을 재창조하는 수단으로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강화시켜줌으로써 한 집단의 결속과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밖에도 종교의례는 축제적 기능, 오락적 기능, 심미적 기능 등 수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의 불교신도 수가 감소하고 침체해 있다면, 그것은 불교의례가 본연의 기능과 의미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초반 용성선사와 만해선사의 의례 개혁의 노력과 문제의식이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며, 어떤 지점에서는 우리보다 오히려 앞서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용성선사는 불교의식문의 한글화·현대화에 앞장섰으며,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1913)에서 불교의례의 개혁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만해는 불가에서 숭배하는 불상이나 그림이 너무 많아 번거로우니 석가불 하나로 통합하자고 주장했다. 또 불교의례도 너무 번잡하니 하나의 간결한 의식으로 만들자고 했으며, 부처에 대한 공양을 반공(飯供) 대신 법공(法供)으로 하고, 재공양과 제사는 복을 비는 의식이므로 폐지하는 것도 좋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의식간소화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불교의례의 목적이 기복이 아니라 불교 본연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력수행(自力修行)의 정신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 핵심이다.

5. ‘일요법회’에 국한해서 볼 때, 1980년대 이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온 한국 불교의례의 문제점은 오늘날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천수경》 등의 송주, 독경, 정근, 헌공, 축원 등 조선시대의 의식문에서 볼 수 있는 전통의례를 계승하여 대부분 범어 다라니와 한문 게송을 가창(歌唱)하는 형식은 엄숙한 경건성을 유지하게 하지만 의미 전달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 전체적으로 의례가 복잡하며 반복적이고, 축원의식도 동참불자의 주소, 성명을 일일이 낭독하여 시간을 끌어 지루하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일요법회의 경우 ‘법회’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설법조차 없는 경우가 많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법문 시간이 짧거나 설법의 내용도 출세간 위주의 교리, 선문답 위주로 ‘알맹이 없는 설법’이 많다는 지적도 여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불교의례의 통불교적 성격에 대한 비판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한국불교 의례에는 너무 많은 존상(尊像)들이 등장하며, 한 대웅전 안에서도 여러 불·보살에게 예경하는 의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존상들로 구성된 수많은 작은 예경의식들의 집합은 불교신앙의 비확실성과 번잡성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이는 신앙대상에 대한 대중의 응집력의 약화를 불러 일으켜 종교적 신성성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통불교 전통으로 인해 지나치게 복잡해진 한국불교의식은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대두되어 온 만큼, 불교의례의 현대화와 관련하여 여전히 유효한 논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불자의 종교의례 참여빈도는 통상 다른 종교에 비해 적다는 불교신행의 일반적 특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법회나 불공의식에 반드시 정기적으로 참여해야만 불교신도인가라는 물음에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의식에 참가하는 불교도들을 위해 의례의 형식과 내용을 좀 더 가다듬어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한 번의 참여가 커다란 만족감을 준다면 신도수의 증감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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