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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감나무와의 대담
한승원 소설가
[26호] 2006년 03월 10일 (금) 한승원 소설가

내 작가실 마당에 백 살쯤인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동쪽, 서쪽, 북쪽의 세 큰 가지들 가운데, 동쪽의 한 개가 썩어 꺾인 그 감나무.

지난 한밤중에 그녀와 마주섰다. 그녀는 노랗고 빨갛고 파란 별들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어르신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요? 몸이 부실한데 곧 어디론가 떠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온 곳도 없고 가야할 곳도 없다. 내가 발 묻고 있는 곳은 내 고향이고, 우주 한복판이다. 나는 여기서 영원히 살 것이다.>

“소멸되지 않는 존재라는 말입니까?”

<나는 우주 생성 초부터 이 땅에 존재하기 비롯한 우주의 화석이다. 죄업을 짓는 인간들처럼 윤회에 떨어지는 법 없이, 한 세대가 죽으면 씨가 움이 터서 다음 세대를 잇곤 했다. 우주 한가운데의 심연(深淵)에 뿌리박고 있는 진리, 영원한 시간(無量光) 그 자체이다.>

“하아!”

그녀의 말 속에 어마어마한 관념이 들어 있어 나는 감탄부터 했다. 너무 큰 관념 앞에 서면 나는 말이 막히곤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종교적 관념적 철학적 신화적 영적인 존재인 체한다. 내가 말을 잃은 것은, 그녀의 관념에 대한 하부구조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토굴 마당의 감나무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달관한 성자인 듯 거슴츠레하게 눈을 감고 있다가 풋 늙은이인 내가 그의 그늘에 들어서면 거침없이 설법한다.

<너처럼 늙어가는 것들은 다 노회(老獪)해지고 노욕을 부리게 된다. 돈과 권력을 움켜쥐려 하고, 자기의 별 것 아닌 이름을 여기저기에 끼워 넣고 흥행하려 한다. 돈 좀 벌었다 하는 사람들은 목에 힘 준 채 골프장 드나들고, 고향 지역구에서 거지처럼 한 표 한 표를 구걸하여 서너 차례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오만해져서 국민 위에서 군림하고, 여기저기에서 이권 챙기고 폭탄주 마시고 성희롱하고 장관들을 향해 큰소리 땅땅 친다.

경전 몇 줄 읽고 참선하여 한 소식을 한 수좌들은 오만해져서 절에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신흥종교 교주처럼 삼배를 받고 도통한 듯 목에 힘을 주고, 귀동냥한 이런 말 저런 말들을 법문이랍시고 늘어놓고 원효의 ‘걸림 없음(無碍)’을 흉내 낸다.

무애는 진리로 나아가는데 있어서의 걸림 없는 지혜이고, 탐욕과 아만이라는 그물에 걸림 없는 ‘마음 비우기’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거침없이 함부로 살아가는 막행막식으로 착각하고, 무식이 탄로 날까 싶어 선승들이 하듯 ‘악(喝)!’하고 소리치고, 독살이절에 여자 숨겨놓고 술 마시고 고기 먹고 거짓말 하고 닭 벼슬보다 못한 벼슬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명예 챙기고, 그런 연후에는 다시 보임(保護任持-깨달은 자가 자기의 그 경지를 계속 보호해 나가기 위하여 공부하고 지계하는 일-‘보림’이라 읽기도 함)하지 않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주눅 들리게 하는 관념만 늘어놓지 말고, 당신이 하필 제 토굴 마당 한 복판에 서 있어야 하는 당위성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은 나에게로 몰려들고, 나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을 타고 하늘 길에 이른다. 그것을 알아줄 수 있는, 우주에 뿌리를 뻗고 우주의 율동 같은 삶의 원리를 서사로 풀어내는 소설가인 네가 이 집의 주인이 되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 때문에 순간적으로 오만해진 내가 물었다.

“이 마당에서 백년쯤을 머물렀으므로 이제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뿐 나는 여기 머물러 있지 않다. 우주의 시간 따라 흐르고 있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역설! 요즘 한 겨울 내내 잎사귀로써 광합성을 하실 일도 없고 늘 잠만 자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나를 잠만 자고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야 말로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요즘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가령 당신도 스님들처럼 동안거 중이십니까? 면벽참선하시는 것입니까?”

<너는 ‘면벽참선’이란 말에 걸려 있구나. 『달마 어록』을 읽어보면 면벽참선이란 말은 없다. ‘벽’은 수도하는 공간에 있는 사방 바람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탁악세의 모든 공격적인 현상들을 차단시켜주는 것이 벽이다. 가령 요염한 여인이 유혹했을 때 그 유혹을 뿌리치는 장치가 벽이고, 돈과 벼슬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뿌리치는 장치가 벽이다. 바람벽을 향해 좌선하는 것이 면벽참선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벽은 사실 네 마음속에도 있고 마음 밖에도 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순리이다. 밤이면 밤하늘의 별들하고 교통교감을 하고, 해 뜨면 햇살 속에서, 달이 뜨면 달빛에 흠뻑 젖은 채, 안개 끼면 안개에 젖은 채 춤추는 우주 물결에 스미어 흐르는 것이 선이다. 울퉁불퉁하고 꺼끌꺼끌한 쇳덩이 같은 관념(논리)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끊어지는 길(言語道斷)에서 새로운 길(진리)이 만들어진다.>

“당신은 시방 말을 부정(불립문자)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부정하면서 결국은 말을 이용하여 진리를 말하고 있는 모순을 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는 역설의 미학을 모르는구나. 진리는 말도 안 되는 말(손가락질) 저 너머에 둥그렇게 떠(달)있다.>

“그 달은 무엇입니까?”

<‘중생들과 함께 타고 깨끗한 세상으로 가는 큰 수레(大乘)’ 말하자면 ‘부처님의 마음(一心)’이다.>

“감다운 감 하나도 주인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승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내 떨어뜨리는 감꽃이나 물러터진 시자 들은 개미나 미생물이나 새들이 얼마나 좋아 하는 줄 아느냐? 한승원이 너는 원고료와 출간한 책의 인세 받아서 너와 너의 아내와 자식들만을 위해 쓰지만, 나는 주위의 굶주린 자들을 위해 쓴다.>

“당신의 삶이 곧 보살의 삶이라는 것입니까?”

<신화는 태초로부터 있어온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이 신화가 된다. 가시적인 태양과 소통한 것들은 역사로 기록되고 달과 별과 안개와 구름과 비와 눈과 하늘과 소통한 것들은 신화가 된다.>

“어떤 신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까?”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면서 고려 왕족인 왕씨 성 가진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 들었을 때, 왕씨 집 할머니들은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허리에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감아놓고 비손을 했다. 열 새끼 가운데서 단 하나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 좌수군에 들어간 쇠돌이 어머니 순돌이 어머니 장쇠 어머니도 비손을 하고, 동학년에 농민들이 죽창 들고 나섰을 때는 부칠이 어머니 갑돌이 어머니 순칠이 어머니 바우 어머니가 비손을 하고, 빨치산들이 여수 순천 광양 벌교 장흥을 휩쓸었을 때는 여수 십사연대에서 엠원총을 차고 뛰어다닌 영춘이 어머니가 비손을 하고, 인민군들이 다녀간 뒤에는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거제 수용소에 갇힌 폰개 어머니가 비손을 했느니라. ‘용천하시는 하느님 칠성님 산신님 지 새끼 명줄이 동아줄보다 튼튼하게 해주씨요이’ 하고.>

“당신에게도 꿈이 있습니까?”

<소설가인 네가 나를 쳐다보며 사유하고 명상한 결과 큰 작품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여름철 땡볕 속에서 나를 당신의 그늘 속으로 유혹하는 이유입니까?”

<내 거대한 모습은 우주의 율동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나의 가지나 잎사귀들은 땅을 지키는 지신(地神)의 머리칼이다. 안테나 같은 머리칼을 이용하여 땅과 하늘하고 교통하고 교감한다… 동쪽 하늘에서 피어나는 아침노을, 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핏빛으로 타오르는 황혼을 내가 만든다. 가을철, 나의 황금색으로 물든 잎사귀들과 나의 모든 열매들이 땅을 덮었을 때, 내가 앙상한 나뭇가지로 찬바람 쌩쌩 내달리는 겨울 하늘을 떠받쳤을 때, 사람들은 나를 거울삼아 탐욕과 오만과 질투심을 버리고 고요히 침잠함으로써 거듭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에게 덕담을 한 마디 해주십시오.”

<명심하여라. 내가 지니고 있는 미덕, 그늘과 내 열매를 주위의 배고픈 것들에게 주는 넉넉한 마음을 네 것으로 만들면 나처럼 영원히 짱짱해 있을 것이지만은, 내 말을 무시하고 탐욕에 젖어 살면 신세가 바람 빠진 튜브처럼 병든 낙엽처럼 쪼그라지고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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