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상의 핵을 찾는 스에키 후미히코의‘일본불교사’와 관련하여

1.

 ‘불교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은 ‘불교사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을 전제하고 있다. ‘불교’와 ‘역사’의 합성어인 ‘불교(역)사’는 보편종교인 불교와 시(時)의 틈새(間)의 연속인 역사의 조합이다. 불교가 연기와 중도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다면, 역사는 역사인식의 근거인 역사해석과 이러한 인식체계를 지배하는 사관을 기초로 한다. 때문에 한 분야의 통사를 쓴다고 할 때는 여러 측면의 접근이 요청된다.

이를테면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과학사적 관점을 날줄로 하고, 문학사, 사학사, 철학사, 종교사, 예술사의 관점을 씨줄로 하는 포괄적 측면이 요구되는 것이다. 씨줄과 날줄의 직조는 다시 교단사, 교리사, 사상사, 지성사, 생활사 등의 관점을 이끌어낸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사상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의 날줄의 범주와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등의 씨줄의 범주를 아우르고 있다. 따라서 스에키 후미히코 교수의 『일본불교사』가 지향하고 있는 ‘사상사적 접근’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종합적인 시선에 상응하는 방법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장에 덧붙여’에서 “나는 사상에 조금 더 역점을 두었다”고 전제한 뒤 “지금까지의 ‘일본불교사’는 대부분 일본사의 전문학자가 쓴 역사서였다”고 규정하면서 스스로 “사상사의 독자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문화사와의 관계에 염두를 두어” ‘사상사적인 접근’이라고 부제를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을 ‘일본불교사상사’로 하지 않고 ‘일본불교사’로 한 것에 대해 저자는 ‘일본불교사상사’가 “평생의 작업으로 생각하는 전문서”이기에 보류해 두었다고 하였다.

이 『일본불교사』는 저자 스스로 ‘일종의 입문서’라고 겸허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종래 여타의 ‘일본불교사’와 변별되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스스로도 ‘전력을 기울여 쓴’ 저작임을 자부하고 있다. 저자는 “자국의 전통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어떻게 진정으로 본격적인 사상이 전개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불교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의 내 주요한 문제의식은 일본사상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는 불교에 전념해서 불교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일본의 불교사상을 자리매김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하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것은 세계종교로서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불교에 초점을 맞춤으로 해서 ‘일본’이라고 하는 장소에 갇히지 않고” 바라보려고 한다. 이렇게 할 때 저자 스스로도 “어떤 의미에서는 밖에서 객관화시켜 ‘일본’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또 “내게는 너무 ‘일본’에만 내재화되는 것에도 저항이 있다”고 피력한다. 하여 “한편으로는 ‘일본’에 내재화되면서 동시에 ‘일본’을 어느 정도 떨어뜨려놓고 볼 수 있는 시점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역사가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저자는 “나에게 있어 ‘일본불교’라고 하는 것은 ‘일본’과 ‘불교’가 서로 갈등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고 고백한다. 즉 “‘일본불교’라는 말은 다소 문제가 있는 말인데, 예전에 황국사관(皇國史觀) 하에서 ‘일본’에 입각해야만 ‘불교’는 최고의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 독자성이 ‘일본불교’라는 말로 표현된 적이 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소위 ‘일본’과 ‘불교’의 경사스러운 조화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위가 있기에 왠지 모르게 이 말에는 저항이 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 일본인인 저자 스스로는 ‘대단히 낯 두껍게도 생각되겠지만’이라는 한정사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일본불교사’는 기본적으로 ‘일본’ 안으로 ‘불교’가 당연하게 포섭되는 것으로 보고 거기에 의문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저자는 이 둘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파악하면서 “‘일본’과 불교의 미묘한 관계를 적어도 문제의식으로서 제시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한국불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나, 한일불교사를 공관(共觀)하는 관점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주목되는 지점이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과 ‘초점’의 대비를 통해 ‘시대적 개관’(장)과 ‘시대별 사상에 대한 심화과정’(초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2.

종래의 ‘일본불교사’1)와 확연히 변별되는 이 책에 대해 학계는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1992년에 나온 단행본 표지에서 나카무라 하지메(中村 元)는 이 책에 대해 간단한 서평을 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섭취하고 수용한, 또 우리들의 마음을 길러준 불교사상에 대해 지은이는 마치 칼로 도려내듯 날카롭게 분석하고 반성한다. 종래에도 ‘일본불교사’라는 제목을 단 책은 수없이 나왔지만, 그것들은 각 종파의 역사를 모은 것이거나 개조에 관한 강설을 집대성한 책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스에키 교수는 일본불교사를 일본인의 마음의 소원, 번민, 해결이라는 복잡한 경과로서 사상사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일본 불교의 제 문제에 대한 혜안을 갖게 하고 또 미래를 생각하게 해주는 저서다.

나카무라는 이 책이 ‘일본 불교의 제 문제에 대한 혜안을 갖게 하고’ 또 ‘미래를 생각하게 해 준다고’ 전제하고 ‘일본인의 마음의 소원, 번민, 해결이라는 복잡한 경과’로서 일본불교사를 ‘칼로 도려내듯 날카롭게 분석하고 반성하고 있음’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1996년에 다시 간행된 문고본 표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불교이면서도 중국과도 다른 일본의 불교는 어떠한 변화를 이루어 성립되었던 것일까. 본서에서는 6세기 중엽에 전래된 이래 성덕태자(聖德太子), 최징(最澄), 공해(空海), 명혜(明惠), 친란(親鸞), 도원(道元), 일련(日蓮) 등 다수의 빼어난 영웅과 이름난 승려에 따라 해석과 수정을 덧붙였고, 그때그때의 정쟁과 시대 상황을 타고 넘으면서 변모했던 일본불교의 본질을 정치하게 검증했다. 그것은 우리들 일본인의 사상의 핵을 찾는 지적 흥분으로 가득 채우는 여행이기도 하다.

위의 평가는 이 책의 특장을 각 인물들에 대한 해석과 수정 및 시대마다의 정쟁과 상황으로 변모했던 일본불교의 본질을 치밀하게 검증하고 있음에서 찾고 있다. 종래의 ‘일본불교사’에서 볼 수 없었던 ‘일본인의 사상의 핵을 찾는’ 이 저술은 학계에서도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에 의한 온전한 ‘일본불교사’ 기술은 아직 없지만 스에키 교수의 이러한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시각, 그러면서도 주체적인 관점은 통사의 기술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몇 종류의 ‘일본불교사’와 달리 ‘일본인의 사상의 핵을 찾는’ 이 저술은 한국불교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한일불교사를 공관하는 지점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인의 사상의 핵을 찾는’ 한국불교사의 저술 역시 동일한 관점 속에 있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그러면서도 주체적인 역사관을 통해 한국 사상의 핵을 찾는 한국불교사의 기술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 한국불교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의미에서의 한국불교사의 기술이 이루어져야 함을 평자는 시사받고 있다.

3.

이 책은 불교의 전래와 쇼토쿠 태자 및 남도 나라의 교학을 살피는 제1장, 헤이안 불교에 대한 시각과 사이초의 원교와 쿠카이의 밀교의 사상을 밝히는 제2장, 말법 도래와 흔구(欣求) 정토 및 본각과 정토를 밝히는 제3장, 가마쿠라 불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그 형성 및 본각사상과 수행의 결합, 사회변동기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무로마치 불교를 향해 나아감을 기술하는 제4장, 근세 불교의 문제점과 다른 사상과의 논쟁 및 불교의 재건과 지하신앙 및 신종교를 살피는 제5장, 고통을 겪고 신이 된 인간과 신불습합의 전개 및 신토(神道) 이론과 불교 그리고 산의 종교인 슈겐도(受驗道)를 살피는 제6장, 연구방법에 관한 시각과 한문불전의 수용 및 불교의 토착과 풍화를 살피는 제7장인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 불교사를 이해하기 위한 ‘문헌안내’와 ‘불교사 연표’를 덧붙이고 있다.

제1장에서 저자는 불교는 “최신의 문화로서 일본에 전래된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것은 인지(人知)를 뛰어넘은 무서운 존재인 신처럼 새로운 부처의 존재로 ‘방문한 신’〔客人神〕으로서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한다. 즉 불교는 “일본인에게 신의 레벨로 수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리(法)나 교단(僧)보다는 부처(佛)에 대한 숭배가 중심이었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현세의 이익이 중시〔나중에는 死者供養이 추가〕되었다”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쇼토쿠 태자시절 “불교가 대규모로 국가에 수용된 가장 큰 이유는 대륙으로부터 전래된 새로운 종교문화를 통해 전통적인 씨족사회의 장애를 제거하고 새로운 체제를 확립하려 했던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율령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카 개신(大化改新)을 거쳐 율령제로, 그리고 천왕 중심의 중앙집권국가체제가 확립되면서 불교는 국가에 의해 보호 육성되고 국가행사에 채택되는 한편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카마쿠라 (신)불교와 달리 기존에 크게 주목되지 못한 헤이안 불교가 수행 측면에서 귀족과 국가만의 기도불교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 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인 쿠가이(空海)의 십주심(十住心)의 구조는 서양 근세철학의 주축인 헤겔에 견줄 정도의 장대한 철학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이초가 확립한 일승주의나 불성론이야말로 가마쿠라 신불교를 잉태시킨 일본적 불교의 원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헤이안 시대 초기에 일본 불교의 기초가 만들어졌으며, 가마쿠라 불교는 신불교의 조사와 기성교단의 개혁파도 포함한 그 용용이자 발전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마쿠라 신불교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불교사관은 헤이안 시대 불교 및 가마쿠라 구불교로부터 재검토해야만 하는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도래했던 말법사상에 대해 중국과 대비하면서 일본의 말법사상의 정체성을 밝혀내고 있다. “종교사상은 결코 경전의 문자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상황과 주체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범부와 부처를 연결하는 여래장-불성의 개념을 이끌어 낸다. 즉 인도에서 상용한 ‘여래장’과 중국과 일본에서 즐겨 쓴 ‘불성’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미혹의 마음속에 있는 내재적인 깨달음인 동시에 목표로서의 깨달음인 ‘본각’의 개념으로 일본의 천태본각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종래에는 정토와 선과 니치렌계와 그 유파별로 나누어 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구불교를 포함해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시대의 추이를 좇아 상호간의 영향과 반발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가마쿠라 신불교의 공통적인 배경이 된 것은 천태본각사상의 재인식”이라는 전제 위에서 “종래의 신불교 중심의 사관을 비판하고 중세에도 역시 재편성된 구불교가 사회의 주류를 점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현밀융합(顯密融合)’에 입각한 현밀체제론(顯密體制論)으로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신불교 여러 종의 진전에 대하여 구불교 측 천태종이나 진언종의 간토 진출 등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사상사적 측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전개와 신토(神道) 독립의 경향”이라 지적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경내에 단가(檀家)의 묘지를 가지고 단가의 장례식이나 조상 공양을 가장 큰 업무로 하는 사원인 단나사(檀那寺)로 대표되는 장례불교를 무조건 나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며 “오늘날의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탄생과 결혼 등 생과 관련된 경사스러운 일은 신토,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것은 불교라는 분업체제가 확립되어 그것에 의해 두 종교의 평화공존이 성립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례불교의 원형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반화된 것은 근세의 에도 시대이며 근세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일본 불교의 형태를 확립한 시대”로 파악하면서 정치적인 강제성이 동반된 근세의 불교를 탐색하고 있다.

제6장에서는 인도의 부처가 일본의 신으로 시현하였다는 본지수적(本地垂迹)의 변용을 통해 신과 부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즉 부처 ->신이라고 하는 본지수적 관념의 틀 속에서 인간 ->신이라는 새로운 본지수적 관념이 생겨나고, 후자로 중점이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대왕과 왕자가 하늘을 나는 수레에 올라 날아온 일본의 구마노(熊野) 땅의 본궁(本宮)은 아미타여래, 신궁(新宮)은 약사여래, 나치(那智)는 관음보살을 본지로 한다”는 이러한 관념에 기초하여 “우리 자신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상당히 가까운 구제자로 바뀌어 있다. 이것을 고대와 중세의 초월주의 세계관에서 근세의 인간중심주의로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가 신보다 우위에 있었던 원래의 본지수적 사상과 달리 이제는 범부가 그대로 부처와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부처와 보살 역시 이미 신보다 상위가 아니라 신과 같은 수준의 존재”라고 보고 있다.

마지막장인 종장에서는 일본 불교를 보는 시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 불교의 다양성과 커다란 변용을 들고 있으며, 이것이 일본인 연구자에게 자신의 주체성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좀처럼 객관적인 대상으로 떼어놓고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역으로 일본 불교만의 매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일본 불교의 실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교리나 역사자료 뿐만 아니라 문학과 불상 같은 미술 분야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한문 불전의 수용, 그리고 불교의 토착과 풍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일본에서의 불교 수용 문제를 특히 ‘본각사상’을 매개하여 해명하고 있다.

본래 일본인 고유의 사고방식은 현세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충분하지만 고대 말기에서 중세에 걸쳐 현세이탈의 방향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불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불교는 현세주의적인 일본의 토양에 빨려들어 갑니다. 교리적으로 그 방향을 대표하는 것이 본각사상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본각사상에 의해 불교가 “일본 땅에 뿌리내리게 된 그 하나의 귀결점이 불교 자체의 풍화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신과 부처의 관계에서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이 발전해 부처가 신으로 나타났다는 논리가 성립되면, 현실적으로 일본 땅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강림한 신 쪽이 그 배후에 있는 부처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되게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본각사상이 현세주의 입장에 서면 현세에서 중생 구제를 하는 신이 있기 때문에, 부처는 필요 없게 되어버린다”고 진단을 내린다.

하여 “가마쿠라 말기의 내셔널리즘과 함께 발흥하는 신토(神道)사상이 불교를 섭취하면서 자립적인 사상을 형성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이는 일본에서의 불교의 토착과 풍화를 통해 신토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곧 본각사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불교가 본각사상이라는 형태로 현세주의화를 진전시키면서 일본 땅에 뿌리내리게 된 과정의 하나의 귀결은 불교 자체의 풍화였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풍화는 ‘뿌리를 썩게 하는 무서운 늪지’로서의 일본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외래 종교의 토착화에 대한 근본 의문’으로 신중하게 던져지고 있다.

4.

이 저술은 종래의 ‘일본불교사’와는 변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사상사로서 접근한 불교사’라는 점이다. 이것은 종래 여러 연구서들이 이뤄내지 못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불교학과 일본불교를 사상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저자의 시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일본과 불교의 관계를 즉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일본과 불교의 관계를 일정한 거리 위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기술하고 있다.

셋째, 기도불교 혹은 장례불교라는 부정적 평가를 껴안고 이것을 오히려 일본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신토’와 ‘불교’의 관계를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로 파악함으로써 일본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즉 인간의 탄생과 결혼 등 생과 관련된 경사스러운 일은 신토,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것은 불교라는 분업체제가 확립되어 그것에 의해 두 종교의 평화공존이 가능했다고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다섯째, 장례불교의 원형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반화된 것은 근세의 에도 시대이며 근세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일본 불교의 형태를 확립한 시대”로 파악하면서 정치적인 강제성이 동반된 근세의 불교를 탐색하고 있는 점이다.

여섯째, 아미타 ‘히지리(聖)’나 법화 ‘지경자(持經者)‘ 등의 활동을 일본 불교의 기저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는 점이다. 이는 일본 고대종교에서 영적 능력을 지닌 사람과 중국의 ‘성(聖)’ 개념과 도교의 ‘진인’ 개념을 겹쳐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중층성을 갖는 ‘성인성(聖人性)’을 통해 ‘성인’ 혹은 ‘진인’의 개념을 다면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곧 ‘지경자’와 대비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점에서만 하더라도 이 책의 독자적인 관점은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356개의 치밀한 주석과 핵심을 찌르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이 분야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지남(指南)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고대 일본불교의 중요한 동반자였던 한국과의 관련성을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상의 핵을 찾는’ 한국불교사 기술과 한일불교사를 공관하게 해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상사로서의 접근이 인간과 세계를 전관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는 점 등에서 이 책은 우리의 정체성과 인식틀을 형성해 온 불교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을 비롯해 ‘일본’과 ‘불교’의 접목 및 ‘근대’와 ‘번역’의 고리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스에키 후미히코 교수의 일련의 저작들은 ‘한국불교사’와 ‘한국불학사’ 및 ‘동아시아불교사’를 기술하고 있는 평자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삼가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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