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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말의 품격이 인격이다
[75호] 2018년 09월 01일 (토) 이자랑 본지 편집위원

   

이자랑
본지 편집위원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세 치에 불과한 혀지만, 잘못 사용하는 순간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한편,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도 한다. 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혀가 갖는 또 다른 힘이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위험하지만 매우 유용한 무기를 우리는 입안에 넣고 살고 있다. 게다가 날마다 많은 사람과 만나며 이 무기를 사용한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간접적인 만남을 갖기도 한다. 어떤 만남이든 ‘말’은 필수불가결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취미나 지식의 공유, 위로나 비판 등 갖가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늘 존재하는 것이 말이다 보니, 말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혀는 양날의 검과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고, 한 줄기 따사로운 햇살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 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말의 ‘품격(品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품격을 갖춘 좋은 말이란 어떤 말일까? 불교에서는 오계 중 하나인 ‘불망어계(不妄語戒)’가 말에 관한 대표적 가르침이다. 망어, 즉 남을 속일 목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비롯하여 이간질하는 말, 아첨하는 말, 흉보는 말, 깔보는 말, 거친 말, 욕설, 헛된 말, 실없는 말 등 진실하지 못한 모든 말을 경계하는 계이다. 오계에서는 불망어계라는 하나의 계에 이 모든 의미가 담기지만, 대승보살계로 중시된 십선계에서는 불망어 · 불양설(不兩舌) · 불악구(不惡口) · 불기어(不綺語)라는 네 조목으로 나쁜 말을 분류한다. 이 중 불망어는 거짓말, 불양설은 이간질하는 말, 불악구는 거친 말이나 욕설, 불기어는 아첨하거나 실없는 말 등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말들을 나쁜 말, 즉 품격이 없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편, 《숫따니빠따》에서는 이 네 가지 계가 ‘좋은 말이 지녀야 할 네 가지 조건’과 관련지어 설하고 있다. 좋은 말이 지녀야 할 조건이란 첫째, 잘 말해진 말이어야 한다. 그 말로 인해 스스로 고통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을 가리킨다. 말해 놓고 후회하며 스스로 괴로워하거나, 상대방이 그 말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없는 말이어야 한다. 이는 십선계 중 불양설과 관련된다. 이간질하는 말이나 중상모략하는 말 등은 잘 말해지지 못한 나쁜 말이며,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는 말은 잘 설해진 좋은 말이다.

어떤 나쁜 말보다 불양설이 자신이나 타인을 괴롭히는 말로 생각된다. 둘째, 도리에 맞는 말이어야 한다. 이는 불기어와 관련된다. 아첨하는 말, 실없는 말 등의 잡스러운 말은 도리에 맞지 않는, 여법(如法)하지 못한, 그야말로 잘못된 나쁜 말이다. 셋째, 사랑스러운 말이어야 한다. 이는 불악구와 관련된다. 욕설이나 거친 말 등은 상대방을 불안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따라서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가오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진실한 말이어야 한다. 이는 불망어와 관련된다. 거짓된 말은 나쁜 말이다.

이들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화합을 조성하여 나도 타인도 더불어 행복하게 하는 말, 도리에 맞는 올바른 말,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사랑스러운 말, 진실에 근거한 말,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춘 말이 좋은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실천이 그리 용이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말을 하라고 하지만, 내 기분이 나쁘거나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나쁠 때는 사랑스러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 진실한 말이라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상황도 있다.

진실이지만 들으면 상대방이 충격을 받거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말도 있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진실이 아닐 때도 있다. 말이 갖는 어려움이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생류(生類)에 대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이다. 맛지마 니까야 《무외왕자경》에서는 “여래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부처님이 “여래는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며 이익을 줄 수 있는가, 또한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인가 하는 점을 잘 파악하여 가능한 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말을 한다.”고 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여래는 중생들에게 연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든다. 사실과 진실, 이익, 그리고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가늠하며 말을 아끼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중생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앉아 내 말을 듣는 사람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고 그 사람의 행복을 진정 바란다면 폭력적인 말은 결코 할 수 없다. 그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파악하며 말을 건넬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음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폭력적이고 과격한 말이 범람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사람들 마음에 질투, 미움, 분노, 이기심, 탐욕, 어리석음 등의 심리적 번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이러한 번뇌들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말과 관련하여 최근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폭력적 댓글 문화를 보자. 대상을 마주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는 숨긴 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해진다. 자신이 비난하는 대상이 받을 상처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다. 그저 자신의 감정과 생각만을 칼날처럼 휘두른다. 맹목적으로 퍼부어대는 대부분의 비난은 마녀사냥을 떠올릴 만큼 매우 감정적이며 원색적이다.

이는 말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앉아 훨훨 불을 태우는 탐 · 진 · 치가 문제이다. 이런 마음에 타인을 향한 연민이 존재할 여유는 없다. 자신이 언어적 폭력으로 짓밟는 그 역시 자신과 다름없이 말에 상처받고 깊은 고통 속에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입에서 어떻게 품격 있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불교 경전에서는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 입속에는 도끼가 생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악언(惡言)을 하며 그 도끼로 자신을 찍어 내린다.” “그 누구에게도 거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받은 자가 너에게 돌려보낼 것이다. 거친 말은 고통을 야기하니, 회초리로 돌아와 너를 때릴 것이다.”라는 등의 시구로 나쁜 말이 초래할 수 있는 화근을 경고하고 있다. 나쁜 말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더욱더 철저하게 파괴한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앉은 악한 감정을 도려내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감정에 얽매여 스스로를 고통 안에 가둘 수 있다. 말은 마음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다. 내 입에서 거칠고 폭력적인 말, 누군가를 이간질하는 말, 거짓말, 아첨하는 말, 비방하는 말 등이 나오고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이다.

가을호는 ‘좋은 말’을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이 특집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말로 넘쳐나고 있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 세력 간의 다툼,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 비난,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악성 댓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폭언 등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말의 품격이 떨어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불교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2018년 9월

이자랑(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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