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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만식 지음 《불교음식학-음식과 욕망》/ 구슬아
불교 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밝히다
[74호] 2018년 06월 01일 (금) 구슬아 koojogyo@gmail.com

1. ‘불교음식학’ 범주의 정립을 시도하는 《불교음식학》

   

불교음식학-음식과 욕망
공만식 / 불광출판사

적당한 때에 세상에 나왔다. 지난 몇 해 동안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음식이었으며 여전히 그러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더 좋은 음식을 더 나은 방식으로 먹으라.”는 거의 시대적인 명령이 사람들로 하여금 음식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글과 방송을 찾아보고 또 자못 심각한 의견들을 나누게끔 삶을 조율하고 있다. 최근 도드라진 사찰음식의 유행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좋은 것을 잘 먹는다’는 모호한 지향은 보통 우리 시대의 가장 일반적인 섭식에 대한 반발, 즉 대공장제 생산에 의하여 산출된 “포장된 쾌락”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때 자연과 영성(靈城) 그리고 절제의 미덕을 담지한다고 여겨지는 사찰음식은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사찰음식을 먹을 때 사람들은 이른바 어떤 ‘불교적 정수’를 경험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사찰음식이 특정한 상품의 형식으로서 대중의 인구에 회자되는 일련의 상황이 음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의 부흥 및 그 자세의 수용과 곧바로 등치 가능한가는 의문이다. 정황들을 보건대 우세한 것은 소비주의이며 그에 따라 불교음식의 몇몇 표면적 양식만이 유통될 뿐이다. 그러므로 평소 불교와 음식 혹은 불교의 음식관에 관심이 있었던 이라면 이러한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출간된 《불교음식학》이 몹시 반가울 것이다. 

사실 《불교음식학》을 ‘대중서’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빨리어 《아간냐경》을 포함한 불교 경전의 여러 판본과 그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나란히 놓고 읽는 문헌학적 방식을 통해 불교의 세계관과 음식 그리고 섭식의 문자적 재현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구성이기 때문이다. 첫 장인 〈초기불교 우주론과 음식의 본질〉에서는 《아간냐경》의 독해를 진행하는 가운데 당대의 불교의 세계관 속 음식에 대한 인식 전반을 살핀다. 두 번째 장인 〈‘먹는다’는 결정〉은 이후 불자의 구체적인 수행 장면들 내에서 섭식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분석하는 데 할애된다. 제3장 〈불교 계율의 음식 규정〉과 제4장 〈비구니 불공 음식 계율〉 그리고 제5장 〈금지 음식〉은 고도로 추상화된 이념적 영역으로서의 ‘허용과 금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불교음식학》의 논의는 서로 다른 시점(時點)에 탄생한 문헌들을 두루 살핌으로써 음식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섭식이라는 실천에 결부된 계율들을 향해 점층적으로 구체화되어 간다. 이 흐름을 따라가는 노정은 결국 불교 음식 담론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과 같다. 독해와 분석, 부연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기술(記述)은 일관되며 찬찬하다. 따라서 어떤 사상의 ‘기원’과 ‘변천’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독자라면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노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 잉여, 악화, 쾌락, 욕망에 대한 관념: 불교의 섭식관

아쉽게도 400쪽을 훌쩍 넘는 《불교음식학》의 내용 전체를 이 지면에 오롯이 담을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인간의 감각 및 욕망을 포함하는 물질적 삶과 그것을 다루는 관념 차원의 방법론인 종교적 계율들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설정하고, 그와 관련된 몇 가지 핵심 논점들을 살피는 전략을 취하도록 하겠다.  

음식 및 섭식과 관련된 초기불교의 세계관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세계와 인간 존재의 평정 상태가 어긋나게 된 첫 계기로 음식을 지목한다는 점이다. 태초에 중생들은 희열을 먹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물질성을 지닌 미묘한 음식인 지미(地味), 버섯, 바달라따 덩굴 등을 취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욕계의 상태로 하강하게 되었다. 다음 단계의 악화는 지미에 비해 더 거친 음식인 야생 쌀의 섭식을 통해 야기된다. 야생 쌀은 미묘한 음식들과 달리 배설물을 만들며 그 결과 이를 내보내기 위한 배설기관 겸 성기가 생겨났다. 성기의 발생은 곧 생물학적 성의 분화를 의미하고 그로써 성욕을 포함한 온갖 애착과 희구가 발생하였다는 것이 여러 경론(經論)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의 큰 틀이다. 

결국 물질성을 지닌 음식의 ‘잉여’로 인해 성별과 욕망이 나타났다는 것인데, 성적 분화는 온전했던 존재의 ‘둘로 나뉨’이고 욕망은 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인 만큼 양자 모두는 완전성의 쇠락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시각은 잉여 식량의 저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생산과 분배의 층위에 대한 언급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섭식은 일회적이며 잉여를 만들지 않는 섭식이라는 것이다. 

악화의 원인이 음식이라는 의식은 정신적 고양을 위해 음식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믿음을 산출했다. 그 결과 어떤 힌두 수행자들은 ‘깨달은 사람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며 음식을 완전히 끊음으로써 섭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곧 지나(Jina)의 경지라는 믿음을 견지하기도 했다. 또한 고행 초기의 붓다 역시 단식을 수행의 한 경로로 여겼다. 그러나 《마하삿짜까경》에 나타나듯, 이후 붓다는 극단적 단식이 정신의 고양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섭식에 관한 새로운 규범인 중도적 섭식관을 제시한다. 

중도적 섭식관은 몇 가지 불가피성의 연쇄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성립한다. 비록 정신의 초월적 차원을 지향하는 수행자라 하더라도 일단은 신체를 지닌다는 몸의 불가피성, 몸을 지닌 이상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감각의 불가피성, 음식을 먹은 후 그로부터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쾌(快)의 불가피성이 그것이다. 불가피성의 연쇄들을 긍정하는 태도는 곧 악화를 부르는 감각적 쾌락과 수행에 필요한 힘을 회복시키는 ‘좋은 즐거움’ 사이의 구별로 연결된다. 

구별의 기준은 음식의 섭취가 적당한가 여부다. 음식의 적당한 섭취는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반면, 탐식은 수행자를 불선(不善)에 들게 한다. 극단적 절식 역시 수행자의 능력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요는 해탈의 시점 전까지 수행자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섭식은 필요하되, 음식을 구하는 일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으로 경도되지 않도록 과대도 과소도 아닌, 올바른 적당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빨리어 문헌은 물론 대승불교 문헌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중도적 섭식관이 추구하는 적당함은 수행자 개인의 성취 촉구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즉 수행자 집단과 재가사회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한다. 빨리율 바일제 중에는 재가자로부터 받아오는 음식의 양을 수행자가 알아서 제한하고 그것을 다른 수행자들과 공유하라는 조항이 있다. 근거가 되는 인연담들을 보건대 이러한 조항은 수행자들이 맛있는 음식에 이끌려 특정한 재가자의 집에 거듭 탁발을 갈 경우, 그로 인해 재가자가 느끼게 될 부담을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설정된 것인 듯하다. 재가자들로부터 제공받는 탁발식을 두고 맛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전자를 탐닉하기 시작한다면 수행자와 재가사회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엿보이는 것이다.

종합해보자면 붓다 이후 불교의 섭식관은 일회성의 추구(탁발이라는 형식은 어떤 음식을 받을지 알 수 없고 저장과 무관하여 잉여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회적), 불가피성의 인정(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보존할 필요가 있음을 수용) 그리고 수용자와 재가자 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의식(수행자의 섭식이 재가사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두루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섭식관은 중생으로서의 생명-존재에 대한 인식과 살생 금지의 조항 때문에 현대적인 심층 생태주의와 유사한 대안적 담론이라는 평가를 받곤 하지만, 그 계율을 면밀히 살펴보면 종교의 지속을 위해 정립되어야 할 사회적 관계에 관한 특유의 합리적 고려가 함께 작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현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것이 종교라면, 계율의 내용은 그것이 통용되는 객관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음식에 대한 탐욕의 경계가 핵심이기에 입이 즐거운 ‘미식’의 금지가 수행자의 기본 태도로서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또 경전과 판본에 따라 미식으로 분류, 금지되는 음식의 세부 규정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저자는 육식 금지, 우유 및 유제품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는 여러 경전을 교차 독해하는 동시에 선행 연구의 해석들을 함께 살핌으로써 그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가늠한다. 첨언하자면 금기시되는 육류의 품목에서 불청정의 관념적 기준과 사회의 정치 · 경제적 조건 중 무엇이 더 결정적이었는가의 문제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고민의 지점이 될 것이다.         

3. 불교음식학, 그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기원’에 대한 관심은 ‘실천’에 대한 관심으로 곧바로 연결되는가. 고시(古詩)의 종교적 가르침은 오늘날에 와서 우화, 지침, 도덕률 중 무엇의 위상을 지니게 될 것인가. 생각건대 이러한 질문들은 이른바 불교음식학의 현재적 의미를 어떻게 정립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축적과 잉여 그리고 더 많은 소비를 지향하게끔 우리 삶을 조율하는 객관적 조건, 바꿔 말해 ‘미식 권하는 사회’라는 조건은 경전들이 탄생한 역사적 시점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반면에 이상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세계관에 기반을 둔 위기의식은 현대의 먹거리 환경을 정의하는 복수의 관점들 속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정황이다.

텍스트의 의미가 결정되는 시점이 독해의 순간이라면, 이제 막 자신의 시작을 알린 불교음식학의 의미 역시 아직은 미결정의 상태에 있으며 차차 독자에 의해 완성되어 갈 것이다. 모두에서 이야기했듯, 불교의 섭식관에 관한 막연한 인상과 표면적 형식들만이 유통되고 있는 지금, 성실한 문헌학적 분석에 토대를 둔 묵직한 저작의 출간은 일종의 계기로 기능할 것 같다. 이 저작이 촉매가 되어 보다 진지하며 다양한 담론들이 개진되기를 기대한다. 불교적 섭식관의, 보다 정확히는 《불교음식학》의 현재적 의미의 자리는 바로 그 숙의의 장(場) 내부가 되리라 여긴다. ■

 

구슬아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비교문화협동과정에서 석사 · 박사 과정 수료. 석사 논문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식탁》을 집필했으며 현재는 해당 논의를 심화시킨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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