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불교 이해의 디딤돌을 놓다

 《동남아불교사》
불교평론 편집실 엮음

새로 나온 책을 소개 · 평가하는 글을 쓰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개 ‘아주 훌륭한 책, 진즉에 세상에 꼭 나왔어야 할 책’이라며 칭찬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주 가끔 ‘이런 책을 왜 써서 종이를 허비하고 환경을 망가뜨리느냐?’며 혹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극찬만 받는 쪽보다 혹평을 받는 쪽이 어쩌면 필자(들)에게는 더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분발하여 더 완벽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뜻밖으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교평론 편집진에게서 갑자기 서평을 부탁받고 읽어본 이 책 《동남아불교사》(김홍구 · 마성 · 송위지 · 양승윤 · 이병욱 · 조준호 공동집필)는 위 두 가지 경우에 맞지 않는다. 이 책을 기획했던 쪽과 필자들은 그렇게 바라겠지만 일방적 칭찬을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저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혹평을 받을 정도로 형편없는 책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 두루뭉술하게 넘겨야 하는데 이건 또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해서 몇 차례나 ‘못 쓰겠다고 할까?’ 하고 망설였다. 우선 솔직한 심경을 밝히고 책 읽은 소감을 쓴다.  

첫째,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국에 소개된 동남아불교의 역사 소개 책자는 몇 권밖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버마불교의 이해》와 《태국불교의 이해》 등 지역학 전공 학자들이 이룩한 연구 결과물이 출간되기는 하였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은 이 책의 여러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홍사성 역 《동남아불교사》와 박경준 역 《동남아시아의 불교 수용과 전개》 두 권이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미얀마 · 태국 · 스리랑카 등 상좌부 불교권 국가로 유학을 가는 이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승가와 재가를 가릴 것 없이 위빠사나 수행 열풍이 불고 있지만, 막상 그 상좌부불교를 시공간적으로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필자들도 자료 부족으로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학과 지역학 등으로 학문 배경이 다양한 국내 연구자들이 동남아시아 전체 불교국가의 역사와 현황을 조망하는 기획을 하고 출판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고 박수를 쳐서 격려해줄 만하다. 특히 이제는 ‘잊힌 또는 잃어버린 불교 왕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브루나이와 필리핀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을 〈동남아 믈라유 문화권의 불교〉로 따로 살펴본 것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둘째, ‘동남아불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총론인 마성의 〈동남아시아불교의 중요성〉에서 “동남아시아불교는 ‘상좌부불교(Theravāda)’라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동남아시아불교는 빨리 삼장(Pali Tipitaka)을 근거로 상가(Sangha)가 운영되기 때문에 의례는 물론 승려의 생활방식과 복장도 같다. 이처럼 동남아시아불교는 상호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정리를 해주어, 한 · 중 · 일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권의 서로 이질적인 모습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의 눈을 뜨게 해준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이래로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 국가들 사이에서 서로 끊어진 계단(戒壇)을 이어주고, 경전을 전해주며 끊임없이 교류를 이어왔다는 설명도 동남아시아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서구와 일본에서 이미 오래전에 겪은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뒤늦게 초기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치 ‘빨리 경전과 상좌부불교만이 초기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불교’인 것으로 믿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총론에서 “현재의 상좌부불교가 원래의 불교, 즉 초기불교 그 자체는 아니다. 현재의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는 기원전 3세기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에 전해 주었던 불교의 한 부파”에 지나지 않는다며 오해를 분명하게 바로잡아준다. 한편 그곳에서 기원전 1세기에 “주석서를 포함한 삼장 전체를 문자로 기록”하여 “현존하는 빨리 성전의 원형”이 되었으며 그때 문자로 기록된 빨리 삼장과 주석서들이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 전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그때 이런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붓다의 법과 율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동남아불교의 성격과 중요성을 확실하게 정리한다.

초기불교와 상좌부 동남아시아 불교의 환상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한국의 일부 불자들은 무엇보다도 총론의 마지막 대목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상좌부불교는 현재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상가 내부에 물질주의가 침투해 들어와 점차 세속화되어가고 있다. 밖으로는 물질을 앞세운 타 종교의 공격적 선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상좌부불교가 어떻게 물질주의를 극복하느냐에 따라 상좌부불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것은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 국가들이 해결해야 할 공통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상좌부불교 국가의 과제이기만 하겠는가. 한국의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계가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을.

셋째, 역사적 사실의 배경과 이유 설명이 소홀한 느낌이다
제한된 지면에 국가별로 여러 필자가 나누어 글을 쓰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지만, 각 나라의 불교 역사를 시대별로 나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 역사를 이해하려면 있었던 사실(事實, 史實)을 아는 것이 필수이겠지만, 역사 연구자에게는 그 사실 뒤에 숨어 있는 배경과 이유를 설명해줄 책임이 있는데, 이 책의 필자들은 학문 배경이 불교철학 또는 지역 언어를 비롯한 지역학이어서 그런지 이 점에 소홀하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역사는 생명력을 잃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에서도 실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아마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 중요한 정치 사회 문제 언급이 아쉽다
일반 사회의 대중뿐 아니라 승가와 재가불자들도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 예를 들면, 스리랑카에서 다수 불교도가 소수 타밀족과 갈등과 분쟁을 이어가고 미얀마에서 다수 불교도와 소수 무슬림 종족인 로힝야족의 오랜 갈등이 깊어져 외부 세계에서 ‘종족 말살(genocide)’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상황인데도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논문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물론 〈스리랑카불교의 역사와 현황〉 〈미얀마불교의 역사와 현황〉에서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 불교와 민족주의가 결합하게 되는 오랜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눈치 빠른 독자는 ‘스리랑카와 미얀마의 종족과 종교 갈등의 배경’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관심사인 이 문제에 대해 필자들이 간단한 설명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불교 왕국인 태국에서 왜 남부지역 거주 무슬림과의 종족 갈등으로 수천 명이 죽음에 이르는 등 심각한 사태가 이어지고, 국내 정치에서도 불교가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 〈태국불교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한때 승려 생활을 한 불교도인 폴포트 정권이 어떻게 승려를 포함한 동족 수백만 명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분석 · 설명하지 않는 〈캄보디아불교의 역사와 현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이나 캄보디아의 경우와 다르지만, 〈베트남불교의 역사와 현황〉에서도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소수 가톨릭교도가 정권을 잡아 다수 불교도를 박해하고 그것이 결국 남베트남 정권의 붕괴에 이르는 민심이반을 가져오게 된 역사를 설명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불교가 역사에서 잘한 일, 다른 종교나 서구 제국주의에 피해를 당한 일만 이야기하고 가해자가 되거나 가해자로 비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 일반 대중에게는 오히려 ‘불교가 폭력적이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본다.5)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불교 현황 소개에서도 중요한 사항이 빠져서 아쉬움이 남는다.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인근의 먼둣(Mendut) 사원에서 출발하는 웨삭데이 봉축 행렬을 소개하면서도 막상 그 사원이 중심이 되어 빨리 경전의 니까야(Nikaya)와 《자따까(Jataka)》를 현대 인도네시아어로 번역 · 출간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고, 다종족 · 다교 사회인 말레이시아 불교계가 상좌부와 대승불교의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불교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현황 소개가 빠져 있다.6)

칭찬보다 비판에 비중을 더 둔 것처럼 비치는 글을 마치려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불교평론 편집실이 책의 서문에서 “황무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발행되는 이 책이 부족하나마 동남아불교 연구의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듯이,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이 동남아시아불교를 이해하는 데에 작은 디딤돌이 아니라 큰 받침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받침돌을 함께 만들어낸 필자들에게 감사와 격려 인사를 전하며, 이 받침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지붕을 얹고 집을 꾸미는 연구자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석 · 박사 과정 수료. 오산대와 명지대 강사, 파라미타청소년엽합회 사무총장,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역임. 주요 저서로 《지혜로운 삶의 교훈 채근담》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평론집 《향기로운 꽃잎》 등과 역서 《조선불교통사(근대편)》 《담마난다 스님의 불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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