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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규 거사의 법보시 / 김종현
[74호] 2018년 06월 01일 (금) 김종현 불교평론 편집실

2018년은 ‘책의 해’이다. 1995년 이후 23년 만에 다시 제정된 책의 해를 맞아 국민 독서 분위기 조성과 출판수요 창출을 위한 도서전과 독서운동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정부 차원의 각종 출판 진흥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책의 가치가 드높이 상찬되고 독서의 중요성이 대대적으로 강조될수록, 출판계의 말석에서 책 만드는 일로 생계를 영위하는 필자의 기분은 씁쓸해진다. 이 같은 떠들썩한 움직임들이 상대적으로 매년 침체일로를 걷는 출판산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팔만대장경 조성’이나 금속활자본 《직지심경》 발간 등 세계사적으로 돌올한 출판 전통을 배경으로 한 불교출판의 규모가, 역사가 일천한 기독교계 출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통계자료를 대할 때마다 더욱 위축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위상의 쇠락(衰落) 역시 불교출판의 현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전법 활동에서 불서의 역할이 중요함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도 불서의 출판이 바로 포교의 활성화에 직결된다는 인식의 실천적 확산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학계의 인정을 받아 여러 학술상을 받은 불서라고 해도 수익은커녕 저자의 인세를 챙겨주기도 버거울 만큼 판매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불교출판계에,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전통이 있어 그나마 자부심을 느끼며 불서의 출판을 이어가게 한다. 그것은 바로 법보시(法布施)이다. 《유마경》 《대지도론》 등의 여러 경전에 나타나는 법보시 혹은 법시(法施)의 본래적 의미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의 지혜를 베풀어줌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경전이나 불서를 구입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기 어려운 불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보시행을 항용 법보시라고 한다. 뜻있는 불자, 기관들이 불서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신도들에게 배포하는 법보시는 포교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자금 사정이 어려운 출판사들에게 좋은 불서를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다는 점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본지 《불교평론》에도 법보시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재가불자가 한 분 계셨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다가 충북 영동의 심천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하신 고(故) 조완규 거사이다. 선생은 조부 때부터 숭불참배로 맥을 이어 온 가문에서 자란 독실한 불자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목표하여 자기수행과 사회봉사 실천에 앞장서왔던 분이다.

 한국불교의 쇠망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모든 사부대중이 엉뚱한 곳에 힘쓰지 말고 오직 포교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 여름, 팔순에 가깝던 조완규 거사는 편집실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을 보내와 본지를 법보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주위에서 자고 나면 교단을 떠나는 사람이 눈에 뜨일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우선 내 가족 중에, 그리고 독실했던 일가친척 동료들이 가족 내지 그룹 단위로 기독교로 개종해가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 참담한 현실에는 재가자들의 잘못도 상당 부분 있지 않은가 해서 나름대로 대책을 숙고하게 되었다. 경전에 따르면 보시의 으뜸은 물질에 있지 않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전해주는 법보시에 있다. ……책의 수준 및 내용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는 역할 면에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잡지가 불교평론인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불자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게 되길 바라는 것이 법보시의 뜻이라 하겠다.

선생의 법보시는 본지 편집진에게 큰 감동을 주어 본지가 정기구독자 확장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의 하나가 되었고, 내용 면에서도 더욱 사명감을 느끼고 불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올해 2018년 봄에 타계할 때까지 조완규 거사는 매년 10~20여 명의 구독자를 선정한 뒤 이들의 정기구독료를 선납하여 본지를 보시해왔다. 보시 대상이 된 구독자들의 면면은 중고교 교장 선생님이나, 교육청 간부, 대학교수, 여러 사찰 주지, 본인의 집안 친지 등이 두루 망라되었다.

물론 훌륭한 불교 잡지를 선정, 훨씬 큰 규모의 법보시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독지가들이 여럿 있다. 또한 경전이나 부처님 말씀이 담긴 서적을 군부대나 교도소 등에 무상으로 보시하는 선행을 하는 단체들도 많다. 그러나 조완규 선생의 법보시가 소중한 까닭은 그가 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헌신하며 한국불교의 앞날을 걱정해온 평범한 재가불자로서, 넉넉지 않은 퇴직연금을 쪼개어 법보시를 묵묵히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는 점이다.

선생은 편집실에 보내온 글에서 보시행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기도 했다.

정법이 목마른 우리 불교계에 사회화하지 않은 이불 속의 재화가 만금인들 무슨 소용이고, 구두선에 그치는 선언(善言)이 무슨 갈증 해결에 보탬이 되겠는가? 알다시피 불교의 여러 경전은 전법과 포교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운다. 탐진치(貪瞋痴)를 버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 실천하면 모든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다운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포교에 소홀한 것은 곧 이웃과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어찌 불자로서 송구한 일이 아니겠는가.

짧지 않은 기간, 나름대로 가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고 자부했던 필자는 선생의 이 같은 보시행에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출판 여건이 열악하다는 불평을 일삼기만 하며, 과연 조완규 거사와 같은 분들의 숭고한 원력에 값할 만한 서적을 만들어왔던가 하는 자책이 앞서서였다. 또한 운동화 한 켤레 값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잡지 구독료를 쾌척하는 보시를 몇 번이나 실천했는지도 뒤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통권 100호 발간을 향해 정진하는 《불교평론》의 앞길에 소중한 선과(善果)의 씨앗을 뿌려주신 고 조완규 거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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