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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리처드 휴지스 시거 지음, 장은화 역 《미국불교》
한눈에 조감한 미국불교의 과거와 현재
[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명법 myeongbeop@gmail.com

   

리처드 휴지스 시거 지음, 장은화 역
《미국불교》

최근 십여 년 사이에 미국불교를 소개하는 글들이 신문기사, 학술논문, 단행본, 번역서 등등 다양한 형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덕분에 우리에게도 ‘미국불교’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동시대 미국불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처음에는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데서 시작되었지만 최근 들어 한국불교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법과 비전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작년에 우리말로 번역된 리처드 휴지스 시거의 《미국불교-역사 및 주요 종파와 전통에 대한 성찰》는 미국불교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책으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미국불교에 대한 포괄적이며 신뢰할 만한 정보는 그동안 국내에 번역되거나 발표되었던 미국불교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뛰어넘어 미국불교에 대한 전면적인 조망을 확보하게 해준다. 1999년 출판되었을 때부터 이 책은 ‘미국불교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선구적인 저술로서 칭찬을 받았다. 번역본은 최근의 자료들을 보완한 2012년 증보판을 사용했는데, 1999년 발행한 초판 역시 미국불교의 현재 상태를 가장 폭넓게 접근한 책으로 평가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에서 박사후연수를 하던 때였다. 현대예술에 끼친 불교의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불교사와 현황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당시 이 책은 스미스칼리지 대학생을 위한 불교 강좌의 교제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동시대의 종교 활동을 연구한 학술서적이 출판된 것도 그렇거니와 그것을 교재로 대학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문헌연구에 치중한 한국불교학계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 후 미국종교학회를 비롯하여 내가 참석한 거의 모든 국제학술대회에서 미국불교의 현황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분과를 익숙하게 발견했다.

역사에 대한 감각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이 만들어낸 산물일 것이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예상치 않게 만난 역사 기록에 대한 놀라운 관심은 중국인의 역사 기록에 대한 열정에 비교될 만한 것이다.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북미 전역에서 산재한 사찰과 명상센터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을 기록하고 그 특징을 분석하며 미래를 조망하는 작업이 진지한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불교의 또 다른 특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겨우 이백 년 남짓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햇수로는 백 년을 헤아리지만 본격적으로 수행된 지 이삼십 년이 채 지나지 않은 미국불교에 대해 그토록 열정을 쏟아부으며 기록하고 연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찍이 중국인들은 고대의 정치 문서인 《서(書)》를 경전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역사에 무관심한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조차 그 시원인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계보의 서사로 바꾸어 놓았다. 그 중국인들에게 역사는 자신의 시대를 중국 문명의 시원과 연결시키고 유한한 인간의 덧없는 삶이 머나먼 조상들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연속성 속에 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장치이자 일종의 종교의례와 같은 것으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면, 미국인들에게 역사는 중국인들과 정반대의 것, 다시 말해 시원과의 연속성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분리와 새로움을 확인하려는 방법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난 구대륙을 버리고 신대륙에 도착한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역사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거의 책 역시 아시아 불교의 정통성 계승보다 살아 있는 역사로서 그들이 창안한 미국화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미국불교사 서술의 일반적인 특징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American Buddhism’, 다시 말해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에게 수용된 화이트불교에 초점을 맞춘 다른 저술들과 달리, 불교의 미국화 과정에 기여했던 아시아 불교 전통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고 고르게 살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미국불교사에 대한 첫 번째 저술로 꼽히는 릭 필드의 《이야기 미국불교사(How the Swans Come to the Lake)》(2009)가 1960년대 발생한 젠붐을 19세기 말 미국문화와 초절주의, 1960년대 반문화와 연결시켜 설명한 것에 대하여 시거는 다른 주장을 편다. 그는 1964년 이민법 개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 이민자들의 불교가 젠붐의 형성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고, 이 책에서 이민자들의 불교와 그것의 미국화 과정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공들여 설명한다.

미국 내에서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불교의 현상들을 편견 없이 보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영어 제목 Buddhism in America에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번역본에서는 “역사 및 주요 종파와 전통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를 덧붙여 ‘미국불교’라는 우리말 제목이 갖는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멀팅 팟(molting pot)” 또는 “샐러드 볼(salad bowl)”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사회의 다양성 때문에, 그리고 불교 역시 다양한 인종, 계층, 지역 및 아시아 지역에서 전래된 서로 다른 전통 때문에 미국불교의 전모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더구나 불과 몇십 년 되지 않는 미국불교의 역사에서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 그 사건이 장래에도 지속적인 결과를 산출할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충분한 역사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도 미국 전역에 흩어진 다양한 불교 유형들을 모두 연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자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불교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분류법을 제시하는데, 아시아 이민자들의 불교와 개종 불자들의 불교,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일본 이민자들의 불교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일본 이민자들의 불교 대신 창가학회를 넣기도 하지만 시거의 세 가지 분류는 미국불교의 다양한 흐름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은 없다. 물론 시거의 이러한 연구가 정토진종, 창가학회, 선불교, 테라바다 사찰 등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개별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이룬 성과라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장은 불교사 및 미국 전래의 배경에 대한 자료와 함께 불교의 기본교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당연히 미국 독자를 위한 배려로서, 미국불교에 관심이 있는 한국 불자라면 건너뛰어도 괜찮을 듯하다. 두 번째 장은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토진종, 창가학회, 선불교 전통과 주요 선센터, 티베트불교, 테라바다불교, 기타 아시아 이민불교 등 여섯 개의 전통에 대한 잘 정리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아시아 불교가 20세기 후반 미국에 전해진 후 일어나고 있는 변용의 양상들을 고루 검토하고, “누가 가르치며 누가 지도하는가?” “강력한 승가 전통이 없는 사회에서 재가자와 승려의 적합한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이른바 ‘미국화’에 수반되는 문제들을 일관되게 살피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에서 승가 내의 양성평등, 참여불교, 다양한 불교 전통들 사이의 대화 및 종교 간 대화, 그리고 불교의 미국화라는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현재적인 이슈들은 개별적으로 제기된 것이라기보다 불교가 미국문화에 적응하고 현대의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가는 과정에서 제기된 시대적 문제이다. 그래서 미국불교의 변화를 알고 싶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미래를 모색하는 독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성공은 무엇보다 종교학자로서 훈련된 저자의 편향되지 않은 시선과 역사를 조망하는 관점에 힘입고 있다. 저자는 현대 미국의 다양한 불교 전통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면서도 사건의 개요뿐 아니라 관련된 인물의 인터뷰 또는 저서의 인용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사건들과 관련 인물들의 생애를 묘사하는 데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머지, 중심인물들과 그들의 활동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점, 미국화를 추동한 사상과 수행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말미에 수록된 자료들과 색인에 있다. 이 상세한 목록들은 미국불교에 관심이 있는 학자나 일반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에 수록된 ‘미주 한국불교 50년의 발자취와 나아갈 방향’은 한국 독자를 위한 편집자의 배려로서, 시거가 미처 다루지 않은 미국 내 한국불교의 간단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로 승려들의 활동과 사찰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에 지나지 않아 미국불교계에서 한국불교가 갖는 위상과 문제점 및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얻기에 부족하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문화의 실용주의적 성격과 현대과학의 계량적인 분석, 그리고 후기 근대의 탈종교화가 불교의 미국화를 이루는 배경이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신대륙에서 아시아의 오래된 종교인 불교가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미국불교의 도전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미국인들뿐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시거가 확신했던 “아시아의 위대한 전통과 비교할 만한 독특한 미국불교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가 중국화된 불교를 만들어냈듯이 역사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가 미국불교를 만드는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정작 한국불교의 동시대 역사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고찰하는 데 무관심한 한국불교학계에 이 책이 던지는 따끔한 경책이기도 하다. ■

 

명법 / 구미 화엄탑사 주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동 대학원 미학과 졸업(박사).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 운문승가대학 졸업. 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임. 주요 저서로 《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등과 〈서양 현대예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에 대한 반성과 제언〉 외 논문 다수가 있다. 원효학술상 수상.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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