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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회의 세계 종교성지 순례기
진명스님 前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
[26호] 2006년 03월 10일 (금) 진명스님 前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

삼소회 일원으로서 성현들의 본의(本意)로 돌아가 세계 성지를 순례하며 종교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한 톨의 씨앗이 되자고 염원하며 기도한지 어언 5년. 준비할 시간은 넉넉지 않았지만 시절인연이 도래했는지, 염원하던 성지순례 일정을 계획하며 동안거 내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항공 스케줄과 숙소를 정하는 일 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며 떠나기 전 며칠은 깊은 잠에 들 수조차 없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타종교의 성지를 순례한다는 설레임과 일정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회원들이 큰 장애 없이 돌아 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의 성지인 영광 영산성지를 순례 하는 일정을 시작으로 삼소회 일행은 짧지 않은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 불가촉 천민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문구와 약품 상자를 정리해 화물을 부치고 나니 피로함이 겹쳐왔다.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함께 의논했던 수녀님, 교무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 ‘아! 이것이 꿈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잠은 비행여정에 내어주고 새벽 2시반경 인도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매캐한 인도 향신료 냄새와 희미한 불빛, 타블라 같은 악기 소리에 실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특유한 가락의 노랫소리는 밤새 멀리 날아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공항대합실에서 다섯 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바라나시행 비행기로 환승하고, 다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첫 순례지 일정에서부터 이번 순례 여정이 고행 중의 고행임을 실감하게 했다.

타종교를 존중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인 생생한 공부 현장

순례 일행은 인도 바라나시 싸르나트, 부처님 초전법륜지 근처에 위치한 한국 사찰 녹야원에 여장을 풀었다. 전날 밤부터 이틀에 걸쳐 이동 여정에 시달려서 인지 모두 피곤해 보였다. 만공스님이 주지로 계신 한국 사찰 녹야원에는 후원에서 도와주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재스님을 중심으로 수녀님과 교무님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공양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시간은 어떤 이견도 없이 화합 그 자체였다.

이번에 함께 떠난 세계 성지순례는 그런 시간이었다. 늘 머리로 생각하던 이념적인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가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타종교를 존중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생생한 공부의 현장이었다. 언제 또 다시 수녀의 신분으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할 것이며, 또한 부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을까.

다시 얻기 어려운 기회라고 생각한 일행들은 조심스럽고 진지했다. 다음날부터 불교 성지를 순례할 일행들을 대표해서 각 대표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좀 더 효과적인 성지순례를 위해서 의견을 모으는 사이 인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른 새벽 날이 밝기 전,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깨어난 개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하늘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힌두교도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앞 사람의 뒤통수를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하며 갠지스 강가에 도착했지만 자욱한 안개는 한치 앞도 허락하지 않았다. 배를 빌려 타고 갠지스 강물을 성수로 여겨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면죄를 할 수 있다는 힌두교도와 같은 믿음은 없지만 물살을 가르는 노젖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맡겼다.

이른 새벽부터 꽃으로 장식된 초를 팔기 위해 순례자들 곁을 떠나지 않는 어린이의 손에서 샀던 초에 각자 불을 밝혀 갠지스 강물에 띄우며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순간은 숭고한 의식과도 같았다.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오고 우리들의 기원을 담은 촛불은 물결에 실려 멀어져만 갔다.

조용히 뱃머리를 돌려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갔다. 빨래하는 가트(Ghat)에서 빨래감을 두들기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욕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가트를 바라보며 화장터로 향하는데 계속 작은 쪽배를 타고 따라오며 또렷한 발음으로 “방생! 방생!”이라 외치며 작은 봉지에 담긴 물고기를 내미는 젊은이에게 내 옆에 앉아 생소하게 바라보던 수녀님이 너무나 진지하게 영어로 “정말 미안해요. 그 생선을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사 줄 수가 없어요.”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고요하게 화장터로 향하던 우리 일행은 파안대소 할 수밖에 없었다.

갠지스 강가에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도 걷히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화장터로 이동했다. 시신이 한 구 갠지스 강물에 적셔지고 화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교의 다름을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숙연해졌다. 쌓여있는 장작더미 위에 점잖게 안경을 끼고 누워있는 그 영혼은 그래도 가볍게 이생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장작이 부족해 신체 일부는 남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잠시 그 영혼을 위해 합장하고 기도한 후 화장터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웃음으로 넘긴 수녀님의 말이 주제가 되어 이견이 오고 갔다. 수녀님이 불교에서 불살생계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행으로 조류나 어류, 축생을 방생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랬냐고 따져 묻기도 했고, 평소 그 수녀님의 천진함으로 봐서 정말 몰라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다수의 의견에 공격의 화살은 날이 무디어져 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초전법륜지 대탑 앞에서 칠정례에 이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탑돌이를 하는 동안 등 뒤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진지하긴 했지만 대열 선두에 선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중간 중간에서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스님과 교무님들의 발걸음을 따르는 수녀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란 잔디 위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보폭을 맞춰 큰 나무아래에 자리했다. 품이 넓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해 깊은 침묵명상에 들어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 외국인 순례자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찬탄했다.

달라이 라마 “세계평화는 우리에게 창조성을 주는 기회”

우리 순례자 일행이 가장 손꼽아 기다린 2월 9일,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는 날이다. 3개월 전에 미리 친견할 계획을 세우며 예약은 했지만 여러 가지 주변 정황을 들어보니 정말 친견할 수는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서관을 통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티벳대학 정문 앞에 도착했다.

신분을 확인하고 있으니 큰 스님의 하루 스케줄표를 들고 어떤 분이 나타나서 따라 오란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라 어수선한 캠퍼스를 따라 들어가니 큰 화면으로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계신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보였다. 진지한 어조로 말씀을 하시다 때론 파안대소 하시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뵙고 싶었던 달라이 라마의 모습을 뵙게 되는 구나. 아! 우리 삼소회가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계속 떨칠 수 없는 걱정은 비서관이 계속 강조했던 말이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을 정도로 일정이 바쁘시다는 말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대중강연이 끝나고 스탭 한 분이 우리 일행은 흩어지지 말고 한쪽에 다 모여 있으라는 당부를 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 우리는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작은 세미나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달라이 라마를 생애 한 번이라도 친견하고자 원을 세우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티벳 순례자들의 줄이 끝이 없었다. 다시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건물 앞에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안도의 한숨. 줄지어 선 티벳 순례자의 손을 빠짐없이 잡아주시는 달라이 라마,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길었던 줄이 짧아지고 마지막 한 명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신 달라이 라마께서 우리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모두 일어나 합장하고 예를 마치고 자리한 우리를 향해 활짝 웃으신다. 깊고 환한 큰 미소에 우리 일행의 얼굴도 다 환해졌다. 서둘러 삼소회와 성지순례에 나선 뜻을 소개하자 달라이 라마께서 서슴없이 말씀을 시작하셨다. “세계평화는 우리에게 창조성을 주는 기회가 됩니다. 평화 없이 전쟁만 있다면 인간 생명은 끝입니다. (중략) 모든 종교인들은 평화를 지키도록 기여해야 합니다.” 고 하시면서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 1975년경 화합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하시면서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이 머릿속을 시원하게 했다.

첫째는 학문적으로 다른 전통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서로 교환해야 하며, 둘째는 다른 전통을 가진 수행자들이 만나서 깊고 내면적인 영혼의 체험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 삼소회처럼 단체로 다른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당신도 수차례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인 예루살렘과 파티마를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하셨다.

넷째는 과거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모임처럼 다른 전통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같은 입장에서 한 가지(평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삼소회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것을 보니 고맙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다섯째는 다른 사람의 전통과 철학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념과 존경이라고 하셨다. 신앙은 자신의 것,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존경은 모든 다른 전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종교적 평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셨다.

작은 오해와 갈등은 수행의 거울이 되고

그렇다. “신앙은 자신의 것이고 자기 종교 안에 전통은 신념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지만 존경은 모든 다른 종교와 전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 종교에 빠져 잊기 쉬운 중요한 말씀이다. 깊고 힘찬 목소리로 들려주신 달라이 라마의 말씀은 우리 삼소회가 성지를 순례하는 내내 크고 작은 갈등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큰 가르침이 되었다. 자기 종교의 교의와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단단한 벽을 순례 길에서도 허물지 못하는 몇몇 일행은 또 다른 동행의 의견을 마치 자기를 상하게 하는 적의 무기처럼 받아들이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만들었다.

왜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나와 다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안다면 다름은 감사함의 대상이다. 순례 길에 오르기 전 내가 가장 강조했던 말이 있다. 삼소회가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은 각기 다른 종교를 뭉쳐서 하나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요,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르침을 다른 수도자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자리를 갖는 것이 첫째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순례의 여정이 하루하루 더해 갈수록 서로 다른 의식과 생활관습에서 비롯되는 작은 오해들이 쌓여가고 그 작은 감정의 골은 타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며 가져야만 될 마음 자세와 예의를 잃어가게 했다. 여여(如如)하게 유지해야할 이성(理性)의 힘보다 자기 종교의 신념으로 무장된 감정의 힘을 앞세워 자기를 작게 만드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하며 말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난 그 깊은 영혼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보드가야 대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거부한 어느 수도자의 모습에서 자기 것 외에 어느 것 하나도 품을 수 없는 좁은 마음자리를 발견하며 내 품은 어느 정도인지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떠나기 전 비록 정형화된 이해심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오리엔테이션은 없었지만 이번 순례 길에 기꺼이 동행한 수도자라면 적어도 함께 동행한 타 종교 수도자들에 대한 이해심과 예의는 갖추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큰 착각이었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어린 학생들 보자 눈물 ‘왈칵’

성지는 잠시 뒤로 하고 불가촉 천민들이 모여 사는 둥게스리 마을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우리 일행을 맞이할 것이라고 꽃목걸이 손에 들고 서툰 악기를 연주하며 정문 앞에 줄지어 서있는 어린 학생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법당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작은 수녀님 등을 토닥이며 왜 우냐고 묻자 “몰라, 그냥 눈물이 나요.” 라고 했다. 여기저기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수녀님의 한마디가 일행의 마음을 대변했다.

바라보기도 힘든 처참한 어린 삶 앞에 동양의 수도자들이 그들의 천형 같은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에 그냥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학용품과 약간의 의약품, 그리고 식량지원금과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성금을 전달하는 것도 사치처럼 여겨졌다. 일희일비의 감정의 교차로를 지나며 부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지순례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요란하고 복잡한 가야역에서 델리로 향하는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침대차라고 하지만 인도 밤열차를 타본 사람만이 그 상황을 알 것이다. 거의 타잔처럼 오르내리며 겨우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지만 퀴퀴한 냄새와 여기 저기서 코고는 소리는 서라운드를 방불케 했고 깨어 있어도 소음인 지경이다. 일행의 자리가 한 곳에 모여 있기만 해도 조금 편리했으련만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일행을 찾아 다니며 불편한 잠자리를 살폈다. 덜컹거리는 객차 소리와 무관하게 긴긴 열차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가까운 듯 먼 듯 들리는 열차의 경적소리. 희미하게 창밖으로 새벽이 왔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일행들의 침대를 찾아보니 벌써 일어나 일층에 자리한 스님 곁에 수녀님이 함께 좌선에 들어 있다. 객차 몇 개를 지나서 자리한 몇몇 일행을 찾아 갔다. 벌써 일어나 앉아 있거나 새벽에야 잠을 청했다는 일행도 있었다.

스님과 수녀, 교무라는 신분 보다는 성지순례 길에 동행한 일행이라는 것이 오히려 끈끈하게 느껴졌다. 아침 끼니때가 되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컵라면을 챙겨 인도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을 배려하는 마음에 어찌 다른 종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서로 형님 아우처럼, 언니 동생처럼 챙겨주고 가려주며 세안을 하다 보니 몇 군데 쉬지 않고 밤새 달려온 기차는 뉴델리 역에 오전 열시가 가까워서 도착했다.

잠시 숙소에서 심신의 피로를 조금 덜고 다시 오후 일정에 나섰다. 힌두교와 무슬림, 자이나교, 씨크교 사원을 두루 방문하며 노란 터번을 쓰고 씨크교도의 예법을 따르기도 해 봤다. 삭발한 수행자가 머리에 수건 하나 쓴다고 해서 부처님 제자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흔연하게 응하는 모습이 좋았다.

밤새 하얗게 쌓인 눈을 밟고 떠나온 한국의 풍경은 기억 저편에 있고 인도 부처님의 성지에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영국 성공회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순례 여정에 일행 모두에게 장애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버밍험에 위치한 무교회주의자 퀘이커 공동체를 방문해 그들과 함께 침묵명상에 들기도 했고, 캔터베리 대성당과 런던 중심가에 자리한 웨스트 민스트 사원이며 세인트 폴 성당에서 성공회에 대해 알려고 귀를 열었다. 그 어마어마한 사원 안에 역사 속에 묻힌 무덤들을 돌아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잠든 권력의 힘을 보았고, 부처님 성지나 법당에서 느끼지 못한 무거움과 장엄함이 교차했다. 리젠트 파크 옆에 크고 웅장하게 긴 역사와 전통으로 위엄을 떨치고 서있는 성공회 성당에 못지않게 당당하게 자리한 무슬림 사원에서는 영국에서 무슬림 대표격인 두바얀 사무총장을 만나 무슬림 신자에 대한 편견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런던에서 마지막 날 밤 우리는 숙소로 깃든 수녀원 피정센터 수녀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서양에는 수녀원으로 출가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듯 했다. 새벽 미사를 준비하는 수녀님도 연세가 많으시고, 몇 분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 연세가 많아 보여 노스님들만 계시는 사찰을 방문한 듯 해 마음이 씁쓸했다.

수녀원의 역사를 간추려 듣고 우리 일행 중에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젊은 수녀님들은 없으신가 하고. 그랬더니 서양 수도자는 거의 없고 동양에서 온 수녀님들은 있지만 다른 소임지에 있다고 했고, 근래에는 서양인 출가자가 대폭 줄었고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젊은이들이 출가하는 수도회는 관상수도회 같은 곳이란다. 서양 수녀원의 미래를 보는 듯 했고, 더불어 우리 동양의 전통 종교 교단으로 출가하는 젊은이들도 예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 현실이기도 해서 수도자들의 역할이나 교단의 구조적인 혁신이 서양이나 동양이 다 필요한 때임을 실감했다.

국제 뉴스를 자주 장식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미묘한 갈등 때문이었는지 예루살렘을 향하는 동안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국제적인 정보에서도 분리장벽 주변의 경계가 삼엄하다 하고 우리가 또 다른 종교인들인지라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은 전혀 불안한 현실을 느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이나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다는 곳에서 예수님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수녀님 마음이 되어 보려고 노력도 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지옥중생의 고통이 다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의 마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수녀님이 부처님의 대각지에서 내 맘처럼 간절하지 않았듯이 어찌 내가 몇 십 년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신심을 다져온 수녀님의 마음 그대로 일 수 있겠는가. 다만 그들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의 숨결이 깃들었던 성지를 느껴보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이천여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순례했던 그 길 위에서, 수녀님이 바라나시와 보드가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물·자연에 경계없는 사랑 실천한 프란체스코 성인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나자렛 성모영보성당으로 가는 동안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중 삼중의 분리철책을 보며 땅에다 금 긋고 네것 내것 따지며 다투고 사는 동물은 인간뿐임을 새삼 느꼈다. 나라와 나라간의 영토 분쟁이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서 제자들에게 성스러운 가르침을 폈던 땅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은 왜일까? 예수님의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거의 순례의 막바지에 로마에 도착했다. 지칠 줄 모르는 일행들의 의견에 휴식은 뒤로 하고 로마 시내로 나섰다. 로마에 오면 상식으로라도 알아두어야 할 몇 군데 명소를 둘러보며 긴 순례 길에 겹친 피로를 잠시 잊었다.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서로 한 입씩 베어 물며 마음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졌던 찌꺼기를 웃음으로 날려 보내고 어깨동무하며 걸었던 시간을 우리는 로마의 휴일이라 이름 붙였다.

아시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부처님 성지에서 그렇게도 품을 보이지 못했던 사람이 프란체스코 성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긴 설명을 하는 동안 다시 갈등이 수위를 높였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다. 자신의 독선과 아집과 편견을 살피지 못하고 장광설을 푸는 쪽이나 그런 모습 또한 품지 못하는 쪽이 다 피차일반이 되었다.

편치 않던 일행의 기운은 프란체스코 성인의 성소에서 그의 정신과 가르침에서 다 녹아 내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순례하는지도 모른다. 동물과 자연에게까지도 경계 없는 사랑을 나누었고, 철저히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성인이다. 비에 젖어 촉촉한 아시시 거리, 산을 의지해 자리한 위치 때문일까 권리와 이익 추구에 목을 매고 사는 세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아시시에서 돌아와 순례 여정 마지막 밤이 이슥하도록 우리는 울고 웃고 투닥거리며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뉘우치며 마음자리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종교나 평생 다 익히고 실천하지 못할 금구성언이 성경이나 불경에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런 말씀들을 머리와 눈으로 읽고 해박하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육근으로 부딪히는 매 순간 그 경계의 시비에 걸려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백년을 읽고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중하고 귀한 가르침을 바르게 따르고 실천하는 그 순간에 사람 마음을 변하게 하는 생명있는 향기가 될 것이고 영혼이 가난한 사람에게 영혼을 살찌우는 튼실한 열매가 될 것이다.

이렇듯 이번 삼소회 세계 성지순례 여정은 생생한 공부의 현장이었으며 종교화합을 위해 우리 종교인들이 무엇이 부족하며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크고 작게 부딪혔던 갈등이 오히려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나의 수행에 좋은 거울이 되어 주었고, 종교는 아집과 편견, 갈등과 독선으로 무장된 무기가 아니라 인류 사회에 이해와 용서 자비와 사랑을 펼쳐가는 든든한 도구임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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