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지식인들의 불교 연구 입체 분석

1. 들어가며

김영진 지음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
2 0세기 전후의 동아시아 사회는 엄청난 격동의 시기였다. 서구 열강의 힘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던 때였으므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이 서양과의 조우에서 연이은 패배와 수모를 겪게 된 이후, 중국은 더 이상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될 수 없었다.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 중에서 이런 상황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한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많은 인재를 서구에 보내어 그들의 학문을 익히게 하였고, 이후 근대화로 무장한 일본은 동아시아 사회 전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본의 영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에도 강하게 나타난다.

동아시아 사상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역시 이 시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는 불교에 대한 연구 방법론뿐 아니라 연구의 주체와 태도 등에서도 전면적으로 나타났는데,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한 불교학의 양상을 ‘근대불교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오늘날 불교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자각하든 못하든 간에 이미 근대불교학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불교학계의 연구 동향은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 20세기 전후의 이 시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크게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한국 불교학계의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김영진 교수가 쓴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산지니, 2017)은 20세기 초 중국의 불교도들이 급변하던 시대의 조류에 맞서 전통적인 불교학을 근대에 맞게 정립하고자 했던 시도들을 매우 입체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또한 이 책에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겪었던 근대의 좌절과 그것을 돌파하고자 했던 시도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중국을 연구할 때 간과되곤 했던 중국 근대 지식인들의 면모가 이 책을 통해 되살려지고 있는 것이다.

2. 중국 근대불교학 분석의 틀: 문 · 사 · 철

중국 근대불교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매우 놀랍게도 그들을 단지 불교라는 틀 안에서만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재가자와 출가자의 활동은 불교의 범위 안에서 서술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3부에서 다뤄지는 탄스퉁(譚嗣同), 장타이옌(章太炎), 량수밍(梁漱冥), 루쉬(魯迅), 량치차오(梁啓超) 등은 중국 근대를 대표하는 지식으로서 면모가 더 강하다. 그러므로 이 시기 불교학에 대한 접근은 단지 불교 내부의 요청뿐 아니라, 중국 근대 지식인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서구 문명에 대응하기 위해 주목했던 중국의 전통 사상이 바로 불교였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유식학과 인명학이 중시되었다. 가령 유학 연구자로 분류되는 슝스리(熊十力) 역시 인명학 저술을 간행할 정도(91쪽)로 이 분야는 근대 중국 지식인들의 공통 관심 분야였다.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많은 인물과 저술,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다각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므로,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 큰 틀에서 이를 분석하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문 · 사 · 철’이라는 틀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서구적인 문헌학, 역사학, 그리고 철학을 가리키며, 이 세 가지가 바로 이 책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틀이 다소 진부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는 중국의 연구자들 역시 심각하게 고민하던 지점(69~70쪽)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중국 근대를 분석하는 데는 유용한 해석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3. 중국 근대불교학의 다양한 면모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도 3부 각각에 네 개의 장을 두었고, 각각의 장 아래 또 세 개의 절을 두었다. 1부 가운데 1장이 근대불교학의 전반적인 측면을 다룬 것이라면, 그 외의 부분은 중국 근대불교학의 다양한 면모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 각각의 절은 개별적인 내용이면서도 서로 매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특정 부분을 읽더라도 중국 근대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문제들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1부의 2장에서 4장까지 이어지는 문헌학적 경향에서는 중국 근대 지식인들에게 불교적 지식이 보편화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던 양원후이(楊文會) 등의 활동이 매우 입체적으로 서술된다. 당시 중국에서는 실전되었던 대량의 불전을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온 뒤, 이를 판각해서 유통시키는 과정을 보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불교계가 하나의 무대 위에서 다뤄짐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교류의 규모와 성과 등이 잘 기술되고 있다.

2부는 역사학의 방법론에 입각한 인물들이 다뤄지는데, 량치차오의 불교사 서술을 시작으로 후스의 선종사 연구, 탕융퉁의 중국불교사 연구, 그리고 천인추에(陳寅恪)와 천위안(陳垣)의 불교사 연구가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역사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각의 인물의 차이점 역시 부각된다. 즉 량치차오가 역사학 방법론에 입각해 있다면, 후스는 과학 방법론에 의거하여 선종을 연구하였고, 탕융퉁(湯用彤)은 철학사 방법론과 고증학 방법론에 따라 불교사를 기술했으며, 천인추에는 비교언어학을, 천위안은 고증학과 역사문헌학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이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의 섬세한 안목이 잘 드러나고 있다.

3부는 서양철학을 수용하여 불교를 해석하고자 했던 중국 지식인들의 시도를 해명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를 ‘하나의 실험’이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근대의 중국 지식인들은 “서양철학과 불교를 지속적으로 교차시켜 불교를 서구적 의미의 철학으로 승격시키려 했다.”(245쪽)는 것이다. 당시의 중국 지식인들이 크게 영향을 받은 서양철학은 주로 독일관념론이었으므로, 이 부분에서는 독일관념론을 수용한 중국 근대불교의 모습들이 다각도로 분석되고 있다.

4. 근대불교학의 실험과 경과

중국 근대불교학의 성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른바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불교학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이를 가장 먼저 수용한 일본에 대해서도 언급되어야 한다. 이 책 1부의 1장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매우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어가다 보면, 오늘날 불교 연구자들이 겪는 일종의 실존적인 고민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보다 설득력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불교 연구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의 모습을 보면,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가르침이다.’라는 점을 한발 떨어진 채로 바라보면서 분석하고자 하는 경향이 다분함을 알 수 있다. 불교는 본래 실존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르침이지만, 오늘날 불교학계에서 연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측면이 아니라, 문헌학이나 역사학 혹은 철학의 관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해명하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교를 객관화시켜서 보고자 하는 이러한 태도의 연원을 살펴보면,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은 근대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사조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하나의 실험으로 간주할 경우, 1부의 3장(78쪽)에서 언급되듯, 일본 불교학계는 불교에서 종교성을 배제한 채 그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객관화시켰던 반면, 중국의 불교학계는 불교가 지닌 종교심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함께 지켜가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 세기가 경과한 오늘날 그 실험의 결과를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서구의 방법론을 보다 전면적으로 수용한 일본 불교학계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에 상응하는 선명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그 두 가지가 혼재된 경향을 보이며, 우리나라도 중국과 유사한 경향을 띤다.’ 무척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일본, 중국, 한국 불교학계에서 보이는 이러한 성향들이 20세기 초 각 나라 선각자들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우리는 그것의 기원과 경과, 그리고 성과와 한계를 보다 면밀하게 따져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그에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5. 후속 연구를 기대하며

책의 제목처럼 이 글은 중국 근대불교학의 ‘탄생’을 조명하고 있다. 사람이 생 · 노 · 병 · 사의 일기(一期)를 거치듯, 모든 있는 것들은 성 · 주 · 괴 · 공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세기 전에 탄생한 중국 근대불교학은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근대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자 했던 시도들을 보여준다. 다만 이렇게 탄생했던 중국 근대불교학은 이후 수차례 매우 험난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 발생한 문화대혁명을 그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화라고 할 만한 것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던 상황에서 중국의 불교학이 어떤 방식으로 변모되었고, 또 오늘날은 어떤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 등에 대한 서술 역시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탄생’에 대한 연구가 이후 근대불교학의 ‘정착’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길 기대해본다.

또한 이 책에는 군데군데 근대 한국의 불교 지식인들, 가령 프랑스에 유학한 뒤 동국대 총장을 지냈던 김법린(150쪽), 스즈키 다이세츠와 후스(胡適)의 논쟁에 등장하는 불교학자 김구경(157쪽) 등이 언급된다. 근대는 오늘날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었고, 새로운 시도들 역시 많이 등장하던 때였다. 우리나라 근대의 불교 지식인들 역시 뭔가를 하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의 불교학계에서는 이 시기에 대한 관심이 별로 높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도 뭔가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긴 하지만, 김영진 교수의 책을 읽어본다면 자연스레 그런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의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

 

박인석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연세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석 · 박사) 주요 저서로 《영명연수(永明延壽) 《종경록(宗鏡錄)》의 일심(一心) 사상 연구》(박사 논문) 등이 있고 〈《종경록(宗鏡錄)》의 관심석(觀心釋)〉 등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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