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도 미술평론가

예술의 항해를 떠난 코스모폴리탄

2006년 1월 29일, 20세기 현대 미술계의 거장이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 선생이 74세로 삶의 여정을 마감했다. 우선 돌아가신 선생의 예술에 대한 넓은 안목과 깊은 사유적 여행에 대해 경의를 표현해야만 할 것 같다.
20세기 현대예술에서 백남준 선생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세계 미술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작품들이 함의하고 있는 다양한 세계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삶과 미래 문화와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백남준이라는 한 인간의 예술행위로 인해 TV와 비디오라는 전자매체가 예술작품의 중요한 표현도구가 되었고, 20세기 이후 인간의 삶 속에서 언제나 함께 존재해 왔던 그 같은 대중매체의 활용은 그동안 소수에 국한되어 왔던 예술적 표현을 많은 사람들에게로 해방시켜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예술적 행위의 본질을 본다면 두 가지로 요약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 예술의 본질은 수행과 실천

첫 번째는 ‘수행’ 혹은 ‘실천’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1932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를 거쳐 방랑자로 시작된 그의 삶의 여정에서 다분히 필연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식민지 재벌이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친일파 기업인이었다.

일본을 위해 군수공장을 운영했고(백남준은 자신의 아버지가 공장을 세우기는 했어도 군수품은 전혀 생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행기를 일본에 헌납했다. 이렇게 드러나는 친일의 행위는 그의 가족이 일제 식민 해방 후 한국에서 생존할 수 없는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해방후 6ㆍ25가 발발하자 그의 가족은 일본으로 이주를 하였고, 백남준은 일본에서 동경대학을 졸업한다. 동경대학 졸업 후에는 독일 뮌헨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 계속 유럽에서 활동하다 1964년 미국 뉴욕에 정착을 하고, 세계를 무대로 그의 예술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의 인생역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의 예술적 행위가 왜 수행이나 실천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한국 민족에게 일제 강점기는 6·25와 더불어 근대 역사에서 지우려 해도 절대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일제 식민 시대에 대다수의 일반 한국인들은 침탈의 대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백남준과 그의 가족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씻을 수 없는 업을 쌓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업은 수행과 실천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를 그의 예술의 무대로 삼아 방랑했던 그에게서 예술가적 양심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의 예술은 개인적인 해방,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 인간적 한계로 부터의 해방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를 ‘예술의 항해를 떠난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없음’을 향한 사유와 열정

두 번째는 ‘없음’을 향한 사유와 열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많은 퍼포먼스(행위예술) 작품에서 악기들을 파괴한다. 그에게 악기는 그의 존재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이는 그가 음악을 전공했고, 음악 공부를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없음의 미학, 비차별이라는 미학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John Cage)의 사상이었다.

존 케이지는 1950년대 동양철학 중에서도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우연성(chance; 찰나)의 개념을 그의 음악의 주제로 도입한다. 그리하여 음악이 애써 무엇인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세상에서 떠도는 소리들 역시 음악의 멜로디와 차별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즉 소음과 아름다운 멜로디가 동등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모든 것에는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백남준은 그의 퍼포먼스에서 바이올린을 부수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다 넘어트리는 행위를 반복하고는 했다. 또한 비디오 작품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반복되는 것 역시 우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나 인식할 수 없는 형태 모두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의 세계를 맘대로 파괴하고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동물이나 곤충과 같은 생물들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형태를 인식할 수 있다. 즉 지각의 영역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을 마음대로 생각하고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에서 동영상 이미지들은 전통미술에서 볼 수 있는 완성된 형식이나 완결된 이야기를 지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가변적이다. 그러므로 작품이라는 존재론적 개체가 주는 강한 인상이 아니라 상황으로 지속되는 이미지들의 끊임없는 진행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케이지의 ‘소리의 우연성’ 개념이 백남준에게서는 ‘이미지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제시되고 드러나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우연성의 조합과 이미지의 끊임없는 진행과 변화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

삶에 대한 반성의 도구로 기술매체 이용

현재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시대, 우리가 겪고 있는 이시대의 기술 발전과 사회적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의한다.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공장 노동자가 탄생하고, 도시가 발달하고, 화석연료가 적극적으로 산업 개발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 제국주의와 일제 침탈과 같은 역사의 비극적 재앙으로 인해 뒤늦게 산업화의 대열에 합류하여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20세기 후반에는 거의 모든 국가들이 기술발전과 산업개발을 화두로 국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일컫는 시기는 물질의 대량생산과 소비를 넘어 우리 삶에서 비물질적 상품들의 소비가 커다란 범주를 이루게 되었다.

환경의 파괴와 소비적 물질관은 인간을 비롯한 자연과 문명 간의 화합될 수 없는 대립과 간극을 고착시켜 놓았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즉 물질의 소비에서 영화나 기타 광고 이미지에 의해 조성되는 비물질적 차원의 소비에 대한 방향성은 20~21세기 인간의 삶에 대한 지향성과 관련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런 방향의 근저에는 또 다른 차원의 기술 발전과 관련이 된다. 그러나 그런 기술들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자족적, 기능적인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와 관계를 생각해야만 하는 기술이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기술의 인간화라는 관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각기 다른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이용되어 왔던 매체들이 하나의 종합적인 매체로 재탄생하는데,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는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가 컴퓨터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하드 디스크 같은 하나의 매체로 통합되어 새로운 인간 지각 영역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멀티미디어라고 부른다. 아직 멀티미디어는 완벽한 디지털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의 초기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독립적인 기계적 장치의 통합이 멀티미디어를 가능하게 했다면, 앞에서 말한 멀티미디어의 3가지 요소가 컴퓨터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의해 그 자체로 완결된 매체를 구성하면서 진정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가 탄생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뉴미디어 아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백남준의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기술적으로 멀티미디어적인 매체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의 예술적 상상력은 이미 멀티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예술적인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이는 백남준이 그의 기계적인 예술에 인간적인 상상력을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내용상의 지향점은 기계 혹은 기술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기술의 인간화는 단순히 기술이 인간의 편의라든지 혹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인간들이 험난한 환경 속에서 도움을 받아 아무런 장애 없이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기술들은 인간들이 다시 한 번 자신과 이 세상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백남준은 작품에서 작품과 인간과의 거리감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삶에 대한 반성의 도구로 기술매체들을 이용한다. 즉 단순히 말하면 그의 작품에서 TV는 언제나 TV로서 남아 있다. 그리고 백남준은 20세기 이미지 문명의 상징인 TV에 전통적인 빛의 매체인 달, 촛불 같은 것을 도입하여 그것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이 세계의 구성에 관해 사유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1965년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와 같은 작품에서 24대의 TV는 시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시간을 자신의 작품의 대주제로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매체에서 언제나 대주제는 공간으로,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는가를 통해 정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고, 동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이미지들 속에도 불성이 있다

시간은 정지해 있지 않다. 만일 시간이 정지해 있다면, 이미 그것은 시간이 아니다. 계속 진행되는 시간은 우리 인간 의식의 변화와 삶의 다양한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변화,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미술사에서 영원한 걸작으로 남을 1973년의 같은 작품에서 아주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부처는 자신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TV를 바라보며 명상하고, TV 속에는 폐쇄회로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TV를 바라보며 명상하는 부처의 이미지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백남준이 말하고자 한 것을 단숨에 포착해낼 수 있다. 즉 부처의 위대한 가르침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ㆍ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은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로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없다거나, 혹은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구절에 따르면 여기서 물질적인 부처와 비물질적 이미지인 TV속의 부처는 전혀 차이를 둘 수 없는 것이다.

본래 부처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백남준의 부처는 TV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삼라만상의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들 속에도 불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불성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주체에게도 있고, 이미지 자체에도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케이지의 ‘소리의 동등성’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고, 20세기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특성인 일상성이 왜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확대해 말한다면 모든 사물의 평등성, 모든 사물에 스며있는 불성은 아무리 하찮은 사물이라도 그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존재하지만, 주체와 객체의 차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와 부처의 이미지가 어떤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 어떤 관계란 바로 정보매체 시대 우리 인간의 모습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환경이나 정보와 맺게 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곧 경제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 못하는 정보는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부처와 마찬가지로 깨달음은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 자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21세기 뉴미디어 아트를 논할 때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특히 뉴미디어 아트에서 변화는 우리들 삶에서 다양한 깨달음의 계기들이 세상의 현상들에 대한 통찰을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나듯이, 미래의 비전에 대한 통찰을 통해 방향성을 지니고 만들어지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런 통찰과 비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적 장치는 가상현실로 볼 수 있다. 가상현실은 그야말로 가상과 현실의 합성어로, 가상의 현재성과 비전의 현재성이 예술작품을 통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는 표현을 동반한다. 표현을 통해 가상현실은 의미의 단초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의미 창조의 과정이 백남준의 작품에서는 지구상의 인간들이 이데올로기적인 차이를 넘어 예술을 통해 삶의 또 다른 차원, 즉 감시와 억압의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넘어 즐거움과 서로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로 표현된다. 1973년의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와 1984년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은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여기서 백남준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이라는 소설 작품에서처럼 전자기술이 감시 장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삶의 즐거움과 자유로운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비전들은 인간적인 가치이고, 특히 인간적인 가치들은 예술의 본원적인 발생근거인 제의적 조건들을 대입해 볼 때 예술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밝혀줄 수 있는 것이다.

삶과 예술적 소통ㆍ가능성의 세계를 화해시키는 작업

백남준이 그의 작품에서 인간적인 가치들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단순하다. 기술에 자연을 도입시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기술과 자연의 결합과 같은 관점들이 우리에게 무척 자연스러워졌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의 시작에는 어색함이 존재한다.

즉 백남준이 비디오 기술을 예술작품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의 영상기술이 발전하는 시기의 초기에 기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산업혁명기에 환경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남준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의 인간화는 비디오 영상 기술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비전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 그의 관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1978년 작품 <실제 식물 / 생방송 식물(Real Plant / Live Plant)> 이다.

백남준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제시한 비디오 영상 미학에서 ‘시간’, ‘이미지’, ‘정보’는 20~21세기 미디어 아트를 바라보는 중요한 구조틀을 제공한다. 이 세 가지 개념들은 정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변화와 소통과 이해를 통해 전달되고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동적인 개념들이다. 즉 수행자의 마음속에 하나의 화두가 있다고 하면, 그 화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삶과 이 세상의 사건들을 그 화두를 통해 순화시켜야만 한다.

백남준의 예술은, 어떻게 기술을 인간화 시키며, 격변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희망과 비전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자 대답 이었고, 그리고 예술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실천의 결과들이었다. 결국 부처님이 수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인간을 초월한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면, 백남준은 자신의 비디오 아트를 통해 물질적인 세속적 삶의 세계와 예술적 소통과 가능성의 세계를 화해시키는 작업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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