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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생명운동의 맥락과 천성산살리기 그리고 비판적 성찰
이정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영위원
[26호] 2006년 03월 10일 (금) 이정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영위원

1. 불교계 환경ㆍ생명운동의 흐름과 맥락

1) 불교환경운동의 태동기

(1) 불자들 환경오염에 대하여 주목하다

지난 1990년대 초반 낙동강에서 방류된 페놀에 온 국민들이 놀랐다. 독성물질이 낙동강의 생태계를 크게 위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사회에는 산업화의 진전 속에 가려졌던 환경오염의 문제가 비로소 드러났다.
그 즈음 세계의 여러 정치지도자 및 NGO 대표들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여 ‘지구환경선언’을 진행1)했다. 지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제간의 노력이 함께 해야 할 정도로 지구환경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80년대 후반에 활동을 시작했던 ‘공해추방운동연합’이 우리사회에 주목을 끌었다. 고도성장시대의 이면에서 함께 했던 ‘물과 공기와 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비로소 사회의 시야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 ‘공해추방운동연합’에 동참했던 사람들 가운데 불자들이 ‘공해추방운동불교인연합’을 만들어 불자 대중들을 상대로 우리 강산의 여러 가지 환경오염의 실태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불교계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행사가 ‘청정국토 한마당’이었다. 이 단체와 몇몇 불교단체(한국불교환경교육원, 경불련 등)가 함께 모여 90년대 중반부터 이 행사를 진행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환경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조계사 마당에서 ‘환경을 주제로 한 문화행사’를 진행하였다.

(2) 환경오염 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식, 교육운동을 벌이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사회에서도, 불교계에서도 환경의식은 급격히 성장했다. 더불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반공해주의적 감성’을 넘어서게 되었다. 불교계에서 이 일에 대해 가장 대표적으로 역할을 한 단체가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이었다.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의 환경활동은 주로 교육사업이었다. 환경오염의 문제를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찾고, 이의 근원적 원인을 인간의 물적 욕망을 최선으로 여기는 잘못된 세계관과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교육실천을 조직한 것이다.

90년대 중반에 한국불교환경교육원은 ‘생태학교’ 및 ‘공동체학교’ 등의 강좌를 오랜 기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수 많은 불자들을 교육했고, 나아가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의 신참 활동가들과 일반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과 대안실천에 대한 주춧돌을 놓았다.

지금도 많은 환경단체의 활동가들과 불교계의 환경활동가들은 이런 강좌들을 통해 초창기 학습에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고맙고 소중한 실천이었다.

2) 불교생명운동으로의 내용적 분화(分化)의 필요성과 한계

(1)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하다

97년과 98년을 지나면서 한국불교계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전 국가의 개발계획은 주로 대규모 주택지와 인구가 집중된 도시지역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90년대를 넘으면서 국가와 개발업자들의 개발대상지가 바뀌었다. 이제는 산과 계곡으로 향했던 것이다2).

대규모의 댐과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골프장과 아파트단지, 위락시설이 사찰의 정문 앞과 지하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는 몇몇 사찰을 수몰의 위험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은 우리사회에서 국토생태계의 전면적 파괴 작업과 지역민들의 생존 위협과 괘를 같이 하면서 진행되었다3).

이제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국토생태계를 지켜야 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공동체를 위해서는 불가피 하지 않은 대규모의 댐과 골프장을 막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불교계의 ‘수행환경 및 민족문화’의 파괴에 대한 반대운동과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불교계는 크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1996년 11월 30일 조계사에서는 약 2천여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환경수호’와 ‘민족문화수호’를 위한 결의대회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 실상사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지리산댐’에 대한 반대운동이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이라는 사회운동으로 나타났다. 2002년에는 불교환경연대가 주축이 되어 ‘북한산살리기운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초반에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중심이 된 ‘새만금삼보일배’가 진행 되었으며, 지난해와 올해는 지율스님의 ‘천성산살리기운동’이 사회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이제 불교환경운동은 더 이상 불자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불교환경운동은 내용면에서나 그것의 형식면에서나 사회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는 환경문제를 ‘생명과 평화’의 내용으로 승화시켰으며, 형식면에서도 중앙의 일부 단체들의 힘과 지혜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지역민과 많은 종교인들의 관심과 동참의 방식4)으로 바꾸어 갔다.

(2) 불교 대중의 힘과 지혜를 모아 생명평화의 세상을 모색하다

최근 10년 가까이 불교환경운동은 급격히 양적 팽창을 이루어 내었다. 불교환경운동의 선택은 곧바로 우리사회의 가장 큰 환경사안을 만드는 구조가 되었다. 어떠한 다른 종교계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다른 시민 사회단체들도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불자 대중들의 인식과 실천이 이러한 불교환경운동의 양적 팽창을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불교적 인식은 국가기구의 건설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을 넘어서서, 생명과 평화에 대한 대안적인 제안이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정직하게 표현해서 우리 불교환경운동은 현재까지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수반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많이 있겠다.

그 중 첫 번째가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너무나도 절박하게 ‘경제성장 제일주의’란 인식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책반대운동이 너무나도 다급한 현실이다. 차분히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대활동을 준비하고 조직할 시간여유가 불교생명운동 차원에서 주어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두 번째가 아직 불자 대중들의 인식이 ‘생명평화를 위한 실천’을 ‘불사(佛事)’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데 있지 않나 싶다. 그동안 불자들의 인식은 개인의 기복을 넘어 꾸준히 사회적으로 성장하여 왔다. 지금은 사회복지를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불사의 범주에 포함하여 가는 추세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은 대부분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제 불교계에서는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준비되고 있다. 이는 현재 인류가 신봉하고 있는 ‘산업제일주의’의 신화에 대한 철학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생태사상(생명살림의 철학과 삶의 방법론)에 근거한 대안문명의 세상을 준비해 가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때인 것이다.

2.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진행경과와 의의

1)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진행경과

천성산살리기 운동을 우리 불교계 환경생명운동의 맥락성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서는 천성산살리기 운동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 천성산살리기 운동을 통해 남겨진 불교계 환경생명운동의 과제에 대하여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우리사회에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우리 불교계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천성산살리기 운동을 살펴보면 대략 세 단계를 거쳐 국민에게 알려지게 된다. 대략 살펴보겠다.

(1) 지역단체의 천성산 붕괴위험 지적과 대통령의 백지화 공약

초창기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지난 2001년 11월초 고속철도가 통과할 밀밭늪 주위의 대형산사태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천성산습지보호와 고속철도의 안정성’을 염려하는 몇 개 부산지역의 시민단체가 ‘고속철도 관통반대 대책위’를 구성하여 고속철도관리공단측에 ‘생태계, 지하수, 지질, 진동, 터널구조’ 등 다섯 개 분야에 대한 공동 조사계획을 제기하였다.

2002년 초에 공동조사를 통한 문제해결을 할 것 같던 고속철도 관리공단에서는 그해 6월에 대한 지질공학회에 단독으로 조사계약을 체결하면서 당시 ‘천성산대책위’측과 대립을 형성했다.

이러한 갈등이 깊어지자, 부산시장과 건교부차관이 나서서 양측을 중재하여 공동협의체 구성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속적인 대립이 진행될 즈음, 전국은 2002년 대선국면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후보는 10월 26일 대책위측의 면담을 거쳐, 12월 4일 대선공약집에 ‘고속철도 사업 전면백지화와 대안노선 검토’를 실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직후 다시금 고속철도공사는 강행되었다. 이에 천성산대책위를 대표하고 있던 지율 스님은 2003년 2월 5일을 기해 ‘대선공약실현과 천성산수호’를 위한 제1차 단식에 들어가게 된다.

(2) 도롱뇽소송과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전국화

2003년 3월 14일을 기해 ‘자연환경보존과 수행환경보존을 위한 불교도정진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제1차 단식은 회향되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을 중단키 위해 불교계에서 문제를 다루어 나갈 것은 결의한 것이다.
그 무렵 부산지역의 일부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고속철도공단과 노선재검토위원회가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천성산대책위측은 배제되었다. 이에 천성산대책위측은 ‘노선재검토위원회’가 원천무효임을 주장하며, 노선재검토위원회에 참여한 일부 부산시민단체를 향해 ‘정치적으로 타협’하고자 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천성산대책위’는 나름의 새로운 형태의 투쟁을 준비한다. ‘생명에 대안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입장을 정리한 ‘천성산대책위’는 이제는 이 사안을 부산ㆍ경남권의 사안이 아닌 전국민적인 사안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이를 위해 천성산대책위는 도롱뇽소송을 준비하게 되었다. 도롱뇽소송은 2003년 10월 15일을 기해 부산지방법원에 정식으로 소장이 접수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도롱뇽소송이 시작되면서 천성산대책위측에서는 ‘고속철도 천성산관통반대 비상대책위’를 조직하면서 전국의 교사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도롱뇽소송 지지를 위한 선언운동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11월을 기해 전국적인 선언운동은 ‘도롱뇽소송인단’이라는 방법을 통해 전국적인 사안으로 전환해 간다.

(3) 환경영향재평가를 위한 단식과 공동영향조사

2004년 도롱뇽소송은 제1심에서 기각되었다. ‘도롱뇽의 친구들’이 직접적인 피해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에 대책위측은 제2심에 항고하였다.

이러한 도롱뇽소송의 흐름과는 별도로 지율 스님은 ‘환경영향 재평가’를 요구하면서 2004년 6월 30일 제3차 단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산이 아닌 청와대 앞이었다.

지난 대선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통해 당시 부산ㆍ경남지역의 환경사안이 갑자기 전국적인 환경사안이 되어서 더욱 더 문제를 복잡하게 했기에 이를 정치적으로 책임지라는 의미로 장소가 그렇게 정해졌다고 한다.

제3차 단식은 8월 26일 한국철도공단과 공사중단을 합의하고, 환경부와 민관합동재검토를 합의한 후 회향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환경부의 일방적인 2박 3일의 현장검증을 통한 ‘환경영향평가 대체’ 그리고 법원의 항고기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무산되었다. 다시금 지율스님은 10월 27일을 기해 제4차 단식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이제 사안은 두 가지가 되었다. 하나는 ‘천성산살리기’였으며, 다른 하나는 ‘약속을 지키라!’라는 호소였다.

지율 스님의 제4차 단식이 100일을 맞을 즈음, 정부는 2005년 1월 21일 지율 스님의 양보안(3개월 발파공사 중단과 환경평가 재실시)을 거절했다. 이에 정부와 지율 스님간의 대화 채널은 끊겼다. 우리 사회는 지율스님을 버렸다.

이에 1월 24일 천만 다행히도 도법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등 일부 종교인들이 ‘지율 스님과 생명평화를 위한 참회단식기도’를 입제하였다. 이 참회기도를 통해 조계종단의 1주일 정진기도를 이끌어 내었고 조계종 총무원장과 김수환 추기경 등이 지율 스님을 방문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다행스럽게도 2월 3일을 기해 사회의 여러 분야(정치권과 정부인사 그리고 여러 시민사회)의 노력은 정부와 지율 스님측간의 ‘3개월 환경영향재조사’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 뒤 약 1년간의 기간을 거쳐 ‘천성산 환경영향 재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를 통해 양측의 전문가들은 끝내 합의된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각기 두 가지의 보고서를 대법원에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조만간에 내려질 예정이다.

2)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성과 및 과제

(1)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성과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진행과정에서 특별한 두 가지의 사례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첫번째,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우리사회에 생명가치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는지를 여러 분야에 호소력 있게 전해 준 일대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의 역사는 선명하게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의 환경사안에서도 정책을 반대하는 논리중의 하나로 환경과 생태적 가치를 주장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천성산살리기 운동처럼 전면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노동’이라는 단어와 ‘노동자’라는 단어가 우리사회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1970년도만 하더라도 그러한 단어는 금기시 되어 있었다. 노동의 가치5)가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중요한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현실은 이를 인정치 않는 분위기였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정확히 이러한 ‘우리사회의 생명가치 지체현상’에 대하여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 ‘생명가치’를 중심으로 ‘환경가치와 경제가치’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야 할 시기임에도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생명가치 지체현상’이 지율스님 단식정진의 한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생명가치는 우리사회 ‘현재의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맞다면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 이제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생명가치를 중하게 다룰 줄 아는 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두 번째, ‘도롱뇽소송’은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을 소송의 주체로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생명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의미있는 시도가 ‘도롱뇽소송’을 통해 제안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사법부가 ‘자연권’을 인정하지 못하여 국제적인 사법조류에 합류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최초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서명의 동참이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소송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사안에 관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하나의 사례를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천성산살리기 운동이 가져온 하나의 큰 역사적 진보임에 틀림이 없다.

(2) 천성산살리기 운동의 과제

천성산살리기 운동이 우리나라에 남겨준 과제를 살펴보겠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제도에 대한 보완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첫번째는 우리나라의 환경영향평가의 제도적 보완의 문제이다. 이는 대략 두 가지 입장에서 볼 수 있다. 첫째, 대안설정ㆍ분석 등 평가를 통하여 환경측면에서 계획의 적정성,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평가(SEA) 개념 도입과 둘째, 사전환경성검토서 작성시 관계전문가, 환경ㆍ시민단체, 주민 등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것이다.

천성산살리기 운동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은 지난 94년 이미 실시했던 천성산 환경영향평가가 터무니 없는 조사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개발사업들이 그렇게 진행되어 왔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보완이 제2, 제3의 천성산을 만들지 않는 첩경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갈등해결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사업의 계획결정과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 추진과정에서, 천성산 관통노선 문제에 평가와 검토의 부실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제대로 수반되지 않아 문제를 더욱 확대 재생산시키는 과정이었다.
특히 2004년 8월 26일 도롱뇽소송 시민행동 대표단의 환경부장관 면담 시 합의한 내용이 사업자 측의 참가불참과 환경부만의 조사로 진행됨으로서, 이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했을 때 검토 과정만 제대로 수행되었어도 충분히 갈등의 폭을 줄일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세 번째는 천성산살리기운동에 대한 불교계의 확고한 입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율 스님이 제1차 단식을 회향했던 계기는 조계종단에서 마련한 ‘자연환경보존과 수행환경보존을 위한 불교도정진대회’였다. 이는 향후 조계종단이 천성산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나아갈 것을 결의했던 자리였다.
만일 이러한 결의가 구체적인 활동으로 나아갔다면, 지율스님의 2차, 3차, 4차 단식은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속에서는 지역 불교계의 입장과 태도, 전체 불자 대중들의 여론, 나아가 불교계 환경생명운동의 미약, 조계종단의 결단력 있는 행보의 미약 등의 이유로 인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은 향후 불교계의 불교환경운동의 과제일뿐만 아니라, 조계종단의 향후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도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경험일 것으로 생각한다.

3. 천성산살리기 운동이 남긴 불교환경ㆍ생명운동의 과제

1) 90년대의 성찰,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초록세상

지난 92년 전 세계 정부기구의 대표와 비정구기구의 활동가들이 리우에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선언했다. 이 선언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10여년동안 우리 사회는 낙동강 페놀사태로 상징화 되었던 심각한 ‘오염의 문명’을 문제로 받아 들였고, 공들여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10여년의 세월은 우리사회가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어느 나라보다 압축적 성장에 압축오염과 정신과 물질의 복합오염의 시대를 살아왔음을 확인하는 기간이었다.

이어 지난 2002년에는 리우선언 10주년을 평가하는 세계대회가 진행되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산업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정부기구나 비정부기구가 함께 공유했다. 그러나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수식어에 붙는 명사는 정부기구와 비정부기구간에 새로운 단어가 필요할 것 같다. 하나는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과연 지난 10여년 동안 충분하게 이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숙고, 성찰했을까? 지난 10여년의 기간동안 몇몇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이 사회에 던져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우리사회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내지는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정부기구는 ‘개발과 성장’을 외치고 있으며, 정치권은 서울의 땅투기를 부추길 것인지, 지방의 땅투기를 부추길 것인지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생존의 기반인 농지(農地)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역-도시간의 고속도로로 산들은 구멍이 나거나 파헤쳐지고 있다. 새만금의 갯벌은 죽어가고 있으며, 천성산의 도롱뇽은 미래의 인간처럼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고에너지 소비사회’에서 날로 증가하는 에너지를 위해 산하의 어디엔가는 반드시 ‘핵발전 쓰레기장’을 지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초록과 생태사회를 향한 유럽사회의 노력을 보자. 그들은 정부차원에서 자국의 먹을거리를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저에너지 사회시스템을 향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이 단지 남의 일인 나라에 살고 있다. 2005년 여름 대한민국의 현실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하여 열려 있지 않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충분히 성찰하지 않은 사회의 슬픈 자화상6)이다.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우리사회에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 아주 어려운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계기였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많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그리고 관행적인 갈등조정의 방법론으로서는 새롭게 생겨나는 환경ㆍ생명에 관한 사회적 갈등을 능히 헤쳐나갈 수 없음을 웅변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생명가치와 개발가치를 통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계에서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개발과 생명살림’의 중간에서 불교계의 확고한 원칙과 대응방법론을 착실하게 찾아가야 함을 역설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이제 불교계가 단지 하나 하나의 환경사안에 대해 개별인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어서는 곤란한 시대이다. 반면 시대의 흐름에 대하여 불교적인 철학과 방법론으로 큰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서 이러한 원칙과 방법론을 적재적소에 적용해가는 지혜의 힘을 길러가는 것이 필요하다.

2) 생명살림의 사회를 위한 불교계의 역할과 불교생명운동의 과제

현재의 시대가 불교생명운동 세력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불교생명운동 세력은 상징적으로 사회의 거대한 변화와 불교계의 현실적인 행보를 매개하기도 하며,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불교생명운동 세력에게 ‘천성산살리기와 지율스님의 활동’이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는 곧바로 우리 불교생명운동이 넘어서야 할 현재의 과제가 될 수도 있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생명운동의 관점에서 지율 스님의 단식정진을 살펴보자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점을 몇 가지로 짚어 보겠다.

첫째, 천성산살리기 운동은 불교의 상생의 세계관과 방법론에 따라 진행이 되지 못했다.
아쉽게도 지율 스님의 단식정진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일을 겪었다. 물론 지율 스님이 목적한 바는 아닐지라도 천성산과 도롱뇽을 살리기 위한 과정에서 지율 스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과정을 겪었다. 너무나도 애석한 일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의 원인을 잘 살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의 원인은 많겠지만 대표적으로 꼽아본다면, 앞에서 얘기한 ‘생명가치 지체현상’이 제일 먼저일 것이다.

불교생명운동 세력에게 있어서 우리 사회가 ‘생명가치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큰 장애를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불교생명운동은 환경생명운동을 위한 불교사상적 고찰에 대하여 진지하게 힘을 쏟아가야 할 시기라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대중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교속에서 이러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대중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초창기 지역불교계와 지역단체에서 이 문제를 화합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못해 힘을 축적하는 운동이 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지역개발의 진행여부에 있어서는 지역사회의 여론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국책사업일 경우 국민들의 여론7)이다. 향후 우리 사회의 개발계획에 따라 훨씬 많은 사찰과 불자 대중들이 개발의 과정에서 희생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불교계는 종단적 차원에서 그리고 각 지역신행단체 및 지역불교단체들도 꾸준히 환경ㆍ생명에 대한 교육과 홍보사업이 강화되어야 할 시기이다.
셋째, 우리 불교계에서 이러한 ‘생명ㆍ환경문제’에 대한 일관되고 단일한 관점과 태도를 아직 시스템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개발의 주요 대상은 산이 될 것이다.

산에는 수 천개의 절들이 있다. 종단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다행히도 최근 ‘불교환경의제21’ 사업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종단적 대책을 마련해 가고 있다. 약간 욕심을 낸다면 이러한 장기적 의제사업과 더불어 단기적이고, 제도적인 수행환경수호를 위한 대책도 병행했으면 하는 생각도 갖는다. 이러한 작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겠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환경ㆍ생명의 가치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다. 그리고 이에 입각해서 불교계의 내외에 존재하는 전문가 그룹과의 연계를 꾸준히 갖추어가는 과정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생명운동은 다수 대중들이 함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 지역의 대중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귀농운동을 통해 삶의 터전과 결을 바꾼다던지, 생협운동을 통해 소비생활을 바꾼다던지, 대안학교를 통해 교육터전을 바꾼다던지 하는 등의 형태이다. 아쉽게도 천성산의 문제는 지역대중들의 의식과 생활의 변화로 인해 천성산의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론으로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개발계획이 진행되고 이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방식에서, 이제는 평소에 사찰과 주변지역을 잘 가꾸는 활동에 각 지역의 사찰이 꾸준히 나서게 될 때, 사찰과 주변지역의 환경은 지역주민들과 지역사회의 연대에 의하여 저절로 지켜지고 가꾸어 질 수 있는 토대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반대의 경우라면, 제 아무리 우리 불교계와 사찰이 개발계획에 대한 반대운동에 나서게 되더라도 우리의 정당성은 확보될 수 없을 것이며, 자연히 모든 형태의 개발계획은 우리들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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