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 선각자, 역사로 되살아나다

인연의 고리

백용성 연구
김광식 지음
필자와 김광식 교수의 인연은 참 오래되었다. 그 인연의 연결 고리에는 지금 동국대 총장으로 봉직하는 보광당 한태식 교수가 계신다. 보광 스님의 전공 영역은 불교학계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정토학인데, 스님은 1988년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했다. 이 학회에서는 1998년부터 매년 2회씩 《정토학연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이 학술지를 통해 한국 내의 정토학 연구는 학문적으로 급진적 도약을 하게 되었다. 보광 스님이 필자를 이 학회의 회원으로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 인연으로 ‘정토학’에 대한 연구 시야를 넓혀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보광 스님은 당시에 ‘대각사상연구원’의 원장직도 맡고 있었는데, 김광식 교수는 이곳의 연구실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런 관계로 필자 또한 자연스레 그와 학문적인 인연을 쌓아가게 되었다. 이 연구원의 명칭에 들어 있는 ‘대각’은 백용성 스님(1864~1940)의 사상을 구성하는 핵심 용어의 하나이다. ‘대각사상연구원’에서는 《대각사상》이라는 학술지를 발간 보급하고 있는데, 이 학술지는 용성 연구는 물론, 용성이 살았던 소위 한국의 ‘근대불교’ 전반을 범위에 넣고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필자는 한 교수와 김 교수를 따라다니면서 이 분야 연구의 방법과 주제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아시다시피, 김광식 교수는 한국 근현대 불교, 그중에서도 역사적인 방면에 방대한 연구 논문과 저술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것도 학문적인 방법론을 도입해서 말이다. 절이나 스님들과 인연이 있는 불교학자들이라면 누구나 근현대 고승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 들으면서 불교학 연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고승들 이야기는 소위 ‘지대방 이야기’ 수준이었다. 전해준 대로 듣고, 들은 대로 좀 보태서 다시 전하는 그런 순환이었다.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든가, 또는 그 배경에 서려 있는 역사 구조를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김광식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일찍이 중세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또 독립기념관에서 현장 연구조사를 몸소 수행했다. 이렇게 단련된 솜씨로 지대방 이야기를 엄밀한 학술적 방법으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것이 바로 ‘한국 근현대불교 연구’이다. 그에 의해서 비로소 이 분야가 학문으로서 한 영역으로 대접받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근대’는 ‘일제의 조선 강점’과 시대가 겹치기 때문에,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매우 큰 문제이다. 그런데 김광식 교수는 ‘민족불교’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이 시대에 살다간 당시 승려들의 행적과 사상을 분석해내고 있다. 이런 용어를 들고나오는 그의 학문은 ‘호국불교’라는 틀로 연구하던 기존의 연구 방식에 대한 대안이고 극복의 결과이다. 이번에 펴낸 《백용성 연구》(동국대학교 출판부, 2017)에서도 백용성을 ‘민족불교’라는 좌표 위에서 그가 걸어온 자취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그 길에는 민족운동, 항일불교, 역경불교(譯經佛敎), 선농불교(禪農佛敎)가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왜 이 책을 엮어냈을까?

불교계 내부에서는 그것이 학계이든 종단이든 백용성 스님의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한용운 스님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현상을 초래한 이유를 저자는 셋으로 꼽고 있다. 용성 문도들의 노력 부족, 교단 내의 교육 부진, 용성을 바라볼 수 없는 요즈음의 정신적 척박함이 그것이다. 마침 작년 10월에 《백용성 대종사 총서》(총 14책)가 완간되었다. 다시 금년 12월이면 새로 발굴된 자료를 포함한 DB 구축사업이 완료된다. 이 엄청난 역사는 김 교수의 노력과 인내의 결실이다. 이런 결실이 우리의 눈앞에 있는데도 불교계 안팎에 용성을 소개할 만한 단행본이 없다. 이제 《백용성 연구》, 이 책 한 권이면 백용성을 알고자 하는 이 땅의 독서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실린 내용도 풍부하며 게다가 ‘참고문헌’을 상세하게 별도로 붙여두었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의 제목은 백용성 사상의 정체성인데, 당시의 대처식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불교의 근대화를 위한 용성 고유의 활동과 사상들을 밝혀내고 있다. 제2부의 제목은 백용성과 불교개혁인데, 각 결사운동의 양상을 구체적인 사료들을 자료로 삼아서 소개하고 있다. 용성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그것은 결과만을 보고 한 말인데, 실은 용성은 여러 사람들과 자신의 고민과 행동을 같이 하고자 했다. 그는 은둔의 성자가 아니다. 그는 거리의 지성이었다. 마지막 제3부의 제목은 백용성 사상의 계승인데, 여기에서는 용성의 제자들이 용성의 유업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밝혀냈다.

이 책에는 모두 17편의 작은 논문들로 용성의 면모를 담아내고 있다. 이미 발표된 논문이지만, 그것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하여 수정하고 보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김 교수를 가까이서 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그는 항상 수첩과 필기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근현대의 불교계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 하면, 그는 언제나 수첩을 꺼내 들고 기록을 한다. 한번은 필자가 오형근 교수와 동국대 상록원 교수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 교수는 일찍이 출가한 적이 있는데 한때는 서울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에서 머문 적이 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광식 교수가 옆으로 슬쩍 자리하더니 우리의 대화를 적고 있었다. 당시에 어떤 스님들이 선학원에 계셨고, 그 스님들은 어떤 분이고, 그 스님은 당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는 적고 또 적는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이 그의 연구에 깔려 있다.

유가적 봉건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시대의 길목에서 고민하는 한 지성을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서유럽의 동점과 그 과정에서 유럽으로 탈바꿈한 일본제국의 침략 앞에서 고뇌하는 그런 지성인 말이다. 자조 섞인 고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우리의 역사는 봉건 자체를 스스로의 안목으로 반성하여 스스로의 손으로 해체하지도 못하고, 그저 일제에 의해서 해체되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짜놓은 ‘판’ 위에, 근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근대를 살았다. 이런 근대의 길목에 새 시대를 꿈꾸는 불교 지성인 용성이 서 있다.

이런 고민이 어찌 불교에만 있었겠는가만, 유독 불교계에서는 이렇게 고민하는 지성을 발굴하고 그것을 현대의 안목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적었다. 이제 우리는 역사학자 김광식 교수의 노력으로 한 권의 책 속에서 그 고민과 행동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펴낸 김 교수의 저 깊은 마음에는 이제는 그것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제안이 담긴 듯하다. 용성의 시대 인식과 행동을 그는 이 한 권의 책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용성은 과거에 살았지만 그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봉건’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떠안은 채, 일본이 안겨준 ‘근대’의 질곡도 정화하지 못한 채, 현대라는 ‘판’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현대’ 불교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민족불교’라는 좌표를 만들어, 그 좌표 속에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용성을 우리게 던져놓았다. 이제 용성은 온전히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30권째 저술이 던진 화두

《시경》 〈대아〉 ‘문왕조’에 이런 말이 있다.

“무념이조(無念爾祖)아, 율수궐덕(聿脩厥德)이어다.” 우리 글로 풀어보면, “그대의 조상 일을 잊지 말지니, 그 덕을 계승하여 드날려라.”

김 교수의 근대불교 연구 30번째 저술인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화두를 오늘의 불교계에 던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근대불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가 제시한 ‘민족불교’라는 역사관은 독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역사관을 대신할 수는 방법을 어떻게 학술적으로 제시하는가이다. 그 방법이 제시되지 않는 한, 그의 ‘설’은 오래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김 교수도 내심 그렇겠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그의 근대불교 해석과 평가 방법과 견해를 달리하는 좌표가 학계에 새롭게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단지 ‘민족불교’라는 역사분석 방법 자체를 왈가왈부하는 정도를 넘어,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면서 내놓는 그런 대안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던진 두 번째의 화두는, 용성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성과를 어떻게 오늘에 되살려 지금을 살 것인가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시 더 확인하겠지만, 용성은 대단한 우리 근대의 선지식이다. 그를 ‘불교라는 울타리’에 가두어두기에는 그 울타리가 너무 좁다. 봉건에서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그리하여 근대에서 다시 현대로의 이행이라는 우리 역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가 누구인가를 밝히려면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인물이 용성이다. 용성은 참으로 큰 지성이다. 그런 용성을 김광식 교수는 우리에게 되살려냈고, 이제 우리는 그가 던진 이 화두를 받아야만 한다.

지난 김 교수와 인연을 돌이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김 교수가 손수 논밭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추수를 했다면, 나는 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가 추수하고 남은 ‘이삭줍기’를 했다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학자로서 고증 정신과 객관적 평가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즉, 필자는 한국 불교계의 근현대 인물이나 그 사상을 연구하려면, 우선 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조사해서 읽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만나서 때로는 전화로 문의하곤 한다. 논문으로 문장화되지는 않았더라도, 그는 ‘한국 근현대 불교’ 분야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것도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지식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한국 근현대 불교’의 방대한 정보를 갈무리한 ‘빅 데이터’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빅 데이터’는 학습 기능 즉 ‘딥 러닝’ 기능도 갖추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밝혔듯이 김광식 교수는 필자를 여러 발표회로 인도해주었고, 그런 인연이 쌓여서 졸저 《한국 근현대 불교사상 탐구》(새문사, 2012)를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엮고 쓰는 내내 역시 우리의 근현대 불교는 특히 ‘사상’ 내지는 ‘철학’ 측면에서는 아직 ‘근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반성도 못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근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현대’를 살고 있다. 밀린 지난 숙제도 다 못 했는데, 또다시 새로운 숙제를 받았다. ■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 동경대학 중국철학과 문학박사. 《화엄의 법성철학》 《규봉종밀과 법성교학》 《선문답 일지미》 《벽암록》 《선과 문학》 《원각경 · 현담》 《선학사전》(공저) 등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불교평론 학술상, 연세대 공헌교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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