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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한 불교적 처방 없나
정천구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26호] 2006년 03월 10일 (금) 정천구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1. 머리말

양극화문제를 다루기 전에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접근법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어떤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이 합리적이고 의미를 가지려면 그 내용은 물론 그 논의 형식이 그에 합당해야 한다. 존재론적으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인식론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가는 타당한 방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불교에는 불타가 제시한 문제 접근 방법론이 있다. 그것은 불교의 근본 교리의 하나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ㆍ사성제)에 관한 법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근본 문제의 해결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불타는 고제(苦諦)에서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고(苦)로 파악하고, 집제(集諦)에서 그러한 고의 원인을 집착(集)으로 진단하였으며, 멸제(滅諦)에서 이러한 고를 제거한 열반의 세계가 있음을 제시하고, 도제(道諦)에서 고통을 소멸하는 길로 8정도(八正道)를 제시하였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진단하며, 치유가능성과 치유 방법을 제시하는 이러한 문제 접근 방식은 불교가 사회 양극화 문제를 포함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방법론상으로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불교는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먼저 선입견과 고정 관념을 타파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금강경』(제5분)은 “가지고 있는 모든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일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보면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ㆍ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상을 타파하는 일은 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방법이며 사물의 진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다. 상을 떠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 문제에 관한 불교의 대응은 내용상으로 불교 교리에 합당해야 할 것이다. 불타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진리(법)와 진리를 구현한 인격(불타)에 대한 헌신, 자비와 생명 존중의 정신, 그리고 베품과 나눔의 정신 등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불교의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은 이러한 근본 가르침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약하면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처방은 모범적인 불교적 문제 접근 방식에 따르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떠나 불편부당한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며 내용상에 있어서 불교의 생명존중, 자비사상, 베품과 나눔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 양극화 문제에 관하여 불교적 처방이 있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2. 양극화의 실상과 원인

(1) 양극화의 개념과 실상

양극화(兩極化)라는 용어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계층(階層) 또는 집단(集團)이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지거나 그렇게 하는 일”이다. 이 말은 세계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을 대립하는 두 개의 축으로 하여 세계가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 된 국제체제를 양극화체제(bi-polar system)라 부르면서 널리 알려진 개념이 되었다.

양극화 체제는 소련의 멸망과 냉전의 해체로 역사의 산물이 되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로 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면서 국내의 사회적 양극화가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IMF의 처방에 따라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하여 국내적으로 소득의 양극화, 부의 양극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참여정부에 들어와 서민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기존 세력과의 계속되는 마찰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념의 양극화, 역사의 양극화, 외교 정책의 양극화 등이 파생되었다.

그러나 양극화 현상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살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으로 우리는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계급 분류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존재하던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들을 실증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사회의 기본적인 갈등은 부자와 가난한 자와의 갈등”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인류 역사는 지금껏 진통을 겪고 있다.

영국의 산업 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가진 자에 대한 증오의 철학이 싹트게 되었다. 19세기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하여 무산(無産)계급의 혁명을 통하여 노동계급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사회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및 동구 국가에서 행해졌던 그러한 공산주의 실험은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실패로 끝났다.

한편 불타는 인간의 삶을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을 다 고려하여 전체적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가난은 절도, 거짓말, 폭력, 증오, 잔혹함 등 모든 부도덕과 범죄의 원인“이라고 분명하게 설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불타는 인민들의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충분한 소득을 얻을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만족할 것이며, 공포나 걱정을 갖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나라는 평화롭고 범죄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의 상대적 불평등을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인도의 고질적인 4성(四姓)계급을 부정하고 평등을 주장하고 실천한 인류 최초의 성자이지만, 현실적 차별상은 인과법칙에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보았다. 불타의 이상(理想)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모든 중생이 불성을 성취하여 불국토가 실현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소득과 부의 양극화, 이념과 역사 평가의 양극화, 외교 정책의 양극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근본적인 것은 소득과 부의 양극화 문제일 것이다. 2004년 7월 한국은행의 <경제양극화의 원인과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한 사회의 소득 분배 정도를 표시하는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IMF 이후 크게 악화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0에서 1까지의 값으로 표시하는 지니계수는 값이 적을수록 균등한 분배를 뜻하며 0.4를 넘으면 소득 분배가 당당히 불평등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니계수는 1990~97년 중 평균 0.286에서 1998~2003년에는 0.315로 크게 높아졌으며, 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 평균/하위 20% 평균)도 같은 기간 중 4.48배에서 5.33배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금년 초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현 정부 출범 첫 해인 지난 2002년 0.3019 에서 2004년 0.3111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분배 효과는 2002년 0.0088에서 2004년 0.0095로 약간 개선된 것으로 조사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가지고 과연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를 다른 나라와 비교를 통해 재조명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미국 오일에너지 공보가 2005년 미국을 포함한 OECD국가들의 소득 불평등을 비교하면서 인용한 지니계수의 백분율은 2000년도 미국이 46.2(0.462) 독일 30.0, 프랑스 32.7, 영국 36.8, 이탈리아 27.3, 일본 24.9 그리고 캐나다가 31.5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지니계수 0.315이라는 숫자는 미국과 영국 보다 훨씬 낮고 프랑스와 카나다 보다 낮은 숫자이다. 2004년 세계은행 자료에서 인용된 지니계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자료를 제출한 127개 국가 중 27위를 점하고 있으며 평등 분배를 선전해온 베트남(36.1)과 중국(44.7 *북한관련 자료는 없음) 보다 소득분배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계수가 부의 불평등 문제를 다 밝혀 주는 것은 아니며, 또 우리나라에 부의 불평등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양극화의 표지로 제시하는 것은 과장되었다고 판단된다. 소득과 부의 양극화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과 역사 등 생각의 양극화이며 사회가 양극화되었다는 생각, 즉 양극화의 상(相)이라고 볼 수 있다. 양극화문제에 접할 때 불교적 사유는 우선 양극화라는 언어가 우리나라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가, 양극화라는 용어가 어떠한 상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2) 양극화의 원인

양극화의 원인에 대하여 정치권은 사회의 양극화만큼이나 양극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여당은 금년 초 대통령의 신년 연설과 청와대 홈페이지의 연재 글을 통하여 양극화를 사회구조 개선의 명분으로 내걸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압축 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불균형 성장 전략에 입각한 과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은 압축 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양극화 심화의 역사적 뿌리가 됐다”는 논리를 폈다.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를 쟁점으로 내건 다음 그 원인을 과거의 불균형 경제성장 전략에 입각한 압축성장에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당은 이에 대하여 원내 대표의 국회 연설을 통해 “이 정권은 양극화 때문에 우리 경제가 성장 못하고 어렵다면서 국민세금을 더 거둬서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이 것은 진단도 처방도 틀렸다. 이 정권이 지금까지 반 시장 정책, 반 기업, 반 서민 정책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워진 것이고 그 결과 중산층과 서민층이 빈곤층으로 내몰리면서 최악의 양극화가 생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양극화가 최대의 정치적 쟁점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 지표상으로만 볼 때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앞의 다른 나라와의 비교에서 보듯이 그 실상이 아니라 양극화에 대한 인식이 더 문제인 것이다. 1997년부터 소득과 부의 분배 구조가 악화되어 온 것은 대통령도 신년 연설에서 인정했듯이 “세계화ㆍ정보화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2004년 7월 한국은행이 작성한 <경제양극화의 원인과 정책과제>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양극화의 근본원인을 ‘우리 경제의 성숙단계 진입’, ‘세계화와 중국시장의 부상’ 그리고 ‘기술진보의 과속화’의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 “1990년대 후반 이후 우리 경제가 성숙 단계에 진입함에 따라 생산요소의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이 보다 중요해 지면서” 장치산업 중심의 양적 성장이 한계에 달하고 지식기반산업 및 IT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면서 인력과 기술의 질적 차이가 경제주체들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세계화로 인한 무역의 확대와 중국 수출시장의 부상에 따라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지는 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주력 수출품목을 생산하는 중화학공업 및 IT산업과 그 이외 산업 간의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IT관련 기술진보의 가속화로 IT산업의 성장세가 비(非) IT산업의 성장세를 크게 상회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상의 대내외적 경제 환경 변화는 적응성이 높은 기업이나 근로자는 높은 성과를 얻게 되고 적응성이 낮은 기업이나 근로자는 낮은 성과를 얻게 되어 소득에 있어서 격차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근본원인 이외에 산업연관관계의 빈약과 성장 기반의 취약 등 경제 구조적 요인과 내수 부진 등 경기(景氣)적 요인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정치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양극화의 여러 원인보다는 이상의 분석이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사회의 소득과 부의 분배정도를 표시하는 지니계수가 우리나라에서 90년대 후반부터 특히 IMF사태 이후 좀 더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이를 양극화 사태로 부를 정도는 아니며, 그러한 악화도 세계화ㆍ정보화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수반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상 우리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 논쟁을 필자가 이해하는 불교적 관점에서 판단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념논쟁, 역사논쟁 등 개념적이고 인위적인 것이며 부와 소득의 불균형은 존재하나 그것이 양극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둘째, 부와 소득의 불균형보다 중요한 것은 IMF사태와 세계화 정보화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많은 서민층이 빈곤층으로 내몰리게 된 현실이다. 상대적 빈곤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어느 한계 내에서는 용인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 빈곤이며, 우리 사회가 막아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업과 빈곤의 절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일이다.

셋째, 위험한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양극화라는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려는 풍조이다. 사물에 있어서 양극화라는 현상은 예외적이고 대부분은 극과 극의 사이에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양극적인 사고방식은 사물의 객관적 인식을 어렵게 하고 또 해결도 어렵게 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양극화라는 상(相)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하여 국민들에게 “그대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부자의 편에 설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하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다.

3. 양극화문제의 불교적 처방

(1) 불교의 이상(理想) 국가

이상의 진단을 기초로 해서 양극화의 불교적 해법이 제시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불교적 이법(理法)으로 건설된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를 먼저 제시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경전에는 불타의 이법에 의해 건설된 여러 가지 이상사회가 제시되고 있다. 법장 비구의 48대 원으로 이루어진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와 미륵불의 당래 용화세계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이상 세계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願)과 불법의 실천으로 이록된 세계이며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서로 자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회이다. 당래 미륵불의 세계에 대한 묘사의 끝 부분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온 세상이 오직 평화로워 원수나 도둑의 근심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으며 늙고 병드는 데 대한 걱정이나 물ㆍ불의 재앙이 없으며 전쟁과 가난이 없고 짐승이나 식물에 독해가 없느니라. 또 서로 자비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모든 감관을 조복하여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듯 하고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여 언어와 행동이 지극히 겸손하니, 이것이 다 미륵부처님이 자비한 마음으로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니라.”(불설 미륵대성불경)

이러한 세계는 물질이 풍부하고 사회보장이 잘 실현되며 동ㆍ식물에 독해가 없도록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서로를 가족 같이 지극히 사랑하는 그런 사회인 것이다. 불교의 현실적 이상국가인 전륜성왕이 통치하는 국가의 통치원리 역시 오계(五戒)로 표시되는 정신적 도덕적 요구와 물질적 필요의 충족과 평등한 분배 등 경제적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불타 당시 현실국가 중에서 발지 공화국이 강대국 마가다국의 침공 위험에 놓여있을 때 불타가 설하신 칠종법(七種法)에는 강대국의 침공을 받아도 무너지니 않을 발지 공화국의 잘된 정치를 강조한 바, 당시의 발지 공화국의 정치가 불타가 예시한 현실적인 모범 청치의 사례였다. 아난과의 문답을 통하여 불타가 확인하고자 한 좋은 정치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발지국인들은 자주 모임을 갖고 올바른 정시(政事)를 논의하는가? (활발한 국사 논의)
2)군신이 서로 화순하고 상하가 서로 존경하는가? (상하의 화합과 존중)
3)법을 받들고 금기를 지키며 예의에 어그러짐이 없는가? (준법정신)
4)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는가? (규율)
5)종묘를 받들고 조상을 경배하는가? (정통성의 존중)
6)여성들이 정결하고 웃고 놀 때도 사특한 것이 없는가? (도덕성)
7)사문과 계를 지키는 자를 존중하고 받들어 부양하는데 게으름이 없는가? (경건성)

이상 7가지 사항에 대하여 발지국이 모두 지키고 있음이 확인되자, 불타는 “일곱 가지 중 하나만 잘 지켜도 타국이 공격하여 탈취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를 다 지킨다면 말할 것이 있는가” 라고 반문했다. 발지국은 실제로 마가다국의 침공을 면할 수 있었다.

앞부분에서 살펴 본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의 실상과 원인을 불교의 이상적 정치사회 원리와 비교하여 생각해 보면 양극화 문제에 대한 불교적 처방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2) 양극화 문제의 불교적 처방

앞의 고찰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정신적ㆍ도덕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복합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불타는 물질적 토대가 튼튼하고 정신적ㆍ도덕적으로 법(dharma)과 정의(正義)가 실현되고 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다. 불타의 이러한 이상(理想)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양극화문제에 대한 처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적 처방

앞에서 양극화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양극화 현상 자체보다도 마음의 양극화와 양극화라는 상(相)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불교적 처방은 우선 사회ㆍ정치 현상에서 무엇이 상(相) 즉 왜곡된 인식이자 선입견이며, 조작적이고 인위적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라 본다. 불교에서는 ‘인위적인 것(有爲法)’은 진리가 아니라 보고 무위법(無爲法) 즉 꾸밈이 없는 법에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의 불교적 처방은 마음의 양극화를 치유하는데 두어야 한다. 우선 역사의 양극화와 이념의 양극화는 어떤 실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양극화라 할 수 있다. 세계적 양극체제가 무너지고 동ㆍ서 이념대결이 막을 내린지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자기나라의 역사와 이념을 가지고 양극적인 대결을 하는 것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런 대결은 소모적이고 해롭다.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근본 중의 하나는 앞의 7종법의 5번으로 지적된 나라의 정통성 유지이다. 대한민국의 이념과 지나간 역사를 가지고 다투는 것은 왕조 시대 종묘를 파헤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나라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한 시대의 역사적 평가는 민간 학자들 손에, 그리고 후대에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지 정치적 세력 다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교계는 정치권에게 이념과 역사를 놓고 벌이고 있는 투쟁의 무용성과 해로움을 지적하고 이의 중지를 진지하게 호소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두 번째 불교적 처방은 국민으로 하여금 양극화라는 상(相)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다. 특히 소득과 부의 양극화라는 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상(相)은 독(毒)이 될 수 있음을 국민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부의 불평등 정도를 말하는 우리나라의 지니계수가 1990년대 후반 이후 특히 IMF사태 이후 높아졌으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선진국인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보다 양호하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보다 낮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들 중 어느 나라에서도 부의 양극화를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삼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부와 소득의 양극화를 쟁점으로 삼는 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있으며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심지어는 계급투쟁의 근거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양극화를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삼게 되면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할 정책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고, 단순히 가진 자의 편에 설 것인가 못 가진 자의 편에 설 것인가를 기준으로,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게 될 위험성이 커진다. 이러한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느냐 극락으로 만드느냐는, 자기만 음식을 먹겠다고 하느냐 아니면 남을 먹여주려고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식당에 음식이 잘 차려져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다란 젓가락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먹겠다고 하면 젓가락이 길어 서로 다투기만 할 뿐 아무도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아귀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긴 젓가락을 집어 서로 남에게 음식을 주게 되면 모두 배불리 먹고 즐길 수 있어 극락이 된다는 것이다. 남과 나누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며, 양극화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의 하나인 것이다.

물질적 처방

다음으로 양극화 문제의 토대가 되고 있는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불교적 처방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과 절대빈곤층의 해소 그리고 균형 잡힌 산업구조개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서민층의 가장 큰 곤경은 일자리의 부족이므로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유휴인력이 정보화ㆍ세계화로 인한 산업구조 재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산업기술 인력을 훈련하고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선생경(先生經)』 등에서 불타는 “처음에 기술을 배우고 뒤에 재물을 구하라”고 하여 재산을 얻기 위해서는 직업적 훈련과 지식 및 기술의 습득이 중요함을 설하고 있다.

둘째, 절대 빈곤층의 해소이다.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불타는 빈곤이 모든 범죄와 부도덕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사회의 절대 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불교는 절대빈곤층 퇴치에 앞장서고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국가 정책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경제, 사회의 불안정을 낮추어야 한다.

셋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득구조 불균형의 근본원인은 세계화 정보화에 따른 산업구조의 재편에서 나타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산업과 오래된 산업간의 격차, 수출주도 산업과 내수 중심 산업 간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넷째, 정치권에서는 양극화문제의 대책과 관련하여 성장이냐 분배냐 또는 증세냐 감세냐 하는 논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전통적으로 한국불교는 국가가 융성하고 번영하는 것을 지원해 왔다고 본다. 따라서 불교는 어떤 정책이 국가의 융성과 번영으로 가는 길이며 어떤 정책이 분열을 촉진하고 성장을 저해하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4. 맺음말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처방은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물질적 토대를 관찰하여 그것을 치유함과 동시에 그러한 문제의 배후에 있는 정신이 무엇이고 어떠한 상(相)에 집착하고 있는 가를 발견하여 상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라 본다.

불교는 먼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논쟁이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기 보다는 정치적 갈등의 반영물이며, 양극화라는 상징의 조작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과 이러한 논쟁의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해야 한다. 불교는 정치권이 역사논쟁과 이념논쟁 등 우리 사회의 공통기반을 허무는 일을 즉시 중지하고 국민을 안전하고 잘 살 수 있는 정책 경쟁에 나설 것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이와 함께 부와 소득의 불균형이 더 이상 양극화현상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절대빈곤층 해소 및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불균형 해소 정책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불교는 또한 계급갈등을 부추기고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책에 반대해야 하며 국가가 융성과 번영을 위한 정책들을 지지하고 성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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