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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위한 참여불교의 길 / 이병욱
특집 | 촛불 이후, 한국사회와 불교
[7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이병욱 lbw33@hanmail.net

1. 서론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는 초석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촛불집회는 새로운 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촛불집회에 불교계도 당연히 동참하였다. 42개의 불교단체가 박근혜 퇴진운동에 참여하였고, 2016년 12월 1일 2,684명의 승려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하였다. 또한 정원 스님의 소신공양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촛불집회 이후에 불교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주장과 대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참여불교’에 주목하고자 한다. ‘참여불교’라는 용어는 베트남 출신의 승려 틱낫한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고, 틱낫한이 한국에 방문하면서 ‘참여불교’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참여불교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저술이 크리스토퍼 퀸 · 샐리 킹 편저 《아시아의 참여불교》이다. 여기에는 인도의 암베드카르, 태국의 붓다다사, 술락 시바락사,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베트남 출신 틱낫한 등의 사상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참여불교를 불교해방운동과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불교해방운동은 구체적인 경제문제 · 사회문제 · 정치문제 · 환경문제를 극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제시하는 이론이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참여불교는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근거해서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앞에 소개한 참여불교의 정의에 근거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는 참여불교의 활동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것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참여불교가 불교적 이념과 전통에 근거해서 구체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면, 그 속에는 사회적 구조와 대중의 인식 때문에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촛불집회 이후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할 때에도 하나의 방안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적 약자의 문제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는 여러 종류로 구분되고 또 많은 사람이 포함되겠지만, 여기서는 세 종류 약자의 문제, 곧 제삼세계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그중에서도 레즈비언), 장애인(그중에서도 장애인 여성)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고, 상식적인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① 한국사회가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3D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에 산업연수제도, 곧 외국인 노동자를 산업연수생으로 받아들이는 제도를 시행했고, 2004년에는 고용허가제도를 시행했다. 그렇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네팔 출신 외국인 노동자 찬드라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찬드라라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무전취직을 하고 경찰서에서 정신병자로 취급받아 6년 4개월 동안 3개의 병원 등에서 강제로 수용생활을 했는데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네팔 여성 찬드라는 1993년,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밥값을 내지 못해 무전취식으로 경찰서에 신고를 당했다. 경찰서에서는 외국인이어서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정신질환자라고 판단하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또 정신병원에서는 찬드라가 집에 가게 해달라고 아무리 매달려도 정신병자의 헛소리라며 귀담아듣지 않았다. 찬드라는 6년 4개월 동안 병원 두 곳과 부녀자보호소 한 곳을 거쳤고, 마지막 병원의 재활병동에서 의사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의사는 찬드라가 네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주었고, 가족을 찾아주려고 노력하였다. 또 이 의사는 찬드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찬드라는 2000년 3월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같은 해 5월에 네팔로 돌아갔다. 찬드라를 돕는 단체들과 변호사가 찬드라를 대신해서 대한민국과 정신병원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하였고, 2년이 지난 뒤에 1심에서 위자료 2,86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찬드라가 겪은 고생은 본인이 작성한 진술서에 잘 나타나 있다.

…… 저는 일주일에 엿새를 의사와 상담했고, 하루에 세 번씩 스무 알도 넘는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아프지 않다고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면, 간호사들은 야단을 치면서 약을 억지로 먹게 했습니다. 약을 먹기 전에는 괜찮다가도, 약을 먹으면 어지럽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나는 네팔 사람이다. 집에 가고 싶으니 네팔로 보내달라’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얘기하고, 어떤 때는 울면서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런 대답도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정신병원에서 8개월가량 있으면서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문화주의에 근거한 정책이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다문화주의는 다른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 등에 구애되지 않고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를 향유하고 각각의 특수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다문화주의 담론이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대등함을 인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것, 곧 통합이 아니고, 주류문화에 동화시키는 것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실제로는 다문화정책이 아닌데 이름만 다문화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② 레즈비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자. 레즈비언들은 곳곳에서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 공포증, 동성애 혐오) 범죄를 겪고 있다. 가족들에게 성 정체성이 알려져 구타를 당하고, 감금당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기도 한다. 또 동성애인의 가족들에게 폭행당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한다. 또한 레즈비언들은 사기, 폭행, 스토킹, 강간 등의 범죄를 겪을 때도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 대한 범죄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고 공개되었을 때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히겠다’라는 협박 아래 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폭력을 당하는 레즈비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고 함에 따라 이들을 지원하고자 노력했던 단체와 운동가들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레즈비언들은 프랑스에서 그 대안을 찾고 있다. 1999년 10월 13일 시민연대협약(PACS)이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는 동성애 부부를 포함한 다양한 동거 형태의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가족들이 국민연금, 고용보험, 생활보호 등의 복지혜택과 각종 세금제도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③ 장애인 여성의 문제점은 다음은 어느 지체 3급 장애여성(김효진)의 글에 잘 나타난다.

나는 장애인이긴 하지만 엄연히 여성이다. 따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무도 장애여성에게는 가사노동, 출산, 양육 등에 대해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무성(無性)으로 규정되고, 여성성의 부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당했기 때문에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성인이 되어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을 상상해보라! 대부분의 사람이 결혼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가족을 이루는 이성 간의 결합만을 장려하고 그런 가정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그와 다른 형태의 가정은 금기시하고 죄악시해서 상당한 불이익을 준다.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남성은 비장애여성이나 자신보다 경증의 장애여성을 만나 사적인 영역에서 불편함을 적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영역을 넓혀갈 가능성이 그나마 있지만, 장애여성은 집안일을 꾸려나갈 능력, 출산 능력, 양육 능력에 대해 줄곧 의심받기 때문에 결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자신보다 계층이 낮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더욱이 낮은 계층의 장애여성은 어쩔 수 없이 독신으로 남아 가족의 보호를 계속 받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장애인 시설 따위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국제장애인연맹(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 DPI)은 1981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는데, 1980년 캐나다 위니펙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재활세계대회’가 그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에 참여했던 세계 각국의 장애인 250명이 국제장애인연맹을 발의하였다. 이 단체의 지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장애인연맹이 있다. 앞에 소개한 글의 필자 김효진은 서울장애인연맹에서 일하면서 인권에 대해 눈을 떴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껏 부정해온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면서 장애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에서 소외되고 성폭력 등 온갖 폭력에 시달리며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장애여성의 인권은 결국 당사자인 우리 장애여성의 목소리와 힘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장애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 곧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느껴졌다.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기존의 체제를 비판적이고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주변적 위치에 있고, 중심에 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공공의 악덕에 덜 오염되었으며, 억압당한 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종류의 억압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 등이 내가 가지고 있는 힘, 곧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자 장애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한 믿음으로 나는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김효진의 주장은 장애인 여성의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억눌리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효진은 장애인을 재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인권 현실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장애인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당사자 장애인의 요구는 뒷전에 미루어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은 아직도 장애인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없는 환자로 여기기 때문에 시설에 수용되어 의사나 재활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인권운동이 재활을 목표로 할 경우 장애인은 치료의 대상이 되고, 장애는 없애거나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되어 버린다. 특히 재활의 관점에서 보자면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환자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애를 이유로 우리 사회로부터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정상의 기준에 맞출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을 배제하는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


3. 한국의 참여불교 변천 과정

한국의 참여불교는 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그러한 맹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용운 이후에는 상당한 공백 기간이 있다가 1980년대에 민중불교운동이 그 맥을 이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 대표적인 단체로서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가 활동하면서 민중불교의 부족한 부분을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흐름에 대해 간단히 서술한다.

① 한국에서 불교가 사회에 참여한 사례는 근대와 현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 625~702)은 문무왕에게 산성을 쌓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신라 왕실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한 토목사업을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또 고려시대에 의천(義天, 1055~1101)은 경제 분야의 개혁을 위해서 주화를 만들 것[鑄錢論]을 건의하였고, 이는 실제로 현실정치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 의승병(義僧兵)이 활동하였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주류의 위치에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여 승병 활동을 한 것에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② 그렇지만 불교의 사회참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와 현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식민지 시기에 불교에서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은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다. 또한 한용운은 일본강점기에 일어났던 반(反)종교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이 반(反)종교운동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일으킨 것이다.

③ 1945년 해방 이후의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이 충돌하였고, 그 와중에 한용운을 중심으로 했던 참여불교 세력은 소멸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다시 새롭게 일어난 참여불교 운동이 바로 민중불교이다. 민중불교가 구체적 운동으로 드러난 것은 1981년 초에 시작한 ‘사원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정부 당국에 의해 불교사회주의 운동으로 규정되었고 관련자 150명이 조사를 받고 이 운동의 핵심인물 3명(법우, 최연, 신상진)이 실형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 뒤에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대불련)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여익구의 역할이 있었다. 여익구는 출가 생활을 하고 환속한 인물로서, 민중불교의 이념을 정립하고 민중불교의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민중불교운동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85년에는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이 출발하였고, 출가와 재가를 포함해서 모두 180명의 불교인이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민불련은 정부 당국에 의해 불순단체로 지목되어 창립총회에 참여했던 105명이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 민불련에 의해 불교의 여러 사회변혁운동 세력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고, 그동안 논의 수준에 머물던 민중불교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민불련이 1년 정도 지나서 세력이 쇠퇴하였고, 정토구현전국승가회(정토승가)가 민불련을 대체하는 단체로서 1986년 6월 5일에 창립되었다. 정토승가는 이후 불교계 민주화와 민중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0년 중반 이후 민중불교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해인사 승려대회’라고 할 수 있는데, 1986년 9월 7일에 해인사에서 2천여 명의 승려가 모여서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주장한 대회였다.
1987년의 대통령 선거 후에는 민중불교를 추진하는 단체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승불교승가회, 불교사회교육원, 불교사회연구소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대승불교승가회’에서는 ‘민족불교’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산중불교와 민중불교를 통합하는 것이다. ‘불교사회교육원’에서는 불교를 사회과학적인 안목으로 해석하고 불교운동가를 양성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불교사회연구소’는 불교사회교육원의 자매단체로서 노동, 인권, 통일 등의 문제를 불교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단체이다.

이러한 민중불교운동에는 성과도 있고 문제점도 있다. 성과로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는 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문제점으로는 불교 이론의 해석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④ 앞에 소개한 민중불교운동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더욱 진전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도법(道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法輪)의 정토회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도법은 승가개혁운동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하고 이 단체를 통해서 조계종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였다. 도법은 1998년 이후 실상사를 중심으로 해서 여러 대안운동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귀농전문학교, 작은학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등이 포함된다. ‘귀농전문학교’는 1999년 3월 실상사가 소유한 농지 3만 평을 공동체의 토지로 기증해서 세워진 것이다. ‘작은학교’는 다양한 체험과 살아 있는 교육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이다. 그리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1999년 9월에 설립된 불교 대안운동 단체이다.

법륜의 정토회는 불교환경교육원, 제이티에스(JTS), ‘좋은벗들’과 같은 사회참여기구를 움직이는 모집단이면서 공동체이다.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의 통일, 대중 주체의 공동체 실현, 무보수 자원활동 등을 추구하고 있다. 정토회는 순수 종교 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교환경교육원’은 국내 최고의 환경 전문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고, ‘제이티에스’는 1991년에 설립된 국제 민간구호단체인데, 북한 구호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벗들’은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에서는 사회참여의 성격을 나타내면서도, 앞에 소개한 민중불교처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다. 이는 이론과 실천에서 균형이 잡힌 것이고 이 점에서 민중불교 운동보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가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 민중불교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형태의 불교사회운동이 등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4. 참여불교의 자비 · 평등 · 방편(수행)의 길

지금까지 한국 참여불교의 변천 과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앞서 살펴본 기존의 참여불교 활동 외에 여러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촛불 이후 한국불교의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승만경》 《법화경》 원효의 《법화종요》에 근거해서 참여불교에 필요한 이념 곧 자비, 평등, 방편(수행)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물론 더 많은 경전과 논서가 있지만, 필자의 능력 한계와 지면 제한으로 인해 앞에 말한 세 가지 경전과 논서에만 한정한다.

자비는 사회적 약자(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을 포함)를 보호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평등은 사회적 약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방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알맞은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는 방편을 제시하는 것이 그 방편을 실행하는 당사자에게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이 된다. 다시 말하면, 《법화경》에 따르면 아무리 사소한 공덕도 결국에는 부처가 되는 길이므로,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비록 조그마한 공덕이라고 해도 이 또한 부처가 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방편의 실천은 곧 수행의 길이 된다.

1) 《승만경》의 10가지 큰 서원: 자비

《승만경》에서 승만 부인은 10가지 큰 서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① 계율을 범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②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③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④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⑤ 아끼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 ⑥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성숙시키는 데 재물을 사용하겠다는 것, ⑦ 애착함이 없는 마음, 번뇌에 물들지 않은 마음 등으로 중생을 포섭하겠다는 것, ⑧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 등을 보면 편안하게 하고 도리[義]로 이롭게 하겠다는 것, ⑨ 잘못된 계율을 따르거나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면, 포섭할 사람은 포섭하고 굴복시킬 사람은 굴복시키겠다는 것, ⑩ 정법(正法)을 포섭해서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①~⑤는 개인적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⑥~⑩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참여불교와 관련을 맺어볼 수 있다. 이상의 10가지 큰 서원 가운데, ⑥~⑧의 내용을 더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⑥ 세존이시여! 나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받아서 모으지 않고, 받은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⑦ 세존이시여! 나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섭법(四攝法)을 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애착함이 없는 마음과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不愛染心], 만족함이 없는 마음[無厭足心], 걸림이 없는 마음[無罣礙心]으로 중생을 포섭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⑧ 세존이시여! 나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만약 고독한 중생, 갇혀 있는 중생[幽繫], 질병에 걸린 중생, 여러 가지 재앙과 고난에 빠진 중생,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을 본다면 끝내 잠깐이라도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편안하게 하고 도리[義]로 이롭게 하여 여러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한 뒤에 떠나겠습니다.

⑥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 곧 사회적 약자를 성숙시키는 데 재물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⑦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는 중생을 위해서 애착함이 없는 마음과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 등으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는 중생을 포섭하겠다는 것이다. ⑧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재앙과 고난에 빠진 중생,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생 등은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사회적 약자를 정신적인 차원과 물질적인 차원에서 돕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승만경》에서 말하는 10가지 큰 서원 가운데 ⑥, ⑦, ⑧ 등에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자비 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2) 《법화경》의 자비 · 평등 · 방편

앞에서 《승만경》에서 제시하는 자비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법화경》에서는 자비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더 자세히 논하고 있다. 그것은 《법화경》 〈법사품〉의 《법화경》을 설법하는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법사품〉에서 제시하는 《법화경》을 설법하는 자세는 자비심을 갖고, 인욕하는 마음을 내고, 모든 존재가 공(空)하다고 보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마음, 곧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고, 그리고 자비의 활동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인욕의 마음을 내고, 이러한 활동은 공의 지혜에 기초하고, 나아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참여불교의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이 내용에 대해 《법화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약왕아! 선남자 · 선여인이 여래가 열반에 들어가신 후, 사부대중을 위해서 이 《법화경》을 말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 선남자 · 선여인은 여래의 방에 들어가고, 여래의 옷을 입으며,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사부대중을 위해서 이 《법화경》을 말한다. 여기서 ‘여래의 방’이라고 한 것은 모든 중생에 대해 큰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하고, ‘여래의 옷’이라고 한 것은 부드럽게 인욕하는 마음을 말하며, ‘여래의 자리’라고 한 것은 모든 존재가 공(空)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지에 머문 다음에 게으름이 없는 마음으로 모든 보살과 사부대중을 위해서 이 《법화경》을 말해야 한다.

이러한 〈법사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공경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불경보살은 여러 사람에게 핍박을 받지만, 이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모든 중생을 공경한다. 이처럼 모든 중생에 대해 공경하는 사람이 《법화경》에서 말하는 이상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은 중생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상불경보살은 중생을 공경한다는 것이므로, 이것을 참여불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이 또한 《법화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참여불교의 이념이다.

그리고 《법화경》의 〈비유품〉에서는 방편의 필요성을 비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불타고 있는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놀이에 빠져서 위험한 줄 모르고 있으므로 아버지가 이 어린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방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방편은 원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이 방편이 참여불교 이념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내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 약자가 실제로 보호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인격체로서 존중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는 방편의 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도 《법화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참여불교의 이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3) 원효의 《법화종요》의 평등과 수행(방편)

위에서 《법화경》의 자비, 평등, 방편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원효는 《법화종요》에서는 《법화경》의 평등을 수용하면서, 방편에 대해서는 자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방편의 정신이 방편을 실행하는 사람의 수행론이 된다는 것이다.

원효는 《법화종요》에서 일승의 인(因)으로서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성인(性因)과 작인(作因)이다. 우선, 성인(性因)은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인(性因), 곧 자기의 성품에 본래부터 간직하고 있던 원인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성인(性因)은 어느 한 중생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평등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인간존중 사고방식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작인(作因)은 어떤 수행을 하든지 궁극에는 부처가 된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의 수행이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승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여러 수행이 모두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인(作因)은 범부 · 성인(聖人), 불교와 불교 이외의 가르침, 출세간적인 영역으로 도를 닦는 것[道分]과 세간적인 영역으로 복을 짓는 것[福分]을 막론하고, 모든 선근이 수행자를 최고의 깨달음인 무상보리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방편은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원효는 방편의 정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다양한 방편의 내용이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한다. 이것을 참여불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이유로 당신은 사회에 참여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시민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불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에 참여하는 행위가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법화종요》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작인(作因)은 성인이나 범부든지, 내도(內道, 불교 안에 속하는 가르침)나 외도(外道, 불교 이외의 가르침)든지, 도분(道分, 출세간적인 것으로 도를 닦는 데 속함)이나 복분(福分, 세간적인 것으로 복을 짓는 데 속함)이든지 간에 모든 선근은 다 같이 수행자를 무상보리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어떤 경우에는 예배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지 합장하고, 나아가서는 한 손만 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조금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산란한 마음을 가지고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만 외치기라도 한다면,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 등등이라고 말한다. ……불법의 오승(五乘)의 모든 선(善)과 외도의 여러 가지 선(善)은 다 일승이니, 그 이유는 다 불성에 의지해서 다른 체(體)가 없기 때문이다.


5. 결론

이 글에서는 촛불집회 이후 불교계의 과제의 하나로서 참여불교가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제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사회적 약자(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을 포함)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검토하였다. 3장에서는 한국의 참여불교의 변천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였다. 한국의 참여불교는 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참여불교의 맹아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한용운을 따르는 참여불교 세력은 소멸하고 이 땅에는 변변한 참여불교 활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민중불교 운동이 일어났다. 이 민중불교 운동은 명맥이 끊겼다가 다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의 이해에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점을 딛고 더 진전된 형태의 참여불교가 199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를 거론할 수 있다. 도법의 선우도량 등과 법륜의 정토회는 사회참여와 불교사상을 균형감 있게 접목하였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치우쳤던 민중불교보다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4장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참여불교의 이념으로서 자비, 평등, 방편(수행)에 대해 살펴보았다. 《승만경》에서는 10가지 큰 서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⑥~⑩은 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고, 이 글에서 초점으로 하는 사회적 약자와 관련이 되는 것은 ⑥, ⑦, ⑧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에 근거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자비, 평등, 방편을 제시한다. 《승만경》에서도 자비를 말하고 있지만, 《법화경》의 자비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것은 자비에다 인욕, 공, 정진을 추가한 것이고,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비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인욕, 공의 지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정진)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 《법화경》에서는 모든 중생을 공경하는 상불경보살을 통해서 평등의 이념을 제시하는데,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존중해야 한다는 참여불교의 이론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방편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가르침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되고, 이러할 때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효는 《법화종요》에서 《법화경》의 평등은 수용하였지만, 방편은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방편의 여러 가지 실천이 부처가 되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참여불교에 적용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들의 눈높이와 처지에 맞추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부처가 되는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불교의 수행론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여불교는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지만, 참여불교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서 색다른 그 무엇을 찾을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곁에 가깝게 있는 불교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적 안목으로 불교 고전을 다시 해석하면, 말없이 진리의 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병욱
고려대, 중앙승가대 강사. 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인도철학사》 《천태사상》 《한국불교사상의 전개》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등이 있고, 〈천태지의 철학사상 논구〉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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