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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촛불, 자등명 법등명의 길 / 석길암
[7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석길암 본지 편집위원

우리 현대사에서 촛불 혹은 촛불집회는 하나의 상징이다. 민의를 반영하는 통로가 간접적인 방법밖에 주어지지 않은, 그나마도 4년에 한 번씩밖에 기회가 없던 시절에, 정치꾼들에게 왜곡되어버린 민심을 바로 세우는 유일하다시피 한 기회였다. 그래서 촛불은 그리고 촛불 저항은 우리에게 시민참여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자주 촛불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너무 띄엄띄엄 든다고 불만을 토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 임기를 넘기지 못하고 그때마다 들어야 했으니, ‘너무 자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두 여중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2017년 우리는 다시 한번 촛불을 들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세력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 촛불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시켜 감옥으로 보냈다. 그 참담한 세월을 보낸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이제 국정농단의 세세한 내막이 하나둘 밝혀지는 지금, 그 국정농단의 당사자들을 ‘적폐’라는 이름 아래 청산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고도 전 국민적인 촛불 저항이 벌써 네 번째, 전 국민적은 아니라도 사회 곳곳에 소외당하고 버림받아서 촛불을 들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때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미봉에 그친 탓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촛불을 들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고리를 끊어야 하고, 그래서 적폐청산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내온 1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벌써 슬그머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도 그랬던 것 아니냐고 대놓고 반박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오늘 적폐청산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내일은 다시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할지 모른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짧게는 10년 동안, 길게는 40여 년 동안 겪어왔다. 그러고도 여전히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다. 촛불로 만든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런 과정을 1년 전에도 보았다. 지금쯤 다시 한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자.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태극기든 촛불이든,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적폐청산’을 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현실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오류를 덜 범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 모두는 남을 향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혹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낀 티끌만 보는 것은 아닌가. 물론 오늘의 문제를 이런 잣대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현실 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자성과 포용이 없을 때, 적지 않은 오류가 생겼던 것이 지난날의 교훈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생각과 노선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줄 아는 큰 귀가 필요하다. 몰지각하다고 폄훼하거나 외면하기보다 설득하고 함께 가려고 해야 한다. 적폐청산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오류는 ‘내 안의 적폐’를 캐내지 않고 남이 저지른 적폐에만 눈을 돌릴 때 시작된다. 지난 정부가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태극기만, 촛불만 옳고 너는 틀렸다고 하는 곳에서 독선과 배타와 분노가 잉태된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된 사정과 과거청산은 우리 스스로를 곪게 하는 또 다른 종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불행한 전철을 밟아야 한다.

그래서 신라의 원효 스님은 화쟁(和諍)을 말한다. 원효 스님이 말하는 화쟁은 어디에도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원효 스님이 말씀하는 화쟁의 어느 구석에도 ‘너는 옳고 나는 그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다’는 구절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화쟁을 내세워 무조건적인 통합과 화합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원효 스님은 화쟁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A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러이러한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옳고, 저러저러한 부분은 저러저러해서 옳지 않다’ ‘또 이것은 B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러이러한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옳지 않고, 저러저러한 부분은 저러저러해서 옳다.’

즉 원효 스님의 화쟁에는 어떠한 견해,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무조건’ 옳거나 ‘무조건’ 옳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전제로 제시되는 A라는 측면도 그리고 B라는 측면도, 그 각각이 ‘너’ 그리고 ‘너희’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더불어서 잘 살아야 하는 삶의 추구’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 때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잊어버린다, ‘나’ ‘우리’와 ‘너’ ‘너희’가 함께 불국토를 성취하고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삶’을 성취해야 할 하나의 공동체였고, 공동체이고, 공동체일 것임을.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적으로 규정된 상대방이 ‘나’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온 공업(共業)이 우리의 삶을 그렇게 부추겼기 때문이다.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야만 객관적이라고 우기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왔거나, 우리가 용인해왔고, 우리가 그것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을 우리가 용납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말자. 경쟁에 치여서 쉴 사이 없이 바퀴를 굴리느라, ‘우리’ 안에서 ‘너희’를 발견하고 ‘너희’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는 것에 소홀했던 것을 부정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경쟁을 공동체 내부에 허용하고 모른 체해 왔다. 그것이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법칙처럼 기능하고 있는데, 나만은 그렇지 않은 양 잘난 체하고 있는 것이다.

원효 스님의 화쟁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드러내고, 옳은 것을 옳다고 드러낼 때라야 비로소 다툼이 그친다고 말한다. 다만 옳고 옳지 않음의 판단에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원효 스님의 생각이 아니다. 옳고 옳지 않음을 판단하는 잣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중생도 놓치지 않고 다 건져서, 모두가 부처인 세상을 성취하겠다는 붓다의 동체대비심뿐이다. 불교도이기에 더욱 잊지 말아야 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원효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것에서 같음을 분별해내고(辨同於異) 같은 것에서 다름을 드러내라(明異於同)!’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음도 다름도 모두 인정되어야만 비로소 시시비비가 그친다는 사실을. 같고 다름을 분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같고 다름이 옳고 그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내세우기 전에 같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한 법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진정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일 수 있으려면, 같고 다름에 대한 인정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법이기도 하다.

그러자면 먼저 나를 밝히고(自燈明) 세상을 밝혀야 한다(法燈明). 분노를 내려놓고, 촛불이 필요하지 않은 내일을 설계하는 침착함과 꼼꼼함이 앞서야 할 때이다.

2017년 12월

석길암(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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