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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불교와 섹슈얼리티 : 여성, 붓다를 만나다> / 박이은실
불교와 섹슈얼리티 논의, 그 출발점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박이은실 popho.esby@gmail.com

   

불교와 섹슈얼리티
옥복연 외 지음 , 한울아카데미
2016.3 출간, 312쪽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입각한 폭력, 억압, 착취를 종식시키는 운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성’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하기 때문에 훅스의 정의가 페미니즘을 온전히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훅스의 정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이제 막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명료한 시작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큰 미덕을 가진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주장과 함께 일어난 18세기의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이성에 입각해 합리적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는 온전한 인간이고 따라서 남성과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와 남성과 같은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이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던졌던 정치적 메시지였다. 신분제가 타파되고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인간상이 정립되기 시작한 근대 초기에 여성과 흑인(혹은 유색인)들은 여전히 불평등한 ‘신분’으로 남아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가치를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도 백인/남성과 같은 인간임을 주장해야 했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이 인간임을 다른 인간에게 주장해야 했고 또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것이니 말이다.

기회의 평등과 참정권 운동을 핵심으로 전개되었던 페미니즘, 즉,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도래 이후 페미니즘 사상은 새로운 문제의식,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면서 여러 결로 진전되어 전개되어 왔다.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주장에서 나아가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원리와 구조가 젠더와 가부장제라는 것을 분석해낸 급진적 페미니즘, 이성애 중심주의가 낳는 폐해를 문제 삼는 레즈비언 페미니즘, 성별화된 노동분업과 산업예비군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유지시켜주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문제 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도 등장했다.

또 남성중심적인 인간사회의 자연 착취와 여성 착취가 서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여성과 비인간 자연의 연대에 주목해 온 생태주의 페미니즘, 생물학적 결정주의와 본질주의를 비판하며 언어라는 상징질서 자체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 여성의 위치에 놓인 이들이 겪는 문제를 분석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다양한 시각과 이론들이 등장해 공존하고 있다.

섹슈얼리티는 1960년대에 급진적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요한 분석 개념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의 주요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 섹슈얼리티는 자연스러운 사안이자 사적인 사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질문할 필요도 없고 그러므로 정치적 사안으로 여겨지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왜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이중적 성도덕이 적용되고 여성들에게는 정조대와 같은 직접적인 신체 학대나 정절이라는 일방적 요구가 타당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왜 남성과 여성은 성적 쾌락과 성적 위험을 동일하게 경험하지 않고, 성적 정체성은 왜 문제가 되며, 욕망과 행위, 느낌과 가치, 그리고 무엇이 성적인 것이며 또한 정상적이고 이상적인지를 규정하는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묻기 시작하면서 섹슈얼리티는 비로소 정치적 사안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후 페미니스트들은 섹슈얼리티가 단순히 성적 욕망과 행위에 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정체성, 가치, 규정, 권력, 이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정치 영역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이를 분석해 왔다.

이런 페미니스트들 중에서 특히, 퀴어 이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은 불교적 사유에 관심이 컸을 뿐만 아니라 비이항대립적 사유를 섹슈얼리티 문제의 분석과 대안 제시에 적용시키고자 했다. 세즈윅은 신분질서가 붕괴되고 성별이 새로운 질서의 축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 초기에 쓰인 주요 영문학 소설들이 이 시기에 특별히 남녀 사이의 이성애적 관계 묘사에 열을 올리면서 동시에 여성을 매개로 한 남성동성사회적 욕망을 기저에 깔고 있었음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도 최근에 큰 문제로 부상한 여성 혐오와 동성애 공포가 어떻게 상호 연관된 문제인지를 통찰력을 발휘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이런 저간의 상황을 살피다 보면 비이원론적인 생성과 변화의 종교인 불교와 페미니즘의 섹슈얼리티 논의가 교차하여 전개될 수 있는 여지와 필요성은 이미 충분해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에 발간된 《불교와 섹슈얼리티: 여성, 붓다를 만나다》(옥복연 외, 한울아카데미)는 이런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드물고 반가운 책이다. 불교에 종교적으로 그리고/또는 학문적으로 조예가 깊은 필자들이 2013년에 함께 모여 진행한 포럼의 결과물을 묶어 발간한 이 책은,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불교라는 종교와 여성이 처한 문제가 교직되는 부분을 다룬 책이 국내에 그다지 없다는 점에서 이미 큰 선물인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역사적, 사회적 위상과 불교를 포함해 여러 종교 안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때 참조할 만한 책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성과인 것이다. 여섯 명의 필자가 총 9개의 글을 나눠 쓰면서 불교의 발생에 대한 것에서부터 초기불교에서 여성의 지위 등을 다루고 있어, 종교적으로 접근하든 학문적으로 접근하든 불교 입문자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되어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러한 큰 기여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중 첫째는 ‘불교와 섹슈얼리티’라는 책의 제목에 대한 것이다. 본문의 장들 중에서 하나 정도의 글을 제외하면 섹슈얼리티보다는 페미니즘 일반 혹은 젠더 문제에 좀 더 가까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책의 제목이 ‘불교와 페미니즘’ 혹은 ‘불교와 여성’이었다면 보다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서문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의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런 한편, 책의 제목을 조금은 무리하게 정하면서까지 이 제목을 선정함으로써 필자들이 공통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교와 섹슈얼리티가 가지는 관계에 대한 질문은 적어도 한 번쯤은 본격적으로 던져봄 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불교가 금욕을 수행하는 종교라고 한다면 페미니스트들이 긍정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 욕망의 문제, 여성의 성적 쾌락의 문제를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논의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불교가 근본적으로 성적 금욕주의적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종교라면 여성의 쾌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SM, 동성애 등 쾌락의 정치성을 논하는 장을 어떻게 포용하여 불교적 논의의 장 안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혹은, 불교가 궁극적으로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을 하는 것이 목표인 종교라면 윤회의 고리를 잇는 것으로 상정된 성을, 특히 이성 간의 성욕과 성행위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만약, 불교가 근본적으로 성을, 즉 섹슈얼리티를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다룰 수 있을 뿐이라면 《불교와 섹슈얼리티: 여성, 붓다를 만나다》와 같은 제목의 책이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어떤 한계를 이미 상정해야만 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까? 불교 안에서 섹슈얼리티가 윤회의 고리를 잇는 행위, 즉, 생식 중심적 섹슈얼리티에만 해당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면 비이성애적 섹슈얼리티, 출산과 무관한 섹슈얼리티, 또는 어떤 대상에게도 성적 욕망을 느끼지 않지만 성생활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섹슈얼리티 등은 불교의 어디쯤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종교란 이미 어느 정도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록 비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종교와 섹슈얼리티가 함께 거론될 때에는 어쩌면 앞에서와 같은 질문들은 피하는 것이 도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교가 해방의 종교라고 한다면, 특히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붓다 생전의 초기불교가 무엇보다도 당시의 문제적 사회질서를 바꾸고자 하였던 해방의 종교라고 한다면 섹슈얼리티라는 정치적 영역에 대해서 지금까지 다뤄져 왔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지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세즈윅과 같은 사람도 그런 바람과 믿음이 있었기에 퀴어 이론과 같이 가장 급진적인 섹슈얼리티 이론을 불교적 사유와 접목시키려고 나름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조만간 《불교와 섹슈얼리티》 두 번째 버전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에는 제목에 걸맞은 장들이 조금 더 많이 포함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

 

박이은실
《여/성이론》 편집주간. 연세대학교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했고 한신대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논문으로 〈성춘향, 신여성, 피켓을 든 소녀〉 〈로맨스 자본주의: 소비주의와 사랑의 계급화〉 〈패권적 남성성의 역사〉 등과 저서로 《월경의 정치학》 《양성애: 열 두개의 퀴어 이야기》(근간), 《그럼에도, 페미니즘》(공저) 등과 다수의 역서가 있다. 현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 지순협 대안대학 교과위원이자 담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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