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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도의 재가불교 현황과 전망 / 산토쉬 꾸말 굽타
세미나 중계 : 아시아 재가불교와 불교의 미래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산토쉬 꾸말 굽타 Santosh K. Gupta

1. 서론

   

산토쉬 꾸말 굽타

인도에서 식민지 이후의 불교 부흥과 개혁 운동은 일반적으로 재가불자들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암베드까르 박사가 시작한 불교의 부흥 운동은 재가불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흥과 불교 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불교출판, 불교문화 진흥 등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인도에 부활하고 있는 불교는 이전의 인도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수도원 중심의 불교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불교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불교 운동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불교 부흥의 여러 차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불교 운동에서 나타난 여러 특징 중에 재가불자들의 노력으로 사회참여가 발전하고 복지사업을 추진했던 것들이 중요하다. 특히 1990년대 신불교 재가불자들이 여러 단체와 NGO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인도 신불교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아동복지와 청소년복지를 배경으로 한다. 공동체 은행에 대한 개념, 특히 가난한 사람들 위해 협력적인 은행을 설립하고 무교육자들한테 자본의 절약을 추진하며, 투자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작은 규모의 사업자들한테 대출을 제공하면서 소셜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불교의 부흥이 일어난 식민지와 식민지 이후의 조건을 다룬다. 현대 인도불교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식민지 맥락, 전통 불교 부흥의 의의와 한계, 신불교와 재가불교의 발전과 방향을 살펴보겠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최근의 변화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2. 현대 인도불교 운동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11~12세기 이후의 인도 역사에서 살아 있는 불교문화는 끊겼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인도에서 불교가 살아나는 기미가 확연하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티베트불교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라마불교의 종파적 배경으로 발전했던 불교와 함께 인도 히말라야 지역 특히 시킴, 우타라칸드, 다르질링 등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인도의 평야 지대에서는 불교신자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불교신자들은 히말라야 산악 지대와 벵골 지역에 거주했다. 게다가 인도 중부 및 남서부 지역에는 몇 명의 수도승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영국 인도 정부의 189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바라나시(Benares, 부처님께서 첫 번째 설교를 하셨던 곳) 지방에 77명의 불교신자들이 있다고 보고했다. 190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도 전체 불교신자들 인구는 약 292,638명에 불과하다. 불교 인구가 다른 종교 인구보다 적은 현실이지만 식민지 시기에는 불교의 관행이 계속되고 점진적으로 추진력을 얻었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인도불교에는 상좌부(Thervada), 대승(大乘, Mahāyāna), 금강승(金剛乘, Vajrayāna), 그리고 신불교 종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종파 중에 90% 이상이 테라바다불교에 속하고 나머지는 대승불교로 분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인도불교는 다섯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살아왔던 벵골의 바루와(Barua), 트리푸라, 미조람의 민족과 라다크, 히마찰 프라데시와 아루나찰프라데시의 불교. 둘째, 네팔, 태국, 미얀마 소수민족의 불교. 셋째, 불교 부흥운동 때 나타난 마하보디 소사이어티 불교. 넷째, 암베드까르에 의해 제창된 재가불자 중심의 신불교. 다섯째, 위빠사나불교 운동. 이러한 다섯 가지 그룹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위빠사나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명상법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인도에서 이것은 삶의 예술(Art of Living)로 발전하고 있으며, 여러 종교와 사회 계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상위 카스트 사람들과 힌두교 사제들도 많이 참석한다. 고엥까 사야도는 미얀마의 고 사야지 우바 킨 전통에 속하는 재가자 위빠사나 지도자이다. 고엥까는 힌두교도로서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미얀마에서 큰 사업을 시작하면서 산업 자본가가 되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긴 다음 위빠사나 명상법을 배우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고엥까는 1980년부터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300회 이상의 명상 코스를 지도했다. 그의 지도하에 인도 여러 주에 걸쳐 86개의 명상센터들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인도 내의 티베트불교를 살펴보면,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중국이 점령한 뒤 거세지는 박해를 피하고자 티베트인들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으며, 1959년에는 약 1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피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도 티베트 불교도들의 인도 이주는 사실상 인도불교의 확산에 도화선을 당기는 역할을 하였으며, 불교개혁 운동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티베트불교는 라마불교 종파를 배경으로 발전했던 인도불교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히말라야 지역의 시킴, 우타라칸, 다르질링에서 계속 활동해 왔다. 인도의 라마불교는 현재 여러 종파로 분화하면서 여러 주와 네팔, 부탄과도 연계되어 있다.

인도의 불교 부흥운동은 스리랑카 출신의 다르마팔라가 1891년에 인도 보드가야(BodhGayā)에서 불교가 사라진 지 무려 7세기 만에 다시 불교기(佛敎旗)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다르마팔라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1891년에 마하보디협회를 세우고, 불교 개혁운동을 시작하면서 불교교육, 참여, 그리고 국제 불교사회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현재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는 여러 지역에서 발전하고 있고, 특히 수도원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여러 교육기관을 세우고 있다. 방갈로르에 있는 마하보디수도원 연구소, 팔리어와 소승불교 바가반부처님대학교, 소승불교연구센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마하보디수도원 연구소에서는 매년 250명의 스님이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교육기관의 여러 프로그램 중에는 불교연구 관련 학사 및 석사 과정뿐만 아니라, 팔리어 디플로마 학기도 있다. 보통 여기에서 출가하는 스님들은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나서 수도생활에 참여한다.

다르마팔라로 인해 촉발된 인도불교의 부흥은 암베드까르(1891~ 1956)라는 혁명적인 인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20세기 초 인도사회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은 사회와 불교 개혁 운동이다. 인도불교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가 많았지만, 불교의 사회참여, 재가불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개혁자는 빔라오 암베드까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신불교 개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운동을 창시했다.

3. 불교 지식인의 공헌

인도의 맥락에서 볼 때, 영국인의 불교 발견은 인도 역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19~20세기, 불교의 고고학적 발견은 오랫동안 인도 문화의 과거를 평가절하한 영국 정부를 놀라게 했다. 불교 고고학적 발견, 특히 고대 왕실의 명령서, 기둥 비문 및 기타 사본; 아잔타(Ajanta), 엘로라(Ellora) 및 나시크 준나르(Nasik Junnar)와 같은 고대 동굴; 산치(Sanchi), 사르나트 (Sarnath) 및 바르훗(Bha-rhut) 불탑(스투파)들은 식민 정부의 인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문화 재건을 촉진함으로써 문화유산을 평가하도록 강요했다. 불교문화를 발견한 주요 공헌자는 영국 공무원과 학자들이 포함되지만, 교육을 받은 현지 사람들은 영국인들에게 산스크리트 또는 팔리어로 작성된 비문 및 칙령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세기 초에 인도 학자들은 영국인이 발견한 강한 불교문화 유산을 찾아 나섰다. 서양 학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불교를 재구성하였지만, 다르마난다 다모다르 코삼비(D.D. Kosambi), 라훌 산끄리띠아얀(Ven Rahul Sankrityayan), 바단뜨 아난드 코살야얀(Bhadant Anand Kausalyayan), 자그디쉬 카샵(Ven. Jagdish Kasyap) 같은 저명한 인도 학자들은 인도어로 불교 원본을 수집하고 번역하는 역할을 하면서 인도에서 불교의 부활에 기여했다. 코살야얀에 의해 시작된 아동복지가 두드러지는데, 특히 라훌 발 그람(Rahul Bal Gram, Nagpur, 1981)이라는 기관이 40여 년 전부터 고아원으로 불가촉천민의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 1960년대에 고아원과 유치원을 세우는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신불교 운동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현재 여러 단체들은 불교 사원에 유치원을 세우면서 가난한 불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다르마난다 다모다르 코삼비(1876~1947)는 인도 고전어를 배우고 번역과 저술을 많이 했으며 다른 불교학자들을 훈련시켰다. 코삼비는 연구를 위해 여러 나라 특히 스리랑카, 네팔, 미얀마를 방문하였으며 하버드대학에서도 연구를 실시했다. 인도로 돌아온 후 그는 여러 기관에서 가르쳤으며 동시에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사회 평등을 위해 일했다. 사회와 불교 운동을 하면서 뭄바이에 불교센터를 설립하고 불교사회학과 철학을 적용하여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계급 편견의 실행에 맞서 싸웠다. 코삼비가 마라티어로 저술한 책인 《바그완 불타(Bhagwan Buddha)》는 불가촉천민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면서 인도의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불교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는 불교의 메시지를 일반 사람들한테 전달하기 위해 불교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책을 여러 지역의 언어로 번역했다.

그는 또한 마라티어로 〈보살(Bodhisattva)〉이라는 희곡을 써서 부처님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묘사했다. 현대 인도불교 맥락에서 코삼비가 기여한 업적들은 견줄 나위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노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촉발시켰고, 일상생활에서는 불교 유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던 일반인들이 불교 전통과 유산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는 점에서 그렇다.

20세기의 위대한 현인(Mahapandita)이었던 라훌 산끄리띠아얀(1893~1963)은 브라만교(Brahmanical)의 정설과 광범한 사회의식 맥락에서 보면 확실히 불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광범위하게 여행한 지식인 스님이었고, 불교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기여하면서 다른 종교 특히 힌두교 전통을 비판적으로 조사연구했다. 역사, 철학, 문학, 종교, 전기, 여행을 다룬 그의 저서와 소설이 힌디어, 네팔어 및 보즈뿌리(인도 지역 언어)로 작성되었다. 그의 저서는 약 150권에 달한다. 특히 산끄리띠아얀이 수집과 번역을 했던 불교 경전은 유럽과 미국에서 티베트불교를 촉진시키기도 하고 인도의 불교학 및 불교 추종자의 성장에 기여했다. 그의 서적에 대한 서술은 현대 세계에 대한 그의 이해만큼이나 다양하다.

왜냐하면 산끄리띠아얀은 1927년부터 1939년까지 남아시아, 동아시아, 유럽, 티베트, 러시아를 방문하고 생활하면서 여러 나라의 사회정치, 다양한 종교적 관습, 농촌과 도시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산끄리띠아얀은 티베트를 방문해 수많은 희귀본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복원하였는데, 이 작업은 인도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신불교 운동에 참여하면서 암베드까르의 종교적 회심을 지지하기도 하고,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신불교도들이 조직한 일련의 모임에서 연설했다. 여러 학자들, 특히 젤리엇은 암베드까르와 산끄리띠아얀이 결코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하지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두 지도자는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그들이 네팔 카트만두(Kathmandu)의 불교 회중에 함께 참여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암베드까르가 인도 법무장관으로 재직할 때이다.

4. 신불교와 재가불교 운동

암베드까르는 인도 사회에 불가촉천민 카스트 중에 마하르 카스트 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부터 카스트로 인한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불가촉천민들의 기본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들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달리트(Dalit)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암베드까르 운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신불교 운동’이라고도 한다. 현재 200~300만 명 이상의 신불교 신자들이 있다는 자료들이 나오지만 더 이상 많은 자료들을 찾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도 정부의 종교조사는 정확한 자료가 발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불교도에 참여하는 사람은 인도의 마하라슈트라 주(州)에 많지만 이 밖에도 10개 이상의 주에서 크게 발전했다. 신불교에 속하는 스님들은 보통 수도원 교육을 받기 위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으로 떠나고, 해외유학 기회가 없는 스님들은 인도에 있는 수도원이나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암베드까르가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수도원 교육을 위한 여러 기관을 세우려고 시작했지만,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수도원 교육을 하고 재가불자 중심으로 세웠던 ‘인도불교도협회(The Buddhist Society of India)’가 1956년 이후에 다른 개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인도불교도협회는 특히 ‘다르마짜르야(Dharmachrya)’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천 명 이상의 다르마짜르야를 키웠다. 이들은 결혼, 죽음, 출생 등의 행사 때 여러 가지 불교 의식을 진행한다.

인도 시대 상황에서, 암베드까르 박사의 불교는 포교의 원칙에 기반한 사회적 행동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담마(Dham-ma)가 사회성을 지닌다’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불교를 해석하고 이를 굳게 신뢰하였다. 그는 서로 관계를 이룬 두 사람이 산다면, 그들에게는 담마가 필요하고 사회는 담마 없이 형성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의 주된 관심은 달리트 계급에게 사회적 · 교육적 · 도덕적 권한을 주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암베드까르는 현대 불교의 윤리와 사회 활동에 관한 불교적 사고를 열렬히 주창하였다.

이는 사회-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목표에 기반한 신불교 운동 내에서 여러 기관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인도불교도협회(BSI)는 암베드까르가 조직적인 성장과 종교적 책임을 달성하고자 만든 산하 조직 중의 하나다. 인도불교도협회는 1954년에 설립되었고, 마하라슈트라 정부 사무실로 등록되었다. 인도불교도협회는 암베드까르가 참여한 1955년 공개회의 결의안을 통해 델리, 펀자브, 우타르 프라데시, 비하르, 벵갈, 마디야 프라데시, 마드라스, 미소레, 뭄바이 등에 지부를 창설하였다.

주요 목표는 인도에서 불교를 포교하고 갱생하는 것이고 세부 사항은 다음과 같다. 불교를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불교 성지 건축, 불교 교육회관 설립, 불교 포교를 발전시키고 증진하는 인력 양성을 위한 불교 세미나, 일반인의 불교 이해를 위한 불교 문학, 팸플릿, 소책자, 지역 언어별 포스터 등의 출판과 판매, 일반적인 종교와 불교에 대한 논의와 이해를 증진하는 공개 모임 강화 등이다. 이러한 목적 외에도, 인도불교도협회는 빈민을 위해 병원, 고아원, 구호센터, 학교와 대학 등을 설립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인도불교도협회 조직은 국가, 주, 군(郡), 테흐실(Tehsil), 면(面) 등의 다섯 가지 주요 단위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각 조직에는 대표와 비서실장이 있다. 인도불교도협회 법안에 의하면, 회원은 담마 디크샤 의식(개종 의식)을 치른 불교신자로 제한한다. 그러나 부회원은 불교옹호론자까지 가능한데, 이는 종교로서 불교에 대한 반감이 없는 자를 의미한다. 인도불교도협회 주 지부 구조가 무용(無用)하다는 체계적인 기술(記述)에도 불구하고, 우타르 프라데시, 비하르, 마디야 프라데시, 안드라 프라데시,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오리사, 카슈미르, 하라나 등의 주에는 인도불교도협회 지부가 둘러싸고 있다(branches encircle). 예를 들어, 뭄바이 광역시에서는 1990년대까지 244개가량의 지부를 설립하였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1954년에 푸네의 데후 가(街)에 있는 수도원(비하라)의 불상 건립 기부를 통해 불교 포교 임무를 개시하였다. 인도불교도협회 의장직 2년 임기 내에 이사회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9개 주 이상의 지부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지부는 불교 승려의 지원하에 거대한 담마 디크샤 의식을 수행하였다. 1957년 6월에 제출된 인도불교도협회 보고에 의하면, 이사회는 2년의 임기 내에 인도 전역에 걸쳐 불교를 포용하는 인구를 1,000만 명가량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정보는 1956년 10월 14일 단 하루 만에 첫 번째 개종식 동안 암베드까르의 불교를 수용하는 이가 50만 명에 이르렀음을 주목하였다. 또한 1956년 12월 7일에는 암베드까르의 장례식과 불교 의식 동안, 불교를 받아들인 이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직의 역사 초기에 인도불교도협회는 붓다 브흐샨이라는 인쇄기를 확보하였다. 이 인쇄기는 마라티어로 된 《담마얀》이라는 이름의 월간지를 포함하여, 일련의 인쇄물을 출판하였다. 마르티어로 된 소책자 두 권, 즉 불교신자 예식법을 다룬 《바우다 푸자 패스》와 불교 축제에 관한 《바우드 파르와》가 각기 다른 인도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신불교주의자들의 영적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기획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가장 기초적인 종교 경험을 제공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경전에는 초심자였고 세부적으로는 불경(佛經)도 마찬가지였다.

힌두 달리 카스트 출신의 신불교 신자들은 수천 년 동안 힌두교 경전을 읽거나 듣고, 만질 수 없었기에 경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인 발전이자 이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세미나 ‘아시아 재가불교와 불교의 미래’(2017.6.10.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인도불교도협회 지도자의 급격한 손실, 즉 암베드까르 사망은 새로 개종한 신불교 재가자들에게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인도에서 신불교의 미래를 위해 암베드까르 사후에 지도자와 재가불자들 사이에 단결력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달리트(Dalit) 계급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 암베드까르였기 때문에 신불교 운동은 어느 정도 위축되었다. 암베드까르의 아들 애스원트 암베드까르(Yashwant Ambedkar)는 1957년에 인도불교도협회의 두 번째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애스원트 암베드까르는 바이야 사헤브(Bhaiya Saheb)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암베드까르가 자신의 투쟁 중에 했던 것과 동일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책임을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가 지휘하는 인도불교도협회 일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인도 신불교 운동의 주요 과제는 사람들을 단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불교로 개종한 카스트 계급인 마하르 카스트가 있었는데, 1956년에 엘리가르(Aligarh) 신불교 개종 의식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왜냐하면 신불교 운동은 중앙 및 동부 인도에 확산되면서 여러 카스트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의 종교 개종 의식에서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신불교 추종자가 되었다. 게다가 1956년에 암베드까르 장례식 날에 마하르 카스트 아닌 계급들이 인도 델리에 모였는데, 이때 3만 명이 신불교를 받아들였다.

1960~1990년까지 특히 바이야 사헤브 그리고 미라따이(Miratai) 회장이 재임할 때 인도불교도협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인도 여러 지역에서 신불교 개종 행사를 열면서 재가불교 운동을 발전시켰다.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불가촉천민들뿐만 아니라 후진 계급들이 재가불자로 많이 들어왔다. 왜냐하면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1951년에는 인도 정부에 18만 명이 불교신자로 등록됐는데, 1971년에 32만 명이 불교신자들로 나타났다.

힌두교에서 불교로 넘어온 사람들은 종교 정체성을 정부기관에 등록하지 못했음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훨씬 많은 수의 불교신자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특히 1991년에는 아그라에서 70만 명의 자트 카스트(상위 계급)들이 신불교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종교 개종이 신불교 운동에는 불가촉천민만 참가한다는 인식과 개념을 바꾸었다.

5. 재가불교 문화와 실천

1990년대 미라타이 회장은 인도불교도협회에 대한 몇 가지 결점들을 인정하고 다르마짜르야(Dharmacharya)라는 다르마 교사들을 교육시키면서, 다르마 봉사를 하고 사회복지를 위해 삶을 바칠 수 있는 신념을 키울 수 있도록 중앙훈련부서(Central Training Department)라는 새로운 기관을 설립했다. 1999년 제5차 불교전국대회 이후에, 사회참여를 강화하고자 인도불교도협회의 관리 구성은 네 개의 주요 부문으로 간소화되었다: 신불교 서품(sanskar), 여성, 보존과 관광 및 선전 활동. 더 나아가 그들은 2000년에 여성 부문 관련 전국여성회의를 결성하면서 재가불자 여성의 종교 · 사회적 성장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여성회의 설립 이래, 수백 개의 여성 훈련캠프가 인도 여러 지역에서 열렸고, 불교 여성들에 대해 더 깊은 확신을 가졌다.

따라서 인도불교도협회는 재가불자들의 교육에 중점을 두었고 일련의 수첩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불교 생활을 위한 종교 규칙 및 의식, 불교 기도에 대한 수트라 카세트, 불교의 법 달력, 불교 일기, 불교 달력 및 담마야나 잡지의 재발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암베드까르가 쓴 책인 《붓다와 그의 법(The Buddha and His Dharma)》을 다시 출판하기로 했다. 신불교 재가불자들 대부분이 문맹이고 가난했기 때문에 수첩을 간결한 버전으로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인도 여러 지역의 언어로 출판하기도 했다. 특히 신행 생활에 대한 종교적 규칙 및 의식은 도덕적 가치를 배양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적인 신행 생활을 하도록 인도한다. 이 책들은 불교 기도의 방법에 대한 간략하고 알기 쉬운 설명을 제공한다.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개종 의식 및 규칙, 명칭과 교육 행사 및 규칙, 결혼과 사망 의식 및 규칙, 그리고 개회식 및 규칙 등이 포함된다. 이 책에는 부처님, 담마, 승가 기도와 함께 암베드까르의 주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 몇 년 동안 인도불교도협회는 약 24개의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예를 들면 어린이 불교 성직, 청소년 남자와 여자의 담마 의식, 여성 재가불자들을 위한 담마 의식, 모든 이를 위한 위빠사나 캠프, 모든 이를 위한 팔리어 교육 캠프, 사무원들을 위한 인성 개발, 맹목적인 신앙을 근절하고 건강 및 경력을 개발하는 캠프 등의 프로그램으로 신불교 재가불교 운동을 강화했다. 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종교 지향적이며 18세에서 60세 사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인도불교도협회는 종교적 팸플릿, 회원 영수증, 개종 의식 양식, 신분증 및 위에 언급된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증명서를 인쇄할 권한을 보유한다. 그리고 인도 여러 주의 지점들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여러 자료를 인도불교도협회 본부에서 제공받는다. 인도불교도협회는 여러 인증서들, 예를 들면 불교 개종 증명서, 다르마짜르야(불교 교사) 증명서, 재가불교 결혼증명서, 주들의 지점 인정증명서, 여성 재가불자 증명서를 발급하는 유일한 인증기관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출생증명서, 불교 개종 증명서, 재가불자 결혼증명서 및 사망진단서는 사법부와 관청에서 유효하다. 인도불교도협회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법원과 정부기관에서 몇 번 증명서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불교에서 이러한 새로운 여러 가지 개념 가운데서 다르마짜르야의 역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르마짜르야들은 신불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그들은 성전을 돌볼 뿐만 아니라 종교 의식, 결혼 예식, 사망 의식, 출산 의식도 수행한다.
따라서 인도불교도협회의 재가불자들은 불교를 그들의 종교로 명기하고 정부의 인구조사나 학교에 입학할 때 불교를 그들의 카스트로 계급화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신불교는 종교로서 불교와 계급으로서 불교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도불교도협회는 부다가야 마하보디 대사원의 관리를 불교 승려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불교문화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신불교 재가불교 운동을 수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힌두 사제들과 힌두교 사람들이 마하보디 대사원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불교와 힌두교가 전통을 오랫동안 같이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불교 수행을 따라 하는 힌두교 신자들도 많다.
신불교 운동은 사회참여와 사회복지를 배경으로 발전했다. 지난 30년 동안의 종교 인구를 살펴보면, 인도불교 인구가 점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인도 신불교 사회참여를 살펴보면 재가불자들은 대부분은 불가촉천민들이기는 하지만 다른 카스트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신불교 재가불자들은 수백 개 이상 복지단체를 세우고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단체는 자기금융으로 사회사업을 하고, 정부나 국제적 기부를 통한 지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크게 보면 재가불자들의 방향은 사회복지 사업과 공동체 운동 쪽으로 보인다.

   

위 자료에 따르면 독립 이후에는 불교 인구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21세기에 이르면 불교 인구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에 여러 가지 정치와 사회 문제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종교에 대한 신경을 안 쓰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불가촉천민들은 자기의 종교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도주의에 따라 다르다.

6. 결론

현대사를 살펴보면 인도불교에는 여러 종파가 나타났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인도에서 불교가 살아나는 기미가 확연하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가 특히 북인도에서 계속 명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암베드까르 전의 인도 불교개혁 운동은 영국학자들과 인도의 불교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많이 나타났다.

20세기 초 인도 사회에 나타난 중요한 특징은 사회와 불교개혁 운동이다. 인도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가 많지만 불교 사회참여, 재가불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개혁자는 암베드까르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암베드까르는 힌두교의 사회구조 안에 들어가지 못한 불가촉천민들한테 인종차별 없는 종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신불교 운동을 시작했다. 암베드까르 이후에 신불교 운동은 특히 인도불교도협회가 이끌고 있다. 불교 수도원의 문화나 승단이 많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불교 운동에서 여러 개념이 나타나고 있다. ■


산토쉬 꾸말 굽타 / 서울대학교 규장각 박사후 연구자.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 석 · 박사), 델리대학교(동아시아학과 역사학 전공 박사) 졸업. 주요 논문으로 “A Comparative Study of Socially Engaged Buddhism: Won-Buddhism in Korea and Neo-Buddhism in India” “Socially Engaged Buddhism in Korea: Chogye Order Since 194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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