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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종교의 역할을 생각하며 / 엄주엽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엄주엽 ejyeob@munhwa.com

어릴 적 살던 집 뒤에 작은 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1년 터울 선배가 그 절집 자제였으니, 커서야 분간할 수 있게 된 거지만 대처 스님이 있는 절이었다. 어머니는 때마다 절을 찾았는데, 항시 목욕재계하고 작은 소쿠리에 쌀을 소복이 담아 머리에 이고 갔다. 돈이 귀했으니 쌀로 시주했을 것이다.

그때는 탁발하는 스님들도 종종 있어, 어머니는 정성스레 쌀을 퍼 바랑에 넣어주곤 했다. 어머니는 절에 다녀오면 물가에 가지 마라, 차 조심해라 등으로 스님이 일러준 식구들 신수를 이래저래 전했다. 그 절집의 스님이 복도 빌어주고 인생상담도 해주었던 것이다. 사는 게 대개 고만고만하게 어렵던 시절, 어머니에게 절과 스님은 큰 의지처였을 거라고,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이 돼 생각했다. 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영화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더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 손을 잡고 복사꽃인지 벚꽃인지가 지천으로 흐드러진 과수원 길을 지나, 사람들이 복작이는 제법 규모가 되는 절에 갔다. 초파일이었을 것이다. 집 어른들은 적어도 초파일에는 뒷집 절이 아니고 스님이 여럿 되는 큰 절로 복을 빌러 간 것이다. 청소년기를 지나서는 그 절 근처로 이사해 한동안 살았다.

종종 절로 산책하러 갔는데, 시끄럽게 뛰노는 어린 조카들을 데려가거나 러닝과 반바지 바람에 가면 당시 내 또래나 됨직한 젊은 스님이 절 마당에서 냉정한 표정으로 나가달라고 했다.

스님들이 수행 중이라는 거였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절에서 수행은 쥐뿔” 하며 수행의 뜻도 모르면서 속으로 툴툴거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대웅전 한쪽이었던가, 당시 인기가 높았던 TV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쓰던 것과 모양이 같은 높고 검은 모자와 안경을 쓴 스님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

 그즈음에는 그 절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머리에 새겨지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절이 인천 주안의 용화사였다. 검은 모자를 쓴 사진 속의 전강 스님이 어떤 분인지, 당시에 주석했고 지금도 계신 송담 스님에 대해서는 더 나중에 알게 됐지만 말이다.

초등학교 때 가정조사를 하면 종교란에 ‘불교’를 써넣곤 했어도, 거기까지였다.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당시 휩쓸던 사회과학의 바람이 더 영향을 미쳤을 텐데,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은하철도 999〉를 보면서도 사회과학적 함의를 읽으려 했던 시절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먹고사는 데 파묻혀 더더욱 그랬다. 나이를 먹고, 사는 게 폭폭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종교에 관심을 두게 된 것 같다. 문화부 기자로 잠깐씩 종교를 담당해 그쪽 동네를 기웃거리면서 직업상 주의를 기울여 만날 수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모든 생명체 안에 부처가 본래 있고 누구나 찾을 수 있다는 건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종교에 대한 생각은 말하기 민망할 만큼 단순해서 깊이 아는 이들이라면 웃어넘기거나 펄쩍 뛸 여지가 농후하다. 붓다를 비롯해 유력 종교가 떠받드는 성인들은 모두 엄청 크게 ‘한소식’한 어른들이라는 거다. 이분들이 각기 달리했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을 뿐, 결국 종교는 이분들이 깨달은 방식과 내용을 실천하고 전하기 위해 시작됐고 존재해왔다고 나는 정리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종교는 거대해지고, 정치권력에 녹아들기도 하고, 제자 집단은 세속권력화해서 애초의 가르침이 어디 갔는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모양새를 역사와 현실에서 수없이 보였지만, 성인들의 뒤를 쫓는 제자와 신자들의 전통은 여태껏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정말 닮고 배우고 싶은 분들은 우리 공동체 안에도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종교에 대한 인식은 우리 사회의 종교인에 대해 하나의 생각을 하게 했다. 앞에서 얘기한 어머니 시절의 진정성 있는 믿음은 소중하다. 하지만, 요즘 어느 종교나 ‘초기’라는 말을 자주 쓰고 그 전통을 되짚고 있는데, 본래 시작대로 성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불교냐 기독교냐, 또 무엇이냐를 불문하고 성인의 제자로서 깨달은 방식과 내용을 배웠다면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게 첫 번째로 할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서 나온 아쉬움에서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다 인연대로 가는 걸지 몰라도, 용화사 지척에 살 때 왜 인연이 닿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진즉에 불교를 알았더라면, 좌충우돌 채이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삶과 생활이 훨씬 정돈됐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구나 전강 스님이 산속이 아닌 도심에 도량을 세운 뜻이며, ‘남 진제, 북 송담’으로 불리는 선지식인 송담 스님이 주석한 절이라면 당시에도 남달랐을 것 같다. 젊은 스님이 수행에 방해된다고 방문객을 내쫓은 거로 미뤄도 용화사에선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하면서 재가자를 위한 교육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이야 용화사(용화선원) 홈페이지를 보면 다양한 재가신자를 위한 수행프로그램이 있다.

근래 종교의 성전과 시설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도 사람들은 ‘종교 밖’에서 수행이든 영성이든 찾는 흐름이 작지 않다. 생각 있는 종교인들이나 학자 중에도 이런 흐름이 챙기지 못할 수 있는 ‘사회적 영성’의 문제를 우려하기도 한다. 다 떠나서, 각자도생의 살벌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애타게 갈망하는 바를 종교인들이 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도 종교 밖에서 찾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기에는 제도 종교나 세상이 너무 멀리 나가버린 걸까.

엄주엽 / 문화일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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