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 전하는바 조선의 세조임금이 오대산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는 절이 양평 상원사다.

세조임금의 행차가 당도하여 참배하니 용문산 중턱에서 불보살의 진신이 하강했다 한다. 그런 전설 때문일까, 요즘도 새벽이나 한밤중 대웅전 앞 탑 주변을 걷다 보면 달무리가 내려앉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곤 한다.

상원사에 용문선원이 개설된 것은 30여 년 전이다. 선원장 의정(義淨) 선사를 중심으로 역대 주지와 제자들이 중창과 보수를 거듭해 이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수행도량의 한 곳이 되었다.

용문선원은 이름 그대로 지혜와 덕행의 문에 드는 쌍룡쌍수(雙龍雙修)의 선방이다. 선방채는 대웅전 옆구리 능선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다. 내벽은 토벽돌로 쌓아 사철 통풍이 잘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바깥은 아담한 고풍 그대로를 유지한 채 주변은 잔디로 조경되었다. 나무와 당우가 잘 어울려서 그런지 산새들도 날아와 먹이를 찾고 유유자적 노닐다 간다. 그 특유의 소리를 듣다 보면 제법 깊은 산중 맛이 느껴진다.
그러나 무릇 절이란 풍광이 좋고 건물만 있다고 명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절이 절다우려면 공부하는 수행자가 많고 덕 높은 스승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상원사 용문선원은 이름과 실제가 상부(相符)하는 곳이다. 선원장 의정 스님의 도예(道譽)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고 이를 흠모해 전국에서 공부꾼으로 소문난 납자들도 철마다 찾아온다. 이런 선방에서 지난 한철 포단(蒲團) 깔고 정진할 수 있었으니 이는 큰 복이었다.

이곳 선원은 안거 기간 중 입선(入禪) 시간은 통상 8시간 정도다. 그렇지만 용문선원의 가장 큰 특징은 매일 저녁 공양 후 한 시간 정도 대중들이 나서서 하는 울력이다. 어쩌다 날씨가 궂어 바깥에 나갈 수 없는 날을 빼고는 매일 정진 대중이 나와서 잔디를 깎거나 주변 도량을 청소하거나 한다. 중국의 백장회해 선사가 청규에서 규정한 보청법(普請法)은 모든 수행자가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곳 선원장 스님의 한결같은 주장이자 운영방침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원칙을 철저하게 실천한 분이다. 왕실의 원조에 의존해 살아가던 교종(敎宗)불교와는 달리 선종(禪宗)불교는 권력자에 의한 법란(法難)이 일어나도 자급자족의 전통 때문에 도리어 건강하게 법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청규의 정신은 노동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노동이라고 가르친다. 예컨대 보청(普請)이 있어 노동에 임할 때 수행자들은 일의 경중을 논하지 말고 맡은 바 그 일을 완료해야 한다. 만약 좌선수행에만 집착하여 고요적정만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의 뜻에 따르지 않고 울력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일할 때는 소리 내어 농담하지 않아야 하며, 큰 소리로 웃어도 안 된다.

남보다 일의 능력을 과시해서도 안 되고 오로지 마음으로 도념(道念)을 보존하고 몸으로 일하면서 화두에 전념하여 일을 마치고, 선방으로 되돌아온 후는 고요하고 묵묵히 하여 처음처럼 해야 한다. 일할 때나 좌선에 임할 때 동정의 두 모습이 여일(如一)하게 되어야 정신은 일체의 경계에 초연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규에 따른 노동의 정신이었다.

선의 전통은 나말여초(羅末麗初) 선종의 정통 법맥인 남종선이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그 골수도 고스란히 전래되었다. 근자에 우리나라 선원에서 수좌회를 중심으로 청규를 정할 때 참고한 것은 중국 원나라 말 순제(順帝) 때 복원한 고청규(古淸規)였다. 이를 근간으로 제정한 청규는 수행 일과는 물론이고 선수행의 줄거리인 정중동(靜中動) 간의 위의가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백장청규를 내걸고 고유의 선풍을 진작시킨 용문선원이야말로 선방의 고질병인 나태와 안일을 깨우쳐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이 일에 중심이 되고 앞장선 분이 바로 용문선원의 선원장인 의정 선사이다.

수행자들 중에 용문선원에 처음 오는 사람은 우선 자연경관에 흡족해한다. 양평은 전국에서도 물 맑은 고장으로 유명하다. 선원이 있는 용문산은 산세도 적당하려니와, 산줄기 우협에서 쏟아져 내리는 산 여울물은 양평군이 웰빙의 고장, 힐링 지역이란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기온이 양평읍보다 5~8도의 차이가 날뿐더러, 곳곳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소리를 듣고 있자면 한여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환경이 이러하다 보니 납승들의 마음은 늘 서늘하고 편하다. 복더위가 계속될 때 채마밭에 나가 밭일을 할라치면 큰 땀은 흘리지 않아도 된다. 용문선원 대중이 청규 실천의 수범사찰이 된 것도 이런 자연환경의 혜택이 크다. 그러한 까닭에 이곳에서는 안거 기간 중 자유정진 시간이란 아예 없다. 오직 시간에 맞추어 여일하게 죽비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죽비를 놓는 해제 사흘 전 빼놓고는 거의 정진을 계속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모든 일상이 입선과 울력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든 이곳에 와서 여름, 겨울 한 철 입방하여 안거를 하려는 수행자들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마음들을 잘 조여서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울력에 빠지지 말고 석 달 열흘을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지내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 명산이 있고 명찰이 있지만, 최적의 수행환경을 잘 일구어 온 선원으로는 경기도 북부에서는 용문산 용문선원만 한 곳도 없다. 특히 청규를 지키며 보청과 울력을 수행의 하나로 삼는 이곳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행이 된다. 이런 환경에 더하여 전국에서 소문난 수행승들이 방선 시간도 잊고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열심히 정진을 거듭하는 모습은 하나의 감동이다.

밤늦은 시각 숨소리조차 수선(修禪)의 정밀(靜密) 속에 묻혀서 법계의 삼라만상을 파묻던 곳이 올여름 소납(小衲)이 안거했던 용문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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