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불교의 지혜

1. 들어가기

어느 대학병원에서 생긴 일이다. 한 할머니가 폐에 생긴 종양에 대해 조직검사를 받던 중 폐출혈이 발생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병원은 할머니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할머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태가 되었다.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은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호흡기를 제거해 줄 것을 의사와 병원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병원은 1997년에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을 거론하면서 가족들의 요청을 거부하였고, 할머니의 호흡기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졌다.

이 사건이 바로 2008년에 발생한 ‘김할머니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결국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었으며 2009년 5월 21일에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역사적인 판결로 종결되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만약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연명 상태)에 도달하였다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명하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 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의 자율적 의사가 중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환자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의사의 책임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연명하는 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사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우리나라에서도 열린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이어졌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연명의료의 중단을 찬성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공론화의 결과로 2016년 말에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여 2018년 초에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률에서도 마찬가지로 ‘김할머니 사건’의 대법원 판결의 요지가 그 중심에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였다면 환자 본인의 의사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과 법제화까지 거쳐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뇌파조차 없는 환자의 생명도 의료기술의 도움으로 연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의학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학기술을 이용하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번 글에서는 연명의료를 중심으로 한 현대의학과 재생의학, 유전자가위 기술과 생명과학적 첨단기술이 생명에 간섭하고 있는 실상과, 이를 이윤의 논리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 이런 자본주의의 논리에 복무하는 의료계와 과학계 및 이들이 놓여 있는 정치 · 사회적 시스템을 검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계가 어떻게 기여하고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생명에 대한 의학적, 생명과학적 간섭

생명에 대한 의학적 간섭과 생명과학적 간섭의 대표적 사례로, 전자는 연명의료에 대해, 후자는 배아복제와 유전자 치료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연명의료와 현대의학

한 세기 전의 의사를 타임머신으로 데려와 지금의 병원을 보여준다면 아마도 가장 놀라워할 부분이 바로 현대의학이 생명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길거리에서 심장이 멎더라도 제대로 된 응급구조 처치를 받고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 1950~1960년대에 걸쳐 개발된 인공호흡기와 심장치료제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기기와 약제의 개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환자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상태에 진입하였거나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자발적인 심장박동과 호흡이 없더라도 인공적인 약물과 기계를 써서 생명-심장이 뛰고 있다는 수준에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위 연명의료의 탄생이다. 연명의료를 그래서 무의미한 치료(futile treatment)라고도 한다. 치료라고 부르면서 무의미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며, 연명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해당 치료를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윤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의학의 발전을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오랫동안 의학은 질병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약자에 불과했다. 의학으로는 질병을 퇴치할 수 없다는 대중적 인식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의사와 의료에 대한 허무주의가 팽배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 설폰아마이드와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의 발견을 시작으로 신장투석, 전신마취, 근이완제, 방사선 치료, 중환자실 집중치료, 승압제, 개심술, 소아마비 백신, 심폐소생술, 혈우병 치료제, 내시경, 피임약, 장기이식술, 관상동맥 우회술, 전산화 단층 촬영기(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시험관 아기 등, 헤아릴 수 없는 의학적 혁신이 채 10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일어났다.

이런 와중에 무의미한 치료까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의료계도 이런 치료가 갖는 무의미함과 해로움에 눈을 떠 기존의 ‘연명치료’라는 용어를 ‘연명의료’로 변경하는 시도까지 하였는데, ‘치료’라고 하면 그것을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것에 강한 저항을 나타내는 환자와 일반인의 경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사망자 수는 24만여 명이었으며, 이중 사망 1개월 내 의료이용자가 18만여 명, 사망 1개월 내 일주일 이상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환자가 4만5천여 명이었고, 이 중 57%인 2만6천여 명은 인공호흡기 치료를, 30%인 1만4천여 명은 심폐소생술을, 22%인 1만여 명은 인공호흡기 치료와 심폐소생술을 모두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한 조사에 따르면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전국 308개 의료기관 중 256개 의료기관에 7월 한 시점에 9만 5천여 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었으며 이중 1,500여 명인 1.6%가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에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도 전국 279개 의료기관 중 211개 의료기관에 7월 한 시점에 8만9천여 명의 환자가 입원 중이었으며 이중 1,200여 명인 1.3%가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이런 수치에 근거하여 판단해 볼 때 현재 국내에서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한 해 최소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1,500여 명 이상이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명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이 되고 있는가?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은 의식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환자 가족은 큰 괴로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환자실 환자 가족의 76%, 배우자의 83%가 불안과 우울증을 경험하였다고 보고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환자 가족에게 연명의료가 주는 괴로움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환자 본인의 의사를 통계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연명의료에 대한 일반인과 환자의 인식을 살펴보자. 2004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2%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을 원하였으며, 16% 정도만이 중단을 반대하였다. 2008년의 조사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품위 있는 죽음’을 88%의 응답자가 찬성하였으며, 10%만이 이를 반대하였다. 노년층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65세 이상 노인 1만4,500여 명 중 89%가 연명의료에 반대하였다. 환자와 환자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2008~2009년에 걸쳐 1,200여 명의 암 환자와 동수의 환자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위 설문조사와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해보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환자나 노년층 여부와는 관계없이 연명의료의 중단을 원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바람과는 달리 2013년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암환자의 절반 정도가 연명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당 병원의 의사들 중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권하고 있다고 대답한 경우는 46%였고 거의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경우는 12%에 불과했다. 해당 의사들은 우리나라 임종 환경을 점수로 환산하면 100점 만점에 40점, 호스피스 · 완화의료의 인프라가 충분하다고 대답한 경우는 2%에 불과했으며, 본인이 임종을 맞고 싶은 장소는 완화의료시설이 37%, 가정이 30%였고 병원은 15%에 불과했다.

연명의료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환자나 그 가족이 연명의료의 유보나 중단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병원이나 의사가 이를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살인으로 간주되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75년 미국의 ‘캐런 퀸란(Karen Quinlan) 사건’을 시작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였으며, ‘김할머니 사건’ 역시 국내에서 발생한 첫 사례이다.

연명의료의 활성화로 인해 환자와 가족, 의사를 비롯한 병원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조차 진정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고, 의학의 발전이 생명에 간섭하면서 따라온 폐해의 심각성을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내년 초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연명의료에 대한 우리의 숙고와 성찰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2) 재생의학과 유전자가위 기술

과거로부터 불려온 의사가 지금의 병원에서 다음으로 깜짝 놀라게 될 부분은 장기이식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의 모르가니를 거쳐 19세기 파리 임상의학파에 의해 질병의 장소가 장기라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밝혀진 이후,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요 장기의 죽음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장기를 대체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1933년에 구소련의 보로노이(Yu. Yu. Voronoy)가 세계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사체로부터 획득한 신장을 이용하여 신장이식 수술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54년에는 미국의 머리(Joseph Murray)의 일란성 쌍생아 간의 신장이식, 1966년 미국의 릴레헤이(Richard Lillehie)와 켈리(William Kelly)의 췌장이식, 1967년 미국의 스타츨(Thomas Starzl)의 간장이식, 19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버나드(Christiaan Barnard)의 심장이식, 1981년 미국의 라이츠(Bruce Reitz)의 심폐장 동시이식 순으로 장기이식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거의 모든 주요 장기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

장기이식의 의학적, 기술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자, 그다음으로 이식에 필요한 장기를 어떻게 확보하는가 하는 문제가 등장하였다. 나라마다 양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식 대기자의 수와 장기기증자의 수는 10~20배 정도 차이가 나며, 사회 전체가 고령화되면서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사람에게 필요한 장기를 얻는 방법은 살아 있는 기증자로부터 얻거나 뇌사자로부터 얻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 부족은 항상 있어 온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계는 기계식 장기를 개발하거나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거나 또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특정 장기로 분화시켜 장기를 얻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이 중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방법은 줄기세포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줄기세포란 여러 종류의 다른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일종의 원시세포로서 자가복제와 분화능력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원하는 장기와 조직으로 분화시킬 수만 있다면 장기와 조직을 얻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손상된 장기, 조직, 세포를 대체하거나 재생시켜서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의학 분야가 바로 재생의학(regenerative medicine)이다.

줄기세포의 종류로는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역분화 줄기세포가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된 배아조직 중 배반포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서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장기의 배양이나 치료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체세포 핵으로 핵치환을 한 후 배아를 생성해야 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으며, 현재로써는 활용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성체줄기세포는 신체의 거의 모든 장기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로서 신체가 손상되었을 때 재생작용을 하며, 골수와 탯줄 등에 존재하는 조혈줄기세포와 중간엽기질세포가 이에 포함된다. 성체줄기세포는 분화의 방향성이 거의 정해져 있어 분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형종과 같은 부작용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비교적 안전하게 질병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겨져 현재 다양한 질병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여 고형장기를 생성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손상된 조직이나 세포를 대체하거나 재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성인의 피부세포와 같이 이미 분화된 세포를 초기의 미분화 상태로 되돌려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 줄기세포이다. 환자로부터 유래한 세포를 이용하여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생성한 것이므로 환자에게 적합한 장기, 조직, 세포의 생성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의 미래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이식으로 시작한 의학의 방향은 손상된 장기, 조직, 세포, 그리고 더 미세부위로 파고들어 세포구성물, 유전자, 그 이하로까지 치료의 대상을 미시화하고 있다. 이 미시화의 방향이 현재 생명과학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며 미래의 생명과학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재생의학은 18세기부터 형성된 ‘질병의 장소’라는 이념을 구현한 새롭지만 오래된 의학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세 부모 아기’도 실상 대단한 의학기술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배아복제를 위해 이용하였던 난자의 핵치환 기술을 활용한 경우이다. 이 아기의 엄마인 요르단인 여성은 리증후군(Leigh syndrome)이라는 신경장애를 유발하는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어 이미 두 아이를 잃은 상태였다. 리증후군은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미토콘드리아에 포함된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모계로만 유전된다. 전체 과정을 보면 건강한 난자를 기증받아 이 난자의 핵을 여성 환자의 핵으로 치환한 후 남편의 정자와 체외 수정시켜 재조합 수정란을 생성하여 최종적으로 건강한 아기를 탄생시켰다. 세포핵 DNA는 친부모로부터,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세 부모 아기’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 아기가 수정 단계 이전에 유전자 이상을 미리 교정한 후 탄생시킨 ‘맞춤아기’라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상당한 윤리적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맞춤아기’가 원천적으로 가능한 기술이 최근 등장하였다. 바로 3세대 유전자가위인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를 활용한 기술이다. 크리스퍼는 세균이 박테리오파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면역 시스템으로서 파지의 DNA를 자신의 크리스퍼 사이에 끼워 넣어 기억해 두고 있다가 또 다른 파지가 침입하게 되면 Cas9 단백질을 이용하여 기억해 놓은 파지의 DNA 부분을 찾아서 잘라버리는 작용을 통해 파지의 침입을 차단한다. 그런데 크리스퍼가 갖고 있는 이런 DNA 절단 능력이 원하는 부위의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데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에 생각이 닿으면서 획기적인 발견이 된 것이다. 2012년에 크리스퍼와 Cas9 단백질의 정확한 기전이 밝혀진 후 마우스, 래트, 초파리 등 대표적인 실험동물의 유전자를 수정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들의 유전자를 수정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가 필요 없고 수정란에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획기적인 발견으로 인식되었다. 아직 줄기세포를 형성하지 못한 소, 돼지뿐 아니라 밀, 쌀 등 식물의 유전자도 수정하는 데 성공하였다. 크리스퍼를 활용하면 멸종 동물을 복원하거나 좀 더 안전한 GMO(유전자변형식품)를 생산할 수도 있다. 합성생물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퍼를 사람 유전자에 적용하여 손상된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체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유전자 치료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전술하였듯이 생명과학의 방향은 장기, 조직, 세포, 세포구성물, 유전자, 그 이하의 수준으로 계속 미시화하고 있으며 이 미시화의 또 다른 길을 크리스퍼가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의 비밀을 완전히 알기 전에 동식물과 사람의 유전자를 섣부르게 조작하고 조작된 생명체가 탄생하여 자연세계에 노출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세 부모 아기’의 논란에서도 보듯이 크리스퍼를 활용한 ‘맞춤아기’는 과거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윤리적 논란을 훨씬 뛰어넘는 윤리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2015년 3월 《네이처(Nature)》에는 “인간생식계열 편집을 중단하라(Don’t edit the human germ line)”라는 제목의 기고가 실렸으며 이 기고의 저자인 란피어(Edward Lanpier) 대표와 동료 과학자들은 인간 생식세포의 유전체 조작에 대한 전면적인 중단을 주장하였다. 생명과학의 혁신이 불러오는 엄청난 명예와 금전적 보상을 생각할 때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가자는 이와 같은 주장은 그저 한가한 주장에 불과한 것인가.

3.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검토하기 위해 먼저 최근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를 살펴보겠다. 일본의 오노약품공업이 미국의 BMS사와 함께 개발한 세계 최초의 항 PD-1 항체 면역항암제인 ‘옵디보(Opdivo, 성분명은 nivolumab)’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미국, 유럽, 일본의 진행성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암의 진행을 억제하고 생존 기간을 유효하게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5년 생존율이 16%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항암제로 치료받은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 5% 미만인 점을 감안해 보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역시 유사한 결과를 보였으며, 1년 생존율이 58%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에 직접 작용하거나 그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라면 옵디보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의 표면상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PD-1 수용체에 작용하여 면역세포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나타낸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후에는 암세포가 내성을 보이면서 치료효과가 떨어지는 데 반해, 면역항암제는 이와 같은 단점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치료제이다. 이 약제가 갖는 기전 때문에 거의 모든 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심지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약제가 단기간에 일으킨 경제적 효과이다. 옵디보의 국내 가격은 현재 100mg당 200만 원 정도로 폐암 환자를 1년간 치료하는 데 1억 원 정도 소요된다. 2014년 말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약제허가를 받은 바로 다음 해인 2015년 총매출액이 1조 1,500억 원이었고, 작년 매출액은 3조 원이 넘었으며, 2020년 예상 매출액은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체 면역항암제들의 2020년 예상 총매출액도 2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옵디보의 개발사 중 하나인 일본의 오노약품공업은 일본 제약회사 중에서 매출이 15위 정도인 중견급 회사이지만 최근 시가 총액이 3조 엔으로 급상승하여 전체 제약회사 중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BMS사 역시 2016년 매출이 전년도에 비해 17% 정도 상승하였는데, 이는 옵디보의 매출에 힘입은 바 큰 것으로 나타났다. BMS사는 현재 25개 이상의 암 종류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의 결과에 따라 더 많은 종류의 암에 대해 약제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약물허가를 받은 지 채 3년도 되지 않는 약제의 매출이 이 정도이며, 전 세계에 존재하는 암 환자의 수를 감안해 볼 때 예상 매출액의 증가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혁신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조금은 순진해 보이는 레토릭 이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경제적 효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충실한 기업이나 기업가의 마음을 충분히 들뜨게 할 것이다. 과학적 혁신이 자본주의적 욕망을 끌어들이는 지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이 약제가 제약회사라는 이윤을 추구하는 곳에서 개발되었으며, 애초에 이윤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금전적, 인적 투자가 필요한 약물개발의 연구 과정은 첫발을 떼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역으로 과학적 혁신을 끌어들이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체계는 매우 시장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의학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검토해 볼 수 있는 좋은 현장이 된다. 의료서비스의 공급 구조만 보더라도 한 보건학자의 표현대로 거의 무정부적인 상태의 시장형 공급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가 의료장비의 설치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전산화단층촬영기(CT)는 인구 100만 명당 37대로 캐나다의 15대나 프랑스의 14대와 비교해 보면 두 배 이상이며,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인구 100만 명당 24대로 캐나다와 프랑스의 세 배 정도이고, 최첨단 장비로 알려진 양전자컴퓨터단층촬영기(PET-CT)는 인구 100만 명당 4대로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의 도입률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적절한 암성 통증 관리의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모르핀의 평균 사용량은 2.6mg으로 세계 42위 수준이었는데, 이는 전 세계 사용량의 평균치인 6mg의 절반도 되지 않으며 미국이나 캐나다 사용량의 1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런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은 보건의료 서비스의 제공이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공급자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고가의 장비는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반면,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로운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건의료서비스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공적 기구인 정부에게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오랫동안 그것을 방기해왔다. 이런 실정이 극명히 드러나는 곳이 바로 공공의료 부문이다.

2013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료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관 수 기준으로 5.7%, 병상 수 기준으로 9.5%에 불과하다. 병상 수 기준으로 영국 100%, 캐나다 99%, 호주 70%, 프랑스 62%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정도이고, 민간 부문이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이나 일본도 공공의료 부문이 우리와는 세 배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의료보호 환자의 진료비 지급 실태를 살펴보면 의료기관에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은 기간은 평균 4~11개월 정도이며, 지급하지 않은 의료급여비는 2012년에는 6,138억 원에 달했으며, 올해에는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한 결과는 자명하다. 현실적으로 의료기관과 의사는 의료보호 환자의 진료를 기피하게 되고, 이는 의료보호 환자에 대한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의료보호 환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동안, 이들은 ‘의료보호 환자’로 낙인 찍히고 사회에서 의료기관과 의사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강화된다.

공공 보건의료 확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정부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는 것이 보건의료 산업화 전략이다. 차세대 먹거리가 보건의료와 생명과학이라는 기치 아래 의료기관의 영리화 전략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영리법인과 영리병원의 도입이 그 중심에 있다. 의료산업화란 의료산업을 구성하는 4대 영역인 의료서비스, 제약, 의료기기, 생명공학 중에서 이미 산업의 영역에 포함된 제약, 의료기기, 생명공학 이외에 의료서비스를 최종적으로 산업화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의료법에는 의사 또는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영리법인과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기업이나 자본가가 의료기관을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으며, 창출한 이익을 다른 분야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자본의 논리가 의료기관의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재 의료기관의 실정이기는 하지만 영리법인과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기관의 설치 자체가 자본의 논리를 따르게 되므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독특한 점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보건의료와 생명과학의 산업화와 영리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영리화에 필요한 정치 · 사회적 시스템을 정부가 확립하고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보건의료와 생명과학을 둘러싼 전 세계의 정치 · 사회적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철저히 복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학사회학자인 멜린다 쿠퍼(Melinda Cooper)는 《잉여로서의 생명(Life as Surplus)》에서 생명과학과 그 기술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 정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경제적 가치 창조의 회로 내로 편입되어 생명의 잉여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어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생명과학 발전과 그 동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00년대 초부터 보건의료와 생명과학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형병원들이 몸집을 불리며 무한경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병원 종사자들에게 이익 창출의 선봉자가 되기를 부추기는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병원에서의 성과는 더 이상 환자의 건강 회복이나 삶의 질 향상이 아닌 지 오래되었다. 서울 내 대형병원이 다국적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허브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이며, 이후로 적절한 비용과 원활한 연구결과 도출이라는 조건 때문에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임상시험의 유치가 병원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영진은 적극적으로 이를 장려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의학과 생명과학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더 이상 아프고 병든 사람의 안식처가 아니고, 생명자본주의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4. 불교의 생명의료윤리 모색

위에서 상술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 할까. 당연히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첨단기술로 인해 초래된 생명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조작은 무엇이 원인인가.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 자체를 원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이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의학계와 과학계의 활동으로 인해 생명에 대한 간섭이 가중되고 있다면 이때 원인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원인이라면 이를 제거하는 것이 해결책일 것이다. 만약 이런 원인 분석이 타당하고 자본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면 외통수에 빠진 꼴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먼저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첨단기술의 경우 그 특성과 대상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타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에 혁신적 기술이 가져올 문제가 무엇인지 언급하는 것조차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제약회사나 정부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서는 옵디보와 같은 면역항암제가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매출액의 규모는 어림짐작은 되지만 최첨단 의약품을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거쳐 약제허가까지 받는 과정이 모두 관련 법령과 규제에 따라 표준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자본주의의 잣대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좀 순진한 생각이라거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와 관련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보건의료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주체들과 그들 간의 관계를 감안해 볼 때 단순히 산업화의 논리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좀 지나친 생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장들이 타당할까. 의학과 생명과학 발전의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면 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새롭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주인공만 바뀐 친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명의료는 질병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우리 자신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연명의료는 특별한 종류의 어떤 의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를 가리킬 뿐이다. 그러므로 따져보아야 할 것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왜 인공호흡기나 승압제 치료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모두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때때로 잊고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불로장생과 불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며, 이 잘못된 인식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야겠다.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간섭은 치료 대상인 질병의 원인을 계속적으로 미시화함으로써 생긴 필연적 문제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질병을 퇴치하고자 한다면 지급해야 되는 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세화를 부추기는 현대의학의 질병관을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한다.

현대의학의 질병관은 유기체 질병관으로서 질병은 나쁘고 불연속적이며, 개체를 침범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개체 질병관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가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겸상적혈구의 대립유전자를 1개 가진 이형접합자는 종종 혈뇨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적혈구의 형태 때문에 말라리아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으므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는 정상 적혈구를 가진 사람보다 생존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겸상적혈구 이형접합자에서 나타나는 혈뇨는 질병인가? 질병이라면 겸상적혈구 유전형질은 질병의 원인일 텐데 질병의 원인이 생존확률을 높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다.

그러므로 신체 특정 부위의 이상을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것이 질병 퇴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이 실체론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보다는 건강과 짝을 이루는 상대적 개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세계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적 발생과 소멸을 의미하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이해하고, 삼법인(三法印)으로서의 세계의 실상을 직시한다면 그런 대가를 꼭 치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인 것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이 끌어들인 자본주의와, 이런 자본주의의 논리에 복무하는 의료계와 과학계 및 이들이 놓여 있는 정치 · 사회적 시스템 또한, 우리 모두의 ‘나와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일으킨 거시적 결과물들이며, 일종의 공업(共業)인 것이다. 자본주의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욕망은 탐욕과 어리석음을 부지불식간에 부풀려서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휘어잡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마치 의지를 갖고 있는 괴물인 양 대하는 것 또한 대단히 어리석은 태도이다.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나와 세계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는 것[如實知見]이야말로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문제에 대한 불교적 통찰과 해결책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려고 한다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생각과 신조를 갖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상태, 교육 정도, 종교적 신념 등에서 여러 겹의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공화제를, 사회경제체제는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이런 체제와도 조화된 해결책이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불교의 주요 용어들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연기의 법칙, 삼법인의 실상, 삼독심 등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사용할 경우,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접근하기 어렵게 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단일한 쟁점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심지어 같은 경전이나 논서에 의거하여 펼친다는 것이다. 물론 건전한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의 쟁점에 대해서는 불교 교리가 지닌 다양한 의견을 고려하면서도 단일한 종지로 수렴한 후 일반인, 의료인, 과학자가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원칙이나 덕목으로 풀어내야 한다. 즉 불교의 최상위의 교리, 가치, 덕목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중간 수준의 원칙과 덕목의 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명의료를 예로 들어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크게 일반연명치료와 특수연명치료로 나뉜다. 연명의료결정법도 이 구분에 따라 특수연명치료만을 보류나 중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수액이나 영양 공급, 진통제 투여와 같은 일반연명치료는 보류하거나 중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분은 가톨릭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1957년에 교황 비오 12세가 의사들을 위한 연설에서 예외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까지 생명을 연장할 의무는 없다고 밝힌 후 임종기 치료를 ‘통상적인 수단(ordinary means)’과 ‘예외적인 수단(extraordinary means)’으로 구분하게 되었으며, 생명의료윤리 담론에서는 표준적 구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당연히 가톨릭 교리에 근거한 구분이었지만 해당 교리의 특수한 개념이나 용어는 배제하고 그 의미만을 구현해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과 의료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형태의 중간 수준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 생명 친화적이다. 이러한 불교의 교리, 가치, 덕목의 의미를 잘 살려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규범으로 사회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중간 수준의 원칙 도출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교 생명의료윤리의 모색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유상호
한양대 의대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서울의대, 동 대학원 졸업(의료윤리학 박사). 미국 연구윤리 인증기관 AAHRPP 연수. 주요 저서로 《의료윤리학》 《임상윤리학》이 있으며, 번역서로 《연구계획서 IRB 통과하기》 등이 있다. 현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전문위원회 위원, 한국의료윤리학회 학술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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