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불교의 지혜

1.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의 의미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는 이제 정치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만큼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문제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유엔에서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여, 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 ‘모든 국가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을 종식한다.’는 것을 2016년부터 2030년까지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에 있는 17개의 전략목표 중에 첫 번째 전략목표로 정하였다.

 이 첫 번째 전략목표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이 전략목표의 5개 세부목표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루 1.25달러로 측정된 빈곤을 종식한다. 둘째, 모든 영역의 빈곤 수준을 50%로 축소한다. 셋째, 빈곤층과 차상위층을 포괄하는 저소득층 모두를 포함하여 적절한 사회보호 체계와 조치들을 구현한다. 넷째, 빈곤층과 차상위층이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 및 기초서비스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모든 형태의 재산 및 부동산 · 기술 · 서비스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보장한다. 다섯째, 취약한 상황에 직면한 빈곤층의 대응력을 강화하며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기적 사건과 기타 경제, 사회 환경과 관련된 충격과 재앙 등으로 인한 빈곤층의 위험과 취약성을 축소한다.

이러한 5가지 세부목표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세부목표는 절대적 빈곤의 탈피와 관련된 내용이며, 두 번째는 상대적 빈곤의 극복에 관련된 내용이며,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빈곤층과 차상위층이 다양한 사회보호 체계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재산 · 자원 · 기술 · 서비스 등에 대한 권리와 기회를 균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며, 다섯 번째는 기후와 환경변화 및 경제 · 사회 환경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빈곤층의 위험과 취약성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SDGs의 첫 번째 목표에 등장하는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이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을 종식함은 물론이고, 이러한 경제적 빈곤 이외에도 빈곤층이 다른 여러 차원에서 배제 또는 박탈당하지 않고 균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환경변화로 인한 빈곤과 위험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이와 같이 SDGs에서는 절대적 빈곤은 물론이고 상대적 빈곤과 다른 요인으로 인한 빈곤과 차별과 위험으로부터의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목표는 2000년에서 2015년까지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이하 MDGs)가 ‘극빈 제거(Eradiate extreme poverty)’란 절대적 목표를 제시하여 지구촌의 최빈곤층을 직접 구빈대상으로 지목했던 데 비해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빈곤을 정의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즉 MDGs는 절대적 빈곤 이외의 다양한 불평등 문제를 포함하지 못하고 외면하였던 한계가 있으나, SDGs는 다양한 빈곤과 불평등의 해소를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MDGs의 ‘극빈 제거’라는 의제는 극빈층이 많은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된 의제였다면, SDGs의 ‘빈곤 종식’이라는 의제는 저개발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의 모든 지역과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의제이다. 따라서 SDGs는 절대적 빈곤은 물론이고 상대적 빈곤도 종식되어야 하는 대상이며, 나아가 소득과 지출이라는 화폐적 의미를 넘어선 빈곤과 불평등, 즉 교육과 건강과 생활환경과 같은 다차원적 의미의 빈곤과 불평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국가의 제반 사회복지정책인 의료 · 모성보호 · 실업 · 공공부조와 같은 정책의 혜택을 누려야 하며, 가능한 모든 차원에서 차별과 배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이 SDGs의 ‘빈곤 종식’에는 절대적 빈곤 및 상대적 빈곤의 극복은 물론이고, 기회의 균등을 포함한 다른 여러 차원의 평등이 추구해야 할 지향으로서 제시된 개념이다. 즉 진정한 빈곤 종식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차원의 빈곤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물질적이고 다양한 차원의 빈곤에 대한 대응은 SDGs의 17개 전략목표에 포함된 여타의 목표들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교육과 건강과 환경 등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실상과 원인, 그리고 그 극복 방안을 살펴보고 나아가 빈곤에 대한 불교적인 관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빈곤의 실상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중에 우선 절대적 빈곤의 정의를 살펴보면, 절대적 빈곤이란 ‘육체적 효율 유지에 필요한 최저생존비(또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소득)으로 발생하는 빈곤’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 빈곤의 개념은 ‘사회에서 보는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최저한의 소득을 가지지 못한 삶의 조건’으로 정의되며 해당 사회의 평균소득 또는 중위소득의 40%, 50%, 60% 또는 70%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나타나는 절대적 빈곤은 하루에 1.25달러(PPP, 구매력 평가 기준) 이하로 생활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은 지역이나 기구 · 나라마다 기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운데, 일반적으로 국제비교 시에는 중위소득의 50% 소득을 상대빈곤선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의 절대적 빈곤 현황에 대해서 유엔은 2015년까지 절대적 빈곤이 많이 감소하였다고 보고 있는데, MDGs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개발도상국에서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1990년 기준 인구의 47%에서 2015년에는 14%까지 감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통계 발표 기관과 기준에 따라서 절대빈곤 인구는 차이가 있지만, 절대빈곤 인구가 상당히 감소하였다는 내용은 어떤 발표 내용에서나 동일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세부 내용을 보면, 절대빈곤 인구가 대폭 감소한 것은 중국에서 1990년 기준 절대빈곤 인구가 6억 8,300만 명에서 2005년에 2억 800만 명으로 약 4억 7,500만 명 정도 줄었던 것에 크게 기인하며,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의 절대빈곤 인구는 제자리걸음을 하였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절대빈곤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도의 경우도 산업화의 영향으로 절대빈곤 인구가 감소하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실제로는 1990년에 절대빈곤 인구가 4억 3,500만 명이었다가 2005년에는 4억 5,600만 명으로 약 2,000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1990년에는 2억 9,800만 명에서 2005년에는 3억 8,800만 명으로 절대빈곤 인구가 증가하였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경제개방과 산업화로 절대빈곤 인구가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세계의 절대빈곤 인구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인구가 1990년 52억 6,300만 명에서 2015년에 73억 2,500만 명으로 25년 동안 약 21억의 인구가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중국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절대빈곤 인구의 수가 많이 감소하지 않거나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빈곤 인구의 비율 자체는 감소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절대적 빈곤은 많이 감소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로 해당 기간에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급속하게 추진한 지역에서 절대적 빈곤이 많이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의 현황을 살펴보면, 저개발국은 물론 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상대적 빈곤이 감소하였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상대적 빈곤이 증가하였는데, 먼저 미국을 살펴보면, 미국은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부의 몫이 1928년 43%로 최고점에 도달하고, 1978년에는 25%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 2013년에는 40%에 도달하였다. 또한 상위 10%가 차지하는 부의 몫은 1937년 80%, 1987년 60%였다가, 2012년에는 75%였으며, 나머지 90%가 차지한 부의 몫은 25%에 불과하였다.

부의 양극화가 1978년 이후에 심화되어 1920년대 대공황 시절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소득 등을 제외한 가계소득만을 기준으로 보면, 2012년 상위 1%는 미국 전체 가계소득의 19.3%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24%로 정점을 찍었던 1920년대 후반 대공황 무렵 이래 최고 수준이다. 2012년 상위 1% 가구의 세전소득은 전년 대비 19.6% 증가했다. 반면 하위 99% 가구의 세전소득은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9년~2012년 수치도 비슷하다. 그리고 대기업 CEO 1명의 봉급을 충당하기 위한 노동자의 평균수는 1970년에 30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거의 500명으로 증가하였다.

한국의 경우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를 보면, 중위소득 50% 미만의 상대빈곤 비율은 1982년 11%에서 1990년 7.6%까지 감소하여 1992년 7.7%를 유지하였으나, 1993년부터 증가하여 2007년에는 14.4%가 되었다. 또한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소득 불평등도(지니계수)의 증가보다는 상대빈곤 비율의 증가가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곧 전체적인 분배(소득 불평등)의 문제보다 빈곤의 문제가 더 심각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이후에도 상대빈곤 비율은 높은 수준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다. 1993년 이후에 중산층이 중위소득 50% 이하의 상대빈곤층으로 유입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는 2012년 종합소득세 기준으로 전체 소득의 22.9%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5%는 4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상위층으로 부의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는데, 1998년과 2010년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6.97%에서 11.5%로 65%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상위 0.1%의 소득 비중은 1.79%에서 4.08%로 130%가 증가했고 최상위인 0.01%의 소득 비중은 0.57%에서 1.61%로 182%가 커졌다. 부자일수록 소득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따라서 한국에서 상대빈곤 인구는 계속 증가하지만, 반대로 상위 1%, 또는 0.1%, 0.01%의 최상위층으로 부의 집중 현상은 지속되고 있어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OECD 가입국들에서도 상대적 빈곤이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OECD 가입국들의 평균을 계산하면, 1980년대에 상대빈곤 비율은 9.0%였으나, 2010년대에는 11.2%로 악화하였다. 다른 계층에 대비한 상위 10%의 평균소득도 1980년대에 7배였으나 2010년대에는 9.5배로 확대되었다. 이 외에도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80년대에 0.29였으나 2010년대에 0.32로 악화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에서도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의 심화 현상과 함께 상위 소득층, 특히 최상위 1%에 속하는 계층으로 소득이 편중되고 있는데, 최상위 1%가 1976년에서 2007년까지의 총소득 증가액의 20%~47%를 차지하였다(미국-47%, 캐나다-37%, 영국 및 호주-20%). 그러나 이것이 OECD의 모든 가입국에서 일률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며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 동안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기간에 OECD 가입국 중 4분의 3 이상의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은 두드러지게 심화하였다. 해당 기간 동안 OECD 국가들에서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세가 지속되었으나, 소득 불평등이 일반적으로 계속 악화하였으며, 상대적 빈곤층도 전반적으로 증가하였다.

한국과 다른 OECD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OECD 가입국 중에서 중간 정도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미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4위로 나타나 세계적으로도 매우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의 상대적 빈곤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데, OECD 국가들 가운데에서 심각한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2014년에는 소득 상위 10%와 소득 하위 10% 간의 불평등이 4.8배로 나타나 미국(5.0배), 이스라엘(4.9배)에 이어 OECD 34개국 가운데 3번째로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칠레 등과 같이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의 정도가 완화되었으나, 한국은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한 반면 이러한 경제성장이 상대적 빈곤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대적 빈곤이 심화하고 증대되었다. 세계은행과 IMF 등의 세계금융기구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원정책의 중점을 바꾸어가면서 노력하였으나 효과는 미미하였다. 즉 경제성장이 빈곤 감퇴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세계은행과 IMF 등의 세계금융기구들은 성장 촉진을 위하여 지원정책의 중점을 투자 부족부분 지원(1960년대)→기술지원(1970년대)→재정적자 감축, 환율 자유화, 무역자유화, 조세개혁, 규제완화(1980년대와 1990년대)→재정관리 능력, 감사 기능 등 행정제도개선, 법제개혁, 공적 부문 임금제도 개선, 리더십과 거버넌스 능력 향상(2000년대)에 두면서 이를 조건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금융기구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들의 상대적 빈곤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1980년에서 2000년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경제성장도 그 이전 20년 동안의 성장률보다 저하되었다. 즉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포함된 116개국의 경제성장률은 1960년에서 198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3.1% 성장하였지만, 1980년에서 2000년까지는 연간 1.4% 성장하였을 뿐이다. 특히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1인당 GDP가 감소하기도 하였는데, 라틴아메리카는 1960년에서 1980년까지 연간 2.8% 성장하였지만, 1980년에서 1998년 사이에는 오히려 연간 0.3% 감소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면, 중국과 인도와 같이 최근에 급속하게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진행한 국가를 제외한 다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은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그 이전에 비해 대체로 경제성장률이 저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사이의 소득 격차도 계속 벌어져 왔는데,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 사는 세계 인구 5분의 1과 최빈국들에 사는 세계 인구 5분의 1 사이의 소득 격차는 1960년대에 30대 1에서, 1990년 60대 1, 그리고 1997년에는 74대 1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기준으로 세계인구 65억 명이 세계 GDP 48.2조 달러(미국달러 기준)를 생산하였는데, 이 중에서 부유한 국가의 약 10억 명이 76%인 36.6조 달러를 생산하였고, 중위 소득국가의 30억 명이 20.7%인 10조 달러를 생산하였으며, 소득이 낮은 국가들의 24억 명이 3.3%인 1.6조 달러를 생산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소득 불평등이 세계적으로 더욱 심화하였는데,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인터내셔널(Oxfam international)’의 연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상위 1% 부자들의 재산이 지구상 나머지 전 인구의 재산보다 많아졌으며, 2016년에는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인구 중 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과 같은 규모의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3. 빈곤의 원인

이와 같이 소득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하고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서 몇 가지의 주장이 있다. 먼저, 개인의 무능력에서 빈곤의 원인을 찾는 주장이 있다. 즉 개인의 동기 부족, 낮은 기대, 무절제, 의타심 등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무능력으로 빈곤에 빠지고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의 빈곤은 신체적 · 정신적 장애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고, 나아가서 적절한 교육과 지도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무능력에 빈곤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기보다는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교육과 제반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 국가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인데, 빈곤은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되지 않은 국가에서 만연하고 있으며, 유럽의 경우에도 1820년대 이전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빈곤층이 많았으나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에 빈곤층이 급속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또는 국가의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생겨나고, 정치 · 경제 ·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빈곤의 원인을 경제개발과 산업화, 그리고 분배 및 재분배 정책에서 찾는 것은 부분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절대적 빈곤의 경우는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사회 및 국가의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이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절대적 빈곤은 물론이고 상대적 빈곤의 문제도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 국가적인 차원에서 찾는 주장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국제적 차원의 원인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 빈곤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기반을 둔 세계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는 국가 내의 빈곤의 심화뿐 아니라 국가 간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자본과 시장의 세계화이며, 또한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의 원리를 내세우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구조조정, 사회복지의 축소를 강조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국가들은 더욱 빈곤한 국가로 전락하였으며, 국가 내에서도 특별한 기술이 없는 비숙련 노동자들은 직업을 잃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여 더욱 빈곤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국제적 차원에서 빈곤의 원인을 찾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후에 개발도상국들은 물론이고 OECD 가입국들도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에 편입된 국가들 중에서도 일부분은 소득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지 않고, 완화된 국가들도 있다는 사실을 본다면, 사회적 · 국가적 차원에서 균등한 소득분배를 실현하려는 제반 정책과 시도로 소득 불평등과 빈곤이 완화되는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1978년 이후, 한국에서는 1993년 이후, 그리고 OECD 가입국가들은 1980년대 이후에 상대적 빈곤이 악화되었으며, 그리고 부유한 나라들에 사는 세계 인구 5분의 1과 최빈국들에 사는 세계 인구 5분의 1 사이의 소득 격차가 30대 1(1960년대)에서 74대 1(1997년)로 악화되었던 것, 그리고 마침내 2016년에는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의 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과 같은 규모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경제 상황은 신자유주의가 국제경제 질서를 좌우하게 된 이후에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이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최근 세계적으로 상대적 빈곤층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불구하고 증가하고 있는 주요 원인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질서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빈곤 극복의 대안

현재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빈곤을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으로 구분할 경우, 절대적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먼저, 빈곤국가와 빈곤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교육을 비롯한 제반 지원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MDGs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절대적 빈곤이 급격하게 감소한 지역은 중국과 같이 경제개발과 산업화를 진행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경제개발과 산업화도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는 데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속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중산층에서 전락하여 상대적 빈곤에 빠지고, 나아가 상대적 빈곤이 심화하여 절대적 빈곤층이 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경우 사회적 · 국가적으로 배분 및 재분배 정책이 적절하게 시도된다면, 빈곤 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보완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기본소득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기본소득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 최근의 경제 상황은 실업률이 높을 뿐 아니라, 실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기존의 복지제도로는 적절한 분배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1960년대 말까지 세계경기가 회복되고 케인스식의 경제정책이 광범위하게 시행되면서 선진국들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도 계급 타협이 주창되면서 다양한 복지제도들이 도입되었다. 이 시기를 ‘착근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는 완전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 말까지는 완전고용을 꿈꿀 수 있을 정도로 고용 사정이 좋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양극화가 심해지고 고용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낙후된 복지제도로는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실업률이 높고 실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빈곤층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곧 기존의 복지제도는 직장이나 일터가 있는 경우를 가정하여 마련된 것이며, 직장이나 일터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의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지 않고 노동과 소득 사이의 연결 고리를 해체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보편성(부자에게도 준다), 무조건성(노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별성(개인별로 지급한다)이라는 3가지 특성을 가진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기본소득 제도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반대론자는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면 근로의욕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미국의 네 곳, 그리고 캐나다의 한 곳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지급한 이후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고 노동의욕이 감소하였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실업률이 줄어들고 범죄율도 떨어졌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이 산업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많은 직업이 인공지능 · 로봇 · 기계 등으로 대체되고, 나아가 무인공장이 늘어나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기본소득 제도는 매우 효과적인 복지제도이자 분배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인공지능 · 로봇 · 기계 등으로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의 경우, 작년 말에 로봇과 드론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역대 최대 규모의 배송을 실현하면서도, 로봇과 드론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 30만 명을 해고하였다는 것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실업이 본격화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실업문제의 경우, 한국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컴퓨터에 의한 고용 대체 가능성이 큰 일자리가 미국보다 많은데, 한국에는 고숙련 서비스 부분의 일자리가 미국의 절반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임금을 이용하여 선진국의 제조공장을 유치하고 임금을 받아 소득을 확보하였던 저개발국들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리쇼링(Reshoring) 정책으로 향후에는 실업문제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해외의 저렴한 노동을 활용하는 것보다 로봇 · 기계 · 인공지능 등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생산 비용이 절감되므로 미국과 독일 등은 제조공장들을 자국으로 옮기고 있다. 그 결과로 미국과 독일 등의 선진국들은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건비를 절감함으로써,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과 이익률의 저하라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첨단기술의 도입도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과 중국 경제의 리스크 확대, 저유가, 글로벌 생산성 저하, 산업 경쟁구도 심화라는 최근 세계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세계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으로 첨단기술을 보유한 선진국은 생산성과 이윤율을 제고할 수 있겠지만, 첨단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은 실업률이 대폭 올라가고 빈곤문제가 악화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경우를 예상한다면, 노동과 연계시키지 않는 복지제도로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매우 적절한 복지 및 분배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은 선진국들에 비해 기본소득 제도와 같은 복지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 그리고 새로운 경제시스템 구축을 통한 별도의 자구책이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기존의 복지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기본소득 제도를 보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완전고용이 어려워진 경제상황에서는 이미 기존의 복지제도로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기존의 복지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복지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우선 기본소득 제도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발생한 빈곤, 불평등, 불안정 고용이라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우리 시대가 기본소득으로 생활하면서 노동에서 벗어나거나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자유롭게 예술, 과학, 교양 활동과 같이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경제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없으며, 그리고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 시행을 추진할 수 있는 권력자원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본소득 제도를 완전히 도입하기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노동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기본소득 제도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의 개혁과 소득보장제도의 확충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유럽의 기본소득 제도 지지자 중에서도 소수만이 기존의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대신에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기본소득 제도 지지자들은 기존의 복지국가의 성과 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기존의 복지제도가 도입된 지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가 기존 복지제도의 혜택과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해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은 기본소득 제도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복지 및 배분 정책 이외에도 공동체 운동을 현재의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 대한 대안으로서 고려해 볼 수 있다. 공동체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계획공동체, 공동주거공동체, 마을공동체, 생산공동체, 네트워크공동체 등 형태가 다양하고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적이나 가치도 생업, 생활, 교육, 봉사, 수행, 생태, 반자본주의, 소비억제, 이념공유, 종교, 정치적 해방구 등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에 대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상대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공동생산하고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우선 세속의 첨단 문명과 욕망에 대한 포기를 전제하게 된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대체로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만족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체에서 가난하지 않고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공동체가 있다면, 아마도 한국인 대부분이 그 공동체에 참여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거의 모든 공동체는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더라도 경제적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에서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공동체 자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탈출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이미 경제적 욕망의 노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경제적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절대적 빈곤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상대적 빈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탄의 경우를 보자. 부탄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소득으로도 대부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유엔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 빈곤계층에 속하는 사람도 많다. 이와 같은 경우를 보면,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욕망에서 생겨남을 알 수 있으며, 상대적 빈곤 문제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경제적 욕망 또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 생활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중생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 시대의 상가(saṃgha)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초기불교 시대의 상가는 세속의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화합하면서 열반을 이루기 위해 정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대한 정신적 계도의 역할과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였다. 또한 상가 내에서는 계급에 의한 차별 등 모든 차별이 있을 수 없는 평등한 공동체였다. 초기불교 시대의 상가를 현대의 공동체 운동과 비교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공동체 운동의 지향점이 열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공동체 운동이 공동생산과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를 이룬다면, 상가의 평등정신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공동체 운동의 지향점이 만일 사회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공동체 운동은 비록 상가와 궁극적인 목적은 다르지만, 빈곤문제의 해결이라는 원력(願力)으로 공동체 운동을 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빈곤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 경전에는 이미 세간의 빈곤문제에 대한 관점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공동체는 일종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불교의 빈곤문제에 대한 관점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공동체와 현대사회에 좋은 연구와 실험의 대상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5. 빈곤에 대한 불교의 관점

불교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설하고 있으며, 상가공동체는 불교의 이런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였다는 면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모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어떤 조건이나 원인으로도 인간은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상가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평등과 배제는 불교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여법(如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이며, 악업을 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빈곤문제에 대한 불교의 관점은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의 두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개인 중에서도 주로 재가자에 관련된 가르침을 보면, 우선 빈궁의 괴로움은 죽는 괴로움보다 무거운 괴로움이라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빈궁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고 재물을 구하여야 하며, 근면하고 검소한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경전에는 배고픔과 같은 괴로움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에도 장애가 된다는 내용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빈궁의 괴로움은 불교 수행을 위해서도 극복하여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가자의 경제생활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돈을 버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고, 올바르게 벌어서 올바르게 써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재물을 구하되 올바르게 구해야 하며, 재물을 구한 이후에는 올바르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바르게 써야 한다는 의미는 재물을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 친족 · 사회 · 종교인 등을 위해서 널리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따까》에는 부유한 장자(長者)가 성(城)의 네 문과 성의 중앙, 그리고 자신의 집 입구 등 모두 여섯 군데의 보시하는 장소를 마련하여 모든 이에게 보시하였으며, 그런 보시의 과보로 죽은 후에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부유한 사람이 지나치게 인색하게 생활하면 목숨을 마친 후에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초기불교 경전에는 지나치게 인색한 것은 큰 번뇌이며, 내생에 지옥에 태어나는 과보를 낳는다는 내용이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전의 내용을 보면,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 개인은 스스로 노력하여야 하며, 그럼에도 빈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 이들에게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의무와 같았으며, 특히 부유한 계층은 자발적으로 널리 보시를 실천하여야 하며, 보시하지 않는 것은 지옥에 태어날 정도의 큰 죄업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국가적 차원의 관점은 장아함 《전륜성왕수행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륜성왕은 불교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로서 세계를 평정하고 통치하는 왕 중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전륜성왕수행경》에는 많은 내용이 있지만, 그중에 빈곤에 관련된 내용만 추려보면, 먼저 전륜성왕은 지혜로운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수행(修行)과 선악(善惡)과 정법(正法)에 대해서 묻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전륜성왕은 법륜(法輪)을 굴림으로써, 즉 정의와 보편적 진리의 위력을 가지고 온 세계를 평정하고 통치해야 하며, 또한 외롭고 늙은이나 빈궁한 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전륜성왕이 정법에 대해 묻고 배운다는 것은 전륜성왕이 정의와 보편적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지혜로운 이에게 올바른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전륜성왕이 법륜, 즉 정의와 보편적 진리로 온 세계를 평정하고 통치한다는 의미는 온 세계를 평화롭게 평정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정의롭고 보편적인 진리에 의거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한 경전에는 만일 왕이 빈궁한 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온갖 사악한 행위가 넘쳐나게 되어 사회가 타락하고 수명도 8만 세에서 4만 세, 2만 세로 줄어서 마침내 10세까지 줄어든다는 내용이 있다. 즉 세상에 도덕이 무너지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은 통치자가 빈궁한 자를 구제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통치자는 스스로 수행하고 선업을 쌓아야 하며, 통치는 정의와 보편적 진리에 의거해야만 온 세상의 나라가 스스로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라 안의 빈궁한 계층에 대해서는 통치자가 빈궁한 계층을 먼저 구제해야만 평화로운 사회가 되고 오랜 수명을 누리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교는 온 세상을 통치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법에 의거하여 통치해야 하며, 빈궁한 자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구제를 할 수 있어야 함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빈곤에 대한 가르침을 절대적 빈곤과 함께 최근 심화되고 있는 상대적 빈곤의 문제에 적용해보면, 각 개인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해야 하지만, 사회와 국가도 빈곤한 계층을 돕기 위한 복지제도의 도입과 보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기존 복지제도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는 기본소득제도와 같은 새로운 제도도 검토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제적인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경제력이 취약한 저개발국은 제반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므로 외국의 다각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상대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로 인한 상대적 빈곤의 심화는 이제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과 국가와 세력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무엇이 정의이고 보편적 진리[正法]인지 지혜를 모으고 새로운 경제시스템과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

 

장성우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강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주요 논문으로 〈초기불교의 경영사상 연구〉(박사학위 논문) 〈원측 유식의 불성론과 그 정체성〉 〈초기불교의 경영사상 일고찰〉 〈4차 산업혁명과 불교의 경제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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